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주 그리고 그 너머에 관한 인터뷰'라는 부제가 붙은 책. 당장의 내 앞가림에도 헉헉대는데 우주를 생각한다는 건 어불성설, 감히 엿볼 생각도 없는데 어쩌다 손에 집어들었으니 칼 세이건의 한말씀을 옮겨본다.

 

우리는 한 평범한 태양 주변을 도는 이름 없는 바위와 금속 덩어리 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태양은 4000억 개의 다른 별로 이뤄진 지극히 평범한 은하의 외곽에 놓여 있고, 그 은하는 또 우주를 구성하는 약 1000억 개의 은하 중 하나일 뿐이며, 그 우주는 또 현재의 추측에 따르면 무수히 많은 - 어쩌면 무한히 많은 - 다른 페쇄 우주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중심에 있다는 생각, 우리가 우주에서 조금이라도 중요한 존재라는 생각은 우스꽝스러울 따름입니다. (8쪽)

 

우주생물학의 크나큰 즐거움 중 하나는 그 덕분에 우리가 생물학에 관한 기존 가정들이 얼마나 편협한지를 직시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은 사실상 다들 같습니다. 화학적으로 따지자면 인간은 세균이나 베고니아랑 똑같은 존재입니다.(48)

 

'나'라는 감옥에 갇혀있다는 기분이 들 때, 나의 고통만이 세상의 전부처럼 여겨질 때, 위의 글을 읽으면 위안이 된다. 우주의 크기로 생각해보면 슬퍼하는 것도 기뻐하는 것도 한낱 먼지의 투정에 불과할 뿐이다.

 

2.

 

 

 

 

 

 

 

 

 

 

 

 

 

이 책의 어떤 부분이라고 콕 찍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으면서 위안을 받았다. 옹졸하고 답답한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장자를 이렇게 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은 덤.

 

세계에는 다양한 시스템들이 존재하고, 따라서 수많은 타자들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다양한 시스템들이 서로 교차하고 충돌한다는 것, 다시 말해 우리는 타자와 마주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사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이런 마주침으로부터 발생한다.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던 삶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지점, 다시 말해서 타자와 마주치는 지점에서 우리는 어떤 임계점(critical point)에 놓이게 된다. 임계점이란 화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인데, 어떤 물질이 액체인지 기체인지를 규정할 수 없는 어떤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자신의 생각이 전혀 통용되지 않는 어떤 순간에 우리의 삶이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임계점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하나는 자신의 생각을 타자에게 그대로 관철시키고자 하는 '꿈의 길'이다. 다른 하나는 타자가 속한 시스템의 규칙을 배우면서 새로운 주체로 변형되는 '삶의 길'이다. 여기에서 장자의 선택은 명확하다. 그는 우리에게 '삶의 길'을 따르라고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131)

 

'나'는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보잘것 없는 존재지만, 때때로 마주하는 삶의 위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새로운 주체로 변형'되어야만 한다는 뼈아픈 깨달음이다. 특히 나를 둘러싼 타자와의 관계에서.

 

니체는 우리의 정신이 세 가지 변화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낙타에서 사자로, 그리고 사자에서 최종적으로 아이로. 낙타가 자신의 것이 아닌 짐을 고집스럽게 짊어지고 살아가는 자를 의미한다면, 사자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과감하게 내던져서 마침내 자유를 획득한 자를 상징한다. 그러나 사자는 아직도 부정의 정신 상태에 머물러 있다.

  기존의 모든 가치와 생각에 대해 과감하게 '아니오!'라고 할 수는 있지만, 사자는 아직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면서 '예!'라고 이야기하는 긍정의 정신에 미치진 못하고 있다.바로 여기에 인간의 정신이 최종적으로 사자에서 아이로 변해야만 하는 필요성이 존재한다. (150)

 

'아이'의 모습이란 무엇인가? 애써 쌓은 모래성이 파도에 따라 부서져도 아이는 까르르 웃는다. '자신이 애써 만든 모래성이 속절없이 파괴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건 그 자리에 새로운 모래성을 다시 쌓을 수 있다는 '생성의 가능성'을 아이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 아니던가. 그렇다!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선, 형제들이여,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을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상실했던 자는 이제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 니체, <차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 (149)

 

장자에 나오는 '양행'이란 개념을 설명하면서 나온 구절이다. 읽다보면 '아, 그렇군!'하면서 이해가 되는데 그걸 내 언어로 설명하는 건 어렵다. 이제 겨우 장자를 읽기 시작했으므로. 직접 읽어보는 수밖에.

