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지 수 년이 지나니 이제는 일했던 기억도 가물거린다. 일부러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면도 없지 않다. 그래도 사람은 남는 법. 어쩌다가 한때의 동료를 만나기는 한다. 한번은 옛동료를 만났는데, 나를 아는 누군가가 말하길, 내가 아마도 책방을 하고 있을 거라고 했다고 한다. 후훗. 현직에 있을 때 내가 떠벌리고 다녔다보다. 이 또한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뭐, 그런 추측들을 하고 있다면 고맙다. 책방은 아무나 하나. 그저 책방에 관한 책을 읽는 것으로 만족한다.
















어쩌다가 검색에 걸려들어 책을 구입했다.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읽어도 안 읽어도 그만인 책인데 그래도 끝까지 읽은 건 바로 이 문장 때문.


p.74<맨스필드 파크>의 주인공 페니는 작가 제인 오스틴과 비슷하다. 소설 속 부자 친척 집에 더부살이하는 내용은 바스에서 살던 제인 오스틴의 삶을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바스에 오려면 이 책을 읽고 오길 추천한다.


<맨스필드 파크>를 읽지 않은 나로서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문장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간 사람의 이야기는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바스는 가봤다. 30년도 더 전에. 그러나 책방에는 못가봤으니 어쨌거나 계속 읽어나간다.


소소한 책은 소소한대로 읽을 만하다. 읽다보면 나름 여러가지 생각에 젖는다.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의 소비자가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소비자 마인드는 요구사항이 많다. 서비스 내용을 따지고 가성비를 따진다. 이쯤되면 독자가 되기도 쉽지 않다.















기대가 컸었나.




책은 잘나거나 못나거나 누군가 읽어줘야 한다. 책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예민한 장을 가진 사람에게는 잊지 못할 한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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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하나 때문에, 문장 하나 때문에 책을 구매하고 싶을 때가 있다. 




조현병



무탈하시라고 말하고 싶지만 빈 껍데기 같은 말. 말 대신 책 한권 사드리는 게 낫다.













올여름의 인생 공부


                                  최승자


모두가 바캉스를 떠난 파리에서

나는 묘비처럼 외로웠다.

고양이 한 마리가 발이 푹푹 빠지는 나의

습한 낮잠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사라졌다.

시간이 똑똑 수돗물 새는 소리로

내 잠 속에 떨어져 내렸다.

그러고서 흘러가지 않았다.


엘턴 존은 자신의 예술성이 한물갔음을 입증했고

돈 매클레인은 아예 뽕짝으로 나섰다.

송*식은 더욱 원숙해졌지만

자칫하면 서**처럼 될지도 몰랐고

그건 이제 썩을 일밖에 남지 않은 무르익은 참외라는 뜻일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감추는 법 건너뛰는 법 부정하는 법.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손가락으로 후벼 팔 것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한 아이처럼 웃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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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1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7-22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6-07-21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탈하시라는 말 대신
책 한 권 사드리는 것!
저도 실천하겠습니다^^

nama 2026-07-22 14:06   좋아요 0 | URL
책 읽는 사람이 행동에 나설 때가 이럴 때 아닌가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이라서 뒷북 치는 기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어서 아주 조금만 베껴놓으려고 한다.
















p.38~39

 "어머니와 그 스티븐이라는 사람 - 그들이 정말로 사랑했기 때문에 슬퍼요. 그들은 어렸고, 깊은 사랑에 빠져 있었어요 -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뭐라고 지을지 이야기하고, 그런데 그의 어머니가 두 사람을 갈라놓았고, 두 사람은 결코 서로를 잊지 못했죠. 그래서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해서 살았던 내내 아버지가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는 뭔가를 하면, 그때마다 어머니는 스티븐을 떠올리고는 그가 그 상황에서 얼마나 훌륭했을지 생각했을 거예요. 그리고 스티븐의 아내라는 그 루스라는 여자도 - 아마 같았을 거예요. 그녀가 그를 실망시킬 때마다 그는 예쁘고 발랄했던 사라를 떠올리며 두 사람이 같이하는 삶은 얼마나 멋졌을지 생각했겠죠. 그러니 두 부부는 평생 방에서 이 유령들과 함께 살았던 거예요. 그래서 그것이 슬퍼요. 모두에 대해 슬프지만, 특히 유령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당신 아버지와 루스가 슬퍼요."


