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를 팝니다.

헌 각시를 팝니다

반백 년쯤 함께 살아

단물은 아직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껍데기는 아직 쓸 만해 보이기는 합니다.

키는 5척이 조금 넘고

너무도 가슴이 아프지만 배꼽 찾기가 조금 어려운 편입니다.

대학은 나왔으나 머리는 완전히 깡통입니다.

직장은 없으면서 돈은 나보다 더 씁니다.

낮에는 종일 퍼져 자는 것 같고

밤늦게야 잠 안 자고 세탁기며 청소기 돌립니다.

눈웃음 한 번, 애교스러운 코맹맹이 소리가

이제는 듣기조차 어렵고 눈만 마주치면 돈타령입니다.

매일 출근 때마다 현관에서 뒤통수가 아립니다.

미술이며 영화며 연극이니 하는 것보다

백화점 바겐세일 하는 날짜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연애시절의 애교스러움이며

신혼 초야의 간지럼타는 척하던 내숭도 사라지고

생일기념일도 이제는 독촉기념일일 뿐

툭하면 옆집에 들여온 새 가구며,

아이들 과외비 타령입니다

입만 열었다 하면

애들 친구네 엄마 험담이 우선합니다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모처럼 집에서 좀 쉴라치면 한쪽 구석에서

궁시렁대는 소리 하며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소리가 유별납니다

애들 학교 자모회 같은 데는 안 빠지고

동네 나갈 때는 미시 옷 자랑하지만

집에서는 부엌데기 보릿자루! 옷을 입고

냉장고에는 엊저녁 김치사발이

뒤척임도 없이 그대로입니다.

각시도 헌 각시니 헐값에 드립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안고 같이 넘어야 할 인생고갯길의 동반자임을

                                    모르지 않기에 앞서 한 말 모두 거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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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5-04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서방을 팝니다가 더 와닿는..ㅎㅎ

stella.K 2004-05-04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릉댁님 어쩌실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