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반역이다 - 물리학의 거장, 프리먼 다이슨이 제시하는 과학의 길
프리먼 다이슨 지음, 김학영 옮김 / 반니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담배가 해롭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담배의 유해물질이 사람의 몸에 미치는 효과가 알려지기 전은 물론이고, 알려지고 난 뒤에도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은 담배가 괜찮다고 믿었습니다. 담배가 해롭다고 말하는 과학자도 있었지만, 담배가 괜찮다고 말해주는 과학자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담배회사에 고용되어 담배가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한 과학자들을 훗날 데이비드 마이클스는 "그들은 편향된 데이터와 거짓 추론 그리고 논리적인 잔재주가 뒤범벅된 그 무엇이다. 숨겨진 데이터, 특정 결과를 염두에 둔 추론, 공격적인 독단주의, 그러므로 다시 말해 완전한 사기인 것이다."라고 강력하게 비판합니다. 그것은 간디의 말마따나 인간성 없는 과학이었습니다.

저자 프리먼 다이슨은 슈뢰딩거 다이슨 방정식으로 알려진 원로 물리학자입니다. 그는 과학자라면 반역자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과학의 역사는 반체제의 역사였으며, 과학자의 반역 기질과 지적 역량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토머스 골드, 조지프 로트블랫, 아인슈타인, 노버트 위너, 리처드 파인만 등 수많은 과학자들은 모두 훌륭한 반역자들이었습니다. 과학은 반증적이어야 한다고 칼 포퍼가 말한 것처럼, 그들은 자신의 연구분야에서 반증적이었습니다. 과거의 유산들, 기존의 체제에 대항해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은 반역자의 몫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사회적으로도 반역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국가적 교만과 문화적 금기를 경멸했고,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안된다고 외쳤습니다.

오늘날 상대성 이론 하면 누구나 말하는 이름은 아인슈타인입니다. 그러나 많은 과학적 업적이 그러하듯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개념을 내놓은 과학자는 또 있기 마련입니다. 아인슈타인 말고도 상대성이론에 접근한 과학자는 바로 푸앵카레였습니다. 당시 인지도만 놓고 보자면 푸앵카레가 더 유명했고, 상대성이론의 창시자로 불리게 될 사람도 푸앵카레가 더 유리했습니다. 그러나 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푸앵카레는 보수적인 성향이었던 반면, 아인슈타인은 반역적이고 혁명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푸앵카레는 가능하면 옛 이론들을 고수하려 했고, 에테르 개념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낡은 기준을 모두 걷어버리고, 더 단순하면서 더 우아한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유럽인에게 보내는 선언'이라는, 평화를 위한 반론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한 유명한 학자는 단 한 사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뿐이었다. 그는 명성 높은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인스티튜트에 막 부임했던 차였다. 자기 생각을 그렇게 공적으로 유포한다면 탄압하겠다는 협박이 없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냉정했다. "평화주의는 나를 지배하는 본능적인 감정이다. 어떤 식의 이론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증오와 잔혹성에 반대하는 마음 깊은 곳의 저항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단순한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투쟁적인 평화주의자였다. "평화와 같이 자신이 믿는 어떤 것을 위해 죽는 일이 전쟁과 같이 자신이 믿지 않는 어떤 것을 위해 괴로워하는 것보다 더 낫지 않은가? 대중은 선전에 중독되지 않는 한 결코 전쟁을 열망할 수 없다." -《크리스마스 휴전,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


맨해튼 프로젝트는 과학사적 관점에서 큰 발전임과 동시에 과학자들이 군사 권력이나 기업 권력을 위해 일할 경우 과학과 기술이 야기할 수 있는 재앙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모든 국가에서 핵무기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설득하고, 첫 삽을 뜬 사람들은 정치지도자가 아니라 과학자였습니다. 전쟁과 개인적 성취 속에서 과학자들은 반역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핵분열이 발견되었을 때 물리학자들은 경쟁자들보다 나은 성취를 인정받기 위해 설전을 벌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과학적 성취를 공공의 위험보다 더 중요시했던 것입니다. 반면 DNA 재조합기술이 발견되었을 때 생물학자들은 위험한 신기술의 이용을 제한하고 규제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그들은 과학적 이론 그 이상의 것을 보았습니다.

