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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찰스 사치, 아트홀릭 - 우리 시대의 가장 독보적인 아트 컬렉터와의 대화
찰스 사치 지음, 주연화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나, 찰스 사치, 아트홀릭.
우선 인터뷰집이라서 다소 지루하거나 식상할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먼저 말해두자면, 기대보다 재밌고 생각보다 사치가 답변하는 대답을 보며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지나치게 예민해서 인터뷰를 자주 하지 않았던 덕분이다. 만약 여기저기 잡지마다 그의 갤러리에 대한 평론이나 비평이 아닌 사생활이 공개되었다면 이 책이 그정도로 재미있진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이 2009년도 첫 출간되었고, 벌써 만 5년이 지나 아마 이 이후에 인터뷰 내용을 찾아보면 이 책에서 답변한 것과 다른 내용도 많이 있을거라 추측된다. 묘비명을 무엇으로 하고 싶냐는 동일한 질문에 누군가에게는 스타워즈의 명대사를 인용, 재치있게 넘어가기도 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쾌하다는듯 누가 사는 동안 자신의 묘비명을 생각해두냐고 퉁명스럽게 답변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미술에 대한 자기 애정에 확신이 있었고, 적어도 아트계에서 잘보이기 위해 아양을 떨거나 겸손한 척 하지 않는 것이 사치를 매력적으로 느끼게 했다.
영국 언론이 당신을 부당하게 대우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비난을 참을 수 없다면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행운이 있는지를 자랑하면 안 되지요. 39쪽
사치는 좋아하는 예술작품을 수집하고 또 전시하는 것이 개인적인 만족과 타인에게 자랑하고 싶은 이유라고 숨기지 않고 고백한다. 그런 맥락에서 더 이상 좋아하긴 하지만 소장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면 다시 작품을 일괄 되팔기도 하는 데 이를 두고 예술계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오해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을 번역한 역자분도 옮긴이의 말을 읽다보면 그런 편에 서있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난 오히려 사치의 입장이 쉽게 이해되었다. 팔지 않고 계속 모으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아무리 부자라도 집안이 전부 예술품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마치 독식하듯 작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미술관이나 유사기관에서 전시를 목적으로 소장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본다. 설사 그가 아무리 아트 시장의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수집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광고계에서 세계 최초로 가장 많은 수익을 얻어 평생 실컷 써도 다 쓰지 못할 만큼 부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그는 부정하지 않고 축복받았다고 인정하며 모든 성공이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사실 그는 광고회사에서 20시간 넘게 일하기도 했으며 자신이 처음 부터 부자였던 게 아니었고 배달원 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오로지 부를 축적하기 위해 미술품을 사들이고 되팔기 했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비단 이 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웨일스의 작은 오두막집에 살며 시를 쓰거나 동화책 삽화를 그리면서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유한 삶이 돈,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지요. 73쪽
흔히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고 말한다. 부유한 삶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기 때문에 더 많은 물질을 원하게 되고 그럴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비교를 멈추는 순간 오로지 자기가 기쁨을 느끼는 것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된다. 답변을 다 읽다보면 광고일을 즐겁게 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실제 그가 다른 질문의 답변으로 쓴 내용 중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을 직업으로 가지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우리는 돈이 우선시 되기 때문에 그렇게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형편상 반드시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더 많은 재물과 좋은 집, 멋진 차를 갖기 위해 내가 즐거워 하는 일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예술에는 관심이 많지만 예술'계'에는 관심도 없다고 말하는 사치를 예술계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순수한 호감이나 젊은 예술가들의 발굴이 목적이 아니라 투자를 목적으로 작품을 사들이는 사람들 보다는 솔직해서 호감이 갔다. 호감은 아니지만 여전히 언론과 예술계에 관심을 받는 까닭은 아마도 많은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부와 광고일을 하면서 습득한 대중의 취향을 제대로 알고 있는 그의 능력만은 아닌 것 같다. 천국과 지옥 중에 어디를 가고 싶냐는 질문에 너무 식상한 질문이라고 답하면서도 한가지 꼭 사고 싶은 게 있다면 천국행 티켓이라고 말하는 그의 천진함, 미술작품을 제외하고는 프라푸치노에 빠져 스타벅스에 줄서서 기다리는 자신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허세없는 모습이 조금은 부럽기 때문일 것이다. 끝으로 사치의 성격을 가장 빨리 짐작해볼 수 있는 문답이다.
당신의 갤러리에 불이 났는데, 한 가지만 구할 수 있다면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218쪽)
나요.
여담 :어쩌다보니 책을 읽은 곳이 스타벅스,
주문한 음료가 프라푸치노 였다. 그래서 더 재밌게 책을 읽었던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