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가방 - 여자의 방보다 더 은밀한 그곳
장 클로드 카프만 지음, 김희진 옮김 / 시공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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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은 사전적인 의미론 어떤 물건을 옮기기 좋게 하거나, 또는 잡다한 여러 물건들을 한 곳에 모아 운반하는 용도로 쓰이는 용기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여자에게 가방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학자이자 남자인 저자 장 클로드 카프만은 여자의 가방이라는 신비한 공간이 가지는 의미를 추적합니다. 여자들은 왜 가방에 집착하는가? 여자의 가방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왜 여자들은 가방에 모든 것을 갖고 다닐까? 왜 여자들의 가방 속은 항상 어지러울까? 왜 여자들은 명품 가방에 집착할까? 이런 다양한 의문에 가방은 답해줍니다. 가방이 말해주는 이야기는 여자라는 존재의 한 단면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친한 이들과 가족과의 관계에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훨씬 더 관계지향적인 존재입니다. 여자들은 몸과 마음을 바쳐 자기들의 작은 세상을 돕고, 보살피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여자의 가방에서는 이점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언젠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물건들은 모두 가방에 들어갑니다. 밖에 나갔는데 심심해질 수도 있으니 책을 넣습니다. 혹시 모르니 휴지도, 손수건도, 아스피린도 넣습니다. 가방에는 자신을 위한 물건 뿐 아니라, 혹시 모를 타인을 위한 물건까지 들어갑니다. 여자들은 남을 위한 물건을 갖고 다니는 것을 희생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런 역할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자처하는 경우마저 있습니다.

 여자들은 그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떠맡으며, 가방이 그토록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고 또한 사랑하는 이들에게 쓸모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사실이다. 남편이 부탁하지 않아도 여자들은 남편에게 필요할 만한 물건을 가방에 챙겨 넣는다. 남자란 워낙 준비성이 없는지라 그에게만 맡겨두면 태평스럽게 주머니에 두 손만 달랑 찔러 넣은 채 외출할 수 있다. 마르졸리마망은 매번 '늘 잊어버리는 우리 남편 양반을 위한 티슈 한 팩'을 챙긴다. 티슈 한 팩, 지갑 하나 정도가 무거워 봐야 얼마나 무겁겠는가? 그쯤이야! - p.57

가방은 실존적 맥락 속에서 전혀 다른 종류를 집어삼키기도 합니다. 골치 아픈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아니면 문제를 사라지게 하기 위할때도 가방은 매우 유용한 파트너가 됩니다. 마음을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하거나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를 물건이 있다면, 가방에 넣습니다. 또한 평소 전혀 쓸모가 없지만 자신에게 굉장한 의미를 지닌 물건이 있다면, 가방에 넣습니다. 가방은 때론 쓰레기통이 되기도 하며, 아이들의 장난감 박스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했던 물건, 혹은 언젠가는 막연하게 쓸모 있을지 모를 물건들과 쉽게 헤어지지 못합니다. 때문에 가방은 삶의 사건들과 맞서게 해주는 물건들의 수호자임과 동시에 애정과 내밀한 기억들로 이루어진 작은 박물관이 됩니다. 더 나아가 가방은 여자에게 있어서 확장된 자아가 됩니다.

삶이 쌓여갈수록 관계를 맺는 사람도 늘고, 의미있는 물건도 늘어 갑니다. 이는 가방이 점점 무거워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한 해결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가방을 정리하거나, 가방을 새로 사는 것입니다. 가방을 산다는 것은 삶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때론 사소한 변화가 가방의 구입을 이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요새 읽고 있는 책의 크기가 커진다면, 가방도 큰 가방이 필요해집니다. 큰 가방이 없다면, 큰 가방을 삽니다. 새로운 옷과 구두를 샀다면, 그에 걸맞는 가방이 필요해집니다. 때론 가방과 운명적인 만남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느낌은 첫사랑과 비슷합니다. 이럴땐 가방이 주인이 됩니다. 이 가방을 위해 옷과 구두가 바뀝니다. 첫눈에 반한 가방이 실용적이기까지 한다면, 오랜 세월을 함께 할 삶의 파트너가 됩니다.

