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의 대화 - 유럽은 과거를 어떻게 극복했는가
곤도 다카히로 지음, 박경희 옮김 / 역사비평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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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열린 축구 한일전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교과로서의 역사는 다른 것에 비해 가장 실용성이 부족한 학습영역 중 하나이지만, 개개인에게 국민에 대한 일종의 정의를 부여하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학문입니다. 오늘날 국민국가라는 사회형태는 구성원에 대해 일정한 국민의식을 요구합니다. 국가에 대한 귀속의식이나 공동체의식은 국가체제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며, 근대화를 지탱하는 여러 문화적 구성물 중에서도 역사교육은 가장 효과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도 현재와 같은 국민국가의 형태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한일전에서 걸린 플래카드의 메시지는 경청할 가치는 있습니다.

문제는 국민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 역사교육은 오늘날의 국가를 자연스럽고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전제 하에 국가를 가치 있는 것이자 개인이 기꺼이 귀속되어야 하는 것임을 증명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나라의 이름 하에 세계에 자랑거리로 내세울 수 있는 국민, 문화, 사회적 성취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그에 반하는 사실들은 은폐됩니다. 에드워드 카의 지적처럼 역사는 단순히 객관적인 과거에 일어난 일의 기록이 아닙니다. 역사는 역사가 개인의, 역사가가 살아갔던 사회와 국가의 영향을 받는 주관적인 기록입니다. 자국에 편리한 역사가 교육되며, 그것은 다른 국가의 국민들에 대한 편견과 적개심을 키웁니다. 이러한 독선적인 역사교육을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19세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러셀이나 일부 평화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은 역사교육이 낳을 수 있는 전쟁을 우려했고, 결국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네 나라가 치른 전쟁은 모두 방위를 위한 전쟁이고, 외국이 싸운 전쟁은 침략 전쟁이라고 생각하도록 유도된다. 예상과는 달리 자기 나라가 외국을 정복할 때는 문명을 확대하기 위해, 복음의 빛을 비추기 위해, 높은 도덕이나 그 밖의 고귀한 것을 널리 보급시키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믿도록 교육된다. -《교육과 사회체제》, 버트런드 러셀 

자국사 미화라는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입니다. 국가 단위의 사회체제에서는 이러한 역사교육이 가져다주는 장점이 존재했습니다. 외국, 외국인이라는 적을 만듬으로써 자국민의 결집을 유도하고, 그로 인해 생겨난 공동체의식을 발판으로 국가가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세계화 현상, 유럽연합의 등장 등은 국민들의 국가관의 변화를 요구했고, 필연적으로 역사교육의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국가라는 단위로 독립되어 있던 역사교과서간의 대화가 요구된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유럽통합의 과정에서 특히 발전했고, 가장 인상적인 변화는 독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국제 역사교과서 대화는 무엇보다 독일에서 과거극복이라는 과제와 밀접한 관계를 통해 발전해왔는데, 대다수 독일인에게 부정적인 경험을 안겨준 나치즘까지 치른 독일 근현대사와, 그 과정에서 요구되었던 역사 이해에 대한 비판적 대응자세가 발전을 용이하게 했습니다.

곤도 다카히로는 역사교과서의 대화에서 독일과 프랑스, 독일과 폴란드의 인상적인 교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김시덕이《그들이 본 임진왜란》에서 과거에 일어난 역사가 국가마다 어떻게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 것처럼, 독일과 프랑스, 독일과 폴란드 역시 동일한 사건에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가 지닌 전쟁당시 벨기에 중립 문제 같은 것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례였습니다. 그들은 자국과 상대국의 교과서를 검토하고 의견을 나눔으로써 미래의 역사인식을 위한 공통된 기반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역사교육이 지니고 있었던 민족주의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각국이 교육을 통해 적대감정을 재생산하고 있었던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더 나아가 역사 그 자체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브라운슈바이크 지역의 교과서 회사에서 출판되고 교과서 대화에 전향적이였던 교과서도《독일사》라는 타이틀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그 교과서를 검정했던 앙드레 오페르에 따르면, 역사교과서의 타이틀에 '독일의'라는 형용사를 쓰는 것 자체가 민족주의적이라는 것이었다. 이 비판은 언뜻 보기에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역사교육의 본질에 다가가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프랑스는 물론 독일에도 역사라는 교과의 틀 속에, 자국사와 외국사의 구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교과서에 대해 '독일의'라는 형용사를 굳이 덧붙이는 것은 확실히 이중의 의미로 민족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55 

