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 - 곽재구의 신新 포구기행
곽재구 지음, 최수연 사진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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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단조로워지니 책 읽기가 훨씬 수월하다. 산문집 한 권 읽기도 빠듯하던 시절이 언제였나 싶다. 늘 시인의 삶을 추구하는 시인의 산문집을 읽는 맛이 각별하다. 내겐 이름도 낯선 포구들이 시인의 눈과 글을 통해 가을 낙엽처럼 혹은 눈송이처럼 소복하게 내려 앉는 듯하다. 정신이 맑아진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걸 겸허한 마음으로 깨닫게 된다. 작은 포구를 찾아나서고, 일부러 길을 잃고 낯선 곳을 거닐어보고, 예전 추억이 깃든 곳을 다시 찾아가보는 여행. 여행이라기 보다는 '바람 쐬는' 것 같은 소소하지만 다정한 산책 같은 행위. 이런 일상으로 산다면 외로움이나 을씨년스러움도 발걸음의 동무가 될 터. 나도 시인처럼 낯선 포구를 찾아 허름한 식당에서 해물칼국수 한 그릇 억고 싶어진다.

 

여행 중에 내가 휴대하고 다니는 책은 읽을 책이 아니라 다 읽은 책들일 경우가 많다. 따뜻하게 읽은 책들과 함께 길 위에 서면 든든한 도반과 함게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138쪽)

 

이런 경지를 나는 아직 모른다. 여행 중에는 늘 새로운 책을 챙겼다가 그마저도 읽지 못하고 그냥 되가져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므로.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내게 묻곤 한다. 왜 인도 여행을 하는가? 스무 시간이 넘는 버스 여행, 마흔 시간이 넘는 기차 여행을 하고 처음 만나는 도시에 들어섰을 때 마음속으로 나마스테! 인사를 한다. 당신이 사랑하는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내게도 조금 나눠주시길. 난 이 도시에 처음 들른 외로운 이방인이니까. 나 또한 당신이 사랑할 인간 중의 하나이니까. 이렇게 인사를 하는 동안 마음은 한없이 사랑스러워지고 설레게 된다. 내가 사랑할 세상이 이 지구 어딘가에 꼭 있으리라는 추상이 마음 안에 새겨지는 것이다. (162)

 

이런 구절만 읽어도 '내가 사랑할 세상이 이 지구 어딘가에 꼭' 있으리라는 확신이 드는 것이다.

 

그때서야 오래전 봄날 이 길을 스쳐 지나간 적이 있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음 안이 어둡던 그해 봄길 참 아름다웠지요.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길을 따라 걷다가 마음 안의 어둠이 사라졌습니다. 어두운 인간의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약이 길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지요.(219)

 

 

마지막 문장을 읽고 또 읽는다. 어, 이건 내 생각인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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