위험한 심리학 - 천 가지 표정 뒤에 숨은 만 가지 본심 읽기
송형석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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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 -

 

아마 인간이 '사회'라는 이뤘을 때부터 생겨났을 질문.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만 있다면...  짝사랑 하는 사람의 마음도 알고 싶고, 날보며 수근거리는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고 싶고. 단순한 내가 생각하는 심리학의 발달계기란 너무 단순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도 창피한, 이런 이유다. 물론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배운다고 실제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런 생각에서 싹트지 않았을까?

 

언젠가 교양 강의로 현대 사회와 심리학이란 강의를 수강한 적이 있었다. 두 과목 중 선택해야 하는 과목이었는데 불행히도 족보가 없다는 나름 절실한 이유로 나와 단짝을 제외한 우리과의 대다수가 다른 과목을 선택해 잘 모르는 학생들 사이에서 한 학기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심리학을 심도 깊게 다루는 강의라기 보다는 심리학의 언저리를 가볍고 상식적으로 알려주는 듯한 강의라 오, 이렇게 유익할 수가! 하고 감탄했지만 정작 인간관계에서는 적용해 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론으로만 해나가기에는 인간이 너무 복잡해서. 더군다나 경험이 부족했던 새내기 대학생에게 그런 이론은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이론을 백날 공부해 봐야 써먹기엔 내가 너무 미숙했다.

 

그로부터 몇 년, 이 <위험한 심리학>을 읽으며 또다시 그런 기분을 느꼈다. 그런 깨달음을 옛날에 얻고도 나는 '다른 사람의 행동 / 마음을 읽는 일'에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에 눈치 빠른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난 너무 부럽다. 눈치라는 건 일종의 '상황 / 사람을 읽는 일'을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래서 이 책을 펴들며 또다시 이 책만 읽으면 사람을 읽을 수 있겠지! 하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난 아마 요가 매트만 사도 살이 빠지는 기분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딱 잘라 말하자면, 이번에도 내 환상은 이뤄질 것 같지 않다. 송형석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심리학은 단순히 사람을 읽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난 심리학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인에 불과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심리학은 인간 행동 / 심리에 대한 확률이다. 어떤 상황에서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고 그 반응을 분류한 것 같다고 말하면 너무 간단하게 말한 걸까.

 

이 책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 '퍼즐'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행동을 관찰해서 퍼즐 조각을 모아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 예상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해 주기 때문에 예시만 읽어도 재미가 쏠쏠하다. 다양한 예시로 넘어가기 전에 퍼즐 조각을 찾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선생님이 '퍼즐'이라고 하셨으니 퍼즐 비유를 좀 더 사용해 말하자면, 컴퓨터용 '숨은 그림 찾기' 게임에는 으레 '힌트'가 주어진다. 그냥 봐서는 몰라 속절없이 사라지는 시간을 바라보며 누르는 그 힌트는 (빛이 나든 동그라미가 나타나든) 숨어있던 숨은 그림을 찾아 보여준다. 이 책에 소개되는 행동 관찰법은 그런 힌트와 닮아있다. 평소라면 신경쓰지 않고 넘어갈 것들을 하나 하나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해준다. 물론 그렇게 모은 퍼즐조각을 제대로 맞추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렇게 쉬웠으면 세상이 뒤집어졌겠지.

 

하지만 제한된 힌트라도 힌트이고 전체를 몰라도 구석만 맞춰두면 일단 희망이 보이는 게 퍼즐 아니겠는가! 당장은 몰라도 그 사람을 읽는 내 시도 자체는 의미 있는 일 아닐까. 다른 사람을 읽는다는 건 거꾸로 말하면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이니까. <위험한 심리학>은 그런 팁을 소소하게 알려주고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면 어색하고 당황스러울 '지내기 어려운' 성격들의 유형을 소개하며 적용할 수 있는 대처방법을 소개해준다.

 

이 책을 읽고 바로 아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하겠네! 하고 돗자리는 못 깔아도 사람을 만날 때 좀 더 신중하게 상황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지내다보면 언젠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난 아직도 꿈을 못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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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르츠 바스켓 16
타카야 나츠키 지음, 정은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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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다보면 내 취향이 어떤지가 극명히 드러난다. 기록의 힘이란 굉장하다. 책을 그저 끌리는 대로 고르다보니 소설쪽에서는 추리소설, 환상소설, 성장소설이 선두를 달리고 만화쪽에서는 추리만화, 코믹만화, 잔잔한 만화가 선두를 달린다. 이제서야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독서 기록장을 왜 그렇게 열심히 쓰게했는지 알 것 같다. 책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 외에도 내 취향을 알게 해주는 기능이 있어서 꼬마 독서가들에게는 중요한 관문이 될 테니까. 물론 이제와 깨달아봐도 독서 기록장 쓰기 싫어서 몸부림쳤던 나날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오늘은 읽은 만화책 중에서 잔잔함 카테고리의 <후르츠 바스켓>을 리뷰해 보려고 한다.


