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서동욱 지음 / 김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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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날씨를바꾼다

그러나 내 마음은 어둠 속에서도 햇살처럼 켜져야 하며, 가뭄 속에서도 그토록 좋아하는 빗소리가 울려 퍼지는 우산 아래의 원형 극장을 만들어야 한다. 진정 모든 변화는 생각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9쪽
인간이 스스로를 가장 유약하고 신에 의해 휘둘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언제일까. 그건 자연 앞에서 무력해질 때일 것이다. 아이들의 소풍이나 운동회 당일 아침, 예고도 없이 비가 내리거나 설마 했던 산사태와 홍수에 결국 인간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의 저자처럼, 우리는 날씨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궂은 날씨에도 ‘햇살처럼 켜져야 한다‘. ‘철학‘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하면 겁이 살짝 나는 것이 사실이다. 어려운 용어와 은유 그리고 철학자의 이론까지 더해지면 굳이 심각하게 고민하지 말고 좋게 좋게 생각하라는 의미로 퉁치고 싶어진다. 헌데 이 책은 시작부터가 ‘아!‘하게 만든다. 봄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출발점이다. 그렇다보니 더불어 시작되는 ‘결심‘과 ‘자기개발‘의지가 활활 타오르기도 한다. 이때 우리의 맘속에서는 누군가의 ‘성공방법‘만큼 유혹적인 것이 없다. 과연 그들의 성공방식이 내게도 그럴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성급해진 마음은 도무지 그들의 놀라운 변화와 성공사례에 멀어지기 힘들다. 저자의 말처럼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속 컴퓨터에게 올바른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올바른 질문이란 무엇인가. 나를 아는 것, 그리고 과거의 반복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맞이하는 불확실성을 담대하게 마주하는 것이다. 날씨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장 끔찍한 건 ‘우울‘함 일 것이다. ‘멜랑콜리아‘ 가 ‘검은 담즙‘을 의미한다는 것을 10여년 전 이제 고인이 되신 고김진영 교수님의 강의에서 알게 되었다. 검은 담즙. 우리의 우울한 감정들이 유럽에서는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종교와 관련되어 있어 바다를 떠나는 ‘대항해‘가 결국 우울로 부터 벗어나려는 ‘떠남을 위한 떠남‘이라는 것도 20대 시절, 나의 마음과 몸이 들썩이게 되는 변명이 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이전의 가족은 혈연과 동시에 법적으로 묶여있는 구성원들의 합이었다면 현재는,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가족‘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게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책에서도 AI가 데이터관리와 생성 및 예술을 포함한 창작영역은 물론 종교라는 영역까지 거침없이 침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좀 이상한 비교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재래의 가족은 풍비박산 났다. 어른, 아이, 아버지, 어머니, 자식 역할도 이제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AI와 인간의 관계도 그럴 것이다. 인간계는 풍비박산이 났다. 168쪽


저자와의 생각이 차이가 나는 부분인데 마치 이를 염두하기로 한 것처럼 후반부에 ‘차이가 우리를 보호한다‘라는 장에서 서로 차이를 인정할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것이 분열이나 다툼이 아닌 ‘상호존중‘이라고 말한다. 흔히 어른들이 부부가 서로 달라야 싸우면서 잘 산다고 하시는 말씀이 떠오르기도 한다. 같은 사람들은 서로 위계를 만들어내는 반면 차이는 문화를 싹튀우는 씨앗이된다. 결국 이렇게 책을 읽는 행위에 있어 저자와 모든 부분에서 일치하고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효용이 있을때도 분명있겠지만 AI가 도래하는 시대를 바라보는 저자와 나의 차이는 이를 어떻게 현명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좋은 결과를 낳는다. 에필로그에 적힌 다음의 말들은 우리가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수용할 때, 벌어지는 내면의 날씨변화를 견인하는 것이 다름아닌 ‘쓰다듬는 손‘, 배려임을 깨닫게 해준다.