역사적인 면에서 가방은 귀족들의 사치품과 귀중품 영역에서, 남들과 구별되려는 의지에서 탄생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여전히 유지됩니다.《안경의 에로티시즘》에서 안경이 언제나 사람과 붙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고유한 이미지로 승화되었음을 언급하듯이, 가방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가방은 때로는 겉으로 보이는 자기 이미지의 외면성을 추구합니다. 중요한 것은 가방의 겉모습, 형태, 스타일, 소재, 상표입니다. 가방은 개성적이여야 하고, 독창적이여야 하며, 남보다 우월해야 합니다. 이런 조건을 가장 쉽게 만족하는 방법은 명품 가방으로 유명한 유명 브랜드의 가방을 사는 것입니다. 샤넬이나 프라다라는 이미지는, 가방의 곁을 떠나 주인에게 이식됩니다. 하지만 유명 브랜드를 위협하는 것도 있습니다. 구별 기준이 브랜드 그 자체보다는 미적인 면이나 독창성 쪽으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명품에 대한 제 생각은, 명품을 갖고 다닌다는 걸 의식하되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전 브랜드를 내보이고 과시하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껴요. 그건 어떤 상처와도 비슷해요. 브랜드 제품이 성공과 소속과 구별을 말해주는 메시지인지, 저는 몰라요. 제가 보기에 그건 연약함이고, 인정해달라는 요구에요. 제 가방은 말하죠. 나 자체로 인정해줘, 라고요. - p.174

여성들은 가방을 사랑합니다. 가방은 공구상자인 동시에 보물이 숨겨진 동굴이며, 자아의 확장입니다. 가방은 주인의 내면에 철학적 논쟁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가방을 정리하고 비우거나, 혹은 그 반대로 내면의 세계를 온전히 보존하는 것은 한 여성의 삶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여자들은 가방을 통해 가벼움과 모험에 대한 이상을 택할 수도, 안전과 안락함에 대한 이상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가방에 수없이 담겨있는 추억과 애정과 관계에 대한 것들은 여자에게 내밀한 동반자가 되기도 합니다. 때문에 여자들에게 있어서 가방은 천이나 가죽으로 된 단순한 소품이 아닌 본질적인 필수품, 자신만의 세계이자 다른사람을 향한 사랑의 세계, 물건 그 이상의 물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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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일 남장체험 - 남자로 지낸 여성 저널리스트의 기록
노라 빈센트 지음, 공경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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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나서 한 번의 삶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이성의 삶은 경험할 수 없는 비밀의 공간입니다. 남자들은 여자가 궁금하고, 여자들은 남자가 궁금합니다. 저자 노라 빈센트도 남자가 궁금했습니다. 남자들의 삶, 성격, 심리, 사연을 알고 싶었습니다. 이런 궁금증에 저자는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바로 남자가 되어보는 것입니다. 여자인 저자는 책 제목처럼 18개월간 남자로서의 삶을 살아보면서 남자들의 삶을 바라봅니다. 저자는 남자들이 살아가는것은 여자보다 더 당당하고 강인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발견한 것은 자신만만한 남자의 삶이 아니였습니다. 오히려 상처입은 현대 남성의 자화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남성의 삶을 체험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실제 남성의 모습과 같아지느냐는 것입니다. 노라 빈센트는 수염 분장을 하고 헤어스타일을 바꿨으며 안경을 썼습니다. 가슴을 감췄고 근육 운동으로 어깨와 팔의 크기를 키웠습니다. 음악학원에서 남성의 발성법을 배웠습니다. 실제 여장 남자들이 사용하는 인공 성기까지 입었습니다. 이름도 바꿨습니다. 그녀는 이제 네드 빈센트가 되었습니다. 네드의 분장은 굉장히 성공적이였습니다. 18개월간 다양한 곳에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여자라는 것을 들키지 않았습니다. 변장에서 인상적인 것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볼 때 눈이 아닌 인식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가끔 수염을 붙이지 않고 안경을 벗고 가슴을 매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노라가 아닌 네드로 여겼습니다.

 

네드는 남자들간의 우정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남성 전용 사교클럽인 볼링 팀에 가입해 5개월간 활동했습니다. 네드가 느낀 것은 여자들끼리의 모임에 비해 남자들끼리의 모임은 굉장한 연대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연대감을 유지하면서 경쟁합니다. 쉬운 일을 동료가 실수하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가르치려 들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어느 정도 손해를 보는 상황이 되더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네드의 낮은 볼링실력에 대해 동료들은 적극적으로 코치해 주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방식이 아버지와 아들간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말합니다. 남자에 반해 여자들끼리는 게임에서 도와주거나 비법을 가르쳐주려 애쓰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갈등의 구조가 다른 것입니다.

