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리 없겠지만 한가하시더라도

더 이상은 쓸데가 없어진 옛 기억들이 살아나

그때는 그랬는데 라는 생각이 나시더라도

그저 생각에만 그치십시오.

내가 당신과 헤어지고 어떤 시간을 보내야 했는지

그렇게 보내지는 시간이 어떤 느낌들로

내 가슴을 찢어 놓았는지

절대로 알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저 그런 이별후의 시간들이었으리라는

짐작은 하지 마십시오.

그때 보낸 내 시간들은 짐작따위로는

절대로 알 수가 없는 이유입니다.

찬바람 부는 날 혼자 한강을 걷는 것보다

햇볕 쬐는 날 백사장을 걷고 있는 맨발이

더욱 시리다는 걸 짐작이나 해보시겠습니까?

그래서 바닷물이

몰래 흘려 모은 내 눈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꿈에서나 해볼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을 많이 사랑했으니 그만큼 울었겠구나 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한 번도 안 울었습니다.

한 방울 눈물도 눈 밖으로 보낸 적이 없습니다.

울고 난  뒤 눈물을 내 손등으로 훔치면

정말일 것 같아서......

내가 정말로 당신과 헤어졌을 것 같아서......

마음이 아무리 힘들어도

너무 너무 힘들어 흘린 마음의 땀이

넘쳐 눈으로 나오려 할 때

하도 입술을 깨물어 다 터진 입술 때문에

물 한 모금 통증없이 넘겨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을 거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바라지 않았다면 듣는 즉시 거짓말이란 걸 아셨겠지만

그 생각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그것보다 더 바란 것은

그 한가지 소원만 이룰 수 있다면 지금 죽으라 해도

세상에 별 미련이 없을 것 같은 바램...

그 바램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모르시겠지요.

당연히 모르고 계셔야지요.

나조차 당신이 내게 다시 돌아와 주시는 것보다

더 간절하게 원하는 게 있다는 걸 알고 놀랐으니 말입니다.

꼭 한번만...

그 꼭 한번이 찰나로 스쳐지는 한 순간일지라도 좋으니

당신과 제 마음이 바뀔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그렇게 우리 마음이 어떻다는 걸,

사람의 마음은 한번 상처를 받으면 종이처럼

조그만 충격에도 속수무책으로

계속 찢어지게 돼 있다는 걸

알고 살게 해줄 수 있을텐데.

잠을 좀 자보려고,

잠에서 깨어나면 꿈이었을지 모르니까.

그래, 꿈이길 바래. 무리가 있다면 하루 지났으니까.

지난 하루만큼은 덜 아파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거니까.

그거라도 바라면서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어 쓰지만,

안 오는걸.. 잠마저 내 말을 안 듣는 걸 모르시겠지요?

당연히 모르고 사셔야지요.

당신마저 알고 살면 되겠습니까?

나만 알고 살아도 되니까 짐작조차도

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살다가 살다가 불현듯 생각이 나시겠지만

잘 살겠지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모든 걸 툭툭 털고

잘 살고 있을 거야. 따위의 쉬운 짐작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먼지가 아니니까....

털어버린다고 떨어질 먼지가 아니라

나와 얘기를 만들어 왔던 사람이니까,

없었던 일로 하기에는 너무나 있었던 일인

지난 우리 얘기의 주인공이니까

잊고 살 수 없는 이유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살다가 살다가 힘에

겨운 순간이 닥치면 바라겠지요.

잊고 살수 없는 거라면

잃어버리고 살게라도 해달라고......

짐작하지 마세요.

그럴리도 없겠지만 그러지도 마십시오.

당신이 짐작할 수 있을 만큼만 아파하고 살았다면

아예 처음부터 아파하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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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koli 2004-01-11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전 둘이서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음악을 들을 때, 그리고 책을 읽을 때도 헤어지고 아파하는 사랑은 보지도 듣지도 말자 했었어요. 그렇게 쌓인 것들이 행여 이별의 방법으로 들어 날까 싶어서...원태연 시인의 시집은 더할것이 없었는데...오늘 이 시 보면서 그 사람 생각이 더 간절히 나네요. 눈물나게 만드네요...너무 보고 싶어져요...
 