세탁기가 가정주부의 노동력을 크게 해방시켜준 것처럼, 윤리적 문제를 거의 일으키지 않으면서 개인 규모로 작동하는 기술은 개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점점 오늘날의 과학은 일반인들,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순수과학은 일상과 거리가 아주 먼 심원한 문제들에만 집중하기 시작했고, 응용과학은 이윤을 내고 팔 수 있는 상품연구에만 집중합니다. 가난한 사람들보다 부자들이 신상품에 더 많은 돈을 낼 수 있으므로, 시장주도형 응용과학은 점점 부자들을 위한 기술개발에 전념하며, 결과적으로 부의 분배에 불평등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과학에 필요한 것은 빈자들을 위한 새로운 필수품이며, 시장주도형 자본주의에 대한 반역자들입니다. 과학이 계속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부자들에게만 혜택을 몰아주며 발전한다면,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해결책들에 의지할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합니다.

연구 성과는 또한 현재의 연구 환경과 관련이 있다. 연구에 열성적인 동료가 있으면 도움이 되듯, 설비와 기자재 역시 성과의 차이를 만든다. 크게 성공한 과학자들은 막강한 지원을 약속받고 채용될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든든하게 지원을 받으며 연구하기 때문에 경력이 쌓일수록 성과 차이는 점점 더 커진다. -《경제학은 어떻게 과학을 움직이는가》p.71


과학자는 연구를 해야 하며, 연구를 위해선 기업이나 정부의 자본이 필요합니다. 기업과 정부는 자신의 뜻에 반하는 연구를 위해 자본을 지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이런 자본에 반역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반역의 길을 가지 못하고 기업논리를 충실히 외치는 과학자가 되거나,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침묵하는 과학자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역자는 존재해왔으며, 현재도 미래도 반역자들은 필요합니다. 언제나 훗날 긍정적으로 평가될 과학적 업적은 윤리적 진보가 함께해 왔습니다. 시장논리에 반역하며 돈없는 아이들을 위한 신약을 개발하는 것, 모두가 전쟁의 광기에 휩싸여 있을 때 평화를 외치는 것, 모두에게 똑같은 교육이 강요될 때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하라고 말하는 것 모두 반역자의 몫입니다. 우리는 그런 반역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오 캡틴, 마이 캡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짝찾기 경제학 - 가장 이상적인 짝을 찾는 경제학적 해법
폴 오이어 지음, 홍지수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다른 어떤 조건도 고려하지 않는 채, 상대방의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하는 맹목적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는 좋아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사랑 이야기에서 돈이 개입되는 것을 별로 탐탁치 않아합니다. 비틀즈는 노래를 통해 '사랑을 내게 사줄 순 없어'라고 외칩니다.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염원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현실에 그런 사랑이 별로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많은 행동은 경제학적인 동기로 이루어지며, 사랑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사랑의 경제학적인 동기는 합리적 선택 같은 심리적인 것부터, 돈의 절대적 차이라는 물질적인 것까지 다양합니다.

스탠퍼드의 경제학자인 저자 폴 오이어는 이혼한 이후 새로운 파트너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는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 짝을 찾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연애 과정이 철저하게 경제학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자는 사람들의 연애 과정을 통해 경제학 이론을 설명하고, 동시에 경제학 이론을 통해 사람들의 연애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탐색 이론, 신호 효과, 역선택, 빈말, 통계적 차별, 시장의 크기, 네트워크 외부효과 등 사람들이 무언가를 선호하는 과정은, 그것이 mp3 플레이어던, 쉐보레 임팔라던, 평생을 같이 할 파트너를 찾는 것이던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물건과 사람을 비슷한 방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은, 그만큼 사람들의 특징이 물건화, 수치화되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한 결혼정보회사의 등급표처럼, 서울대 법대 출신의 판사는 1등급 남편감이 되고, 행정고시를 합격했다면 4등급 남편감이 되는것이며, 일반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다면 15등급 남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동반자를 고를 때에는 내 동반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상대들 중 최고의 상대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나를 선택해주는 상대들 중 최고의 상대를 고르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온라인으로 데이트 상대를 찾는 과정은 집을 구하는 과정보다는 일자리를 찾는 과정과 훨씬 더 비슷하다. - p.32


