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묻다 첫 번째 이야기 - 지성과 감성을 동시에 깨우는 일상의 질문들 문득, 묻다 1
유선경 지음 / 지식너머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문득, 묻다 첫 번째 이야기

 

 

어릴 때 호기심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았지만 정작 누군가에게 '질문'한 기억은 거의 없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그냥 참거나 거실 책장에 세트로 꽂혀진 백과사전 등을 펼쳐보면 '정답'이 아닌 '정답이겠거니'싶은 답들을 그때부터 직접 찾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알고 싶지만 그 답을 쫓기가 쉽지 않았던 질문들을 모아놓은 책은 우선 눈길이 가고 만다. 애초에 1년 분량을 예상하고 기획했던 라디오 방송 코너 [문득, 묻다]가 5년이 지나도록 유지되고 있는 것이 청취자들 덕분일거란 저자의 겸손에 크게 고개를 흔들어 본다.

 

첫 질문은 김춘수 시인의 [꽃]에 등장하는 그 꽃이 어떤 꽃이냐하는 것이다. 책을 읽기 전까지 작품속에 그 꽃이 나와있다고 믿었다. 다시 전문을 읽어봐도 그 꽃에 대한 답이 없다. 저자가 찾아준 답변은 '동백' 꽃이자 시인 김춘수가 어감이 좋아 동백대신 불렀다던 '산다화'였다. 내가 듣기에도 동백꽃 보다는 산다화가 훨씬 어감이 좋았다. 이렇게 또 하나 얕은 지식을 쌓았다. 이후에 등장하는 김유정 소설 [동백꽃]에 등장하는 꽃이 실은 생강나무라는 것도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강원도 춘천에서는 생강나무 꽃을 동백꽃이라 부르게 된 배경을 알게 되어 겨우 4페이지를 읽었을 뿐 인데 새롭게 안 내용이 벌써 3가지나 되었다. 이후에 등장하는 모란 꽃은 과연 향기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쫓으면서 몰랐던 역사의 진실을 알게되는 등 작가의 말에 나온 것처럼 연쇄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져 일단 책을 펼치게 되면 쉽사리 놓기 어려워진다. 음식편에서는 외롭고 우울하면 왜 더 많이 먹게 되는지에 대한 답이 나와있다. 다이어트를 평생의 숙제와 과제로 안고 살아가는 여성, 혹은 다이어터들이라면 이 질문을 재미삼아 넘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몸의 부신피질에서는 스트레스를 무디게 하기 위해 코르티솔을 생산하고 ,코르티솔은 신경펩티드라는 화학물질을 분비하도록 만듭니다. (중략) 그러니 어떻게 설탕과 지방, 탄수화물이 잔뜩 들어간 음식을 먹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음식은 '사랑'인데 말이지요. 115쪽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몇 년 전 봤던 외화중에 실연을 당한 언니에게 동생이 했던 조언은 일단 도너츠 가게에 가서 도넛 한개가 아니라 한 박스를 사서 차안에서 다 먹어야 한다 였다. 그때는 과학적 지식이나 원리가 아니라 그저 본능처럼 집어들게 되는 '단 것'의 공감대가 형성대 맞어맞어 하며 봤었는데 이런 원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우울해졌다. 결국 우리는 큰 슬픔과 좌절에 빠져있을 때 본능처럼 끌어당기는 그 단 맛을 다이어트와 건강유지라는 명목하에 이겨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세 번째 말과 관련된 질문중에서는 '도리도리 까꿍은 무슨 뜻일까?'에 대한 답을 이야기 하고 싶다.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자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도리도리 할 때 도리가 일본어 '새'를 말하는 것으로 일제 시대의 잔재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었다. '잼잼'이 아니고 '죔죔'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 질문에 대한 해답도 함께 알아볼 수 있는데 이것이 모두 <단동치기십계훈>, 줄여서 단동십훈이라 불리는 육아법에 나온 말이라고 한다. 일본도 아니고, 단순 의성어나 의태어도 아닌 전통있는 육아법이라는 사실에 자부심까지 느껴졌다. '천지만물이 하늘의 도리로 생겼으니 너도 하늘의 도리에 따라 생겼음을 깨달으라'라는 아주 이로운 뜻으로 아이를 달래거나 봐줄일이 있다면 기억해뒀다가 주변사람에게 넌지시 알은 체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 사람, 그는 삶에 통달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과 인간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 심지어 이 세상을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묻지 않는 사람은 불안합니다. 침묵과는 다른 의미의 경고등입니다. 5쪽

