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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 세상에서 제일 작은 서점 울랄라의 나날
우다 도모코 지음, 김민정 옮김 / 효형출판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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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에서 가장 작은 헌책방, 울랄라. 일본어로 2년전에 출간된 책으로 한가지 반가운 사실은 책의 역자가 몇해전 재미있게 읽었던 [엄마의 도쿄]저자라는 사실이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것은 아니지만 엄마와 함께 했던 도쿄의 풍경을 숨김없이 고백하는 듯한 문체가 인상적이었는데 역서에서도 그런 잔잔하면서도 공감가는 분위기를 잘 녹여낸 것 같았다. 제목에 '오키나와에서'라는 부분이 들어간 것처럼 이 책의 주된 내용은 헌책방을 열었다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잘 알지못하는 휴양지가 아닌 '오키나와'그 자체가 갖는 독특한 분위기와 문화를 친근하게 소개해주고 있다. 저자인 우다 도모코씨는 대형 서점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지원해서 오키나와 분점으로 전근을 온 서점직원이었는데 오키나와에서 머물다보니 나름의 매력에 빠져 결국 사표까지 내고 헌책방을 인수하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오키나와에서 서가배열 할 때 부터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지역 특성상 오키나와 현지 가이드북, 오키나와 현산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 위주로 서가를 꾸렸는데 저자도 처음에는 과연 향토색으로 다 채울 수 있을까 의뭉스러웠지만 의외로 현산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로도 충분했다고 한다. 정해진 메뉴얼이 없었기 때문에 현산 출판사 관련자들을 한 사람 한사람 만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오키나와에서 영업중인 헌책방 업자들과도 친분을 쌓을 수 있게 되었고 그런 친분과 소망들이 모여 오키나와로 전근 온 후 1년 반만에 자기만의 헌책방을 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중반까지 읽으면서도 저자이름을 제대로 염두하지 않아 남자분일꺼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종일 서서 책을 나르는 일이 대부분이었다가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이전과는 달리 늘 앉아있어야만 한다는 고충을 이야기 하면서도 시장사람들과 친해지는 법, 헌책방을 사러 오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쌓아가면서 풀어놓은 에피소드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어느 곳보다 소망하는 유토피아처럼 느껴졌다.

한국에서도 영업중인 작은 책방들도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처럼 성인 2명이면 꽉차는 좁은 '울랄라'에서도 음악회를 열기도 하는 등 나름 열심히 꾸려갈 뿐 아니라 오키나와에서는 진분(지혜나 능력)이 있는 여성이라면 장사를 한다는 말을 꺼내면서 열심히 꾸려가겠노라고 다짐하기도 한다. 이웃하고 있는 가쓰오부시 상점과 쯔게모노 상점 등 함께 영업중인 상인들과의 에피소드도 재미있지만 가장 흥미로운 것은 오키나와만이 가지고 있는 특색이라고 볼 수 있다. 오키나와는 단순하게 일본땅이라고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뿐만아니라 패전 후 미국의 소유로 넘어갔던 적도 있어 오키나와만의 특유한 색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현산 출판사가 존재하는 것만봐도 오키나와 출신끼리의 결속력과 향수는 조금 부러울 정도이기도 했다. 부모님이 서로 다른 지역사람이다보니 저자에게는 이렇다할 고향이 없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사람에게는 이제 '오키나와 출신'이란 말을 붙여도 이상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후반부에는 광저우 북페어에 초대받아서 강연도 하고 헌책도 판매하고 온 내용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헌책방을 포함,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상상해보는 그런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달에 한번 잡지에 책과 관련한 컬럼을 기고하기도 하고, 또 이렇게 책도 출판한 우다 도모코씨. 서점에서 10년동안 관련 업무를 해왔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겠지만 읽으면서 느껴졌던 것 책과의 거리를 참 잘 조율하는 사람이라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듯이 어떤 책에 빠지거나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조율하다보니 어떤 책을 마주하더라도 늘 흥미롭고 관심을 둘 수 있는 그런 상태. 일본에서 가장 작은 책방 울랄라를 읽다보니 지나치게 양적으로만 늘어난 내 책장이 못마땅해 덩달아 나도 책장정리를 해버렸다. 헌책을 팔고 다시 새책을 사오는 울랄라 고객들처럼 나도 이제 한 번 읽은 책,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이라면 더는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 우다 도모코씨처럼 적절한 책과의 균형을 이루는 일, 이 책을 통해 그것을 배웠고 관광지로만 유명했던 오키나와의 다른 모습을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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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스트로 리더십 - 위대한 마에스트로는 어떻게 사람을 경영하는가
이타이 탈감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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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저자 이타이 탈감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레너드 번스타인의 애제자다. 나중에 다시 나오겠지만 이타이 탈감은 스승인 레너드 번스타인을 성공적인 리더 중 한명으로 소개하는 등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것만 봐도 훌륭한 리더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된다. 그런면에서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리더십과 관련된 책도 읽어봐야 된다고 생각해왔지만 [마에스트로 리더십]만큼은 직장이나 팀내 리더에게 꼭 선물해주고 싶어졌다. 이전까지의 리더십은 타고나거나 인격적으로 완벽해야 하는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부담을 주었다면 이 책은 오히려 그렇게 느껴졌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마에스트로 리더십은 총 3가지 덕목을 강조한다. 첫 번째는 아이러니 하게 들리겠지만 '무지'다. 팀에서 진행되는 모든 일을 알고 있어야 하며 앞으로 벌어질 상황들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보다는 예측 불가능한 상태를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덕목이 중요한 것이다. 이타이 탈감은 무지를  [무지한 스승]이란 책에서 조제프 자코토가 설명한 다음의 문장으로 이해를 돕는다.