사람들은 자동차나 집처럼 비싼 물건 뿐만 아니라 신발, 가방 같은 물건을 구입할 때도 수많은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 더 탐색할 지, 구매할 지 결정합니다. 이런 의사결정 과정을 경제학에선 탐색 이론을 통해 바라봅니다. 지금 구매를 한다는 것은, 훗날 더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할 기회를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현재로서 최선인 선택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계속 탐색할지가 적용되는 분야는 물건들 뿐만 아니라 애인을 찾는 과정도 포함됩니다. 많이 탐색하는 것은 자신의 이상형을 만날 확률이 올라간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비싼 비용을 감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비용은 솔로 상태의 외로움, 나이를 점점 먹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탐색 비용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탐색 기간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저자는 어느정도 탐색기간이 지난 뒤에는 새로운 사랑을 찾는 것보다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권고합니다.

영화『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돈을 태우며 "중요한 것은 메시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조커의 말처럼, 연애에 있어선 자신의 신호가 얼마나 진심인지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경제학에선 신호 효과로 연구하는데, 가장 간단한 것은 상대가 마음에 든다면 돈을 마구 쓰면 됩니다. 비싼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그만큼 상대에게 마음이 있다는 신호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강한 신호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반응이 없다면, 빠르게 포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만약 자신이 파트너를 고르는 기준이 까다롭다면, 경제학에선 두터운 시장에 갈 것을 권유합니다. 자신이 소수성애자이거나, 채식주의자거나, 엄청난 부자를 만나서 신데렐라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시골보단 도시가 좋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규모가 작은 시장이 불리한 것만은 아닙니다. 시골에 있다면 유일한 후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남성들이 외모로 입는 피해는 여성들이 외모로 입는 피해보다 더 컸고, 남성들이 외모로 보는 득은 여성들이 외모로 얻는 득보다 더 적었다. 즉 남성보다 여성이 외모로 득을 더 보았고 피해는 덜 보았다. - p.236


신데렐라 스토리를 가진 드라마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연애를, 그리고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하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개천에서 용 나오지 않는 사회인게 사실입니다. 재산이 상속되면서 금수저는 다시 부자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교육 역시 부의 대물림 현상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연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경제학에서 동류교배라 부르는, 끼리끼리 결혼하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재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결혼할 뿐만 아니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끼리 결혼합니다. 원빈과 이나영, 평범한 남자A와 평범한 여자B 이렇게 4명이 있다면, 원빈과 맺어질 확률이 높은건 이나영입니다. 외모에 대한 선호와 현실의 간극은 꽤 넓습니다. 연애를 할때 남성들은 여성들의 외모를 가장 중시하고, 여성들은 남성들의 외모와 재력을 가장 중시합니다. 미녀는 평균 외모의 여성보다 약 4배, 못생긴 여자보다 25배나 많은 구애를 받습니다. 즉 사람들의 선호는 쏠려 있지만, 미녀에게 선택되는 건 미남입니다. 이런 사실은 연애에 있어서 중요한 점을 말해줍니다. 만약 자신이 미남이나 미녀가 아닌데 파트너로 미남이나 미녀를 꿈꾼다면, 꿈 깨라는 말입니다.