 

'존재'(existence)의 관념이 그에 대한 반대자들뿐만 아니라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근본적으로 오해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그 어원(existence)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존재의 주요한 의미는 중심이 아니라 '탈중심'에 있다. 즉 '다른 사람들과의 세계' 및 '다른 사물들과의 세계'를 향한 자아의 탈중심성이 바로 그것이다. 탈중심적 존재로서 인간은 외부세계에 '노출'되어 있고 저편까지 넘어서 도달하려는 존재이다. 존재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 밖으로 나아가라. - 정희열, <몸의 정치> (156)

 

밖으로 나아가는 운명인 존재. existence라는 단어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이 책을 읽다보면 글이 하나의 관점을 위해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이르게 된다. 그동안 겁 먹고 손도 대지 못하던 장자의 세계에 비로소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 된다. 정용선의 <장자, 위대한 우화>와 함께 읽으니 반복학습의 효과도 있어 좋다.

 

 

3.

 

 

 

 

 

 

 

 

 

 

 

 

 

 

머리 아플 때 읽으면 좋은, 가독성 최고의 책. 이렇게 유쾌한 책을 읽는 것도 좋다. 꼭 머리 쥐어짜는 책이 최고라고 할 필요는 없으니까. 읽다보면 깨달음을 주는 구절이 많다.

 

나는 문장이 아니라 문단이야말로 글쓰기의 기본 단위라고- 거기서부터 의미의 일관성이 시작되고 낱말들이 비로소 단순한 낱말의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고 - 주장하고 싶다. 글이 생명을 가지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면 문단의 단계가 바로 그것이다. 문단이라는 것은 대단히 놀랍고 융통성이 많은 도구이다. 때로는 낱말 하나로 끝날 수도 있고, 또 때로는 몇 페이지에 걸쳐 길게 이어질 수도 있다. 글을 잘 쓰려면 문단을 잘 이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며면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장단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 (93)

 

 

프랜시스 베이컨은 먼지로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북부 브르타뉴를 그릴 때 작업실의 먼지를 사용했다. 바닥의 먼지를 모두 그러모은 다음 헝겁으로 먼지를 닦아 젖은 물감에 올려놓았다. 어떤 그림에는 물감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바닥의 먼지를 얇게 한 겹으로 발라 회색 옷을 표현하기도 했다. (중략) 그는 수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작업실 청소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먼지를 수집할 때 그는 넋이 나갔을 것이다. 먼지가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집중하고 또 집중했을 것이다. (232~233)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먼지로 그린 그림이 궁금하다.

 

좋은 묘사와 나쁜 묘사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나쁜 묘사는 예쁘기만 할 뿐 정확하지 않고, 좋은 묘사는 선명하지 않지만 정확하다. 나쁜 묘사는 셀카와 같고, 좋은 묘사는 스냅샷과 같다. 나쁜 묘사는 최대한 포즈를 취한 수 어색한 미소로 찍는 사진이고, 좋은 묘사는 친한 친구들과 놀다가 자연스럽게 찍히는 사진이다. (257)

 

소설가란 잡학다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책. 잡다해서 재밌게 읽은 책이다.

 

 

 

4.

 

 

 

 

 

 

 

이 책을 빌리려고 도서관에서 헤맸다. 어린이책 코너에 있었다.

 

그런데 이 책, 왠지 으스스하다.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어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시카고 공립도서관 용지에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적었다.

욕실에 들어가 약장을 열었더니 신경안정제 열네 개가 있었다.

알약을 삼키고, 확실히 하기 위해 손목도 그었다.