 

무지한 사람은 또 다른 무지한 사람에게 그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

 

말장난 처럼 들리는 저 표현을 풀어 설명한 내용을 좀 더 가져오면 우리 중 누군가 한 가지를 잘 알게 된다면 모르는 것은 백 가지가 넘게 된다고 한다. 더불어 무지와 우둔을 혼동해서도 안된다고 말한다. 쉽게 표현하면 어떤 것을 모를 때 우리는 그것을 알기 위해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이해한대로라면 만약 수학이 약하다면 우리는 수학을 잘하기 위해 공부를 더 할 것이며 내가 몰랐던 그 부분을 친구에게 마찬가지로 알려줄 수 있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더불어 내가 약한 것이 수학이라는 과목일 뿐이기에 나는 그 과목만 무지할 뿐이다라는 내용이다. 이때 스승이 해야 할 역할까지 설명해 주는데 스승은 설사 제자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르쳐주면 안된다고 한다. 다만 제자가 어떻게 무지에서 탈피해가는지 그과정을 지켜봐주고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하므로 '의도적으로 무지해야'한다고 까지 말한다. 두번째 핵심요소는 '간격'이다. 이번에도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다. 저자도 예를 든것처럼 우리는 늘 '간격'을 좁히고 '피해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지하철 승장장 사이에 벌어진 '간격'을 주의하라는 안내방송을 늘 듣고 있으며 후보자가 선거연설 때 했던 공약과 당선 후 시행하지 못하는 그 간격에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타이 탈감이 말하는 간격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재즈연주를 들을 때 우리는 거의 대부분 즉흥적으로 연주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악보가 있지만 무대에 오를 때 마다 연주자의 기분이나 상황에 맞는 변주가 우리를 오히려 더 감동시키고 만족시킨다. 바로 이런 간격속에서 이노베이션, 즉 기대하지 못했던 그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리더의 핵심요소로 간격이 등장하는 까닭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 또한 틀릴지도 모르지만 나의 해석을 더하자면 '다른 생각'이 아닌가 싶다. 기술회사에서 애완견 사료를 생산하는 것, 폭약 제조 덕분에 라디오 인공위성을 개발하는 것, 이런 것들이 모두 한 가지만 생각하고 반드시 예상한 결과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간격에서 뚫고 바라보는 다른 생각이 리더의 자질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 핵심요소는 '으뜸음 찾기'인데 이것은 기존에 리더십 덕목 중 하나인 잘들어주기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지도자에게 으뜸음 듣기의 가장 큰 보람은 그것이 위대한 화자들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청자도 함께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사실 으뜸음 청자가 당신의 말을 들어주면 당신이 말하는 방식도 바뀌게 된다. 당신은 더 이상 당신의 말이나 생각을 청자의 비위를 맞추어주는 어떤 범주에 집어넣으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총 3가지의 핵심요소를 가진 위대한 마에스트로들이 어떻게 경영하는지의 구체적인 내용이 바로 3장에 나온다.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이타이 탈감의 스승인 번스타인도 포함되어 있어 해당 부분을 읽어보면 이타이 탈감이 어떻게 좋은 지휘자, 또 다른 리더가 될 수 있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기도 하다. 그동안 경영자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리더십과 종교인들이 말하는 리더의 자질에서 좋은 해답을 얻지 못했다면 '마에스트로 리더십'을 통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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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노트 - 가장 순수한 음악 거장이 만난 거장 1
앙드레 지드 지음, 임희근 옮김 / 포노(PHONO)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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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노트]는 클래식 음악을 전문적으로 펴내는 출판사 포노의 새 시리즈 '거장이 만난 거장'의 첫 작품이다. <좁은문>으로 잘 알려진 작가 앙드레 지드가 잡지에 기고했던 글로, 그가 사랑하는 '쇼팽'의 특집호에 실렸던 글과 이후에 관련된 글들을 더해져 만든 책이다. 지드는 쇼팽음악의 애호가이기도 하지만 아마츄어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연주를 할 줄 알기에 쇼팽의 음악이 왜 더 좋은지를 말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부제가 '가장 순수한 음악'이라고 붙은 까닭은 음악을 연주가 아닌 악보로 짐작하고 감상하는 아델베르토 신부가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이다.