역사교과서가 국가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 서로의 상호이해, 상호존중을 추구하고자 하는 변화는 유럽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진행중입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인식을 같이 해 만든《미래를 여는 역사》라는 한중일 역사교과서는 그러한 변화의 값어치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미래를 여는 역사》는 유럽의 사례에 비하면 걸음마단계입니다. 한일전에서 걸린 플래카드가 말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메시지를 다시금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국가라는 단위 하에 존재하는 민족주의적 역사교육이 만들어낸 미래와 세계 전체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국민들의 상호존중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교육이 만들어내는 미래는 분명 다릅니다. 역사를 잊어도 미래는 없지만, 역사를 잘못 배워도 미래는 없습니다. 세계를 좀 더 평화적으로 만드는 역사교육이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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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의 지구사 식탁 위의 글로벌 히스토리
로라 B. 와이스 지음, 김현희 옮김, 주영하 감수 / 휴머니스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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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많은 음식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은 여름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아이스크림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의 역사는 차가운 음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냉각기술이 개발되기 전에는 산에서 얼음과 눈을 가져와 보관해야 했기 때문에, 얼린 디저트는 과거엔 권력자들만이 맛볼 수 있는 특권 중의 특권이였습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중국의 당나라 황제들이 처음으로 밀크가 든 얼음과자를 즐겼다고 합니다. 아이스크림의 매력은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고, 점차 많은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맛보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개발시켜 나갔습니다.

아이스크림은 얼음 보존이라는 자연적 한계로 인해 오랜 시간 동안 발전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아이스크림을 좀 더 용이하게 만들 수 있는 과학적 토대가 마련되기 시작했고, 아이스크림은 권력자들만의 음식에서 점차 대중적인 음식이 되어갔습니다.《아이스크림의 지구사》는 이런 변화의 과정을 짚어가고 있습니다. 17세기에 얼음에 설탕과 과일즙을 섞어서 만든 소르베토가 등장했고, 아메리카에서 들여온 초콜릿이 소르베토에 추가되었습니다. 이국적인 재료, 발전된 냉동기술, 카페 문화의 등장은 아이스크림을 대표적인 기호품으로 등장시켰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스크림은 여전히 생산 원가가 높았기 때문에 부유층에게만 한정된 디저트였습니다.

19세기에 낸시 존슨이 아이스크림 제조기를 발명한 이후 아이스크림은 대량판매 상품으로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제품 도매업자였던 푸셀은 남아도는 크림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이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즐길 수 있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스크림 시장은 여전히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얼음을 공급하는 방법이 호수나 연못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계점도 린데가 개발한 냉장 시스템을 아이스크림업계가 도입함으로써 해결되었습니다. 천연얼음의 시대를 지나 현대의 아이스크림은 인공얼음의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은 소다파운틴, 아이스크림소다, 아이스크림선디, 아이스크림콘, 아이스크림바, 소프트 아이스크림 등 지속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며 현대인의 대표적인 디저트로서 그 위상을 확실히 하고 있습니다. 초기엔 서너 가지 맛을 제공하던 아이스크림 업계가 베스킨라벤스를 계기로 다양한 맛을 선보이고 있고, 하겐다즈나 벤 앤드 제리스처럼 고급지향의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스크림은 여전히 아이들이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국민 디저트로서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의 초등학생부터 전쟁터의 피난민까지, 아이스크림은 삶의 애환을 잠시 잊게 해주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영화〈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진태가 진석에게 아이스께끼를 건넨 것처럼 말입니다.

