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기 인정전 서편의 원래 내의원을 폐쇄하고 의원들이 이곳에서 근무하게 하면서 내의원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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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각은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의 앞글자를 따온 것이다. 대학이라는 유교경전에 따르면 성의는 뜻을 순수하게 집중하는 것이요.정심이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건물은 왕이나 왕세자가 이런 자기 훈련을 하던 곳이다. 왕이 학자들과 책을 공부하며 정책을 토론하는 것,곧 경연을 열거나,왕세자가 선생님들과 공부를 하는 것, 곧 서연을 열던 곳으로 자주 쓰였다.그런데 일제시대에는 내의원으로 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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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전은 인정전에서 동쪽으로 바로 옆에 있는 건물로서 왕이 신하들을 만나 국사를 의논하고, 학자 관료들과 유교 경전과 역사책을 공부하기도 하고, 유생들을 불러모아 시험을 보기도 하고, 잔치를 베풀기도 했넌 공식 집무실이었다고 한다.현재의 건물은 1998년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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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정문과 인정전의 용마루에는 구리로 된 꽃 문양이 각각 세 개, 다섯 개씩 박혀 있다. 인정문에는 용마루 뒷면에도 꽃 문양이 있는데 이는 일제가 대한제국의 권위를 짓밟는 데 썼던 것이니 식민사학에서 일본입김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알려진다.  (위) 인정전 용마루의 오얏꽃 문양.(가운데)전주이씨 종친회 건물 이화회관의 오얏꽃 문양. 아래) 희정당 앞 건물 현판의 오얏꽃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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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02년의 인정전 모습(2)일제시기의 인정전.회랑이 총독부로 변형되어있고,사진에는 잘 드러나지 않으나 오얏꽃 문양이 붙었다.(3)1994년.일제시기에 깔았던 잔디를 들어내고 박석을 까는 공사중.(4)현재의 인정전.깊은 맛이 우러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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