 

이 부분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그림책이지만, 난 이 책이 어렵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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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 - 곽재구의 신新 포구기행
곽재구 지음, 최수연 사진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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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단조로워지니 책 읽기가 훨씬 수월하다. 산문집 한 권 읽기도 빠듯하던 시절이 언제였나 싶다. 늘 시인의 삶을 추구하는 시인의 산문집을 읽는 맛이 각별하다. 내겐 이름도 낯선 포구들이 시인의 눈과 글을 통해 가을 낙엽처럼 혹은 눈송이처럼 소복하게 내려 앉는 듯하다. 정신이 맑아진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걸 겸허한 마음으로 깨닫게 된다. 작은 포구를 찾아나서고, 일부러 길을 잃고 낯선 곳을 거닐어보고, 예전 추억이 깃든 곳을 다시 찾아가보는 여행. 여행이라기 보다는 '바람 쐬는' 것 같은 소소하지만 다정한 산책 같은 행위. 이런 일상으로 산다면 외로움이나 을씨년스러움도 발걸음의 동무가 될 터. 나도 시인처럼 낯선 포구를 찾아 허름한 식당에서 해물칼국수 한 그릇 억고 싶어진다.

 

여행 중에 내가 휴대하고 다니는 책은 읽을 책이 아니라 다 읽은 책들일 경우가 많다. 따뜻하게 읽은 책들과 함께 길 위에 서면 든든한 도반과 함게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138쪽)

 

이런 경지를 나는 아직 모른다. 여행 중에는 늘 새로운 책을 챙겼다가 그마저도 읽지 못하고 그냥 되가져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므로.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내게 묻곤 한다. 왜 인도 여행을 하는가? 스무 시간이 넘는 버스 여행, 마흔 시간이 넘는 기차 여행을 하고 처음 만나는 도시에 들어섰을 때 마음속으로 나마스테! 인사를 한다. 당신이 사랑하는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내게도 조금 나눠주시길. 난 이 도시에 처음 들른 외로운 이방인이니까. 나 또한 당신이 사랑할 인간 중의 하나이니까. 이렇게 인사를 하는 동안 마음은 한없이 사랑스러워지고 설레게 된다. 내가 사랑할 세상이 이 지구 어딘가에 꼭 있으리라는 추상이 마음 안에 새겨지는 것이다. (162)

 

이런 구절만 읽어도 '내가 사랑할 세상이 이 지구 어딘가에 꼭' 있으리라는 확신이 드는 것이다.

 

그때서야 오래전 봄날 이 길을 스쳐 지나간 적이 있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음 안이 어둡던 그해 봄길 참 아름다웠지요.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길을 따라 걷다가 마음 안의 어둠이 사라졌습니다. 어두운 인간의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약이 길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지요.(219)

 

 

마지막 문장을 읽고 또 읽는다. 어, 이건 내 생각인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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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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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쓰기가 겁나는 소설인데, 완독 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기도 어려운 소설이다. 단숨에 몰아쳐 읽는 소설이 아니어서 완독 그 자체에도 의미가 있으나, 머지않아 사라져버릴 감흥이나 느낌을 몇 문장으로나마 적어둬야 할 것 같다. 이런 소설은 도저히 안 읽은 체하며 넘어갈 그저 그런 소설이 아니다. 나 이런 책 읽었어, 하며 꼭 홍보를 해야 할 것 같은 책이다. 단 한 권의 책만 읽어야 한다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은 책, 다른 많은 책을 읽지 않아도 배가 불러오는 책. 자꾸 칭찬이 과해진다.

 

줄거리는 그리 중요한 것 같진 않다. 이 책의 묘미는 갈피마다 박혀있는 보석같은 짧고 간결한 문장을 읽는 맛이다. 순간 순간 심호흡을 가다듬게 되는, 읽고 또 읽게 되는, 정곡을 파고드는 정확한 표현들을 대하는 맛이다. 학교 교사의 능력을 교실(수업)장악 여부로 따진다면 소설가의 능력은 소설장악이 될 텐데 이 소설이 바로 그런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독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바쁜 일상에서 한가롭게 읽기는 더욱 어려운 소설이지만, 이 소설을 읽고나니 무언가 세상이 달라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읽기 전과 읽은 후, 내 주변의 공기의 흐름이 달라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밑줄 그은 문장들이다.