상류층만이 즐길 수 있었던 사치스러운 음식에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소비 품목으로 진화하긴 했지만, 여전히 아이스크림은 사치품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세계 아이스크림 시장 상위 10개국이 미국, 이탈리아, 중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한국, 캐나다, 스페인임을 보더라도, 아이스크림은 잘 사는 나라일수록 잘 소비하는 음식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스크림은 먹으면 좋지만 안먹어도 그만인 음식이기도 합니다. 리처드 랭엄의 지적처럼, 아이스크림의 영양적인 측면은 익힌 음식에 비해 떨어집니다. 그러나 라이히홀프가《미의 기원》에서 지적하듯이, 아이스크림의 잉여로운 특징은 그러하기 때문에 아름다우며, 아름답기 때문에 우리는 차갑고, 달콤하고, 촉촉한 아이스크림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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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심리학 - CIA 거짓말 수사 베테랑이 전수하는 거짓말 간파하는 법
필립 휴스턴 외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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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사람들은 어렸을때부터 거짓말은 나쁜 행동이며, 따라서 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죄가 입증되기 전까지 모든 사람은 결백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쉽사리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하기 힘들어하게 합니다. 상대방이 거짓말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위에 사회가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회를 구성하는 또 다른 기둥에는 사람들은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고 써져 있습니다. 어쩌면 거짓말을 하지 않을거라는 믿음 덕분에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일부 행동 연구에 따르면, 우리들은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갈등을 일으키지 않기 위한 이른바 선의의 거짓말을 포함해 하루 동안 평균 열 번 이상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은 거짓말을 하는 편이 이롭다는 생각이 들면 누구든 거짓말을 하며, 난처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더 쉽게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거짓말은 인간의 본성이며, 개인간의 관계에서나, 사회간의 관계에 어디든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을 파악하는 것, 상대의 진실성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거짓말이 드러나는 순간을 간파하는 기술은 매우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책의 저자 3명은 모두 CIA에서 거짓말 탐지 방법을 개발하고 활용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거짓말에 숨겨진 심리학을 파헤칩니다. 거짓말을 통해 드러나는 심리학적, 언어학적, 행동학적인 징후들을 안다고 해서 꼭 거짓말을 가려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오랜 연습과 수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노력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거짓말을 판별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가려내는 사람이 평소 거짓말을 하는 매커니즘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거짓말을 바라보려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접근법과 편견을 뿌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쉽사리 믿기 힘들어하는데, 사람들을 믿고 싶어 하는 요인 중 하나는 우리 대부분이 타인을 평가하는 위치에 서는 것을 꺼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대에 대한 평가가 거짓말 탐지 과정에 발을 들이게 되면 진실을 찾아내는 데 필요한 체계적인 접근법을 따르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무의식중에 의사소통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런 의사소통은 체계적으로 따져보면 매우 복잡합니다. 언어 자체가 부정확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며, 거짓말에 관한 의사소통을 분석할 때 고려해야 하는 게 언어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 또한 이를 쉽게 분석하기 힘들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주 다양한 편견 속에서 살아가며, 이는 거짓말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덫으로 작용합니다.

당신이 1990년대 초에 있었던 한 사건을 담당한다고 해보자. 캘리포니아 사이비 종교 집단의 교주가 집단 내 어린이 60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고발당한 사건이었다. 이 어린이들 중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한 열세 살짜리 여자아이는 수사관들에게 자신을 포함한 여러 아이가 여러 해 동안 교주에게 당한 끔찍한 일들을 설명했다. 예상했겠지만 교주는 이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더군다나 여자아이가 들려준 역겨운 이야기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도 없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악마 같은 교주일까, 어린 여자아이일까? - p.30 

아마 십중팔구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교주가 범인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교주는 사이비 종교 집단의 권력자이고, 여자 어린아이는 세상물정을 모르는 천사같은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을 이겨내면 진실이 보입니다. 수사관들은 자신의 편견을 다스릴 수 있었던 덕분에 여자아이가 자신의 증언이 잘 짜인 거짓말이였음을 자백하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편견을 이겨내는 것은 아주 힘듭니다. 우리는 도난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떤 증거 없이도 교수보단 노숙자를 더 의심하며,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잘생긴 사람보단 못생긴 사람을 의심합니다. 죄가 밝혀지더라도 잘생길수록 법정에서 더 적은 형벌을 받는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편견으로 이루어진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편견을 이겨내기는 힘들지만, 이겨낼 수만 있다면 그 무엇보다 값진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진실을 말입니다.