비슷한 외모끼리 사귀는 경향이 있지만, 또 하나의 강력한 변수는 그런 구도를 깰 수 있습니다. 바로 돈입니다. 문제는 남성은 여성의 돈을 높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못생긴 여자는 잘생긴 남자를 얻을 확률이 희박하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못생긴 남자는, 잘생긴 여자와 결혼할 수 있습니다. 조사 결과 한국 여성은 외모가 뛰어난 남성과 외모는 평균이되 연봉이 5,200만원 더 많은 남성을 동등하게 평가했습니다. 즉 한국에서는 연봉 2,000만원의 미남과 연봉 7,200만원의 평범한 남성은 연애시장에서 비슷한 경쟁력을 보입니다. 이런 차이점은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곤 합니다. 예를들어 서양의 여성들은 상대방 남성의 직업 선호도에서 변호사, 의사, 군인, 소방관을 최우선으로 선호했는데, 한국이었다면 군인과 소방관은 중간도 가지 못할 직업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연애의 경제학은 비슷한 반응을 보입니다. 저자는 경제학 이론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짝을 찾을 방법들을 유쾌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을 떠나며 - 1945년 패전을 맞은 일본인들의 최후
이연식 지음 / 역사비평사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월 15일은 한국인에게 의미깊은 날이지만, 일본인에게도 의미가 깊은 날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항복했다는 것은, 당시를 살아가던 조선인과 일본인의 삶에 거대한 변화가 오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식민지 관계가 종식되면서 모든 질서는 뒤바뀌었고, 역사적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야 했습니다.《CMB 박물관 사건목록》에서 아르헨티나 독재정권이 무너졌을때의 기득권층의 심리를 '세상의 끝'이라 말한 것처럼, 한반도에 살던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8월 15일 이후는 '세상의 끝'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당시의 조선인들, 그리고 국사교육을 받는 현재의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일제강점기 시절에 한반도에서 살고 있던 일본인들은 단순한 침략자이자 타지에서 온 지배자로 인지하지만, 한반도에서 살던 많은 일본인들은 한반도를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했습니다. 1910년 이전부터 한반도에 넘어와 반세기가 넘도록 한반도에서 살고있는 일본인도 있었고, 일제강점기 중기와 후기에 한반도로 넘어온 사람들이나 한반도에서 태어난 식민자 2세들은 조선인들의 저항도 체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일본 본토의 일부라고 생각했고, 자신들의 고향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살아가던 대략 100만 명의 일본인들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카무라가 "패전했기로서니 꼭 내지로 돌아가야만 합니까?" 하고 물었더니, 어른들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돌아가야 한다고만 대답했다. 그녀도 결국 '아버지의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집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왜 '자신의 고향'인 강경 땅을 떠나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 p.32


이승만 대통령이 6.25가 발발하자 재빠르게 도망간 것처럼, 한반도의 일본인 중에서도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패전 소식을 듣자마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일본으로 도망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고, 지도층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리스 사태에서 보듯이 사회가 혼란해지면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은행의 돈을 인출하고자 했고, 일본정부는 금융이 정지되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사람들에게 거짓 정보를 흘리는 한편, 화폐를 마구 찍었습니다. 이런 자기방어적 화폐는 향후 남한 사회에 심각한 경제 교란을 초래했으며, 그중 상당한 금액이 점령군을 상대로 한 접대비 명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한반도에 살던 모든 일본인들이 순식간에 일본으로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물리적으로 한반도의 일본인들을 본토로 수송하기 위해선 반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고, 재산 반출에 대한 점령군의 제한 조치가 민간인은 1,000엔, 직업군인은 200~500엔으로 제한되면서 패전 이후에도 한반도에서 살고 싶다는 일본인도 많았습니다. 잔류파들은 일본 본토로 넘어가도 아는 사람은 없고, 직장도 없고, 재산도 없었기 때문에 힘겨운 삶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패전 이후 경성일본인세화회와 경성YMCA가 재류하고자 하는 일본인들을 위해 조선어 강좌를 개설하자 수많은 일본인들이 조선어를 배우며 한반도에서 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모두 본토로 귀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의 세력이 닿은 남한지역에 살던 일본인들은 그나마 행운아였습니다. 일본인 상류층 인사와 미군 사이의 교류는 활발했으며, 조선인과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일본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정도 재산을 숨겨 밀반출할수도 있었고, 많은 조선인들이 광복 이후 해외에서 돌아오면서 주택난 등의 문제가 불거지자 조선인과 일본인들은 비상국면에 서로 양보하고 협력하면서 격변의 시대를 버텼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세력이 닿은 만주, 북한 지역에서 살던 일본인들은 달랐습니다. 패전 후 북한, 만주, 다롄 등 소련 점령지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귀환 과정을 '지옥으로부터 탈출'로 묘사할 정도였습니다. 소련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받은 피해를 복구할 목적으로 한반도에 있는 설비, 기계등을 소련으로 가져갔고, 일본인 노동력을 탐내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갔습니다. 성폭력, 약탈 등 소련군의 악행은, 조선인 보안대원이 보다못해 일본인 여성을 산속이나 민가로 몰래 피난시켜줄 정도였습니다.