 

이 세상엔 두 종류의 삶이 있다. 비리의 말처럼,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신의 삶 그리고 다른 하나의 삶. 문제가 있는 건 이 다른 삶이고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도 바로 이 삶이다. (51쪽)

 

인생이 숭배하는 건 열정과 에너지와 거짓말이다. 그래도 인류가 보고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참을 수 있다. 순교자들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주목 속에 산다. 꽃이 해를 향하듯 우리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67)

 

책은 그녀의 무릎 위에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읽지 않았다.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건 결국 하나의 문단, 하나의 진술이다. 우리의 내부로 파고 들어오는 문장들은 가느다랗다. 수영할 때 민물 가자미가 몸속으로 들어오듯. (238~239)

 

그는 그런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바로 그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세상이 갑자기 더 아름다워 보이고 특별한 방식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지붕과 벽의 모든 디테일이 눈에 들어오고, 비 오기 전 나뭇잎이 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까지 보이는 그런 나이. 세상은 자신을 허락하듯이 몸을 여는 거였다. 이제 남은 인생이 길지 않으니 한번 길고 절실하게 세상을 보라고, 그래서 그동안 잡고 있던 것들을 세상이 놓아주는 것이었다. (291)

 

"맞아요, 하지만 당신과 비리든, 누가 됐든 헤어질 때는 통나무를 자르는 것과 같아요. 그 잘라진 조각이 똑같지 않은 거죠. 둘 중 한 명이 그 중심부를 가져가죠."(351~352)

 

하지만 그녀는 완전히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녀의 삶은 잘 보낸 한 시간 같았다. 그 비결은 그녀가 후회나 자기 연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정화된 자신을 느꼈다. 날들은 바닥나지 않는 채석장에서 캐내는 돌 같았다. 그 안에는 책과 사소한 볼일들, 해변, 그리고 가끔씩 오는 우편물이 있었다. 그녀는 볕에 앉아, 천천히 조심스럽게 우편물들을 읽었다. 마치 해외에서 날아오는 신문을 읽듯. (353)

 

"나는 언제나 중요한 것들은 어떻게든 남을 거라 생각했어." 네드라가 말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더라고." (374)

 

 

신형철의 글을 읽고 이 책을 읽었는데 역시 신형철의 평은 '정확하다'.

 

'...'정확하다'라는 평가는 우리가 소설가에게 바칠 수 있는 최상급의 찬사 중 하나일 것이다. 설터가 어떤 감정을 묘사하면 그것에서 불명확한 것은 별로 남지 않는데, 그럴 때 그는 마치 다른 작가들이 같은 것에 대해 달리 쓸 수 있는 가능성을 영원히 제거해버리려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한때 내가 가장 사랑한다고 믿은 대상이 이제는 내 삶의 무의미를 극명하게 증명하는 것처럼 보일 때의 그 비감을 설터만큼 잘 그려내는 작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매끄러운 번역 덕분에 문장을 잘근잘근 씹는 맛을 느낄 수 있었으니 번역하신 분에게도 감사하는 마음 가득하다. 덕분에 잘 읽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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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11-09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오늘 신간소식에 설터의 산문집이 보여서 간만에 다시 설터의 소설들을 읽어보자 했는데 이런 리뷰 만나니 반가워요. ^^
설터의 소설은 줄거리보다는 분위기로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정말로~

nama 2018-11-09 15:41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분위기와 곱씹는 문장이지요. 신간 소식, 저도 반갑네요.
 
집밥엔 장아찌 - 자연 품은 슬로푸드 발효음식
이선미 지음 / 헬스레터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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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구매함. 장아찌의 세계, 입문용으로 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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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새한서점에서 구입한 책. 2002년에 나온 책으로 알라딘 상품 검색을 하면 개정판만 뜬다. 겨우 찾아서 복사와 붙여넣기 방법으로 사진을 올린다.