가끔 TV드라마들을 보면 거짓말 탐지에 대한 내용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드라마에서는 흔히 표정 분석만으로 거짓말을 가려내곤 합니다. 드라마의 영향 때문에 인터넷에서도 이러한 드라마를 바탕으로 한 거짓말 판별법이 소개되곤 하는데, 시선 피하기, 닫힌 자세, 성급한 대답, 꼭 맞잡은 손, 얼굴을 붉히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표정 분석은 신뢰도가 떨어지며, 거짓을 가려낼 수 없습니다. 물론 이런 독특한 행동들이 어느정도 의심스러운 상황이라고 생각할 순 있겠지만, 그것이 거짓말의 증거가 되진 못합니다. 그보다 거짓말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는 징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답하지 않음, 분명하게 부정하지 않음, 대답을 꺼리거나 거부함, 미응답 진술, 공격 모드 돌입, 질문의 범위를 축소함, 종교 들먹이기, 설득력 있는 진술 등이 거짓말과 관련된 언어학적, 심리학적 요소들입니다.

거짓말을 판단한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이해, 언어와 행동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거짓말의 베이스에는 상대가 결코 생각만큼 논리적이지 않다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반대로 말하면 그렇게 논리적이지 않은 부분을 논리적으로 알아챌 수 있어야 합니다. 거짓말이 드러나는 징후들은 언어적, 비언어적 행동을 모두 포함해 거짓 행동을 나타내는 징후가 둘 이상 모여있는 클러스터와 타이밍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거짓 행동은 이러한 클러스터, 언어적인 형태나 비언어적인 형태 모두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뇌가 보고 듣기를 동시에 할 수 있도록 곱자모드라 부르는 상태가 되도록 훈련해야 하기도 합니다. 때론 진실이 거짓을 은폐하는 역설 때문에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진실을 무시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혀 관계가 없는 진실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진실을 무시하기 매우 힘듭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거짓말을 듣고 살아갑니다. 때문에 매일 주변에서 제기되는 수많은 다른 질문들에 대한 대답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낼 수 있다고 상상해보면, 그야말로 짜릿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족들간의 거짓말도, 애인간의 거짓말도, 심지어 TV토론회에 나오는 정치인들의 거짓말도, 그것을 판별할 수 있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거짓이 만들어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한 사람들이 선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거짓말을 분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굉장합니다. 거짓말을 판단한다는 것은 자신의 지성에 대한 도전입니다. 거짓말을 알아내기 위해 개인적, 사회적 편견과 믿음에 도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으며, 값진 진실을 손에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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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어트 Quiet -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
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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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인터넷이나 TV에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컨텐츠를 보면, '우리 아이가 내성적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은 내향적인 성격보다 외향적인 성격이 낫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내향적인 성격은 고쳐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명백히 우리 사회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외향적인 성격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분명한 편견이며, 내향적이거나 외향적이라는 것은 좋고 나쁨으로 판단하는 가치가 아닙니다. 수전 케인은 이 책《콰이어트》를 통해 외향적인 성격에 치우쳐있는 사회에 경종을 울립니다.

사회적으로 외향적인 성격이 각광받게 된 시기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갈 때 입니다. 19세기는 '인격의 문화'로, 당시 바람직한 시민들의 행동을 담은 지침서들을 보면, 시민으로서의 자질, 의무, 일, 고귀한 행위, 명예, 도덕성, 예절 등을 강조하며 홀로 있을때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인격의 문화는 '성격의 문화'로 전환됩니다. 데일 카네기로 대표되는 자기계발 열풍이 불었고, 당시 지침서들은 자석처럼 끌리는,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지배적인, 강력한, 에너지가 넘치는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인데, 이는 산업사회의 발달이라는 특징과 결부된 것입니다. 외향성이란 가치가 롤모델이 되면서 모든 사회적 분야에서 외향적인 성격을 찾기 시작했고, 외향성 선호 성향이 사회적인 편견으로 발전했습니다.

사회는 외향적인 성격을 요구하지만, 성격은 단순히 살아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내향인과 외향인은 생물학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내향적인 사람들의 경우 대뇌피질의 각성 수준이 더 높아서 외부 자극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즉 더 적은 인간관계만으로도 만족을 느끼며, 파티를 하지 않고 조용히 독서나 사색을 하는 것으로도 피로를 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부정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물론, 활달하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변신할 것을 끊임없이 강요받습니다. 때문에 많은 내향인들이 겉으로는 외향인인 양 위장하며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러한 불일치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은 타격을 주게 됩니다. 더군다나 모든 상황에서 외향적인 사람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순전히 외향적인 사람이나 순전히 내향적인 사람 같은 건 없다. 그런 사람은 정신병동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 칼 구스타프 융 