 

신부님은 내가 잘 듣고 있나 싶은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어 말씀하셨다.

"내가 이런 식으로 갖다 읽는 악보가 어떤 악보일 것 같아요?... 바흐는 절대 아닙니다. 모차르트도 아니고요. 쇼팽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음악 중에 가장 순수한 음악이죠."


지드는 자신이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가장 순수한 음악'이란 표현을 다름아닌 연세 높고 종교계 원로인 아델베르토 신부를 통해 전해 들었고 쇼팽의 음악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부연설명했다. 지드는 슈만도 좋아했었는데 쇼팽 음악에 매료된 이후 잡지에 슈만에 음악이 빠질만 한 정도는 아니라고까지 글을 쓰기도 했다. 물론 이 메모는 삭제되었지만 슈만과 쇼팽을 비교하며 슈만이 시인이라면 쇼팽은 예술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쇼팽을 리스트와도 비교했는데 리스트를 기교파 연주의 달인이라고 말했지만 쇼팽은 기교로 흉내낼 수 없다고 했다.  리스트와는 달리 쇼팽은 늘 즉흥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탐색하고 쫓아가며 연주했다고 말한다.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한 <쇼팽, 그 삶과 음악>의 저자 제러미 니콜러스 역시 지드가 쇼팽의 연주를 표현한 다음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적기도 했다.

 

쇼팽은 제안하고, 가정하고, 넌지시 말을 건네고, 유혹하고, 설득한다. 그가 딱 잘라 말하는 일은 거의 없다.

 

지드는 쇼팽노트에서 쇼팽의 음악을 보들레르에 비유하는 데 '고해성사 하는 것 같은 어조'를 닮았다고 했다. 쇼팽이 조금씩 머뭇거리며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갈 수록 관객은 서서히 쇼팽의 음악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 화려하고 몰아치는 듯한 곡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쇼팽의 음악이라면 단조로우면서도 나즈막한 소리로 우리를 끌어들인다고 표현했다. 사실 이 책은 쇼팽의 음악을 듣고 있거나 혹은 악보를 볼 줄아는 사람들이 보기에 적당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보의 일부를 제시하면서 표현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지드가 말하는 순수함과 고요함을 느끼려면 적어도 그 악보가 들려줄 수 있는 곡조를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어야 그의 표현이 적합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했을 경우 순수하고, 고요하고 침착하다는 지드의 표현을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가 없다. 쇼팽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과 그렇게 느끼는 것은 별개의 문제기 때문이다.