해외 거주자들은 종전 후 중앙정부로부터 어떠한 외교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거주지 선택권도 인정받지 못했고 재산마저 상실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으로 돌아가 정착하는 과정에서도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들의 재외 재산을 대외 배상 차원에서 국가가 처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 p.271


8월 15일의 역사적 혼란은 한반도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산업 시설의 파괴와 물자의 폐기, 횡령과 밀반출 같은 일본인들의 불법행위로 한국의 재산은 더 줄어들었고, 일본인들의 재산이 갑자기 시장에 몰리면서 일본인 주택을 중심으로 시작된 투기 붐과 같은 갑작스런 물가의 폭등, 식량의 부족이 일어났습니다. 각종 공, 사유재산은 극소수의 한국인에게 집중되면서 왜곡된 부의 이동, 분배를 가져왔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겐 오히려 식민지 시절만도 못한 삶을 가져왔습니다. 한반도에서 살던 일본인들 역시 고통스러운 삶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힘겹게 일본으로 돌아간 일본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일본 동포들로부터 받는 멸시와 차별이었습니다. 본토인 입장에서는 외지에서 돌아오는 일본인들 모두가 자신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귀환자, 제대군인들은 전후 일본의 열등 국민으로 전락했고, 빈곤 속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살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2차 세계대전이 남긴, 태평양전쟁이 남긴 결말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인은 미쳤다! - LG전자 해외 법인을 10년간 이끈 외국인 CEO의 생생한 증언
에리크 쉬르데주 지음, 권지현 옮김 / 북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자신과 다른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직접 그 다른 무언가가 되어보는 방법은, 효과적이면서 흥미진진합니다. 그렇게 경계를 넘나들며 바라본 관점은 여자가 남자의 삶을 경험한《548일 남장체험》, 반대로 남자가 여자의 삶을 경험한《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내국인이 외국인 용역노동자의 삶을 경험한《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 것 없이》, 백인이 흑인차별을 이해하기 위해 흑인이 되어본《블랙 라이크 미》등의 책에서 말해주듯이, 그 자체로 교훈적입니다. 서양 외국인이 한국의 기업 문화를, 조직 문화를 경험하고 서양 외국인의 시선에서 말해주는 이야기들은, 한국인들만으로 구성된 조직에서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며, 때로는 알면서도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저자 에리크 쉬르데주는 능력있는 기업인으로, 한국의 재벌 LG의 프랑스 법인에서 활약했습니다. 당시 한국의 기업들은 해외에서 도약을 시작하려고 준비중인 상태였고, 저자는 그런 미지의 세계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전 직장의 동료들, 특히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의 기업은 편협하고 군대식이며,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저자를 만류했지만, 저자는 악명은 높았지만 그만큼 효과적인 한국의 기업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에리크 쉬르데주는 입사하기 위한 면접에서부터 한국식을 경험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에리크 쉬르데주가 준비해간 것들, 자신의 능력을 설명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취업할 때 지원자의 능력보다 학벌이 더 중요한 것처럼, 한국인들은 그가 도시바, 필립스, 소니에서 일했다는 이력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기업들은 정상을 차지하고 있던 일본과 유럽의 대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을 점차 밀어내면서 급격하게 발전하는 중이었고, 그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자부심이 저자에게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는 한국의 영업적 능률과 유럽식 경영 방식이 갖는 장점을 양립시키겠다는 개인적인 욕망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국인들은 부하직원들에게 쉽게 화를 내고, 상대방에게 욕을 하고, 문을 쾅쾅 닫고, 사전이나 의자같은 물건을 직장 동료들에게 던지는 사람들이었지만, 사원 개개인이 성취해야 할 명백한 목적, 효과적인 관리 시스템, 수치화된 목표 달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기계가 되었습니다. 에리크 쉬르데주는 서양에서는 협력업체들을 일방적으로 대할 수 없다고 간부들을 설득했지만, LG 간부들은 협력업체와의 정, 인간관계, 고마움의 표시같은건 전혀 하지 않았고, 약속도 어겼습니다. 한국의 기업 문화는 비인간적이었지만, 엄청나게 효율적이었습니다.