둘째와 둘이 사는 살림이 시작됐다. 내 새끼가 지금 함께 있다는 것이 이토록 큰 위안일줄 몰랐다.  그 애와 둘이 먹을 음식을 이렇게 만들고 밑반찬을 하고 그랬는데 자꾸만 음식이 남아서  버려야 했다.  내가 네 식구분의 음식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이 서늘해진 것은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계절 과일을 사거나 야채를 살 때도 예전의 버릇대로였다.  그 애가 학교로 가고 나면 나 혼자 남았다.  맑고 밝은 가을 햇살이 방안 가득 찼다.  아주 오랜만에 베토벤을 들었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며 지나간 내 청춘의 적막함과 조우하려고 해봤다.  깊고 투명한 공허감 속에 가만히 들어갔다.  자취하는 사람의 살림같은 단순한 집안을 돌아보았다.  저 햇볕이 없었다면 얼마나 우울했을까.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  행복하다.  자꾸만 자신에게 말했다.  그리고 마루를 청소하고 방을 청소하고 자꾸만 음식을 만들고 일기를 썼다.  그러고도 시간이 나면 후다닥 산으로 올라갔다.  산으로 오를 때, 어쩌면 그렇게 분노가 마치 지층처럼 솟구쳐 오르는지. 사람들이 왜 이혼이라는 이별을 졸렬하게 하는지,문득 이해할 것 같았다.  비열하고 야비하고 졸렬하게 하면서 얻어내는건 아마 정을 털어내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나는 비열할 수도 야비할 수도 졸렬할 수도 없었다.  <그 매듭은 누가 풀까>를 교정보고 또 일거리가 생기면 어느 것 하나 거절하지 않고 매달렸고 또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참 이상했다.  돌아보면 이런 단순소박한 삶은 내가 늘 꿈꾸던 것이었다.  행복보다 더 익숙한 것이 쓸쓸함같은 것이었다.  어느 때,행복이 느껴지면 울컥 겁이 나던 거. 직업병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 직업병이 남편을 떠나게 하는 깊은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내 처지를 나보다 더 헤아려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주변 사람들의 나에 대한 진정성이 드러 난다고 하던데 꼭 그랬다.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집을 얻는데 흔쾌히 돈을 빌려주고 집안정리를 도와주고 내 파도치는 감정이 쏟아지는 거품을 견뎌주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내 처지를 알게 된 사람들 외엔 내가 '이혼했다'고 먼저 말하지 못했다. 그토록 내게이혼해야 한다고 말하던 친구들에게조차 말을 못했다.  부끄러워서?  열패감 때문에?   "엄마 정말 이혼했어? "  때론 내 갈팡질팡하는 감정이 지겨워진 딸이 내게 물었다.  몸 둘바를 모르게 부끄러웠다.  " 시간이 필요하단다."   딸보다 더 어리디어려져버린 내가 말했다.  "난 엄마가 당당했으면 좋겠어! "  "그래. 시간이 필요하단다."  주눅든 내가 말했다.  부끄럽고 부끄러웠다.  28년 결혼 생활끝에 내 영혼이 남루하다면 그건 내가 잘못 산 것이 분명했다.  아이들의 지적대로 내 생명이 병든 것이 분명했다........중략.........

"당신은 소설을 못쓰면 죽은 여자 아니냐. 그러니 나가라. "  그가 막판에 한 말 중 하나였다.  그도 깊이 헤아리지 못했을 한 여자의 운명의 분열증을 그가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잡을 수 없는 남편에 대한 집착. 그의 아내에 대한 환멸은 이게 아니었을까.  나는 처녀로 28년 살다가 결혼해서 28년 살았다.  그리고 쉰 여섯 살이됐다. 기운도 많이 늙었고 폐경된 지 오래다.  여자인 나를 남자의 말뚝에 고삐 매려고 아득바득 시달리는 어리석은 인생을 다시는 살지 않으려고 한다.  남자를 벗어 던지자 비로소 내가 사람인 것이 느껴진다.  나를 깊은 병에 들도록 한 분노는 남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학대한 것에 대한 분노라는 걸, 이제 깊이 깨달았다.  큰딸이 미국으로 떠나면서 당부한 말이 있었다.   "누구에게 잘해주려고 애쓰지 말것. 엄마만 생각할 것."   인생도 그저 인생이듯이 이혼도 그저 이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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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에는 세 가지 절차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알았다.  행정적인 절차로의 이혼, 몸의 이혼,마음의 이혼이 그것이었다.  우리는 이혼에 대해 네 식구가 협의해서 전격적으로 사흘만에 끝냈다.  남편은 집에서 가까운 내 집필실에서 잠을 잤다.  그는 나와 단 하루도 부부로서의 관계를 갖는 것을 원치 않았다.  밥은 누가 해주는 것이든 먹을 수 있지만 잠은 '사랑하는 여자'와 자는 것이라는 원칙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그는 그랬다.  내가 해주는 빨래, 내가 해주는 밥,내가 깎아준 과일을 다 먹어도 '부부'는 싫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행정적 절차로서의 이혼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몸도 마음도 이혼이 되지 않았다.  아주 사무적이고 냉정한 그와 달리 자꾸만 그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런 몇 번의 대화로 내가 알게 된 것은 그가 나에게 '넌더리'가 났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더 이상 이 경자라는 소설가 아내와의 넌더리나는 관계를 지속시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나는 점점 더 비굴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너에게 잘했는데 너는 내게 이럴 수 있느냐고 자꾸만 매달리는 형국이었다.  그러면서 4년이나 끌어온 소설 <그 매듭은 누가 풀까>의 마지막 장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미 이혼하기 다섯달 전에 최종 완성본을 만든 그 소설을 보면서 나는 소름이 끼쳤다.  소설의 주인공 '손하영'과 이경자의 생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 정인호가 손하영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장면이 꼭 나의 경험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모든 정직한 사람은 예언가라고 말했다는데 정직한 소설은 그 인물과 그 인생의 인과관계를 들여다보는 '예언'의 제조기일지 모른다.........중략...........