특집호에 실린 기고문인 만큼 '쇼팽 노트'원문의 글은 1장에서 끝난다. 2장에서는 앙드레 지드의 일기가 등장하는 데 그의 일기속에서도 쇼팽이 물론 등장한다. 비단 쇼팽 뿐 아니라 다른 음악가들도 등장하는 데 모든 음악가를 비난하거나 했던 것은 당연 아니다. 앞서 이야기 했던 슈만조차 그에게 자신의 개성을 만들어준 인물들 중 하나로 선택했다. 일기를 쭉 읽다보면 지드가 음악 자체를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손목이 너무 아파 책상에서 일어나 쉬려던 차에 출판사에서 보내준 쇼팽 음반을 확인하고는 책상에 다시 착 달라붙었다고 표현했다. 이런 이야기 외에도 지드가 직접 쇼팽의 곡을 연주한 이야기들도 나오는 등 말 그대로 지드의 일기가 수록되어있고 마지막 3장은 쇼팽 노트와 관련된 단문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지드가 생각하는 쇼팽, 지드의 삶속에 녹아있는 음악과 음악가들 그리고 쇼팽 노트를 바라보는 다른 누군가의 평론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쇼팽의 음악을 책으로 읽어서는 알 수 없다. 이 책도 결국 지드가 듣고 느끼는 쇼팽일 뿐 이다. 쇼팽이 궁금하다면 우선 쇼팽 음반을 구입하고 참고서적으로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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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 중 98명이 틀리는 한글 맞춤법 3 100명 중 98명이 틀리는 한글 맞춤법 3
김남미 지음 / 나무의철학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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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참 위로가 된다. 100명중 98명이 틀리는 한글 맞춤법이라니..... 나만 틀리는 것이 아니었다며 안도해야 할 만한 상황이 아니란 것은 알지만 고백하자면 난 정말 문법을 모르며 살아왔다. 그나마 리뷰를 쓰고 번역공부를 하면서 억지로라도 조금씩 공부해서 이정도가 된 것이지 학창시절 내 문법 성적은 평균 점수를 낮추는 일등공신이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굳이 이런 이야기를 서평 서문에 적는 것은 그렇게 문법을 어려워하고 잘모르는 내가 이 책을 몇 주에 걸쳐서라도 읽을 만큼 내용이 좋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였다. 물론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문법에 자신감이 생겼다거나 더이상 맞춤법 검사프로그램을 돌리지 않을 수준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책의 저자가 독자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전달하는 '맞춤법'을 알아가는 것이 귀찮고 번거롭고 머리아픈 것이 아니라 게임이라면 레벨업을 하는 것처럼 즐겁고 흥미로운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의 존재도 새삼 다르게 느껴질 뿐 아니라 모르는 것이 있으면 열심히 즐거운 마음으로 마치 좋아하는 선생님과 한 마디라도 더 해보기 위해 무작정 질문을 쏟아냈던 언젠가처럼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맞춤법이랑 친해질 수 있는 계기, 바로 그것을 이 책이 갖게 해준 것이다.


고유명사 자체에 나타나는 우리말의 굴곡에 관심은 갖되 일일이 화내지 않는 것. 그것은 스승께 배운 태도입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 그리고 보다 더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갖기 위한 에너지의 축적인 것이지요.  262쪽