후르바(내가 멋대로 줄인 제목...후르츠 바스켓이라고 말하다보면 배가 고파져서...가 아니라 길어서.)는 나름 판타지틱한 설정이 포함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라는 점.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부분 한 번쯤은 '띠'로 만났을 12간지를 바탕으로, 소마가라는 한 가문에 12간지의 동물의 영혼을 지닌 사람들이 태어난다는 독특한 소재를 가진 후르바는 거기에 그 사람들이 이성과 접촉시 동물로 변한다는 매우 판타지적이고 매력적인 소재까지 갖춰 놓았다. 물론 독자의 입장에서.

 

후르바를 처음 읽을 때는 오, 신기하다, 라고 생각한 소재지만 생각만큼 재밌는 소재는 아니다. 만화의 내용이 재미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겪고 있는 등장인물에게. 이성에게 안기면 동물로 변하기 때문에 제대로된 일상에서 살아갈 수 없고 폐쇄된 환경에서 '인연'에 묶여 다른 사람과 선을 긋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후르츠 바스켓'은 그런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이야기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1권을 접한 건 오-래전이지만 완결을 본 건 최근의 일이다. 내용이 좋지 않았다거나 그림체가 형편없었다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지켜볼 수가 없어서. 몇 년이 지나 스스로가 성장했다는 건 아니지만, 이 세상에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다는 걸 알고 나서야 다시 펼쳐볼 생각을 하다니 참 어린 것 치고는 진지했구나 싶다. 그것도 매우.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힘이 있다. 사람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힘이.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링도 비슷한 이유로 주인공인 토오루를 밀어낸다. 상냥한 사람이 불이익을 당하는 걸 보고싶지 않아서,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밀쳐내고 도망가고.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이 만화책을 묵혀둔 건 링과 '정확히' 같은 이유가 아니다. 비슷하다고 말하는 건 토오루가 착하기 때문에 밀어냈다는 의미다. 나는 '착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불행에 휘말려 가여워지는 게 싫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상냥한 사람이 아니고 그걸로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할 만큼 착하지도 않으니까. 링은 착한 사람이 괴로워하는 게 싫다, 고 말했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착한 사람'이 아닐까. 착한 게 뭐 별건가? 내가 괴로워 남에게 고통을 전가시키는 사람도 많고, 남의 괴로움을 못 본척 지나가는 사람도 많은 이 세상에서 자신이 괴로운데도 남의 괴로움에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착한 사람이 아닐까.

 

 

12간지가 중심인 만큼 기본적으로 등장인물이 많다. 12간지와 대응하는 12명의 사람들과 12간지에 들어갈 수 없었던 고양이 영혼을 지닌 사람, 신의 역할을 맡아야만 했던 사람, 그리고 그 중심에 주인공인 토오루.

 

내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했던 토오루는 그야말로 '착하고 선량한 사람'의 표본이다. 상냥하고 남을 배려하는 게 배어있는 사람. 모두에게 친절하고 자신을 아끼지 않고 남에게 던져줄 수 있는 사람. 난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착한 사람을 보면 화가 난다. 도대체 왜, 하고 묻고 결국엔 눈을 돌리고 만다. 링이 착한 사람을 위해 가슴아파 화를 냈다면 난 반대로 그 사람이 답답해 화를 낸다. 왜 좀 더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거야? 하고. 하지만, 그래,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후르바의 토오루가 했던 것처럼.

 

후르바에 나오는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 '평범하게 행복한' 사람들이 아니다. 힘겨운 현실을 마주하고 부딪히고 희망을 그러모아 살아남은 사람들이라고 할까.  남들에겐 평범해서 지루한 현실조차 그 사람들에겐 마냥 부러운 '꿈같은' 일일 정도로. 타고난 환경 때문에 계속해서 남과 다름을 깨달아야 하는 사람도, 현실을 부정하며 남을 미워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도,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서 헤매는 사람도 토오루는 토오루답게 곁에 있어준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들 한다. 그 사회 속에서 상처받고 울어도 타인의 사랑을 원하는 외로운 존재라고. 힘들고 외로워 무너진 사람에게 자신을 사랑하라, 고 말해도 타인의 관심과 사랑없이는 힘든 일일 수도 있다는 걸 후르바를 통해 깨달았다. 사람마다 타입이 다를 수는 있지만, 타인의 사랑 위에만 존재할 수 있는 자아는 분명히 있다.