p.429

 "아니, 그건 악이 아니야, 래리. 부서진 사람들이지. 부서진 사람이 되는 것과 악이 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 혹시 네가 그걸 모른다면 말이다. 그리고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부서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한 거야. 내가 네게 이걸 말해주는 이유는, 너는 그런 부서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살면서 운이 아주 좋았기 때문이야,"


p.433

 "이 글을 읽었던 게 잊히지 않는데 - 오래전에 읽은 거지만 - 그 글에서 유명한 영화감독이 말했어. 대화보다 더 섹시한 건 없다. 나는 늘 그걸 기억하고 있어. 그리고 너와 루시가 하는 게 그거야 - 대화를 하지. 좋아, 이제 잘 들어, 보비.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마. 그런 대화는 하지 마. 그렇게 하면, 서로 마음을 고백하기 시작하면, 토끼처럼 섹스를 하게 될 테고, 너희의 세상 전체가 무너져내릴 거야. 마거릿이 그것 때문에 죽게 될지도 모르고, 심지어 윌리엄도 죽게 될지 몰라. 그러니 하지 마, 보비. 그럴 만한 가치가 없어. 그러지 마."

 "알고 있어. 하지만 그녀를 원해, 지미. 오, 맙소사."

 "이겨내야 해. 진지하게 하는 말이야. 내 말 새겨들어. 내가 유경험자야. 그리고 너를 아는데, 너는 그 사실을 끌어안고 살 수 없을 거야. 아주 어렵겠지만, 그녀를 계속 사랑하면서 살 수는 있어. 하지만 그녀를 안으면, 그런 너로는 살 수 없을 거야. 너는 밥 버지스야. 나는 너를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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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은 후 동네 산책에 나설 때, 투명한 보안경을 쓰거나 나뭇가지를 꺾어 부채를 만들어 손에 쥔다. 눈에서 알짱대는 눈초파리가 무서워서다. 사람의 눈분비물에 환장하는 눈초파리가 눈에 들어간 적이 있다. 양양 읍내까지는 여기서 자동차로 40여 분 거리인데 안과가 없으니 속초까지 가야 했다. 대기하는 환자는 또 얼마나 많은지. 눈초파리가 눈에 알이라도 까면...상상만 해도 겁이났다.




다래나무를 확실하게 구분하게 되니 온통 보이는 게 다래나무다. 남편이 나뭇가지를 꺾어 부채를 만드는데 옅은 노란색 뭔가가 선녀처럼 나폴거렸다. 쌀알만한 크기로 앙증맞고 신기했다. 이렇게 아름답고 우아한 벌레라니. 검색해보니 갈색날개매미충 또는 미국선녀벌레로 약충(새끼벌레)이 몸에 보호용 왁스(실 같은 물질)를 두르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해충이란다. 농작물에 해로운 벌레로 처분 대상이다. 그저 태어났을 뿐인데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 하늘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볼 때 인간이나 저 벌레나 먼지이긴 마찬가지인데...


수년 전 전등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했었다. 차담 시간에 스님의 말씀을 듣다가 해충 이야기가 나왔다. 한 참가자가 스님에게 물었다. "불교에서 살생을 금지하는데 모기 같은 해충의 생명도 존중해야 합니까?" 스님의 대답은 이랬다. "그건 예외입니다. 해충이잖습니까?" 깊이가 부족한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괜히 눈초파리나 미국선녀벌레한테 미안해지는 산골 저녁 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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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6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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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맛 소설. 카사노바의 추락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역사소설로 읽히는 짜릿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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