저자는 남자의 성욕을 알아보기 위해 남자들의 성적 욕망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곳인 창녀촌, 스트립바를 체험합니다. 이곳에서 저자가 발견한 것은 여성은 이해하기 힘든 공허함이였습니다. 창녀들은 남자들에게 몸을 비비면서도 냉담한 무관심으로 남자들을 대했습니다. 스트립 바에서의 행위에는 친밀감이 없었습니다. 남자들도 스트립 바에서 애정있는 섹스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도 진정으로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는 사람과는 무분별한 동물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립 바는 그저 넘치는 성욕을 배출할 공간, 화장실 가서 볼일 보는 정도의 공간에 불과했습니다. 이곳에서 남자들은 진짜 여자가 아닌 가슴이나 얼굴을 성형한 가짜 여자들을 선호했습니다. 마음이 없는 상대와의 성 행위이기 때문에 여자가 가짜일수록 더 낫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의 사랑을 알아보기 위해 네드는 여자들과 데이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여자들과의 데이트에서 발견한 것은 남자들이 가진 콤플렉스였습니다. 남자들이 여자를 성녀나 창녀라는 이분법적 시야로 바라보기 때문에 여자들이 매춘부-성녀 콤플렉스에 시달린다면, 남자들은 여자들이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콤플렉스에 시달렸습니다. 데이트를 할 때 남자들은 수없이 퇴짜맞고, 공격받고, 심판당해야 합니다. 남자들은 상대가 나쁜 사람임이 증명될 때까지는 좋은 사람으로 짐작한 반면, 여자들은 상대가 좋은 사람임이 증명될 때까지는 나쁜 사람으로 짐작했기 때문에 데이트 경험이 많은 여자일수록 남자들이 더 힘들어했습니다. 구애에 있어서 남성은 확실히 약자였습니다.

 여자들은 남자가 자신감 있기를 바랐고, 남자에게 의지하기를 원했다. 좌지우지하는 남자를 바라는 동시에 약한 구석이 있는 남자를 원했다. 꽃미남이 인기가 있지만 여자들이 진짜로 좋아하는 남자는 근골이 억세고 털이 많고, 체취가 강하고 건장하고 남자다운 남자들. 물건을 고칠 줄 아는 남자, 스포츠를 좋아하고 침실에서는 맹렬한 남자였다. 여자들은 남성호르몬과 가부장제도의 특징을 갖춘 남자들을 사랑했다. 그녀들은 모든 면에서 여성을 동등하게 대하는 현대적인 남성상을 기대하면서, 동시에 여성을 숙녀 대접하고 앞장서서 계산서를 지불하는 전통적인 남성상을 기대했다. - p.158

네드는 남자로서 취직을 하고 영업사원으로 일을 했습니다. 네드가 직장에서 느낀 것은 남자다움에 대한 압박감이였습니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했습니다. 남자다움은 실적에 따라 달라졌고 직장에서 생존하느냐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자신감, 경쟁력, 야망을 가지라고 강요당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였습니다. 돈이 있어야 집도, 차도, 가족도 있었습니다. 돈이 없으면 남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한 남자에게 있어서 남자답지 못하다는 평가는 자아에 대한 위협입니다. 이러한 남자다움에 대한 압박은 동성애공포증과 같은 현상으로도 나타납니다. 여자같다는 것에 대한 과민반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회가, 다른 남자들이나 여자들이, 아이들까지도 항상 남성성을 평가하기 때문에 평생 남자다움에 대한 압박감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젊은이들에게는 오직 성공만이 삶의 목표이며, 경쟁에서의 승리가 자신이 하고 있는 게임의 이름이다. 그리하여 연말에 받는 보너스의 액수가 자신의 가치를 매기는 데 결정적인 조건이 된다. 허세는 이미 그들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렸다. 이것을 온전한 인생이라 할 수 있을까?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 최고의 인생이라고 부추기는 언론의 집중 조명에 도취되어 그들은 나날이 썩어가고 있는데도, 그 뒤를 잇는 젊은이들은 줄을 서고 있다. 나를 찾는 증권가의 젊은이들 중 상당수가 바로 이런 고통에 신음하고 있고, 그들 중 몇명은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다. -《왜 남자가 여자보다 일찍 죽는가?》p.88