 

처음 토오루에게 화가 났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토오루를 한 번 만나고 싶어졌다. 머뭇머뭇 내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눈을 휘고 웃으며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을까. 때로는 힘내라든가 이렇게 하면 좋다든가 하는 말이 아니라 단순한 괜찮다는 말에 모든 게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힘을 얻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리광 섞인 생각이 들어서.

 

 

현실은 당연히 힘들다. 어느 누구에게도 항상 행복한 인생은 없고,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불행이 있다고 하니까. 그럴 때는 나를 긍정해주고 위해주는 사람들을 찾아가보자, 우리. 힘을 얻고 나아갈 수 있도록.

 

그럴 짬이 없다면, 쉬는 셈치고 후르츠 바스켓을 펼쳐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나를 향한 상냥함은 아니라도 토오루를 만난다면 분명 마음이 조금 부드러워질테니까.

내 아픔을 전부 받아준 게 아냐. 거리도 전부 메꿔진 게 아냐. 하지만 중요한 건, 제일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같이 있어주었다.
작은 일로 기뻐하고 좋아하고 행복한 듯 웃어주었다. 왜지? 좀더 자기 생각만 하면 좋은데 어째서야? 그런 건 자기만 손해잖아? 바보 같잖아. 좋은 일은 하나도 없어.
생각하는 건 헛수고야. 나그네는 그런 거 생각 안 해. 다른 사람에게 바보 같은 짓이어도 나한텐 그렇지 않은 것 뿐. (11권)

<이 세상>같은 건 잘 모른다. <나>에 대해서도 모르는데 <세상>같은 건 인식할 수 없다. <나>는 언제나 텅 비었고 <나>의 존재도 텅 비었고 아무것도 없다. 왠지 나는 부품이 빠진 인형 같다. 인간이 되지 못하는 망가진 인형. 결함제품. 타인들은 언제나 지나쳐간다. 나도 지나쳐간다. 타인들이 투명한가? 내가 투명한가? 이 세상에 가담하지 않는 건 나? 난 필요한가요? 난 필요한 존재인가요? 난 이 세상에 필요한가요? (15권)

무언가를 얻거나 알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희생하거나 상처 입혀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안타까운 일이지만.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무언가를 상처입히는 그런 일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적어도 다정히 해주고 싶다. 보답해주고 싶다. 보답받고 싶다. 내게 보여준 미소보다 더 많이. (1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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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01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 서평을 정성 있게 쓰시는 분을 처음 봤습니다. 제가 만화를 안 봐서 nia님의 생각을 공감하기가 어렵지만, 장르 불문하고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nia님의 자세가 좋습니다. ^^

nia 2016-05-01 22:43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장르를 떠나서 제가 좋아하는 성장물이라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드문드문 기록을 남기는지라 칭찬을 받으니 부끄럽네요... 칭찬 감사합니다^^!
 
중학영문법 3800제 1학년 - 3차개정판, 2013년 중학영문법 3800제 2013년 1
마더텅 편집부 엮음 / 마더텅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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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상품이 하나밖에 안 올라가서 일단 일학년으로 했지만 1/2/3학년을 묶어서 리뷰하는 게 편할 것 같네요.


원래도 1/2/3학년 3800제를 다 가지고 있었지만 이번에 중학교 교과서가 개정되면서 3800제도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검정색으로 차분한 표지도 좋았지만, 눈에 확 뛰는 빨간색 표지가 더 예쁘네요. 문제집 표지 예쁜 거 가지고 별점을 매길 수는 없겠지만요 ㅎㅎㅎ


아시는 분들은 이미 다 아시겠지만, 올해 2013년부터 중학교 교과서가 개편되었잖아요. 