이렇게 몸의 이혼이 진행됐다.  그러나 불면증이 찾아왔다.  아무리 내가 이제부터 소설가로 산다고 스스로에게 마구 주장해도 영혼은 내가 만지작거리는 게 아니었다.  내 의지란 영혼에 붙은 모래알 같은 것일지 몰랐다.  화가 치밀면 먹은 밥이 다 거꾸로 솟구쳤다.  법원 마당에서 이제 신념대로 살겠다고 아주 개운해하던 이경자는 누구였을까.  일부일처제의 억압구조나 가부장제의 여성차별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분석하던 그 여자는 어디 갔을까.  나는 '버림받은 폐경기 여자'에 지나지 않았다.  남편을 위해 쓰던 살림을 두고 온 그런 것들이 선량함이 아니라 비겁함에서 나온 바보짓이라고 사람들이 내게 쓰라린 모욕을 주고 충고했다.  나는 바보다.  바보고 겁쟁이다.  그래서 소설을 쓴다.  내가 속으로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였다.  내 몸이 날이 다르게 허물어지는 걸 지켜보는 딸이 내게 말했다.  엄마. 엄마가 이혼으로 잃는 건 하나도 없어. 분한 것만 빼면.  분노. 그걸 어떻게 달랠까.  분노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혼한 몸에 분노가 집을 짓기 시작하는데 정작 몸의 주인인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위자료 청구소송을 하면 될까.  하지만 법무사에서  현대빌라의 가처분 신청을 무효가 됐다는 법원의 통보가 날아왔다.  내가 공탁금으로 걸어야 할 600만원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벌면 되니까.  어쩌면 남편에게서 그 집을 빼앗고 싶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보다 내가 속물적으로 사는 것이 싫었을지 모른다.  재물을 두고 재판하면서 그와 살아낸 세월을 모두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기 싫은 것이 내 본심이었다.  그것은 이혼을 후회하거나 이혼하기 싫거나 남편이 아깝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내가 아끼고 붙잡으려 했던 것은 남편이었던 한 남자라기보다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지지고 볶으면서 미워하고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지겨워한 세월. 그리고 가정. 그것에 대한 값은 내가 만드는 것이므로. 그리고 내 인생이었으므로.  이사한지 닷새 만에 큰 딸이 미국으로 떠났다.  그날 우리 네 식구는 닷새 만에, 긴장감이나 경계심없이 공항에서 만났다.  그리고 한 시간도 채 안돼 세쪽으로 갈렸다.  남편은 시내에 볼 일이 있다며 혼자 떠났고 나는 둘째와 강북행 공항버스를 탔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큰 애가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를 차례로 포옹하며 "잘 살아" 라고 할 때부터 흐르던 눈물은 집에 와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오래도록 아무 소리 없이 빗물처럼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은 처음인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래도록 그렇게 울었던지.  그날밤, 내몸이 이혼했다는 것을 이해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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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아침 남편이 "너같은 여자와는 더 이상 살 수 없다." "나가라!" 고 외쳤다.  그가 이렇게 험한 말을 하도록 유도한 것은 분명히 나였다.  그러나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한 것은 남편이었다.  오래된 부부의 갈등이라는 것은 양파처럼 무수한 껍질로 되어 있어 어느 것을 보여주며 한 쪽의 과실이라고 하면 결코 진실이 다다를수 없다.  그날 아침의 사건도 결국 아득한 세월 속에서 얽히고 설킨 갈등이 폭발한 것이었다.  그는 말만 그렇게 하지 않고 크리스털 꽃병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은 주먹을 쥐고 아주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그와 2m도 안 되는 거리에 서 있던 나는 얼굴에 멍이 드는 것,마구 두들겨 맞는 것, 크리스털 꽃병에 머리가 깨어지는 것,등등을 상상하면서 극단적인 공포와 내 노예같은 존재의 가련함과 비천함에 허물어졌다.  나는 곧 일을 하러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이웃집에선 남편에게 '야단맞는 쉰여섯 살의 소설가' 인생을 눈치챘을 것이었다.  물론 이와 반대의 장면을 보여주는 때도 있었다.  남편은 내 공포심과 달리 꽃병을 던지지 않고 이내 아이들의 잠자는 방문을 열고 말했다.  "난 이런 여자와 살 수 없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이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했다.  우리는 거의 4반세기 이상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네 식구가 살아왔던 것이다. 그세월동안 내가 도저히 결혼생활을 유지할 자신이 없어졌을 때,그래도 이혼을 하지 못하게 했거나 그 욕구를 잠재워야 했던 것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 이었다. 