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에는 세 가지 절차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알았다.  행정적인 절차로의 이혼, 몸의 이혼,마음의 이혼이 그것이었다.  우리는 이혼에 대해 네 식구가 협의해서 전격적으로 사흘만에 끝냈다.  남편은 집에서 가까운 내 집필실에서 잠을 잤다.  그는 나와 단 하루도 부부로서의 관계를 갖는 것을 원치 않았다.  밥은 누가 해주는 것이든 먹을 수 있지만 잠은 '사랑하는 여자'와 자는 것이라는 원칙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그는 그랬다.  내가 해주는 빨래, 내가 해주는 밥,내가 깎아준 과일을 다 먹어도 '부부'는 싫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행정적 절차로서의 이혼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몸도 마음도 이혼이 되지 않았다.  아주 사무적이고 냉정한 그와 달리 자꾸만 그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런 몇 번의 대화로 내가 알게 된 것은 그가 나에게 '넌더리'가 났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더 이상 이 경자라는 소설가 아내와의 넌더리나는 관계를 지속시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나는 점점 더 비굴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너에게 잘했는데 너는 내게 이럴 수 있느냐고 자꾸만 매달리는 형국이었다.  그러면서 4년이나 끌어온 소설 <그 매듭은 누가 풀까>의 마지막 장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미 이혼하기 다섯달 전에 최종 완성본을 만든 그 소설을 보면서 나는 소름이 끼쳤다.  소설의 주인공 '손하영'과 이경자의 생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 정인호가 손하영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장면이 꼭 나의 경험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모든 정직한 사람은 예언가라고 말했다는데 정직한 소설은 그 인물과 그 인생의 인과관계를 들여다보는 '예언'의 제조기일지 모른다.........중략...........

이렇게 몸의 이혼이 진행됐다.  그러나 불면증이 찾아왔다.  아무리 내가 이제부터 소설가로 산다고 스스로에게 마구 주장해도 영혼은 내가 만지작거리는 게 아니었다.  내 의지란 영혼에 붙은 모래알 같은 것일지 몰랐다.  화가 치밀면 먹은 밥이 다 거꾸로 솟구쳤다.  법원 마당에서 이제 신념대로 살겠다고 아주 개운해하던 이경자는 누구였을까.  일부일처제의 억압구조나 가부장제의 여성차별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분석하던 그 여자는 어디 갔을까.  나는 '버림받은 폐경기 여자'에 지나지 않았다.  남편을 위해 쓰던 살림을 두고 온 그런 것들이 선량함이 아니라 비겁함에서 나온 바보짓이라고 사람들이 내게 쓰라린 모욕을 주고 충고했다.  나는 바보다.  바보고 겁쟁이다.  그래서 소설을 쓴다.  내가 속으로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였다.  내 몸이 날이 다르게 허물어지는 걸 지켜보는 딸이 내게 말했다.  엄마. 엄마가 이혼으로 잃는 건 하나도 없어. 분한 것만 빼면.  분노. 그걸 어떻게 달랠까.  분노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혼한 몸에 분노가 집을 짓기 시작하는데 정작 몸의 주인인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위자료 청구소송을 하면 될까.  하지만 법무사에서  현대빌라의 가처분 신청을 무효가 됐다는 법원의 통보가 날아왔다.  내가 공탁금으로 걸어야 할 600만원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벌면 되니까.  어쩌면 남편에게서 그 집을 빼앗고 싶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보다 내가 속물적으로 사는 것이 싫었을지 모른다.  재물을 두고 재판하면서 그와 살아낸 세월을 모두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기 싫은 것이 내 본심이었다.  그것은 이혼을 후회하거나 이혼하기 싫거나 남편이 아깝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내가 아끼고 붙잡으려 했던 것은 남편이었던 한 남자라기보다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지지고 볶으면서 미워하고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지겨워한 세월. 그리고 가정. 그것에 대한 값은 내가 만드는 것이므로. 그리고 내 인생이었으므로.  이사한지 닷새 만에 큰 딸이 미국으로 떠났다.  그날 우리 네 식구는 닷새 만에, 긴장감이나 경계심없이 공항에서 만났다.  그리고 한 시간도 채 안돼 세쪽으로 갈렸다.  남편은 시내에 볼 일이 있다며 혼자 떠났고 나는 둘째와 강북행 공항버스를 탔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큰 애가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를 차례로 포옹하며 "잘 살아" 라고 할 때부터 흐르던 눈물은 집에 와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오래도록 아무 소리 없이 빗물처럼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은 처음인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래도록 그렇게 울었던지.  그날밤, 내몸이 이혼했다는 것을 이해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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