LG의 세계, 한국 기업의 세계는 철저한 서열 문화, 실적 문화였습니다. 가장 위에 존재한 자, 재벌 일가는 신이나 다름없었고, 사장은 아버지나 다름없었습니다. 상사와 회사는 세계의 전부였고, 그 관계를 구성하는 것은 권위였습니다. 직원들에게 의무는, 개인의 권리를 앞섰습니다. 그것은 서양인에게 과거의 세계이자, 충격적인 세계였습니다.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고, 오직 현재만이 존재했습니다. 실적이 그저 그런 사원은 그 이전 사업에서 아무리 좋은 성과를 냈더라도 징계를 받거나 가차 없이 해고당했습니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평가 시스템은 가혹했습니다. 목표를 100퍼센트 달성했을 때에는 초록색, 95퍼센트 이상일 때에는 노란색, 그 이하는 붉은색으로 표시되었습니다. 목표의 99퍼센트가지 달성해도 그것은 목표를 달성한 것이 아니었으며, 직원들은 언제나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좋은 실적을 내도 잘못한 것만 중요했으며, 격려와 상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셀프세탁방을 위한 세탁기 신제품을 출시할 때 동네 카페와 연계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카페 안에 작은 세탁 구역을 두고 고객이 오면 인터넷에 연결해서 텔레비전과 오디오, 컴퓨터 기기 등 다른 엘지 데품을 사용해볼 수 있도록 꾸민 곳이었다. 이 새로운 카페를 '워시 바'라고 이름 짓고 열다섯 군데를 시범 운영했다. 안타깝게도 실험은 석 달 만에 끝났다. 독창성도 있었고 고객들도 좋아했지만, 한국의 신임 부회장이 납득할 만한 설명도 해주지 않고 프로젝트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시도가 싫다는 것이고 그것만으로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 p.114


한국의 재벌 LG의 이런 기업문화는 매출과 실적이 성장중일 때는 비인간적이었지만 효율적인 것이 될 수 있었지만, 매출과 실적이 부진할 때는 그냥 비인간적인 문화였습니다.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 회사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 경직된 명령 체계, 불안정한 고용은 기업이 시장지분을 넓히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그것은 직원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LG 프랑스 법인의 서양인 동료들은 입사한지 2년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저자는 놀랍게도 9년이나 LG에서 버텼습니다. LG에서 최초로 외국인으로서 임원진이 되기도 했습니다. 임원이 된 그가 한국에 연수를 와서 본 것은 연간 매출액이 600억 달러가 넘는 다국적 기업의 최고 책임자들의 모임이라기엔 너무나 한국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1월의 추운 날씨에 야외에서 LG의 구호를 외치며 술을 마시고, 또 술을 마셨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모든 사람을 괴롭게만 한 술자리였지만, 그 모습이야말로 LG에 입사한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임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LG의 성장이 주춤하면서 재벌의 경영 원칙은 기업에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천룡인이나 다름없는 절대권력을 가진 재벌 일가에서 말단 직원까지 철저하게 서열화된 제도는 잘 나갈땐 일사천리의 파워를 보여줬지만,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현장 수행자와 정책 결정자의 괴리가 나타났습니다. 개방적이고 세계화의 흐름을 따라가던 LG는, LG그룹 창립자의 손자인 신임 부회장 구모씨가 등장하면서 다시 폐쇄적이고 한국적인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실적만이 중요한 기업문화에서 실적이 나오지 않을 때, 기업의 문화는 부패합니다. 직원들의 고객은 소비자가 아니라 상사가 됩니다. 업무 상당수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일, 보여주기 위한 일로 변질됩니다. 그런 문화에서 생산성은 점점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상사에게 해고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야근과 주말근무를 밥먹듯이 하기 때문에 근무시간은 늘어나지만, 실제 생산적인 일을 하는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의 의견이 최우선이 아니라 그룹 회장님의 취향이 최우선이 된다면, 제품 경쟁력 또한 긍정적일 수 없습니다.