그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엄마 아빠 같이 살지 마"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큰 딸이 말했다.  예전 같으면 벌써 결혼해 자식을 두엇 두고도 남을 나이의 딸이었다.  그 애가 아주 어릴때 우리는 겁먹고 우는 아이를 모른 채 두고 이혼을 이야기 한 적도 있었다. 엄마 아빠 싸우지 마.  그 때 아이는 이렇게 우리를 말렸다.  그런데 지금 성인이 된 자식은 모두 부모가 이혼하고 따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두사람은 따로 살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게 아이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아이들은 금이 간 엄마와 아빠의 결혼생활이 자신들 때문에 억지로 봉합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날 아침 '폭탄선언'을 하고 집을 나갔던 남편이 사흘 만에 돌아왔다. 그는 이혼하기 위해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도 무서웠다. 그는 단 한 순간도 내게 눈길을 주지 않고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누었다. 얼이 빠진 내가 "엄마는 지금 시간이 필요하다. "고 말하자  그는 "어떤 논의를 거치더라도 결론은 이혼"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집을 나가서 혼자 지낸 사흘 동안 아내라는 여자에 대한 극단적인 '환멸'을 확인하고 돌아온 듯했다. 그런데 왜 나는 그 환멸에서 극단적인 '공포감'을 느껴야 했을까.  이 시간이후 아내로서의 내 행동은 그 '공포'로부터 도망가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사람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읁 모두 비상식적인 폭력들이다.  다음날,둘째가 구청에 가서 이혼서류를 가져왔다. 서류를 쓰기전에 남편에게 물었다.   "마산 아버지한테 말했어?" "말했어." "이혼하래?" "그래.!"  내가 28년을 함께 살면서 두 아이를 낳아 기른 남편에게 아내로서 확인한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모든 사무적인 절차가 끝난 뒤에 그가 한 이말은 거짓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그 거짓도 시간과 함께 흘러서 과거가 되어버린 뒤였다.   "아이들은 내가 데려가서 함께 살 것이고 당신은 아버지니까 아버지로서 언제든지 아이들과 만나." 서류를 쓰기 직전에 내가 말했다. 다음날, 법원데 접수를 했다.  큰 아이가 운전을 하고 어디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법원을 찾아갔다.  접수시간이 늦어질 것 같아 중간에 남편과 내가 내려 택시를 탔다. 우리는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택시기사는 이미 다 눈치 챈 것 같았다. 그는 골목골목을 잘 찾아 아주 날듯이 법원 건물앞에 우리를 내려 놓았다. 낡고 우중충한 법원 건물. 이혼 법정은 뒤켠에 있었다.  나보다 치밀하고 날렵한 그가 건물을 찾아 앞서갔다.  가끔 뒤를 힐끔거려 내가 오고 있는지 살피는 것 같았다.  건물 3층에 있는 접수처.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다. 거의 탈진한 나는 걸음이 잘 걸리지 않았다. 그에게 매달려 함께 올라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날 듯이' 올라갔다.  나는 뒤에서 그 날 듯한 걸음걸이를 바라보면서 그가 바라는 이혼의 의미를 언뜻 느낄 것 같았다.  그 느낌의 내 몫은 '허망'함이었다.  보통 이혼 서류는 오전에 접수하면 오후에 판결이 나는데 북부지원은 협의이혼을 원하는 부부가 너무 많아 오후에 할 수 없고 내일 다시 오라고 시간을 정해줬다.  남편은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떠나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사촌동서가 운영하는 부동산 사무실로 갔다. 이혼보다 더 무서운 '환멸과 공포'.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나는 서둘러 방을 얻기로 했다.  남편도 이혼 즉시 집을 나가주길원했다. 몇 군데 빈집을 돌아본 끝에 좋은 조건의 전셋집을 구했다. 동서는 빈손으로 결혼생활을 청산하는 나를 '바보'라고 잘라 말했다.  어쨌든 현재 살고 있는 집에 가처분 신청을 해두라는 것이었다. 나는 귀찮았다.  그저 하루라도 빨리 내 본래의 인생을 되찾아 소박하되 초라하지 않게 살고 싶었다. 다음날,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법원으로 갔다.판사가 나타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이혼에 대한 제도권의 '시각'을 쓰라리게 느껴야 했다.  법원 직원은 마치 길을 잃은 바보들을 대하는 거의 '버르장머리' 없게 느껴지는 언행으로 우리를 대했다.  인간에 대한 존중감이나 이혼에 이른 어른들의 슬픔이나 고통에 대한 배려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이혼이 이렇게 제도적으로 남루하게 취급된다면  그 반대인 결혼도 그럴 것이다.  결혼과 이혼을 한 몸이기 때문이다.........중략............