쓰다듬는 손길은 다른 이에게 베푸는 손길이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을 어루만지는 손길이다. 그 손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꼭 끌어안고 있는 손, 축복받은 손이다.(326쪽)
그렇게 나는 네 손을, 아니 지구 하나를 쥐고 있었고, 두 손이 잠시 피해 있던 외투 주머니 속에선 별자리들이 어지럽게 움직이며 모든 것이 무사할 것이라 말하듯 날씨가 바뀌었다. (3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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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아버지를 부탁해
김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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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4월, 첫 책은 #좌파고양이를부탁해 김봄작가의 #우파아버지를부탁해

카페에서 읽다가 여러 번 울컥하려던 걸 간신히 참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기록을 남기려고(라기보다 이렇게 안하면 오늘 안쓸 것 같아서^^;) 다소 정리가 덜 된 감정으로 서평을 적는다.

70대 부모가 있어서 그런지 감정이입도 잘 되었고, 작가와는 다른 분류로 아빠를 닮아 언니+엄마 vs 아빠+나 의 구조에 공감도 잘 된 부분도 있어 웃음도 났지만, 환자가 아닌 진료시스템의 ‘원래 그렇다’가 먼저인 현실에 화도 나고 좋지 않았던 기억도 떠올라 몹시 맘이 답답하기도 했다. 우선 작가 본인의 간병기이자 전작<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후속담이 초반에 등장한다. 명절을 앞두고 정치성향이 다른 어른이 된 자녀와 부모간의 갈등은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꽤나 불편한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나 역시 지난 아픈 사건과 사고에 대처하는 정부를 바라보는 부모님과 서로 다른 평가에 마음이 다친 적도 있고, 그러면서도 결론은 ‘건강’으로 끝맺는 ‘가족’이라는 지나치게 가까워 상처주는 관계임에 눈물나기도 했다. 지금껏 나이든 아버지를 돌보는 건 모친이 생전에 계신다면 당연스레 아내, 엄마의 몫이었다. 육아로 인해 성차별을 느꼈다며 설토하던 나조차 저자가 인정했던 그 어쩔 수 없는 엄마를 향한 ‘희생’을 너무 쉽게 기대하며 살고 있다. 성이 다른 부모의 배변을 돕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우려가 많았지만 모든 것을 ‘의식’할 필요도 그럴 여유도 없는 상황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프면서도 정말 감사할 정도로 다행이었다.

간병을 하는 자녀들을 보며 효자, 효녀라는 말을 악의없는 칭찬으로 건네는 경우가 많다. 정작 그런말을 들을때며 저자처럼 불편해지는 자식들의 마음은 거의다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자발적으로 하면서도 부모를 위한 마음보다 스스로가 혹는 사회가 정한 ‘의무’와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때면 더 그렇다. 어린아이를 돌보는 것도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유난’처럼 느껴지는 요즘, 부모를 돌보는 것이 더 힘들지 않도록 시스템적인 부분에서 변화가 있어야한다는 부분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또 저자가 언급한 사례처럼, 거리에서 힘겹게 한 발 한 발 내딛는 어르신을 보고 혀를 차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미래에, 다가올 노년을 굳이 비하하고 욕하진 말기를, 저마다의 우파 아버지를 부탁한다.

#김봄 #에세이 #추천에세이 #봄 #독서스타그램 #책 #간병 #돌봄 @medic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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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 Philos 시리즈 27
사이토 고헤이 지음, 정성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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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갈등의 주요 원인이 무엇이냐는 토론 주제에 별다른 고민 없이 '돈' 때문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근거로 제시한 것이 유명 여가수가 했던 '돈이 부족하지 않으면 다툴 일이 전혀 없다'라는 인터뷰 기사를 언급하기도 했고, 복권 당첨자가 몇 년이 지나도록 가족 누구에게도 당첨 사실을 알리지 않고 회사도 이전처럼 다니지만 통장에 돈이 들어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특별히 누구에게 화가 나거나 분노가 생기지 않는다던 이야기도 꺼냈었다. 그런가 하면 커뮤니티 사이에서 떠도는 그 말, '돈이 많아도 행복하지 않다면, 돈이 부족한 것이다'라는 말도 생각난다. 의료 민영화를 두려워하는 까닭도 마찬가지다. 모든 생명이 더 이상 돈 앞에서 평등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미 오래전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 시기에 마르크스를 읽어야 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가 하면,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보다 '자본을 늘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39쪽

