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게임 - 그들이 중산층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콘유 3부작
박해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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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인사청문회는 '완챔스'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많이 남겼습니다. 그 중에 부동산에 관한 이야기는, 부동산은 불패라는 신화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분당 땅 이야기도 그렇지만,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아파트 변천사는 그야말로 성공신화나 다름없었습니다. 74년 서대문구의 단층주택에서 시작해 77년 신반포 2차 33평, 80년 신반포 2차 42평, 88년 신반포 3차, 93년 압구정현대, 도곡동 타워팰리스, 도곡동 대림아크로빌로 이어지는 업그레이드는 대한민국에서 하나의 영웅 서사시라고 불러도 될 수준입니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은 바로 지금도 존재하며, 과거에도 존재했습니다.

광장에서 투쟁하던 청년들은 격변의 근현대사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부모가 되어야 했고, 부모가 되기 위해선 중산층이 되어야 했습니다. 중산층이 되기 위해선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부모가 돈이 많거나, 죽을 힘을 다해 일을 하고 아끼며 살거나, 도박에 성공하면 됩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아주 매력적인 도박을 제안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아파트 게임'입니다. 이 도박판은 매일 열리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다섯 번의 큰 도박판이 열렸습니다. 2차 경제개발계획 이후, 2차 유류파동이 온 70년대 중후반, 3저 호황의 80년대 중반, 국민소득 1만달러 돌파의 90년대 중반, IMF외환위기 이후 바이 코리아 열풍, 카드 대란, 아파트 버블로 이어지던 2000년대 초중반의 도박판은 많은 사람들을 중산층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1971년 유신헌법에 이어 1972년 주택건설촉진법이 공포되었는데, 이를 기점으로 국가가 주도한 본격적인 아파트단지 건설은 권위주의 체제를 견고히 하는 효과를 낳았다. 한국에서 아파트의 급증은 권위주의 국가 주도의 성장 모델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정부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은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분양되는 아파트를 매입하는 것은 큰 수익원이다. 당첨된 가구는 중간계급으로 편입되면서 체제의 수혜자이자 동조자가 되는 것이다." -《아파트 공화국》p.102

사람들은 고도성장의 열매가 성과급의 형태로 예비 중산층의 계좌로 흘러들었다가 아파트 분양 대금으로 용도를 변경한 뒤, 부동산 시장의 상승세와 보조를 맞춰 다시 아파트 소유자의 호주머니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깨닫고 게임에 참가했습니다. 버블의 한가운데엔 언제나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이 있었습니다. 경제성장으로 인한 유동성은 언제나 부동산으로 흘러들었고,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계속 이득을 보았습니다. 토지를 통한 자본 이득의 확대재생산 게임에서 가장 큰 승리자는 역시 재벌이었습니다. 재벌들은 개발잠재력을 갖춘 땅들을 열광적으로 매입했으며, 국내 30대 재벌이 보유한 부동산은 1억 4000만 평으로, 서울시의 70퍼센트가 넘는 규모에 달합니다. 부동산은 움직이지 못하는 재산이 아니었습니다.

1989년부터 1990년 초까지 일본의 부동산 투자액은 1,800조 엔에 이른다. 국고예산이 60조 엔이니 약 30배의 규모다. 이것은 미국을 4개나 살 정도로 엄청난 금액이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투기 이면에는 '주식이나 부동산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강했고 시장은 그것을 강하게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굿바이 부동산》p.140

아파트가 고도성장을 통해 축적된 사회적 부를 시세 차익이라는 형태로 그 소유자들에게 배분하는 사회 시스템이 되면서, 아파트 게임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파트 게임의 혜택은 복지 제도를 대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지켜줄 방패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게임의 위험성을 염려해 뛰어들지 못한 사람, 시작할 자본이 없었던 사람들은 근로소득을 능가하는 자본이득의 압도적인 행진을 지켜봐야 했고, 서울이라는 게임판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90년대 서울에서도 건설회사와 토지개발업자가 험상궂은 용역깡패를 동원해 달동네 주택을 대형 해머로 때려 부수고 주민을 몰아내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50년대부터 가난한 사람들이 거주하던 고지대 토지가 1990년대에 이르러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김수현, 이현주, 손병돈은《한국의 가난》에서 서울과 비서울의 경제적 격차는 더욱 심화되어 한번 서울에서 벗어나게 되면 다시는 들어오기 힘들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주택소유자, 스쿼터, 세입자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이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이루어진 것은 단연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남한의 수도권에서 무려 72만 명이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한 가톨릭NGO는 남한이야말로 "강제퇴거가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이루어지는 나라, 남아공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나라" 라고 했을 정도다. -《슬럼 지구를 뒤덮다》p.142

부동산, 특히 아파트는 빈곤층에게 있어서는 선망의 대상이자, 중산층에게 있어서는 건드려서는 안될 성역이 되었습니다. 종합부동산세가 논의되자 그들이 보여준 격렬한 저항은, 정권을 뒤집을 정도였습니다. 게임의 승리자는 먼저 시작했던 투기꾼들, 불법적으로 정보를 얻을수 있었던 정치인들, 재벌들이었습니다. 아파트 게임은 고도성장과 경제 규모의 팽창을 동력원으로 삼은 상품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 동력원을 잃어버린 지금 아파트 게임의 결과는 엄청난 규모의 가계 부채, 대출을 받아 게임의 막바지에 참가한 하우스푸어, 엄청나게 오른 집값 때문에 내집은 커녕 방 한칸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청춘 세대를 남겼습니다.

이제 사다리는 치워졌습니다.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되고 저임금 고분양가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분양권이란 복권을 통해 마련할 수 있었던 내집마련의 꿈, 중산층 진입의 희망은 깨졌습니다. 사회의 부가 부동산의 시세차익이라는 형태로 분배되는 상황에서 집은 미래 그 자체와 다름없으며, 내집마련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내집마련에 실패한 세대는 모든것을 포기해버립니다. 그들은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관심없습니다.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 최적화된 주거 형태는 집이 아니라 방입니다. 3평짜리 고시원, 더 열심히 노력한다면 13평 원룸까지는 가능합니다. 금융권은 계속 내집마련을 위해 대출을 하라고 권유하지만, 비정규직의 시대, 유연성의 시대에서 장기 대출은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방법입니다. 아직은 대학생이나 취업 준비생 같은 산업예비군들이 매트릭스의 배터리처럼 방에 거주하면서 서울의 노화 속도를 늦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질임금은 변함없고 정부는 집값폭락을 막기위해 부양책을 계속 내놓는 동안, 양극화는 계속 심해지고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진짜 위기는 노동 과정에 편입되지 못한 산업 예비군이 영원한 잉여 대중으로 낙인찍혀 현재에도 미래에도 경제와 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쓸모없는 짐으로 여겨질 때, 사태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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