*로즈메리 생각:

전 혜린씨가 '이혼은 카인의 상처'라고 평했었죠. 본인 자신도 이혼녀였고 너무나 그 후유증을 잘 알았던 탓에.... 이 경자씨의 이글은 'herstory'에 특별기고한 것을 발췌한 것입니다.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아 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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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11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기서는  한국 드라마가 아주 인기입니다.  얼마전 종영한 '때려'를 비롯한 미니시리즈와 한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라는  사극 ' 대장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요.   예전엔 개당 $1이었는데 이제는 값이 올라서 $5에 4개랍니다.   '때려'는 그럭저럭 잘 보았는데 저는 미국적 사고방식인지 모르나 왜 신 민아씨가 그렇게 아껴주는 좋은 남자 성 시경씨를  버리고 별 볼일 없는 주 진모씨에게 가는지 이해가 안갔어요.   현실에서도 가능한 얘길까요?   사랑은 겨우 18개월만 유효하다는데.....  요즘은 '왕의 여자'와  '난 이혼하지 않는다'  '회전목마'등을 봅니다.   저의 친구들이 '난 이혼하지 않는다'는 잘 안본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나오는 사람들이 별 볼일 없어서'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 드라마가 오히려 인간적인 것 같아요.   나오는 등장인물들도 보통사람들이고 스토리도 평범한게 더 현실감이 있어 보이며  혼외관계는 비일비재한 이야기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여러 부부들의 싸우고 사랑하는 이야기며 범생이과 은행원이 '정신적 바람'이 나는 과정도 재미있었어요.     '왕의 여자'는 왕으로 나오는 임 동진씨는  왕으로서 너무 망가지고(?) 있고 광해군으로 나오는 지성씨는 별로 광해군역엔 안 어울리며 그 부인도 마찬가지로 보였어요.   '회전목마'도 장 서희씨의 독한(?) 캐릭터, 그리고 그 동생인 수애씨의 속 터지는 캐릭터외엔 별반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습니다.   드라마마다 독하고 악한 캐릭터 한 두사람 등장 안하는 드라마가 없고 사람들은 그사람들을 미워하면서 묘하게 카타르시스를 푸는 거 같기도 해요.   저는 드라마를 보면서 가끔 노트도 하는데  드라마 '장희빈'에서는 " 슬픔은 보이지 말아라.  슬픔은 보이면 꺾으려 들고 두려움을 보이면 배신을 당한다. 쉬이 믿지 말고 용서치 말아라"  하는 명언이 나왔었죠.    여러분들도 드라마 보실때 열심히 경청해 보세요.    작가들의 의견이긴 하지만 멋있는 말들이 꽤 나온답니다.   ( 그리고 또 한가지 추가하면 위의 의견들은 단순히 저의 객관적인 의견임을 밝혀 둡니다.    물론 지성적인 여러분들은 다 아시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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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10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omi 2004-01-11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피투게더'는 꼭 보는데 요새 약간 재미가 없어졌어요. 두 남자가 너무 까부는 거 같기도 하고... 김 제동은 왜 인기인지 이해가 안 가요. 세대차일까요?

최수원 2004-01-14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의 여자"는 연기자들이 연기도 잘하고, 재밌다고 하던데, "대장금"에 밀려서 조기종영한다는 말도 있어요. 저는 얼마전에 끝난 "완전한 사랑"을 아주 열심히 봤어요. 지금은 "대장금"을 재밌게 보구 있지요. 그런데 대장금이 원래는 50회까지인데, 연장방송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문제는 이영애가 계획한 50회까지만 출연을 했다고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