 

아이가 성장하면서 '왜'하고 집요하게 제 부모를 괴롭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마다 친절하게 답변하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나처럼 정답일 것 같은 답을 찾기 위해 책을 펼치는 것도 한글을 깨우치고 책을 읽을 줄 알아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 뿐 아니라 어른들도 누군가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이미 알고 있거나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물음을 던질 때도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우리는 책에 나와있는 질문을 감히 누구에게 물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문득 묻고 싶은 그런 질문에 답해주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곁에 없기에 내가 이 책과 같은 사람이 되어봐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니아의 소중한 것과 오래도록 함께하는 생활
가도쿠라 타니아 지음, 김정연 옮김 / 테이크원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타니아의 소중한 것과 오래도록 함께하는 생활

 

독일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 타니아는 양국 모두의 장점과 특색을 갖춘 살림꾼이다. 지난 번에 읽었던 작은 수납인테리어도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내용만 담았기에 지금도 가끔 펼쳐보는 데 이번 신간[타니아의 소중한 것과 오래도록 함께하는 생활]편도 맘에 들었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꽤 오래된 빈티지 가구부터 최근에 알게된 소품까지 저자가 직접 오랜 기간 사용하며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것, 혹은 더이상 구할 수는 없지만 추억이 깃든 제품들을 소개해주었다.

 

물건은 생활을 풍부하게도 해주지만 자신이 유지할 수 없는 그 이상을 갖고 있으면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저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앞으로도 기분 좋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141쪽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추천해주는 소품들을 하나 하나 메모하고 실제 구매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사소하게는 나무로 만든 디퓨저, 울림이 좋은 스피커, 유럽 여행중에 만난 빈티지 식기 등이 그렇다. 마치 그녀가 함께 세팅해놓은 받침대와 풍경이 그 물건만 사들이면 다 완성될 것 같지만 크지 않은 내 방, 도심안에 있는 내 집에서 그런 분위기가 완성될 수 있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저자 또한 소개해준 대부분의 큰 가구나 소품들, 도쿄의 집에서는 놔둘 수 없는 것들을 가고시마에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처럼 도심에 한 채, 지방에 한 채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참고로만 봐둬야 한다.

 

반면 독일에 방문하게 된다면 이 제품은 꼭 사야겠다 싶은 것도 물론 있다. 친환경 세탁비누 '갈자이페'는 소의 담즙으로 만든 비누인데 이 담즙의 포함된 단백질 분해 효소가 와이셔츠의 목둘레나 양말의 발꿈치 부위에 찌든 때 제거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독일의 친환경 숍에서 소개해준 제품이 비누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이 상품들은 소모성 제품인데다 부피도 크지 않기 때문에 욕심내도 괜찮을 것 같다.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반드시 자신의 집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익숙한 산책길, 언제나 바라볼 수 있는 나무, 마음이 차분해지는 건물 등 집 밖에도 훌륭한 물건은 많이 있습니다. 9쪽

 

도쿄의 집은 책에 실리지 않았지만 직접 지은 가고시마의 집은 복도, 침실, 테라스 등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붉은 색으로 장식한 복도의 벽은 저자가 가장 맘에 들어하는 장소로 홀로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공간도 이 곳에 있고 금테두른 액자 등도 이곳에 있어 사진으로 보면 꼭 촬영을 위해 제작한 세트장 처럼 느껴질 만큼 멋지다. 저자의 공간과 나의 공간을 비교하는 순간 우울해 질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서문에 적힌 저자의 말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반드시 자신의 집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를 떠올렸다. 운동하거나 산책하러 종종 가는 공원, 그 공원의 호수, 호수 건너편의 예쁜 건물들을 떠올리면 다시 마음이 차분해지고 저자가 소개해준 추억의 물건을 편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저자처럼 맘에 드는 물건을 가져오거나 지인이 내놓은 빈티지한 가구를 소유할 공간이 없어도 책을 읽는 내내 행복할 수 있어 좋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이바 2015-07-19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자이페 비누 메모하고 갑니다.. 솔깃하네요^^

에디터D 2015-08-26 01:33   좋아요 0 | URL
저도 일본가면 꼭 찾아보려구요.ㅋㅋ 혹 찾아서 사용해보고 괜찮으면 댓글 또 남길게용.ㅎ
 