"독재적 방식은 일시적으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많은 부작용을 낳으며, 민주주의는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 경제학자 피터 린더트


LG의 기업문화, 한국의 재벌 문화는 부하가 상사에게 직언하기 힘든 독재적 방식으로 효율성을 구축했지만, 장기적으로 그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자가 LG에서 경험한 한국의 문화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은 아닙니다. 한국인들은 오로지 갑과 을이라는 인간관계만 존재하며, 정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지적도, 요새 문제되고 있는 사회이슈입니다. 사회의 정점에서 군림하는 절대권력 재벌일가들은, 액턴 경의 경구처럼 절대로 부패하고 있습니다. 야근 등 상사에게 보여주기식의 문화는, 옆집 학부모에게 질 수 없다는 사교육 열풍, 수능 만점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없다는 아이러니함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서양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한국 기업, 조직 문화의 문제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즉 문제는 우리들 자신이 침묵한다는데 있습니다. 침묵하며 부조리를 계속 견딜 것인지, 죽창을 들던 시위를 하던 정치권을 압박하던 변화의 시대를 만들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험한 충성 - 충성과 배신의 딜레마
에릭 펠턴 지음, 윤영삼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충성을 봅니다. 전쟁터에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병사들, 이 회사의 제품은 뭘 내주더라도 사주는 고객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 자신의 충절을 의심하지 말아달라며 문자메시지를 보낸 한 국회의원의 모습까지, 우리는 충성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관계들을 만들어가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충성을 미덕으로 생각하며,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충은 효에 버금가는 최상급의 사회적 가치였습니다. 반대로 충성스럽지 못한 사람은 기피하며, 도덕적인 관점에서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계속 충성, 충성을 외칩니다. 군인들의 경례구호도 충성이며, 자기계발서들은 직장생활을 잘 하기 위해선 충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저자 에릭 펠턴은 이런 충성의 다양한 측면을 사유합니다. 저자는 충성을 관계 속에서 믿을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미덕이라 말합니다. 충성은 결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제공하는 복종이 아닙니다. 7개월만에 300km의 거리를 달려 주인 곁으로 찾아온 진돗개 백구의 이야기는 분명히 충성적이며,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미담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충성은 이리 쉽지 않습니다. 백구는 자신을 길러줬던 주인에게만 충성하면 되지만, 우리는 수많은 가치 중에서 충성할 대상을 선택해야 합니다. 때문에 충성은 순수한 선이 결코 아니며, 손쉽게 충성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계해야 합니다. 충성은 가장 나약한 미덕이면서, 가장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충성을 쉽게 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엇에 충성할 것인지 끝없이 고뇌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갤럭시냐 아이폰이냐 하는 문제라면 고민할 가치도 없지만, 가족을 선택할 것이냐 국가를 선택할 것이냐라는 상황이 온다면 답을 내기 힘듭니다. 언제나 가족을 최우선적으로 선택할 수도, 언제나 국가를 최우선적으로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충성할 대상이 가족이 된다면, 그것은 반사회적인 가족이기주의의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충성할 대상이 국가가 된다면, 전체주의의 망령이 부활할 것입니다. 충성에 서열은 있을 수 없습니다. 충성이 가져오는 철학적 의문은 예로부터 많은 철학작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도덕적 의무가 충돌할 때 진짜 의무는 하나뿐이라고 주장한 칸트나, 어떤 선택을 해도 올바르다는 사르트르 등 많은 철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이런 관계와 충성 속에서의 딜레마입니다.