살펴보니 예전 교과서보다 서술형 문제와 활동이 많아졌더라고요. 배워서 실생활에 써먹기에는 좋아졌는데 기초가 부족한 아이에게는 너무 어려워졌다는 단점이 있죠. 반면 어느 정도 기초가 있는 아이는 오히려 재미있어 할 것 같아요. 실제로 저는 새 교과서 보면서 재미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학생들은 질겁하겠죠 ㅎ_ㅎ)


내용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정리가 잘 된 내용이여서 따로 뭘 추가할 필요가 없었죠. 사실 저도 개정판이 오기 전까지 도대체 뭐가 달라졌을까 궁금해 했는데, 내용적인 면에서는 달라진 점이 없어요. 다만 개정판에는 기초적인 문법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암기표가 들어있어서 따로 떼어내 활용할 수 있어요. 뒤쪽에 있는 단어 암기장은 크기가 달라졌어요. 예전 것은 작게 접어서 가지고 다닐 수 있었는데 개정판은 책 크기만하게 나왔네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저는 둘 다 장단점이 있어서 상관없는 것 같아요. 작으면 가지고 다니기는 편한데 접어서 쓰는 거라 붕~ 뜨는 감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예 묶어서 나온거라 그냥 넘기기만 하면 되니까요. 물론 휴대성은 작은 편이 낫지만, 다른 책들과 갖고 다니면 되니까요.


개정판과의 차이점은 이만하고.


시중에 그야말로 수백권의 영어 공부책이 있어 다양성은 있지만 고르기는 그만큼 어렵죠. 저만해도 처음에 서점을 얼마나 뱅글뱅글 돌았는지... 나중에는 눈이 아파오더라니까요. 

그러다 아는 분이 추천해 줘서 3800제를 봤는데 문법이 대주제 아래 딱딱 정리되어 있는데다 핵심만 문제로 잡아내어 아이들이 문법 공부하기에 좋겠더라고요. 물론 영어를 문법에만 치중해 배우는 건 전체적인 성장을 봤을 때 좋지 않지만, 문법이 어느 정도 있어야 독해도 하고, 글쓰기도 되는데 그 단계까지 가기가 힘드니까요. 그 단계까지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가기에는 3800제만한 책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 라고 쓰는 이유는 제가 시중의 모든 문제집을 다 체크하지 못했기 때문이예요! 제가 본 것 중에서는 가장 진도 나가기 좋은 문제집입니다 :D)


ㅎㅎ 문제집이라도 새 책은 언제나 신나네요!!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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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폴리스 1 블랙펜 클럽 6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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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온다 리쿠의 소설이다. 사실 내가 온다 리쿠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온다 리쿠가 주로 쓰는 미스터리/추리소설계 소설들이 아니라 <초콜릿 코스모스>다. 연극이라는 소재에 눈이 번쩍 뜨일만큼 재능있는 아이가 거듭 오디션을 보는 자체가 너무 좋은데다 온다 리쿠만의 흡인력 있는 문체덕에 내가 오디션을 구경하는 것마냥 신이 나서 읽었다. 게다가 미스터리계 소설에 비해 접하기 쉬운 소재기도 하고.

 

온다 리쿠의 미스터리 소설은 인간 세계과 저 너머의 세계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는 느낌이 든다. 이렇다 할 정의는 못 내리겠지만 굳이 이름붙인다면 인간이 닿지 못하는 신의 세계랄까. 그래서 책을 다 읽고나면 극심히 피곤해지거나 허탈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너무 몰입해서 봐서 지친 눈을 가만히 눌러줘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이 『네크로폴리스』도 마찬가지로, 다 읽고 책을 덮고나니 탈력감이 밀려들었다. 이번 같은 경우는 허탈감이 함께 들었다.

 

 

『네크로폴리스』는 초반부에는 영 적응하기 힘든 소설이다. '어나더 힐'이 어딘지, 무엇인지, 그 기묘한 분위기는 무엇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도 없거니와 일본어와 영어의 오컬트계 단어가 자꾸 튀어나와 안 그래도 어지러운 머리에 새로운 물음표를 추가한다. 밑에 주석이 달려있거나 읽는 도중 설명이 나오긴 하지만서도 책을 술술 읽어내려가는데에는 역시 방해다. 덕분에 한동안 스토리보다 배경을 이해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준이야 어안이 벙벙해도 기본적인 기초지식은 있을테지만, 막 책을 펼친 나는 그 기초지식도 간절했다. 보통 판타지소설을 보면 중간에 그 배경세계를 설명하는 길고 긴 설명글이 들어가있다. 읽는게 귀찮아서 늘 대충대충 넘겼던 부분인데 『네크로폴리스』를 읽을 때는 그 길고 지루해보이는 설명글이 그리울 지경이었다.