자본을 늘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사회에서는 생산력이 없는 사람들은 임금과 자신의 '노동력'을 맞바꾼다. 그렇다 보니 같은 노동자 사이에서도 경쟁이 생기고 임금을 지불하는 입장에서는 더 싸게, 더 많은 생산량을 만들어내는 '노동력'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무력하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컨대 무력한 소비자는 시장이 제공하는 주어진 상품과 서비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돈만 있으면 원하는 메뉴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메뉴에 없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매우 약하고 자유롭지 못한 존재인 셈입니다. 118쪽

저자는 노동자에게 주어진 자유(free)를 커피에 설탕이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free)와 같은 의미라고 말한다. 결국 '힘없는 생산자는 힘없는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읽으면서도 입이 쓰고 마음이 무거웠는데 진짜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자본주의는 지구환경을 파괴하지 않고는 이미 생산력을 더 이상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사적 소유와 이윤추구 아래 약탈을 반복하는 시스템에서는 누구의 것도 아닌 지구환경을 지속 가능한 형태로 관리할 수 없습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더 나은 사회 발전에 '질곡'이 된 상태입니다. 147쪽

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마르크스가 자연과학에도 관심이 있을 뿐 아니라 자본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점 또한 물질대사 이론을 토대로 바라보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은 자본론을 이미 읽었거나 중도에 포기한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본론 외에도 마르크스 '발췌 노트하는 습관'은 평소 유사한 독서습관이 있어서인지 공감도 되고 응원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를 떠올렸을 때 소련 사회주의와 관련된 마지막 5,6 챕터 부분은 잘못된 요약으로 오해가 있을 것 같아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궁금한 분들은 꼭 직접 읽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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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믿음
헤르만 헤세 지음, 강민경 옮김 / 로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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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디를 둘러보든 사람들은 모두 불안하고 억지스러우며 악독한 표정을 짓고 있다. 모두 쓸데없는 일을 하거나 주식, 요양원 따위에 쏟을 시간밖에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런 끔찍한 상태는 몸이 나에게 보내는 고통으로 나타날 뿐이다. 37쪽

며칠 내내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수면시간은 줄고, 과제와 함께 걱정과 한숨은 잔뜩 늘어났으니 몸이 멀쩡할 수 없었다. 오전시간에 수업과 아이 등원문제로 간식을 포함해 식사를 거른것도 영향을 준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저 위에 발췌문을 가지고 며칠을 나의 영혼에 대해, 영육간의 건강 어느것 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함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생각한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실상은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생각하기를 게을리하느라 건강하지 못한 상태는 지속되었다. 그렇게 어지러운 상태에서도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재미있다‘. 무엇이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저자의 불완전함에 있다. 종교는 완벽한가? 신에대해서 완벽하게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아니 그럴수도 없기에 겸손할 수 밖에 없는데 ‘성인‘이 되고자 함께 노력하자는 친절하진 않지만 꽤나 설득력있는 작가로서의 장점을 다분히 발휘한 글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헤세가 지향하는 종교적인 인간이 될 수 없다. 이성적이지 않다고 해서 천재가 나올 수 없다거나 영웅이 될 수 없 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인 천재와 현실적인 천재가 서로 흠모하고 마음이 끌리듯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영적인 경험은 이성과 경외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가장 모순되는 존재가 결국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125쪽

