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가방 - 여자의 방보다 더 은밀한 그곳
장 클로드 카프만 지음, 김희진 옮김 / 시공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가방은 사전적인 의미론 어떤 물건을 옮기기 좋게 하거나, 또는 잡다한 여러 물건들을 한 곳에 모아 운반하는 용도로 쓰이는 용기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여자에게 가방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학자이자 남자인 저자 장 클로드 카프만은 여자의 가방이라는 신비한 공간이 가지는 의미를 추적합니다. 여자들은 왜 가방에 집착하는가? 여자의 가방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왜 여자들은 가방에 모든 것을 갖고 다닐까? 왜 여자들의 가방 속은 항상 어지러울까? 왜 여자들은 명품 가방에 집착할까? 이런 다양한 의문에 가방은 답해줍니다. 가방이 말해주는 이야기는 여자라는 존재의 한 단면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친한 이들과 가족과의 관계에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훨씬 더 관계지향적인 존재입니다. 여자들은 몸과 마음을 바쳐 자기들의 작은 세상을 돕고, 보살피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여자의 가방에서는 이점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언젠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물건들은 모두 가방에 들어갑니다. 밖에 나갔는데 심심해질 수도 있으니 책을 넣습니다. 혹시 모르니 휴지도, 손수건도, 아스피린도 넣습니다. 가방에는 자신을 위한 물건 뿐 아니라, 혹시 모를 타인을 위한 물건까지 들어갑니다. 여자들은 남을 위한 물건을 갖고 다니는 것을 희생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런 역할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자처하는 경우마저 있습니다.

 여자들은 그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떠맡으며, 가방이 그토록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고 또한 사랑하는 이들에게 쓸모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사실이다. 남편이 부탁하지 않아도 여자들은 남편에게 필요할 만한 물건을 가방에 챙겨 넣는다. 남자란 워낙 준비성이 없는지라 그에게만 맡겨두면 태평스럽게 주머니에 두 손만 달랑 찔러 넣은 채 외출할 수 있다. 마르졸리마망은 매번 '늘 잊어버리는 우리 남편 양반을 위한 티슈 한 팩'을 챙긴다. 티슈 한 팩, 지갑 하나 정도가 무거워 봐야 얼마나 무겁겠는가? 그쯤이야! - p.57

가방은 실존적 맥락 속에서 전혀 다른 종류를 집어삼키기도 합니다. 골치 아픈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아니면 문제를 사라지게 하기 위할때도 가방은 매우 유용한 파트너가 됩니다. 마음을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하거나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를 물건이 있다면, 가방에 넣습니다. 또한 평소 전혀 쓸모가 없지만 자신에게 굉장한 의미를 지닌 물건이 있다면, 가방에 넣습니다. 가방은 때론 쓰레기통이 되기도 하며, 아이들의 장난감 박스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했던 물건, 혹은 언젠가는 막연하게 쓸모 있을지 모를 물건들과 쉽게 헤어지지 못합니다. 때문에 가방은 삶의 사건들과 맞서게 해주는 물건들의 수호자임과 동시에 애정과 내밀한 기억들로 이루어진 작은 박물관이 됩니다. 더 나아가 가방은 여자에게 있어서 확장된 자아가 됩니다.

삶이 쌓여갈수록 관계를 맺는 사람도 늘고, 의미있는 물건도 늘어 갑니다. 이는 가방이 점점 무거워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한 해결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가방을 정리하거나, 가방을 새로 사는 것입니다. 가방을 산다는 것은 삶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때론 사소한 변화가 가방의 구입을 이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요새 읽고 있는 책의 크기가 커진다면, 가방도 큰 가방이 필요해집니다. 큰 가방이 없다면, 큰 가방을 삽니다. 새로운 옷과 구두를 샀다면, 그에 걸맞는 가방이 필요해집니다. 때론 가방과 운명적인 만남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느낌은 첫사랑과 비슷합니다. 이럴땐 가방이 주인이 됩니다. 이 가방을 위해 옷과 구두가 바뀝니다. 첫눈에 반한 가방이 실용적이기까지 한다면, 오랜 세월을 함께 할 삶의 파트너가 됩니다.

역사적인 면에서 가방은 귀족들의 사치품과 귀중품 영역에서, 남들과 구별되려는 의지에서 탄생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여전히 유지됩니다.《안경의 에로티시즘》에서 안경이 언제나 사람과 붙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고유한 이미지로 승화되었음을 언급하듯이, 가방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가방은 때로는 겉으로 보이는 자기 이미지의 외면성을 추구합니다. 중요한 것은 가방의 겉모습, 형태, 스타일, 소재, 상표입니다. 가방은 개성적이여야 하고, 독창적이여야 하며, 남보다 우월해야 합니다. 이런 조건을 가장 쉽게 만족하는 방법은 명품 가방으로 유명한 유명 브랜드의 가방을 사는 것입니다. 샤넬이나 프라다라는 이미지는, 가방의 곁을 떠나 주인에게 이식됩니다. 하지만 유명 브랜드를 위협하는 것도 있습니다. 구별 기준이 브랜드 그 자체보다는 미적인 면이나 독창성 쪽으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명품에 대한 제 생각은, 명품을 갖고 다닌다는 걸 의식하되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전 브랜드를 내보이고 과시하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껴요. 그건 어떤 상처와도 비슷해요. 브랜드 제품이 성공과 소속과 구별을 말해주는 메시지인지, 저는 몰라요. 제가 보기에 그건 연약함이고, 인정해달라는 요구에요. 제 가방은 말하죠. 나 자체로 인정해줘, 라고요. - p.174

여성들은 가방을 사랑합니다. 가방은 공구상자인 동시에 보물이 숨겨진 동굴이며, 자아의 확장입니다. 가방은 주인의 내면에 철학적 논쟁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가방을 정리하고 비우거나, 혹은 그 반대로 내면의 세계를 온전히 보존하는 것은 한 여성의 삶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여자들은 가방을 통해 가벼움과 모험에 대한 이상을 택할 수도, 안전과 안락함에 대한 이상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가방에 수없이 담겨있는 추억과 애정과 관계에 대한 것들은 여자에게 내밀한 동반자가 되기도 합니다. 때문에 여자들에게 있어서 가방은 천이나 가죽으로 된 단순한 소품이 아닌 본질적인 필수품, 자신만의 세계이자 다른사람을 향한 사랑의 세계, 물건 그 이상의 물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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