 

 

『네크로폴리스』는 죽은 자가 '손님'으로 찾아오는 어나더 힐의 이야기다. 이번에 어나더 힐을 처음으로 찾아간 준과 '손님'들, 그리고 살인사건과 변화된 어나더 힐의 퍼즐조각이 조각조각 맞물려있다. 충격적인 '살인사건' 혹은 '살인범'의 흔적을 곳곳에 던져놓았지만 그 흔적을 죽 따라가다보면 뭔가 속고있는 느낌이 든다. 아- 그렇다고 안 따라갈 수도 없고. 뭐니뭐니해도 그 살인범이 '피투성이 잭'이라고 불리는데다 (무려 Jack the Ripper의 재림) 어나더 힐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있는 일이니까 작은 힌트라도 나오면 어나더 힐 사람들처럼 달려들어 여러모로 궁리를 해본다. 그 와중에 우리의 준은 '손님'과 만나고 환상을 보고 신기한 체험을 하는 등 개인이 줄 수 있는 모든 힌트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읽는 나로서는 참 고마운 일이지만 그동안 준은 신경쇠약에 안 걸린 게 이상할 정도다. 미스터리 소설에서 이 정도로 몸을 던져 힌트를 날려주는 주인공도 흔치 않다. 물론 그 힌트들이 전부 조각나 맞춰볼 수는 없지만서도.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소설의 키워드는 죽음과 전통의 소멸이 아닐까 싶다. 죽은 사람이 태연히 걸어다니는 세계, 어나더 힐에서 준은 약간의 지식만 앞설 뿐, 읽고있는 나와 마찬가지로 그 이질적인 세계에 하나하나 놀라고 동요한다. 불쌍하게도 아무런 설명없이 이상한 세계에 입산하게 되어서는. 연구자라고 바깥의 상식으로 새로운 세계를 재려해도 통용되지 않고. 그 필사적인 '객관적 사고'는 그보다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내 입장에서는 가여울 정도다. 하지만 그 개관성, 제 3자의 치우치지 않은 감각 덕분에 '지금'의 어나더 힐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준이 없었다면 그저 아, 이상한 세계다- 했을텐데 여러가지 일이 뒤죽박죽 일어나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이야기를 따라가기만 할 때 우리와 마찬가지로 당황해 하는 준이 우리보다 앞서 있었기에 준의 시각을 빌려서 바라볼 수 있었으니까.

 

 

물론, 마지막에 기막힌 (머리 속) 정보력을 모든 것을 이해한 듯 보이는 준과 달리 나는 책을 덮고도 수많은 외국의 신화 속 단어와 정체들에 머리가 아팠다. 자기 전에 읽은 책으로는 상당히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덕분에 밤새도록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꿈을 꿨으니까. 리뷰를 쓰는 지금도 어나더 힐에 대해서 의혹이 사라진 것은 아니나, 나름의 평화를 되찾은 엔딩을 생각하며 그냥 묻어두기로 했다. 이렇게 묻어두면 나도 언젠가 준처럼 갑자기 광명이 찾아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니까.


 

-난 그쪽이 이상하더라. 눈에 안 보이는 건 안 믿는다는 사람도 말은 믿잖아. 말도 눈에 안 보이기는 마찬가지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게 나한테는 오히려 기적 같던데. (39)

 

-사회가 다수파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을 그는 실감했다. 선악과 도덕을 결정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다수파 대중이다. 그는 자신의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세계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했다. (59)

 
-죽음이 잔혹한 것은 불시에 찾아와 작별인사를 할 기회도 없이 모든 것이 단절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마지막으로 한두 마디 주고받을 수 있었다면, 제대로 인사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유족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그러니 이렇게 제대로 인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자기는 괜찮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준다면. 그것이 이 세상을 살아나갈 사람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될까. (2 - 111)


> 내가 읽는 동안 궁금했던 단어들... 스토리와 전혀 상관없는 단어도 많습니다.

*히간(彼岸)

일본에서 1년에 두 번 있는 행사를 말하며 각각 춘분과 추분의 전후 3일씩 약 일주일을 말한다고 합니다. 정중하게 お를 붙여서 오히간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조상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성묘를 하러가는 기간이라고 해요.

히간은 불교 용어로 죽은 자가 건너는 강 저쪽을 의미하고 생사의 바다를 건너 도달하는 깨달음의 세계를 뜻한다고도 하네요. 한자로 읽으면 피안으로 저 피, 언덕 안으로 이루어진 단어입니다. 한자로 잘라놓으니 책 속의 배경인 어나더 힐(another hill)과 의미가 통하네요.

 

*헌잔(獻殘)구이

정확한 일본단어나 풍습은 못 찾았지만 비슷한(즉 용도가 비슷한) 풍습은 몇 개 보이네요. 헌잔이라는 한자는 바치고 남은 것이란 뜻인 듯 합니다. (한자는 바칠 헌에 잔인한 잔인데 왜 그런 뜻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일본어 어렵네요!)