EBS에서 방영되었던 다큐를 보면, 기업들이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하고 할 수 있고 자기 의사를 표출하는 성격은 외향적인 사람이며, 그러한 사람은 기업에게 더 좋을 것이다 라는 판단 하에 면접에서 그러한 부분을 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업들을 이끄는 CEO들의 성공신화들을 보면, 그러한 주장은 마치 사실인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각종 미디어에서 성공한 CEO들은 과감한 판단과 행동력을 바탕으로 성공을 이끌었고, 사회적으로 이러한 모습은 외향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두가지 관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CEO의 결단이 외향적인 성격을 가질 때만 나오는 것이 아니며, 둘째는 이런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이 많은 부분 후광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필 로젠츠바이크는 자신의 저서인 《헤일로 이펙트》에서 후광효과가 사람들의 판단을 흐린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 성공하거나 덜 성공한 기업의 비교는 사실 더 운이 좋거나 덜 운이 좋은 기업의 비교나 마찬가지이다. 운의 중요성을 안다면 기업 사이의 비교로부터 상당히 일관된 패턴이 등장할 때 특히 의심해야 한다. 임의성이 존재하면 정규 패턴들은 신기루뿐일 수 있다. 기업의 성공과 실패담은 인간이 간절히 원하는 것, 즉 명확한 원인을 밝혀주고 운과 회귀의 불가피성이 갖는 결정적 힘을 무시하는 단순한 성패의 메시지를 제공하며 공감을 산다. 이런 이야기들은 이해의 착각을 유발하고 유지하면서, 교훈들을 믿고 싶어 안달 난 독자들에게 전혀 지속성 없는 가치를 가진 교훈만 선사할 뿐이다. - 《생각에 관한 생각》p.286 

외향성 선호 경향은 우리들로 하여금 외향적인 성격을 지녀야 더 성공할 수 있고 더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향적인 성격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고 뛰어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우리는 많은 내향인들을 찾을 수 있고, 그들이 이룬 업적을 볼 수 있습니다. 간디나 뉴턴, 현대에 들어와서는 앤드루 와일스나 페렐만의 업적을 생각해 봅니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활발해야 할것 같은 기업문화에서도 내향성이 가져다주는 이득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동물이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이 나뉘어 있고, 그 비율도 거의 비슷할 것입니다. 문제해결을 함에 있어서 외향적인 방법론만을 동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가능성을 절반밖에 발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향적인 시민이였던 로자 파크스는 흑인 인권 운동의 시발점이 될 저항을 했고, 외향적인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는 그녀의 용기를 찬양하며 저항을 외칩니다. 내향적인 로자 파크스와 외향적인 마틴 목사의 조합이 훗날 위대한 일이였다고 판단되는 일을 해낸 것입니다.

저자는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와 생김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경구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현대사회가 비록 내향성을 업신여기곤 있지만, 내향성은 우리가 가진 귀한 절반의 가치입니다.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모든 사람이 외향적이 된다고 상상해 보면, 그것은 하나의 광기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려면 외향성을 가진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 모두가 중요합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외향성을 가진 사람들이 과감히 돌진하고 도전하고 외치는 상황에서, 내향성을 가진 사람들은 비트겐슈타인의 조언을 외칠 필요가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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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의 배신 - 왜 어떤 이는 빨라도 실패하고, 어떤 이는 느려도 성공하는가
프랭크 파트노이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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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돈이다'는 격언은 현대사회에서 어떤 격언보다도 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돈이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면서 현대인의 시간 또한 점차 빨라지기를 강요받습니다. 속도의 중요성은 특히 기업의 세계에서 더욱 요구됩니다. 많은 기업들은 다른 기업보다 더 빠르게 정보를 수집해야 하고, 고객과 시장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더 빠르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빠른 속도의 추구는 무수히 많은 폐해를 낳았다고 말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 경제의 위기를 불러왔던 월가의 몰락입니다. 결국 '시간은 돈이다'라는 이 격언은 아마도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시간의 중요성을 망각하게 하는 격언이 되었습니다.