위대한 생존 -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 이야기
레이첼 서스만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내셔널 지오그래픽 프로에서 세계에서 가장 둘레가 큰 나무를 촬영장면을 본 적이 있다. 사진 전시회를 가면 한 번쯤 봤을법한 커다란 나무를 사진에 담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인력과 노력이 필요했다. 책, <위대한 생존>은 크기가 큰 나무는 아니지만 가장 적게 산 나무가 2000살이라면 대략 크기가 어느정도일지 짐작할 수 있다. 한 그루의 나무촬영도 위대해보였는데 그런 나무를 여러 번 촬영을 했다는 것, 그리고 예술차원을 넘어서 과학지식까지 포함된 내용이라 보면서도 우와~를 연발하게 되었다.


 

 

사진 찍을 대상들을 찾으러 가기 전에 그게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알아내야 했다. 오래산 나무의 목록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여러 생물종을 아우르며 내 기준에 부합하는 모든 생물을 적어놓은 목록은 없었다. 온갖 검색어로 구글 검색을 하고 여러 전문 분야의 과학 연구 논문들을 찾아보면서 하나씩 하나씩 목록을 만들어나갔다. 27쪽

 

 

 

그저 오래살았다고 촬영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또 촬영만 하고 그치는 예술도 아니었다. 작가의 말처럼 과학적으로도 의미가 있어야 하기에 과학자들의 인정도 받아야 하므로 위의 문장에 나와있듯이 과학 연구 논문을 찾아보기까지 한다. 하지만 난 이 책을 딱 한번 읽고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자주 펼쳐보기로 마음 먹고 일단 사진부터 훑어보자고 마음 먹었다. 그 다음 눈길을 끄는 사진을 살펴보는 식으로 읽어나갔다. 미리 밝혀두지만 이 책의 큰 목적은 예술적 가치도, 과학적 지식 함양도 아니었다. 본문에 나와있듯 인간은 이곳에 등장하는 나무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주 짧은 삶을 살다간다. 그것은 삶의 목적도, 방식도 다르기 때문인데 그렇게 오래 살 수 있는 나무를 인간의 손길이 닿으면 오히려 생명을 단축시킨다. 실제 촬영된 나무 중 2그루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때문에.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내가 방문하고 나서 얼마 뒤 식물원 근처에 도로를 새로 내느라 이 나무를 없앴다고 반 위크가 알려주었다. 다행인 점은 지하 삼림이 아직 많다는 점이고, 안타까운 점은 지하 삼림은 한 번 사라지면 영원히 사라진다는 점이다. 217쪽 

 

 

 

책 속에는 '심원한 시간'의 연표라고 해서 우리가 감히 짐작도 못할 아주 오래전에 세상에 나왔다가 사라진 생명체들의 연표가 실려있다. 나무의 수명을 알아보기 위한 과학적인 방법도 소개되어 있다. 애초에 사진만 먼저 보고 나무를 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저 사진을 구경하듯 할 수는 없었다. 나무 이야기만 했지만 나무외에 이끼, 균과 박테리아를 찾아가기도 하고 심지어 원래 촬영 목록에 있었지만 가는 길이 험(?)해서 갈 수 없었던 장소도 있을만큼 저자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알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든 생각은 자연을 위태롭게 하는 무지한 인간의 모습도, 인간의 삶 저 건너에서 오랜시간 살아온 종의 위대함도 있지만 그동안 모험심을 저 깊은 곳에 두고 살아왔구나 하는 안타까움 이었다. 잠수함이 없어 못갔던 심해나 종교와 인종문제로 가지 못했다는 그 장소를 가게된다면 어떨까하고 조심스레 상상해보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7-19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무척 재미있겠어요. 첫 번째 사진의 나무는 정말 신기해요. 무슨 이끼가 덮은 거대한 바위인 줄 알았어요. ㅎㅎㅎ
 
나, 찰스 사치, 아트홀릭 - 우리 시대의 가장 독보적인 아트 컬렉터와의 대화
찰스 사치 지음, 주연화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나, 찰스 사치, 아트홀릭.