일본에서는 신에게 바친 음식과 술을 제사(혹은 행사) 이후 나눠먹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각각 다른 풍습에서 약간씩 세부적인 의미는 다르지만, 신에게 바친 음식/술을 먹고 마셔서 더럽고 부정한 것을 제거하고 신의 신비한 힘을 얻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공통적입니다.

이런 풍습으로는 일본식 떡국인 오조니(お雜煮), 설날에 마시는 술인 도소주(屠蘇酒)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보니 비슷한 풍습이 있네요, 인터넷을 뒤져보니 굿이 끝나면 신에게 바쳤던 음식과 술을 나눠먹는 음복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라는 속담이 나왔나봐요? ㅎㅎ

 

*도리이(鳥居)

일본 신사 입구에서 자주 보이는 전통 문의 일종으로 불경한 곳과 신성한 곳(신사)을 구분짓는 경계라고 합니다. <네크로폴리스>에서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죠~ 인터넷을 뒤져보니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새를 신의 사신이라고 믿어서 새가 쉬어갈 장소를 신사 앞에 마련해 놓은 거라고도 한다네요. 좀 더 많은 정보는 이쪽 -> http://ko.wikipedia.org/wiki/%EB%8F%84%EB%A6%AC%EC%9D%B4

 

*이나리(稲荷,오이나리) 사당

이나리는 일본의 비옥과 쌀, 농업, 여우, 공업과 세계적인 성공의 신이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대장장이와 사무라이를 비호하는 신이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오곡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네크로폴리스>에서 이나리 사당에 유부를 바친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건 오곡신의 사자인 여우가 유부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마모노마에/타마모노마에(玉藻前)

일본 신화의 전설적인 인물로 고노에 천황 시대의 게이샤로 가장 아름답고 지적인 여자로 언급된다고 합니다. 그 정체는 꼬리가 9개 달린 황금빛의 여우로(쉽게 말하면 구미호겠죠...) 천황을 유혹하고 건강을 해쳐 나라를 어지럽히려고 했지만 음양사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죽은 후 돌이 되어 독기를 내뿜는 살생석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에 실제로 살생석을 봉한 사당이 있다고 하네요.

 

*구가타치(探湯)

일본 고대 재판 판정 방법 중 한가지라고 합니다. 시비/정사를 가리기 어려운 때에 신에게 맹세하고 끓는 물에 손을 넣게 하면 죄 없는 이는 손을 데지 않는다고 믿었다고 하네요. 서양에도 비슷한 전설이 있는데,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팩과 오드리 헵번이 장난치던 '진실의 입'이 유명하죠. 거짓말한 사람이 진실의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고 합니다. <네크로폴리스>의 갓치는 서양의 진실의 입에 좀 더 가깝네요... 잔인하다는 점에서.

 

*헨리 제임스

이 인명은 마음에 걸렸다기 보다... 재미삼아서 찾아봤는데 있네요... 전 아직 멀었나봐요, 실존하는 작가일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반성합니다...

<네크로폴리스>에서 어나더 힐에 대한 수기인 '언덕의 품에'의 작가는 해리 E. 제임스지만 마리코는 그건 가명이고 헨리 제임스가 쓴거라고 추측하죠. 헨리 제임스는 미국의 소설가 겸 비평가로(나중에 영국으로 귀화했지만 태생은 미국인이니까요), 대표작으로는 <나사의 회전>, <데이지 밀러>, <어느 부인의 초상> 등이 있습니다.

 

*바구니 코, 바구니 코(가고메 가고메)

일본의 전통 놀이로 술래를 뽑아 술래 주위를 돌며 노래를 부른 후 노래가 멈추었을 때 술래가 바로 뒤에 있는 사람을 맞추는 놀이라고 합니다. 이 노래 자체가 해석이 분분해서 그런지 민속학/일본 신화/일본 전통 설화 등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종종 등장하네요~ 실제로 해보지 못하고 그런 작품들로 접한 덕분에 이 놀이 자체가 무서워 보여요...

 

*헌드레드 테일스/햐쿠모노가타리(百物語)

이건 우리나라에도 전해진 괴담이네요. 전 옛날에 만화책으로 접했던 이야기인데 이런 류의 이야기는 어린애들 사이에 빠르게 번져나가서 아마 아시는 분들이 꽤 많을 듯 합니다.

