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를 팝니다.
헌 각시를 팝니다
반백 년쯤 함께 살아
단물은 아직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껍데기는 아직 쓸 만해 보이기는 합니다.
키는 5척이 조금 넘고
너무도 가슴이 아프지만 배꼽 찾기가 조금 어려운 편입니다.
대학은 나왔으나 머리는 완전히 깡통입니다.
직장은 없으면서 돈은 나보다 더 씁니다.
낮에는 종일 퍼져 자는 것 같고
밤늦게야 잠 안 자고 세탁기며 청소기 돌립니다.
눈웃음 한 번, 애교스러운 코맹맹이 소리가
이제는 듣기조차 어렵고 눈만 마주치면 돈타령입니다.
매일 출근 때마다 현관에서 뒤통수가 아립니다.
미술이며 영화며 연극이니 하는 것보다
백화점 바겐세일 하는 날짜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연애시절의 애교스러움이며
신혼 초야의 간지럼타는 척하던 내숭도 사라지고
생일기념일도 이제는 독촉기념일일 뿐
툭하면 옆집에 들여온 새 가구며,
아이들 과외비 타령입니다
입만 열었다 하면
애들 친구네 엄마 험담이 우선합니다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모처럼 집에서 좀 쉴라치면 한쪽 구석에서
궁시렁대는 소리 하며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소리가 유별납니다
애들 학교 자모회 같은 데는 안 빠지고
동네 나갈 때는 미시 옷 자랑하지만
집에서는 부엌데기 보릿자루! 옷을 입고
냉장고에는 엊저녁 김치사발이
뒤척임도 없이 그대로입니다.
각시도 헌 각시니 헐값에 드립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안고 같이 넘어야 할 인생고갯길의 동반자임을
모르지 않기에 앞서 한 말 모두 거둘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