 

우선 인터뷰집이라서 다소 지루하거나 식상할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먼저 말해두자면, 기대보다 재밌고 생각보다 사치가 답변하는 대답을 보며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지나치게 예민해서 인터뷰를 자주 하지 않았던 덕분이다. 만약 여기저기 잡지마다 그의 갤러리에 대한 평론이나 비평이 아닌 사생활이 공개되었다면 이 책이 그정도로 재미있진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이 2009년도 첫 출간되었고, 벌써 만 5년이 지나 아마 이 이후에 인터뷰 내용을 찾아보면 이 책에서 답변한 것과 다른 내용도 많이 있을거라 추측된다. 묘비명을 무엇으로 하고 싶냐는 동일한 질문에 누군가에게는 스타워즈의 명대사를 인용, 재치있게 넘어가기도 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쾌하다는듯 누가 사는 동안 자신의 묘비명을 생각해두냐고 퉁명스럽게 답변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미술에 대한 자기 애정에 확신이 있었고, 적어도 아트계에서 잘보이기 위해 아양을 떨거나 겸손한 척 하지 않는 것이 사치를 매력적으로 느끼게 했다.

 

영국 언론이 당신을 부당하게 대우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비난을 참을 수 없다면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행운이 있는지를 자랑하면 안 되지요. 39쪽

사치는 좋아하는 예술작품을 수집하고 또 전시하는 것이 개인적인 만족과 타인에게 자랑하고 싶은 이유라고 숨기지 않고 고백한다. 그런 맥락에서 더 이상 좋아하긴 하지만 소장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면 다시 작품을 일괄 되팔기도 하는 데 이를 두고 예술계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오해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을 번역한 역자분도 옮긴이의 말을 읽다보면 그런 편에 서있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난 오히려 사치의 입장이 쉽게 이해되었다. 팔지 않고 계속 모으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아무리 부자라도 집안이 전부 예술품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마치 독식하듯 작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미술관이나 유사기관에서 전시를 목적으로 소장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본다. 설사 그가 아무리 아트 시장의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수집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광고계에서 세계 최초로 가장 많은 수익을 얻어 평생 실컷 써도 다 쓰지 못할 만큼 부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그는 부정하지 않고 축복받았다고 인정하며 모든 성공이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사실 그는 광고회사에서 20시간 넘게 일하기도 했으며 자신이 처음 부터 부자였던 게 아니었고 배달원 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오로지 부를 축적하기 위해 미술품을 사들이고 되팔기 했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비단 이 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웨일스의 작은 오두막집에 살며 시를 쓰거나 동화책 삽화를 그리면서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유한 삶이 돈,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지요. 73쪽

흔히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고 말한다. 부유한 삶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기 때문에 더 많은 물질을 원하게 되고 그럴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비교를 멈추는 순간 오로지 자기가 기쁨을 느끼는 것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된다. 답변을 다 읽다보면 광고일을 즐겁게 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실제 그가 다른 질문의 답변으로 쓴 내용 중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을 직업으로 가지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우리는 돈이 우선시 되기 때문에 그렇게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형편상 반드시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더 많은 재물과 좋은 집, 멋진 차를 갖기 위해 내가 즐거워 하는 일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예술에는 관심이 많지만 예술'계'에는 관심도 없다고 말하는 사치를 예술계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순수한 호감이나 젊은 예술가들의 발굴이 목적이 아니라 투자를 목적으로 작품을 사들이는 사람들 보다는 솔직해서 호감이 갔다. 호감은 아니지만 여전히 언론과 예술계에 관심을 받는 까닭은 아마도 많은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부와 광고일을 하면서 습득한 대중의 취향을 제대로 알고 있는 그의 능력만은 아닌 것 같다. 천국과 지옥 중에 어디를 가고 싶냐는 질문에 너무 식상한 질문이라고 답하면서도 한가지 꼭 사고 싶은 게 있다면 천국행 티켓이라고 말하는 그의 천진함, 미술작품을 제외하고는 프라푸치노에 빠져 스타벅스에 줄서서 기다리는 자신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허세없는 모습이 조금은 부럽기 때문일 것이다. 끝으로 사치의 성격을 가장 빨리 짐작해볼 수 있는 문답이다.

 

당신의 갤러리에 불이 났는데, 한 가지만 구할 수 있다면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218쪽)

 

나요.