저자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남자 세계에 들어가는 것은 평생 TV밖에 보지 못하다가 대형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을 얻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남자가 되었다고 해서 우월감이 느껴지는 특수 계층에 편입된 기분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남자 역시 여성처럼 문화와 제도의 무게에 짓눌려 살 뿐이였습니다. 저자가 직접 입증했듯이, 남성다움이란 개념은 사회적인 요구일 뿐, 생물학적인 구분이 아니였습니다. 많은 남성들은 남성다움을 경멸하면서도 그 영향력에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남자로 태어나 감수성이 있으면 조롱과 창피를 당하고, 그것을 버리라고 강요당합니다. 저자는 남자들이 남자다움이라는 요구에서 벗어남으로서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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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국을 보았다 나는 천국을 보았다 1
이븐 알렉산더 지음, 고미라 옮김 / 김영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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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븐 알렉산더는 어느 날 갑자기 희귀한 뇌손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성인 천만 명 가운데 한 명꼴로 걸린다는 대장균성 박테리아 뇌막염에 걸린 것입니다. 이 병은 기억, 언어, 감정, 시청각 능력, 논리 등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을 공격합니다. 치료를 하는 동안 이븐은 거의 죽은 상태였습니다. 그를 치료했던 의사 스콧 웨이드는 치사율이 97퍼센트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발작을 일으킨 지 7일만에 정신을 되찾았습니다. 그는 임사체험을 한 것입니다. 독특한 것은, 기존의 많은 임사체험자들이 심장에 이상이 생겼을 때 임사체험을 경험했다면, 이븐의 경우는 뇌에 문제가 있었을 때 체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븐은 이런 독특한 경험을 바탕으로 독특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많은 부분에서 인간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하게 해주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인류는 번개가 제우스의 무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모든 것을 이해시켜주는 학문도 아니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개념도 아닙니다. 당연히 과학은 불완전합니다. 때문에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개념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우리는 흔히 그럴 때 기적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곤 합니다. 우리는 많은 상황에서 기적이라는 의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화 이글스의 기적같은 역전승, 식물인간의 기적같은 생환 등 우리는 매우 놀라운 일이나 확률적으로 매우 낮은 일을 표현할 때 기적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븐 알렉산더의 임사체험은 분명 기적적입니다. 의학적으로 생존 확률이 3퍼센트밖에 되지 않았지만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생존은 현재의 뇌과학으론 완전히 이해하기 힘든 일인 것은 사실입니다.

이븐 알렉산더는 임사체험 부정론자였지만, 직접 임사체험을 겪고 임사체험 긍정론자가 되었습니다. 다른 임사체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븐 또한 임사체험시 겪었던 독특한 현상을 설명해줍니다. 그가 표현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세계는 마치 영화『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한 장면같기도 합니다. 임사체험자들은 이런 경험을 영적인 세계로 표현하지만, 이들이 전해주는 경험은 현대 종교가 주장하는 영적 세계의 개념과 일치시킬 수는 없습니다. 임사체험자들의 현실에서의 환경에 따라 보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독교 문화권의 사람이라면 천사와 하나님을 볼 것이고, 이슬람 문화권의 사람이라면 마호메트나 알라를 볼 것입니다. 케빈 말라키, 알렉스 말라키가 쓴 또 다른 임사체험기와 비교해보면 서로 다른 세계를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은 이 세상에 오직 물질 영역만이 실재한다는 과학적 환원론에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저자는 임사체험을 하면서 매혹적인 사후세계를 보았으며, 임사체험 도중 본 천사의 얼굴이 자신이 만나본 적 없는 누이의 사진과 일치했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흥미롭고 재밌는 이야기이지만, 객관적으로 말해서 그것이 두 세계, 실재의 세계와 영적인 세계가 일치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이러한 주장의 증거로서, 자기 자신이 즉 살아있는 증거라고 말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표현을 빌리자면, 검은 백조는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례를 의학용어를 빌어 N of 1, 단 하나의 사례라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는 사례일 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혼이란 비물질적인 존재다. 영혼은 세상을 구성하는 원자적 구조로 이뤄져 있지 않다. 하지만 단지 비물질적 존재라고 해서 물질적 소멸 과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영혼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육체적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 《죽음이란 무엇인가》 