빠른 속도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직업을 고른다면, 테니스 선수나 야구 선수, 펜싱 선수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1000분의 1초인 밀리초의 세계에서 경쟁하며 살아가지만, 이런 프로선수들이라고 해서 일반인들보다 시각적 반응이 더 빠르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 선수가 100마일의 공을 칠 수 있는 이유는 신체적 반응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입니다. 프로선수들은 신체적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일반인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생각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이 야구공을 치기 위해선 스트라이크 여부에 관계없이 보는 즉시 휘둘러야 하지만, 프로 야구 선수들은 200밀리초동안 휘두를지 말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빠른 판단'이 아니라, '정확한 판단'입니다. 단순히 빠른 반응속도와 빠른 판단의 조합은 빠른 헛스윙과 빠른 삼진아웃을 부를 뿐입니다.

지능의 핵심은 빠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때와 느리게 생각하고 행동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이다. - 로버트 스턴버그  

주식거래에 고성능 컴퓨터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컴퓨터가 자동적으로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알고리즘 매매의 일종인 초단기 매매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같은 알고리즘으로 경쟁한다면, 컴퓨터가 더 빨리 반응해야 좋은 조건의 주식을 경쟁자보다 앞서 구입할 수 있고, 판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초단기 매매는 현재 미국 주식 거래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으며, 많은 기업들이 빠르고 새로운 플랫폼에 투자합니다. 하지만 UNX의 사례는 의미심장한 무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UNX는 새로운 CEO의 취임과 함께 최첨단 컴퓨터 매매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더욱 빠르게 설계되었고 효율이 높아졌습니다. 기존에 비해 거래속도는 65밀리초에서 30밀리초로 단축되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30밀리초가 되자 매매 비용이 상승했고 실적이 점점 나빠졌습니다. 결국 UNX는 다시 65밀리초로 돌아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효율을 중시하고 매 초마다 수조 달러가 왔다 갔다 하는 시장에서, 뉴욕으로 옮겨오면서 속도는 빨라졌는데 실적이 나빠지는 것은 무슨 조화냐는 말이죠. 속도를 늦추니 다시 상황이 좋아지고 말이죠. 세상에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까? 이렇게 속도를 중시하는 세상에서 느려야 더 좋다니, 말이 됩니까? - p.58 

과거에 우리의 행동은 '사건의 시간'에 영향을 받았다면, 현대인들은 '시계의 시간'에 영향을 받습니다. 시계의 시간은 우리의 행동을 조직화하며, 사회 경제 분야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테일러주의는 업무의 분업화와 스톱워치를 통한 작업 시간 중심의 운영을 주장했습니다. 현대의 노동자들은 거의 대부분 시간을 기준으로 보수를 받습니다. 가장 낮은 보수를 받는 근로자일수록 더 짧은 기간을 기준으로 보수를 받으며, 이런 사람들은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사람들의 시간관을 바꿨습니다. 시간제 보수는 일 자체보다는 일을 하는 데 드는 시간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동기를 왜곡시킵니다. 근로자들이 시간과 돈을 해로운 방식으로 동일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시간 제약은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더 심해집니다. 시간당 수입이 늘어날수록 자신의 시간이 더 가치 있다고 인식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드보의 연구 결과는 사람들이 시간에 구애받을수록 점점 더 일에만 집착하게 되며, 다른 활동을 덜 할 뿐만 아니라 덜 행복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시간을 줄여 주는 각종 행위들은 모순적 결과를 불러옵니다. 패스트푸드는 시간을 절약하게 해 주지만, 그렇게 해서 아낀 시간에 즐길 수 있는 활동으로부터는 오히려 멀어지게 만듭니다. 더 이상 꽃향기를 맡을 여유가 없게 말이죠. - 샌포드 드보 

현대의 사람들은 하루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과거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고 느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연구 결과는 이러한 인식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현대의 직장은 점점 더 강한 집중력을 요구하는데, 이 때문에 일하는 시간이 더 길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더 느리고 비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기술 발전의 가속화와 숨 가쁜 업무 처리는 단기적으로는 그 효과가 입증되며 빠름에 대한 찬양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혁신은 빠름의 추종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늦춤으로써 최적이 되는 지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빠르게 반응하도록 배선되어 있으며 현대 사회는 우리의 빠른 본능을 최대한 이용하지만, 우리는 종종 본능과 기술을 모두 거부함으로써 더욱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고속 사회일수록 우리의 삶의 결정에 있어서 지금보다 더 많은 심사숙고가 필요한 것입니다. 때문에 저자가 말하는 '기다려라'라는 실존적인 조언을 생각할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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