세키젠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평화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이상이다. 평화는 인간 최고의 이상이다. 일본은 평화를 사랑한다. 우리는 평화와 근본적인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우리가 속해 있는 국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만일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국가를 잊는다면 진정한 평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조국에 대한 의무를 잊어버린다면 우리가 인류에 대한 사랑을 주장하는 방식에 관계없이 진정한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전쟁에 참여하기는 해도 언제나 일본의 전쟁은 평화의 전쟁이다." -《전쟁과 선》p.125


결혼을 하는 것도 충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단순히 파트너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서약 뿐만 아니라, 가족관계에 있어서 충성의 서열을 재배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충성의 우선순위가 여전히 부모로 향한다면,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충성이란 관계의 혜택이 완전히 사라진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기 때문에, 친구의 관계에 있어서도 변하지 않는 친구가 진짜 충성입니다. 기업들은 충성의 매력을 깨닫고 충성 마케팅을 펴곤 하지만, 정작 충성고객들은 거의 예외 없이 기업으로부터 불리한 대우를 받습니다. 수십년간 SKT 인터넷을 쓰던 사람도 KT나 LG U+로 바꾸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SKT로부터 혜택을 다 받아내지 못합니다. 기업은 직원들에게 충성을 요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충성하는 직원들에게 잘해주지 않습니다. 승진하지 못해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 충성스러운 직원과, 적절한 급여나 직급을 보상받지 못하면 경쟁회사로 옮길 직원중에 먼저 승진하는 것은 후자입니다.

충성의 관계를 가장 강조하는 곳은 역시 군대입니다. 전쟁을 해야하는 군인들에게 있어서 국가, 군대, 상관, 동료에 대한 의무가 충돌할 때, 병사들은 대부분 동료를 택합니다. 그러나 병사들이 서로에 대한 충성이 높다고 해서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미국 보고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주둔한 미군 부대의 사기가 높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병사들이 계속해서 동료의 윤리적 위반행위를 묵인하고 상부에 보고하지 않게 된다고 말합니다. 병사들은 전우와의 충성을 택한 대신, 민간인 학살, 고문 등 동료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눈감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부그라이브 등의 사례를 보면서,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리더가 충성심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경우에는 고민스러운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선, 충성을 강요하는 것은 대개 사악한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옳은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도덕적 불안을 충성의 힘으로 극복하려 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충성을 강요하는 사람일수록 거의 예외 없이, 충성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 몰염치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영국의 군사이론가이자 역사가인 바실 리델 하트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상사에게는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하에게 충성을 강요한다는 것은 우리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 p.226


우리는 동료가 자신을 배신하는 상황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충성의 관계에 있어서 공적인 것보단 사적인 것에 충성하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경향은 내부고발자에 대한 안좋은 인식으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면 해군의 군납비리를 고발한 내부고발자 김영수 소령은 해군과 동료를 배신한 사람으로 낙인찍혔고, 당시 정옥근 해군 참모총장은 국정감사에서 그를 맹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뒷날 정옥근 해군 참모총장은 해군복지기금을 횡령했고, 정보함, 고속함, 호위함 등 해군에서 나오는 모든 군사장비와 관련된 비리에 관여한 인간쓰레기인걸로 드러났습니다. 김영수 소령은 동료와 자신이 소속된 해군에 충성하는 대신 자신이 옳다고 생각되는 것에 충성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많은 고뇌와 시련을 가져왔지만, 결국 그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우리는 행사 때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국가에 대해 공개적인 충성맹세를 하는 이런 행위는 오히려 진정한 충성을 훼손한다고 말합니다. 충성은 믿음을 소중히 여기는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이해관계에서 비롯되어야지 단순히 의무의 규칙이나 억지로 하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정말로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라면, 저런 맹세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국가나 조직에 충성하기 위해 하는 여러 행동들이, 정말로 진정한 충성과 연결되는지 다시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많은 충성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충성은 닫힌 사회에서 치명적인 악덕으로 부패하기도 하지만, 그 부패한 것을 정화시키고 열린 사회를 만들기 위한 행동력을 제공하는것 역시 충성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