임사체험 자체는 꽤 많은 사례가 있기 때문에 그 현상 자체에 대해서 회의적이지는 않습니다. 또한 다른 임사체험자의 주장은 모르겠지만, 이반 알렉산더의 임사체험 중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개념도 있습니다. 그는 임사체험을 하면서 인간의 깊은 의식 속에는 조건 없는 사랑의 모습이 있다고 말합니다. 대커 켈트너 또한 자신의 저서에서 인간은 착하게 태어났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임사체험을 계기로 세상이 모두에게 더 좋은 곳이 될 수있도록 기여하고 싶어했고, 비영리 공공자선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만약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천국이라는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그곳의 주민은 현실에서도 천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천국을, 현실에서 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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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6일 - 유괴, 감금, 노예생활 그리고 8년 만에 되찾은 자유
나타샤 캄푸쉬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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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 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첫 계기는 영화 '올드보이'를 통해서였습니다. 영화에선 주인공이 아무 이유도 알지 못하고 감금당하게 되고, 자기를 감금했던 자에 대한 복수를 꿈꿉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과연 감금생활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전혀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영화에서 단편적으로 보여줬던 감금장면들 상상할 뿐입니다.

처음으로 혼자 학교에 등교하는 날, 당시 10살이였던 나타샤 캄푸쉬는 유괴되었습니다. 범인인 볼프강 프리클로필은 그녀를 자기 집 지하방에 가두었고 3096일동안 그녀를 감금했습니다. 볼프강은 정신적 문제를 지니고 있었고 8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녀에게 자유를 박탈했고 굶주림, 청각테러, 신체적 폭력 등을 가했습니다. 아사직전까지 굶기기도 했고, 무수히 많은 상처들을 남겼으며 정신적인 복종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옆집 사람이 선물하는 케이크에 손도 대지 않을 정도로 편집적이였고 히틀러에 심취했고 자유파 정당의 극우 지도자를 우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여성과, 외국인을 혐오했습니다.

나는 뇌에 천천히, 그리고 매일 영향을 미치는 이 고문이 세상의 어떤 끔찍한 육체적 고문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그 무서운 흔적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손으로 만져지지도, 느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상처가 피부로 드러나지도 않으며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비명을 지르게 만들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더욱 더 비난한다. - 찰스 디킨스 '독방감금에 대해' 

동시에 볼프강은 나타샤를 위해 호의를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먹고 싶다는 것을 사주기도 했고, 책과 라디오와 TV 심지어는 컴퓨터를 가지고 싶다는 나타샤의 소원도 들어줬습니다. 때때로 지하방에서 컴퓨터게임을 같이 했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범인은 권력과 억압에 대한 강한 애착, 사랑과 인정을 향한 끓어오르는 욕구가 강했습니다. 범인은 자기에게 감사하고 자기만를 위할 줄 아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납치를 했습니다. 범인은 억압에 대한 환상과 더불에 행복한 세상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만의 이상적인 행복한 가족관을 지니고 있었고 그런 작고 완벽한 세상에 대한 자기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 범죄가 필요했습니다. 범인은 나타샤에게 한 인간으로부터의 절대적인 사랑의 강요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나타샤는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범인에게 순종하고 동시에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범인에게 저항합니다. 자기의 인생을 빼앗은 사람이 자신의 보호자가 되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나타샤를 통해 흥미로운 것은 감금생활과 타인에 대한 통제가 얼마나 심리적인 족쇄로 나타나는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유괴된지 6년이 지났을 즈음, 범인은 나타샤를 데리고 아무도 없었던 옆집 수영장을 이용하기도 했고, 감금되었던 지하방에서 올라와 범인의 집을 청소하고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잡화점에 가기도 했고, 스키여행을 가기도 했고, 심지어 경찰들과 대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범인의 효과적인 음식통제와 신체적 폭력, 도망치려 시도할 경우 주변 사람들과 자기를 해할거라는 협박에 단 한마디로 자유를 얻을 수 있었음에도 말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결국 18살이 되고 그녀는 범인이 전화를 받는 틈을 타 탈출에 성공했고 감금생활을 끝냅니다.