우선 저자분이 정말 겸손하다. 여전히 공부중이라고 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서 기쁘다며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독자에게 전달해주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모범생 친구가 알려주는 느낌이다. 한글 맞춤법 중에 내가 가장 어려워 했던 것은 뒤에 어떤 자음이 오느냐에 따라 앞의 받침이 달라지는 규칙이었다. 가령 숟가락은 왜 'ㄷ'이 붙는데 젓가락은 왜 'ㅅ'이 붙는걸까? 같은 듯 보이지만 각각 적용된 규칙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영어도 그렇지만 예외인 것도 있다. 맨 첫 장에 등장하는 '각티슈'의 올바른 표현을 찾아가는 과정을 읽는 순간에도 '갑티슈'가 왜 맞는 표현인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뒤에 어떤 발음의 자음이 오느냐에 따라 앞에 받침이 달라지는 규칙 만큼 신기했던 것은 합성어를 이루는 구성 요소가 둘다 한자일 경우에는 'ㅅ'이 붙는다는 규칙이었다. 아니 이런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도 부끄럽게 이 책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다. 그동안 영어공부한다고 그렇게 열심히 문법책을 들여다보고 외우고 노력해놓고 정작 우리 말과 글을 이렇게 소홀하게 푸대접을 했으니 부끄러워 할 자격도 없는 것 같다. 이런 받침 규칙 외에도 '상식'에 가까운 지식도 알려준다. 세금과 요금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만약 누군가 정확하게 어떻게 다르냐고 물어본다면 세금은 국가에, 요금은 국가가 아닌 곳에 지불하는 것이다라고 밖에는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수도세는 왜 수도료가 아니라 수도세인가 국립국어원에 항의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저자도 감탄할 만큼 우리말을 연구하는 사람들, 설사 그것이 직업이 아님에도 관심을 갖고 항의를 할 줄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참고로 결론만 말하면 수도료가 맞지만 언어가 가진 여러가지 성향 중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서 익숙해진 단어이기 때문에 그 쓰임을 사전에 반영한 것이라고 국어원 측에서 설명했다고 한다. 갑자기 모든 '세와' 료'를 찾아보고 항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새 관뒀다.

반면 이미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 중 많은 사람들이 틀리게 사용하는 단어들이 의외였던 것들도 많았다. 첫 삽화에도 등장하는 '천장'과' 천정' 중에는 어떤 표현이 맞는 표현일까? 정답은 천장인데 천정으로 잘못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고 실제 '천정'이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건축용어 중 천장과 천정을 구분해서 사용하기도 하고 심지어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라는 표현이 바로 그렇다. 틀린 표현이지만 거의 표준어 처럼 사용되는 이런 단어들의 바른 표현도 책에서는 잘 다루고 있었다. 이렇게 올바른 표기에 관한 내용도 있지만 올바른 '발음'에 관한 내용도 수록되어 있다. 단어만 봐도 머리를 아프게 했단 '된소리'. 그리고 겹자음이 어떤 규칙을 가지고 있는지에 관해 알려주는 데 발음은 적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에 솔직히 표기보다 더 틀리게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어쨌든 의미는 통하니까 상대방이 조금 이상하게 발음해도 표준어가 아닌 방언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실제 고향이 지방인 사람들은 발음기호를 적을 때 정확하게 적으면서도 입을 통해 나오는 발음은 전혀 다를 때도 있었다. 저자는 단순하게 규칙만 나열하고 이렇게 해야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잘못된 발음으로 인식된 까닭까지 파헤쳐서 알기 쉽게 전달하는 데 그야말로 교육자 다운 인내심과 다양한 사례, 풍부한 스토리가 담겨져 있다고나 할까? 이 책이 시리즈 3권인데 앞서 출간 된 1권과 2권에는 또 얼마나 유익한 내용이 담겼을지 시리즈 전권을 소장하고 싶은 욕심이 들게 만들었다.  물론 이렇게 좋은 책이라고 해도 결국 읽고서 덮어버리면 의미가 없다. 저자가  마지막까지 강조했던 것은 어떤 표현이 맞는지 틀린지에 집착하여 어렵게 공부하려고 하지말고 모르는 것을 찾아서 알아가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창시절 문법을 처음 배울 때, 교과목 선생님의 실력이 부족하셨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문법책이 좀 더 빨리 세상에 나왔더라면 재미있게 배울 수는 있었을 것 같다. 물론 저자처럼 스스로 재미를 갖는 사람이 있으니 이것도 변명이긴 하지만 말이다.