촛불을 100개 켜놓고 괴담 하나를 마치고 촛불을 하나씩 꺼나가면 100번째 괴담이 끝난 후(즉 100번째 촛불이 꺼진 후) 청행등이라는 요괴가 나타난 괴이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요. 일설에 따르면 요괴가 아니라 그 후에 일어나는 괴이한 일을 총칭해 청행등이라고 한다고 하네요. 아무튼 괴담을 100가지나 말하는 것 자체가 으시시 합니다...

 

*자시키와라시(座敷童子)

일본판 정령입니다. 다다미 방 혹은 창고에 사는 신으로 그 집 사람들에게 행복/돈을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보통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장난을 좋아하고 어린아이에게는 보이지만 어른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라고 하네요. 본 사람에게는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말도 있습니다. 서양의 브라우니 요정이 생각나는 신이네요.

 

*삼족오(三足烏)

<네크로폴리스>에서는 한없이 불길하게 나오는 불쌍한 존재입니다. 원래는 고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태양에 산다고 여겨졌던 전설의 새로, 3개의 다리가 달려있는 까마귀입니다. 태양의 사신이며 3이 양수(陽數)이기 때문에 발이 3개라고 합니다. 책을 다 보신 분들에게는 어라? 할만한 정보로는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신 아폴론의 까마귀는 원래 흰 색이었지만 아폴론의 노여움을 사서 까맣게 되었다고 합니다.

 

*크레타인의 패러독스

고대 크레타에서 에피메니데스라는 사람이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에피메니데스 역시 크레타인이었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에피메니데스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그럼 저 발언 역시 거짓말이 되고... 라는 식으로 매우 머리가 아파지는 일화입니다. 패러독스는 역설을 뜻하며 <네크로폴리스>안에서는 간단히 말해서 '거짓말'과 '진실'은 각자의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뜻 같아요. 거짓말 탐지기와 같은 원리일까요. (거짓말 탐지기는 '거짓말'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거짓을 말할 때 일어나는 생체 반응을 잡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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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 푸딩 살인사건 한나 스웬슨 시리즈 12
조앤 플루크 지음, 박영인 옮김 / 해문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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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는 리뷰하기가 어려워서 되도록이면 안 하려고 했는데, 이 시리즈는 어차피 한 권당 한 사건인데다 진전도 거의(!) 없는 편이라 뭉뚱그려 리뷰하기도 편할 것 같고...나름 즐겨읽는 책이라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김에 리뷰를 해보기로 했다.

조앤 플루크의 살인사건 시리즈는 내가 좋아하는 로맨스와 추리를 적절하게 섞어놓은 소설이다. 주인공은 한나는 (자칭) 보기싫은 붉은 머리에 통통하며 늘상 (자신보다 외부 압력에 의한) 다이어트로 고민하는 소박한 베이커리 주인이다. 명실상부 미네소타주 최고의 베이커리 '쿠키단지'의 주인인 한나는 한 권, 한 권 읽기만해도 먹고싶어지는 다양한 빵/푸딩/케이크/과자를 구워댄다. 아, 저절로 씁쓸해지는 말투여... 이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유혹에 약한 나는 동네 빵집으로 달려가 빵을 입에 물고 돌아오곤 한다. 한나는 자기 다이어트는 물론 내 다이어트마저도 위협하고 있다...

입맛도는 한나의 레시피는 책의 중간중간에 실려있으나 라면물도 잘 못 맞추는 나는 레시피가 나오면 책장을 넘기기 바쁘다. 덕분에 한나의 레시피들이 실제로 무슨 맛인지는 상상에만 맡기고 있다.

이 베이커리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 해도 레시피도 살인사건도 아닌 '시리즈'라는 특징에 맡게 한나 주위의 사람들이 점점 등장하고 친근해진다는 점이다. 첫 권만해도 한나와 여동생 안드레아만 눈에 들어왔는데 <자두 푸딩 살인사건>에 이르러서는 고정적인 캐릭터만 해도 주인공 한나 외 9명에다가 그간의 시리즈를 통해 '알게 된' 이웃주민도 여러명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 원작으로 미드 하나 나와도 재밌을 것 같다... 문제는 그 때마다 빵(혹은 과자 혹은 케이크 혹은 푸딩 등등)이 먹고 싶을 가능성이 98%라는 거.

사실 베이커리 살인사건 시리즈는 추리소설이라기엔 너무 전개가 뻔하고(한나는 매번 마지막에 죽을 위기를 맞고 늘 파트타임 남자친구가 구해준다) 로맨스라기엔 너무 진도가 느리다. 어느 한 쪽이다, 라고 말하기엔 어렵지만 두 분야에서 각각의 재미를 주니 큰 문제는 없다.