헤세는 자신의 믿음에 대해 경험하였기에 가능했다고 고백한다. 실제 종교에 있어 어떤 논리로 반박하고 근거를 제시하라는 사람들이 신을 믿으라는 이들에게 반박할 때 ‘이성이 아닌 경험에 의존‘한다고 말한다.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비이성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 그 믿음으로 이성적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할 것 같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다름아닌 종교적인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헤세는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와 성인들에게서 배울 점이 무엇인지, 또 실제 그들이 원하는 지향점에 도달했으리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들의 지향점은 결코 쉽사리 닿을 수 있는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자의 말처럼 안으로는 우울증을, 외적으로는 전쟁이 발발하는 시대를 살았던 헤세였지만 종교에 대한 신의와 도전은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모범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번 사순시기에 나처럼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좇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 책에서 답을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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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스 -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경제학적 생존 전략 7가지
저스틴 길리스.핼 하비 지음, 이한음 옮김 / 알레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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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은 지구에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대량 멸종이 있었다고 말한다. 공룡을 없앤 대량 멸종도 그중 하나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인류가 지구 역사상 여섯 번째 대량 멸종을 일으키고 있다고 우려한다. 225쪽

기후위기란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3세 미만의 어린 아이들조차 어린이집에서 환경관련 그림책이나 만들기 활동 등을 통해 쓰레기 분리수거 등을 제대로 하지 않아 ‘지구가 아파요‘란 말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아픈 지구를 위해, 경제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해결방법을 제시한 것이 ‘빅픽스‘다. 위의 발췌문에서도 등장하는 ‘여섯 번째 멸종‘이란 책을 2014년전에 읽은 후 기후의 상태는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기라도 하듯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인류가 정말 물러서야 할 지점이 온 것이다.

책의 내용은 심각해진 현 상황에 대한 분석과 7가지의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밀접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식량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 저자가 제시한 방법은 대체육및 소비를 증대시키는 방법이다. 현재 세계의 서식 가능 토지 중 절반이 농사에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는 않다. 우리가 먹는 육류는 가축에서 오고, 가축을 키우기 위한 비료를 위한 토지를 그만큼 사용하고 있는 셈인데 대체육이라는 해결방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육류를 찾는 이유를 저자는 비합리적인 가격에 있다고 본다. 가격의 합리성과 더불어 ‘나무 형평성‘을 바탕으로 빈곤한 지역에 심었던 나무들이 잘 관리될 수 있도록 하는 ‘레버당기기‘를 제시하고 있었다.

최근에 AI와 관련된 신기술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높지만 환경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관심이 적은 편이다. 특히 기후와 관련,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바꾸려는 책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원자력을 대체할 만한 기술이 정말 없는 것일까. 저자가 제시한 것은 ‘수소‘다. 특히 일본정부가 이미 많은 투자를 했으며 실제로 운행하고 있는 자동차고 있다고 한다. 다만 전기 자동차가 그랬던 것처럼 수소를 충전할 수 있는 충전소의 부족과 무엇보다 수소는 석유나 석탄처럼 채굴할 수 있는 연료가 아닌, ‘에너지 운반체‘(288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수소를 자원화 한 이유는 저장이 가능하며, 안전하게 저장 및 운반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다른 재생에너지와 비교 했을 때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기술과 어떤 관련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저자가 제시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여러분이 환경 친화적인 기업 쪽으로 돈을 옮기고 싶어 하는 것은 그저 이 행동이 옳기 때문만은 아니다. (...)
자신의 돈을 투자할 때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고 판단하자. 투자 철회 운동을 출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환경운동가 빌 매키벤은 투자자들을 위해 단순한 경험 법칙 하나를 제시하기도 했다. (...)
˝지구를 파괴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면, 그 파괴로부터 이익을 얻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319쪽

사실 기후위기라던가, 경제적인 해결 방안이라는 용어자체가 친근하거나 엄청나게 즐겁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멸종, 파괴와 같은 극단적인 단어들을 계속 마주한다는 것은 당장 눈앞에 놓인 편리한 에너지와 환경에 반하는 물품을 사용하는 것과 비교하자면 피하고 싶은게 사실이다. 하지만 위의 빌 매키벤의 말처럼 지구를 파괴한다는 것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투자를 포함한 이익을 얻는 것에 무감각해졌다면 분명 지구는 우리에게 더이상 기회도 희망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 희망이 사라진다면 우리가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에서 함께 읽어보고 대안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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