 

불교에 대해서 내가 뭘 알겠는가. 교회에 가면 눈 감고 기도하고, 성당에 가면 성호 긋고, 절에 가면, 좀 겸연쩍었는데 이제 겨우 법당에 들어가 삼배 올릴 정도가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책을 읽어도 뭘 안다고, 뭐가 달라졌다고 할 수도 없다. 그저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만나면 한번 옮겨보고 되새겨보고자 할 뿐이다.

 

불공의 참의미

 

 "내가 말하는 것은 부처님 말씀을 중간에서 소개하는 것이지, 내 말이라고 생각하면 큰일납니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승려란 부처님 법을 배워 불공 가르쳐 주는 사람이고, 절은 불공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불공의 대상은 절 밖에 있습니다. 불공 대상은 부처님이 아닙니다. 일체 중생이 다 불공 대상입니다. 승려들이 목탁 치고 부처님 앞에서 신도들 명과 복을 빌어 주는 것이 불공이 아니라, 남을 도와주는 것이 참다운 불공입니다."  (143쪽)

(중략)

  성철스님은 갈멜수도원의 이 같은 기도, 즉 남을 위한 기도를 '기도의 근본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또 먹고 사는 것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결하고, 대신 기도는 전부 남을 위해서 하는 삶을 '참 종교인의 자세'라고 역설했다. (144쪽)

 

'참 종교인의 자세'로 살기 어려워 종교를 멀리하고 있지만, 이런 참 종교인의 자세로 살다가 간 분의 글을 읽는 건 언제 읽어도 성찰의 시간이 되어서 좋다.

 

"절은 남을 위해 해야 하고, 생각이 더 깊은 사람이라면 남을 위해 아침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백팔 배를 하라는 것입니다. 나를 찾아오는 신도들에게는 꼭 새벽에 백팔 배를 하라고 시킵니다. 나도 새벽마다 백팔 배를 합니다."(145)

 

기도는 남을 위해서 해야 한다.....하나만이라도 잘 기억하자.

 

최잔고목(摧殘枯木)...'썩고 부러지고 마른 나무 막대기'

 

"부러지고 썩어 쓸데없는 나무 막대기는 나무꾼도 돌아보지 않는다. 땔나무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불 땔 물건도 못 되는 나무 막대기는 천지간에 어디 한 곳 쓸 곳이 없는, 아주 못쓰는 물건이다. 이러한 물건이 되지 못하면 공부인(수행자)이 되지 못한다. 공부인은 세상에서 아무 쓸 곳이 없는 대낙오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영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희생하고, 세상을 아주 등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버림받는 사람, 어느 곳에서나 멸시 당하는 사람, 살아나가는 길이란 공부하는 길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서뿐 아니라 불법 가운데서도 버림받은 사람, 쓸데없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영원한 자유를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참으로 가혹하고 철저한 기준이다. 쓸모없는 인간이 도인이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스스로 철저하게 쓸모없는 인간이 되지 않고서는 도인이 될 수 없다는 가르침이다.

  세속의 삶과는 다른, 그렇게 가혹하고 철저하게 자신을 포기하는 삶이어야 도道(깨달음), '영원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수좌들의 깨달음을 돕기 위해 스스로 최잔고목이고자 한 셈이다. (115쪽)

 

 

세습교회의 그 씁쓸하고도 말도 되지 않는 세태에서 성철스님의 결기있는 말씀이 참 그리워진다.

한편으론 참 종교인의 모습을 남에게서 바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종교가 따로 있겠는가. 내가 나답게 인간답게 자유롭게 살고자 한다면 그 근본이 종교와 닿아있지 않을까. 남을 탓하기 전에 나부터 철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천하에 가장 용맹스러운 사람은 남에게 질 줄 하는 사람이다. 무슨 일에든지 남에게 지고 밟히고 하는 사람보다 더 높은 사람은 없다. 나를 칭찬하고 숭배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수행을 방해하는 마구니이며 도적이다."(114)

 

 

수행자의 정신을 되새겨보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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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2 12: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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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2 13: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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