 

 

 

 

 

여담 :어쩌다보니 책을 읽은 곳이 스타벅스,
주문한 음료가 프라푸치노 였다. 그래서 더 재밌게 책을 읽었던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의 기술 사전 - 삶을 예술로 만드는 일상의 철학
안드레아스 브레너 & 외르크 치르파스 지음, 김희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의 기술 사전]은 무엇보다도 삶의 속도를 늦춰보자는 뜻에서 기획되었다. -머리말-

 

산다는 것에 대해 기술이 있다면 누구라도 배우고 싶을 것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인증서가 있다면 취득하길 바랄테고, 수료증이라도 받고 싶은 마음이 들만한데 안타깝게도 그 '모두'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이 인정하는 존경받는 성인의 말이라면 기술까지는 어려워도 참고사항, 지침서 정도로 우리에게 많이 퍼져있다. 기본적인 행동양식, 욕심내지 말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에 쓰여진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말들은 물론 옳지만 기술이라기 보다는 '도덕'에 가까웠다. 천천히 인생을 즐기면서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얘기가 달라진다. 천천히 자신을 돌아보면서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보는 것, 이것이 삶의 기술이라면 부담없이 읽어보고 싶어졌다. 막상 본문을 읽다보니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그리고 책에서 자주 만났던 철학자, 이론은 물론 처음 들어보는 철학자들도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이 등장한다. 역자의 주석 덕분에 한 사람 한사람 사전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간략하게 철학자의 핵심논리까지 기재해준 덕분에 원문자체로는 이해되지 않는 문장도 이해하기 쉬웠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 책을 통해 꼭 개인적으로 크게 각인된 삶의 기술은 다음과 같다.

얼마전 서평 책까지 출간한 배우 '이보영'씨가  TV프로에 나와 오랜 연애끝에 결혼을 결심하게 된 까닭이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깊이 공감하는 내용이고 아직 미혼 남녀라면 그 어떤 조언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삶의 기술 사전에서도 '고독'에 대해, 바로 홀로된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홀로 방안에 조용히 머무를 수 없다는 데서 인간의 모든 불행이 비롯되었다고 본 몽테뉴와 파스칼의 생각은 옳다.' 44쪽 고독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점차 많아지는 까닭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책에서는 하느님만 보더라도 세상에 신보다 더 고독한 존재는 없으며 신은 인간이 가장 존경하고 찬미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혼자있을 때 고독을 즐기지 못하고 어떻게해서든 타인과 함께 있으려고 노력하다보면 상대방의 잘못을 눈감아주거나 악의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할 수 밖에 없는 곤란한 상황에 이르기 쉽다. 반면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이들은 타인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스스로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된다.

'권리'에 대한 부분도 기억에 남는데 도저히 입에 담기도 흉칙한 범죄가 자주 곳곳에서 일어나는 요즘 신문기사 댓글에는 하나같이 '사형'제도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인권위에서 반대하는 것은 피의자의 권리만 있고 피해자의 권리는 무시한 처사라는 말도 함께 나온다. 도대체 권리란 것이 무엇인가. 권리란 법률로 지정된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도덕적 권리에 있어 법조문으로 존중해야 된다고 하지만 과연 피의자의 권리도 이에 해당되느냐가 핵심이 될 것 같다. 윤리에 어긋난 그들에게도 지켜지는 권리가 어째써 정작 피해자에게는 없는지 이부분은 섣불리 말하기가 어렵다. 다만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권리침해현장을 고발해야 할 의무도 함께 가져야 한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이부분은 맨 첫 질문 '감각은 악마의 간계일까'에서도 언급되는 부분으로 사회부적응자나 폭력적인 사람을 공공장소에서 만날 때 우리는 어떻게든 그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다시말하자면 나만 아니면 되고, 나만 건드리지 않으면 된다는 의식이 강하게 박혀있는 셈이다. 달리 말하면 누군가가 나 대신에 권리를 침해받더라도 모른척 지나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처럼 책에서 나오는 질문과 서술들은 결코 개별적으로 마무리 되지 않는다.

책의 내용은 어려운 단어가 거의 없고, 앞서 말한것처럼 낯선 인물과 이론들은 역자의 도움으로 읽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뿐만아니라 그동안 한 사람의 철학자와 단 하나의 이론을 연결할 수 있었다면 이제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것도 깨닫게되었다. 돈을 주고서라도 시간을 사는 요즘, 저자는 이 책을 읽는 것이 결코 시간낭비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도 여유있게 사는 방법이라며 정작 저자는 에필로그를 적지 않았지만 친절한 역자의 말을 통해 이 책을 다음의 문장으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보기 드물게 잘 차려진 철학의 성찬이다. 고금을 아울러 철학자들의 다양한 가르침을 담으면서, 의미 찾기라는 철학의 본질에 일관되게 충실한 역작이다. 56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