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6일 - 유괴, 감금, 노예생활 그리고 8년 만에 되찾은 자유
나타샤 캄푸쉬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감금 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첫 계기는 영화 '올드보이'를 통해서였습니다. 영화에선 주인공이 아무 이유도 알지 못하고 감금당하게 되고, 자기를 감금했던 자에 대한 복수를 꿈꿉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과연 감금생활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전혀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영화에서 단편적으로 보여줬던 감금장면들 상상할 뿐입니다.

처음으로 혼자 학교에 등교하는 날, 당시 10살이였던 나타샤 캄푸쉬는 유괴되었습니다. 범인인 볼프강 프리클로필은 그녀를 자기 집 지하방에 가두었고 3096일동안 그녀를 감금했습니다. 볼프강은 정신적 문제를 지니고 있었고 8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녀에게 자유를 박탈했고 굶주림, 청각테러, 신체적 폭력 등을 가했습니다. 아사직전까지 굶기기도 했고, 무수히 많은 상처들을 남겼으며 정신적인 복종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옆집 사람이 선물하는 케이크에 손도 대지 않을 정도로 편집적이였고 히틀러에 심취했고 자유파 정당의 극우 지도자를 우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여성과, 외국인을 혐오했습니다.

나는 뇌에 천천히, 그리고 매일 영향을 미치는 이 고문이 세상의 어떤 끔찍한 육체적 고문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그 무서운 흔적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손으로 만져지지도, 느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상처가 피부로 드러나지도 않으며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비명을 지르게 만들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더욱 더 비난한다. - 찰스 디킨스 '독방감금에 대해' 

동시에 볼프강은 나타샤를 위해 호의를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먹고 싶다는 것을 사주기도 했고, 책과 라디오와 TV 심지어는 컴퓨터를 가지고 싶다는 나타샤의 소원도 들어줬습니다. 때때로 지하방에서 컴퓨터게임을 같이 했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범인은 권력과 억압에 대한 강한 애착, 사랑과 인정을 향한 끓어오르는 욕구가 강했습니다. 범인은 자기에게 감사하고 자기만를 위할 줄 아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납치를 했습니다. 범인은 억압에 대한 환상과 더불에 행복한 세상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만의 이상적인 행복한 가족관을 지니고 있었고 그런 작고 완벽한 세상에 대한 자기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 범죄가 필요했습니다. 범인은 나타샤에게 한 인간으로부터의 절대적인 사랑의 강요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나타샤는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범인에게 순종하고 동시에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범인에게 저항합니다. 자기의 인생을 빼앗은 사람이 자신의 보호자가 되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나타샤를 통해 흥미로운 것은 감금생활과 타인에 대한 통제가 얼마나 심리적인 족쇄로 나타나는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유괴된지 6년이 지났을 즈음, 범인은 나타샤를 데리고 아무도 없었던 옆집 수영장을 이용하기도 했고, 감금되었던 지하방에서 올라와 범인의 집을 청소하고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잡화점에 가기도 했고, 스키여행을 가기도 했고, 심지어 경찰들과 대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범인의 효과적인 음식통제와 신체적 폭력, 도망치려 시도할 경우 주변 사람들과 자기를 해할거라는 협박에 단 한마디로 자유를 얻을 수 있었음에도 말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결국 18살이 되고 그녀는 범인이 전화를 받는 틈을 타 탈출에 성공했고 감금생활을 끝냅니다.

이 사회는 볼프강 프리클로필과 같은 범인을 필요로 한다. 그 사회 안에 존재하는 악에 형상을 부여하고 그 악을 자신으로부터 분리해내기 위해서. 사회는 지하감방과 같은 배경을 필요로 한다. 사회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범죄의 수많은 익명의 피해자들, 아무리 도움을 요청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희생자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나와 같은 엽기적 사건의 피해자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그래서 나는 대개의 사람들 사이에서 무의식적으로 공격을 받는다. 특히 그것은 내가 나를 유괴한 범인 또한 한 인간이며, 그들 가운데 살았던 한 사람이였다는 사실을 직시하도록 이 사회를 움직이려고 할 때 더욱 격렬해진다. 이것은 스스로를 반영하는 사회의 자기혐오라 할수 있다. - p.203 

2006년 8월 23일 탈출에 성공한 뒤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수많은 언론이 그녀를 집중조명했고 온갖 억측이 난무했습니다. 경찰당국이 사건수사도중 유괴된지 6주만에 이미 볼프강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음에도 자료는 잊혀졌다는 실수를 은폐했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대중들의 관심이 나타샤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도 많았습니다. 대중들은 유괴범이라는 범인을 절대악으로 판단하지 않는 나타샤에 대해 공공연한 비난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나타샤는 매를 맞으면서도 자신을 때리는 남자들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는 것과 같은 현실세상이 존재하고, 그런 세상을 용인하는 것과 유괴 감금생활의 차이는 얼마나 있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나타샤는 이제 볼프강에게서 탈출했고, 사람들의 이기적인 호기심과 선입견에서도 탈출을 시도합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잃어버린 청소년기를 만회하고 다시 시작하는 진정한 자유의 삶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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