다만... 슈크림 살인사건과 자두 푸딩 살인사건을 연달아 읽고나니 '연애'와 '추리' 사이에서 '연애'부분 진도가 너무, 진짜로 너무 느리다!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한나는 그 머리카락색과 체형에도 상관없이 인성으로 두 남자를 매료시킨 잘나가는 여자()다. 한나 관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기 때문에 진짜 다른 사람들이 한나를 어떻게 보는지 객관적으로 알 길은 없지만, 한나는 연거푸 자신의 머리카락(붉은색)과 체형에 대해 불만족감을 나타낸다. 어느 여자고 컴플렉스는 있는 법이고 당연한 일이라도..., 남들이 봐도 잘나가는 남자를, 그 작은 마을에서, 둘이나 반하게 해놓고 무슨 불평이야! 라고 소리치고 싶어진다. 이게 바로 잘 안 나가는(?) 여자의 화풀이일까...

한나의 파트타임 남자친구는 두 명, 한 명은 잘생기고 섹시한 경찰이고 한 명은 편안하고 배려심많은 치과의사다. 물론 시리즈 중간중간 한나에게 호감을 표하는 남자가 나왔다가 사라지곤 하지만 주가 되는 연애라인은 이 삼각관계다. 최근에는 한나를 둘러싼 두 남자가 친구가 되는 바람에 더욱 더 미묘한 관계가 되었다. (자두 푸딩 살인사건에서 보면 두 남자가 한나에게는 존댓말을 하면서 서로에게는 반말을 하는 게 보여서 둘이 참 친해졌구나- 싶었다.) 게다가 자두 푸딩 살인사건에서 시리즈 최초로 다음 권을 예고하는 듯한 엔딩으로 한나의 전 남자친구가 등장했다. 점점 추리보다 로맨스가 흥미진진해지는 듯 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문제는... 내가 이번에 시리즈 두 권을 연달아 보고 짜증이 난 점은... 그 두 남자의 캐릭터 차이다. 책 두 권을 후닥 읽어내려간 뒤 엄마에게 달려가 '이 남자는 이렇고 저 남자는 이런데, 이 여자는 저 남자를 선택하지 않고 둘 사이에서 방황해!! 이상해!!'라고 울부짖었다. 실생활 연애와는 거리가 멀어서 그런건지 낭만적이기보다는 현실적인 성격이라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한나의 파트타임 남자친구(1)인 마이크는 알고지내기엔 좋지만 남자친구/남편하기엔 짜증나는 남자 스타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잘생기고 섹쉬(시가 아니라 쉬)한 마이크는 걸핏하면 (여자 입장에서 봤을 때) 머리 비고 몸매 좋고 성격나쁜 여자들과 염문이 돌고, 경찰인 탓인지 한나를 종종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곤 한다. 시리즈를 읽으면서 난 마이크가 미칠듯이 잘생기고 섹시하고 신들린듯한 키스 테크닉을 가졌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여자가 그렇게 붙어있을리가 없으니까.

내 울부짖음에 엄마는 심드렁하게 TV 드라마를 보며 말했다. "여자는 나쁜 남자한테 끌리게 되있어." 그렇다, 마이크는 나쁜 남자의 집합체(잘생기고 섹시하지만 여자보다는 자기에게 중점을 두는 남자)고 노먼은 착한 남자의 집합체(편안하고 여자를 항상 배려하는데다 사소한 일까지 신경써주는 남자)다.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는 개인 취향일테니, 어떤 독자는 마이크를, 어떤 독자는 노먼을 응원하겠지.

하지만  이 미묘한 관계에 변화가 좀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삼각관계로 간볼 시기도 이미 지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나의 전 남자친구이자 인생의 전환점인 남자가 등장했으니 무슨 일이 터져도 크게 터질 듯 하다. (혹시 다음 권엔 그 남자친구가 죽는걸까?!)

리뷰를 한다고 해놓고 어째 한 사람의 흉만 실컷 본 것같은 느낌이 든다 - 지만 올라가서 그 구절을 모조리 지울 생각은 들지 않는게... 내 취향은 너무 확고하다... .
로맨스도 추리도 적절히 즐길 수 있는데다 요리를 하시는 분들이면 레시피까지 겟할 수 있는 다양한 매력이 있는 베이커리 살인사건 시리즈. 여타 추리소설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나 로맨스와 추리소설 두 분야를 다 좋아하시는 분들은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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