 

 

저는 여러분이 이 책을 읽으시면서 짜증을 많이 내셨으면 해요. '왜 이런 방식으로 설명할까? 왜 더 복잡한 것 같지? 왜 너무 쉬운 것들을 반복하지? 왜 지난 번의 설명 방식과는 다르지?' 일단 이렇게 짜증을 내신 후 반드시 그 답들을 내 보세요. 그래야 내용의 이면에 숨겨진 의도와 목적이 보인답니다.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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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철학과 자퇴생의 나날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김의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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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를 가리지 않고 그저 술술 읽히는 소설만 읽다보니 문학상을 받은 소설은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거리를 두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신춘문예 스타일'이 숫자로 치면 어른이 되고난 이후 부담스럽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부랑자, 하수도, 쓰레기더미 처럼 직시하지 않고 누군가 덮거나 가려주어 내 눈에 띄지 않게 해주는 것이 고마운 비겁한 어른이 된 까닭이다.  [어느 철학과 자퇴생의 나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퇴', '철학과'라는 키워드가 동시에 제목에 들어가 있는 까닭에 그런 망설임을 무시하고 무작정 읽기를 시도한 책이다.  불편한 현실이 작품속에 그대로 제 모습을 드러낼 줄 알면서도 읽고 싶었다. 자퇴생이라는 말이 낙오처럼 들리는게 아니라 오히려 지금 같은 사회에 철학과를 졸업하는 것이 '저 혼자'사는 사람처럼 이기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철학과를 졸업하거나 재학중인 학생들이 이기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어쨌든 그런 마음으로 읽은 책은 답답함 그 자체 였다. 각오하고 읽었는데도 쉽지 않았다. '나'는 한 때는 아빠였던 엄마와 살아가고 있다.  '악마'라고 불리는 존재 때문에 학과를 자퇴했지만 과연 그가 멀쩡하게 살면서 정상적인 가정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만큼 순수하지 못했다. 인우가 악마로 인해 점점 더 망가져가고, 아빠였던 엄마가 '사회의 편견' 이 주는 상처로 몸과 맘이 상하는 모습을 보면서 씁씁했던 것은 오히려 여전히 '불쾌'하다고 생각하고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여기는 나 자신을 읽는 내내 견뎌내야 했기 때문이다. 인우가 안타깝고, 인우의 엄마가 안타깝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사는 사회에서 그 두 사람이 어떻게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몇 년전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를 박희정의 그림이 담긴 만화로 읽었을 때와, 실제 배우들이 연기하는 '영화'로 봤을 때의 차이를 기억했다. 만화 속, 여자보다 예쁜 남자들의 사랑은 그저 한없이 안타깝고 제발 불행한 결말이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며 읽었다면, 만화와는 조금도 닮지 않는 예쁘지 않은 영화 속 남자배우들의 아주 가벼운 스킨십 장면만 봐도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트렌스젠더의 방송출연을 볼 때 마다 불쾌해하며 욕을한다거나 하진 않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 조차 이미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아닐까. 이야기가 너무 에둘러 펼쳐지긴 하지만 결론은 이거였다. 사회의 편견이, 사회적 약자들이 범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현실고발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책을 읽고 있는 독자인 나 조차도 과연 '편견'없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고 '악마'가 했던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그들이 인간답게, 삶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이토록 꼼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도 또 간만이다. 아, 이 소설의 리뷰를 어떻게 적어야할 것인가. 우선 철학과 자퇴생의 나날이라는 키워드를 착각했다. '철학'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사유하고 고민하는 학문이라고 봤을 때 작품 속 인우의 삶은 '철학'과는 전혀 상관이 없거나 혹은 인우처럼 살거나, 민호처럼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철저하게 속박당해서도 안되지만 반대로 누군가의 자유를 억압하는 민호의 삶도 '인간답지 못한 삶'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민호 때문에 인우의 삶이 호전적이고 평탄하지 못한 것은 맞지만 과연 모든 잘못이 민호에게 있는것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또한 인우의 엄마가 트렌스젠더라는 장치도 딱히 인우의 삶을 비극적으로 결말짓는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란게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타인이 만들어 놓은 감옥에서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 인우가 그저 안타깝고 가엽기만 했을 뿐이다. 인우가 자퇴를 한 것은 단순히 '철학과'학생 신분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가는 '삶'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놓고는 그 책임을 사회뿐 아니라  인우에게도 있다고 비겁하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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