이 사회는 볼프강 프리클로필과 같은 범인을 필요로 한다. 그 사회 안에 존재하는 악에 형상을 부여하고 그 악을 자신으로부터 분리해내기 위해서. 사회는 지하감방과 같은 배경을 필요로 한다. 사회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범죄의 수많은 익명의 피해자들, 아무리 도움을 요청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희생자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나와 같은 엽기적 사건의 피해자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그래서 나는 대개의 사람들 사이에서 무의식적으로 공격을 받는다. 특히 그것은 내가 나를 유괴한 범인 또한 한 인간이며, 그들 가운데 살았던 한 사람이였다는 사실을 직시하도록 이 사회를 움직이려고 할 때 더욱 격렬해진다. 이것은 스스로를 반영하는 사회의 자기혐오라 할수 있다. - p.203 

2006년 8월 23일 탈출에 성공한 뒤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수많은 언론이 그녀를 집중조명했고 온갖 억측이 난무했습니다. 경찰당국이 사건수사도중 유괴된지 6주만에 이미 볼프강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음에도 자료는 잊혀졌다는 실수를 은폐했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대중들의 관심이 나타샤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도 많았습니다. 대중들은 유괴범이라는 범인을 절대악으로 판단하지 않는 나타샤에 대해 공공연한 비난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나타샤는 매를 맞으면서도 자신을 때리는 남자들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는 것과 같은 현실세상이 존재하고, 그런 세상을 용인하는 것과 유괴 감금생활의 차이는 얼마나 있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나타샤는 이제 볼프강에게서 탈출했고, 사람들의 이기적인 호기심과 선입견에서도 탈출을 시도합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잃어버린 청소년기를 만회하고 다시 시작하는 진정한 자유의 삶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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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은 멋있었다 세트 - 전2권
귀여니 지음 / 반디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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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이 책을 뒤늦게나마 읽어 봤습니다. 벌써 9년이 지난 작품이네요.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영화화되기도 하고, 저자를 한국에서도 이름난 성균관대학교에 특례입학시켜준 작품입니다. 한때는 제 친구들이 이 책을 거론하며 이 책만큼의 글도 못쓰는 사람들이 성대 아래 대학 사람들이다 라고 짓궂은 농을 던지기도 했었죠. 물론 이러한 감투들이 작품성을 보장하는것은 아닙니다만..외관상 엄청난 성공을 거둔 작품이긴 합니다.

저는 소설책이나 드라마, 영화 같은 매체를 거의 즐기지 않는 편입니다. 드라마는 사극 용의눈물 이후론 보지 않았고, 영화는 주로 헐리우드 액션 영화 취향이기 때문에 이런 연애를 기반으로 한 컨텐츠쪽은 잘 모르는 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기본적인 구성은 너무나 익숙했습니다. 남자주인공은 싸움잘하고, 여자보다 더 여성스럽게 생겼고, 청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술과 담배에 자동차까지 운전하지만 정서적으로 아픈 부분이 있다는 설정, 여자주인공은 대단히 평범하지만 그런 남자주인공과 연애를 한다는 설정은 많이 들어본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 책이 나온지 9년이 넘은 터라 그 당시 화제가 됬을때는 이런 구성이 평범했는지, 참신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더 크게 보자면 이런 구성은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일 테니, 어찌보면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왕도적인 구성이라는 점에서 이런 선택은 무난하지 않았나 합니다. 관련 글을 보니, 이 책의 여주인공은 집필 당시 여고생이였던 저자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여학생들은 저런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책의 특징중 하나인 이모티콘의 남발은 주류 문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부정적으로 보일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기호학적인 의미도 없고, 단순히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는 기능밖에 없는데 언어는 이미 이모티콘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 감정을 충실히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내세우는 하나의 특징적인 개성으로서 이모티콘을 내세우는것은 물론 의미가 있을수는 있다고 봅니다.

이 책의 서평들을 몇개 봤었는데, 억압된 청소년들의 해방구를 묘사했다던지, 성적으로 관대해지는 청소년들의 변화를 표현했다던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것이다 같은 여러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별로 그런건 못느끼겠더군요. 여고생이 자신의 주량을 정확히 파악할정도로 술을 마시고, 밤에 남자들과 놀러나가서 외박하고, 나이트클럽에 가고, 학생들끼리 명품을 자랑하고 열등감을 느끼고 하는 장면들이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소설에서 묘사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현실적으로 없지는 않습니다. 근래에도 학생들의 노스페이스로 대변되는 명품 아웃도어 옷의 경쟁을 보면 학생때의 비합리적이면서 동시에 그 당시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소설에 나와있을수도 있습니다. 청소년으로서 술을 먹고, 남자와 여자가 외박하고, 차를 몰고, 나이트클럽에서 몸을 흔드는 것에 대한 묘사들도 청소년기에 한번쯤 그런 욕망을 꿈꿨다면 사회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한 저항적인 요소와 대리만족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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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얼음 2016-10-06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중고생들 귀여니 작품 엄청 좋아하드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