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고등학교 배정을 앞두고 여행을 갔었다. 배정학교 발표, 신입생 임시소집 따위 남의 일처럼 무시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는데 다급하게 딸아이의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 경우도 남편만 겨우 로밍을 해서 휴대폰을 대여해 갔기에 가능했다.) 2월 2일까지 등록을 하지 않으면 합격 취소란다. 우리는 2일 늦게나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한창 홍콩에서 Symphony of Light를 신나게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딸아이의 담임 선생님도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주셨고 딸아이와 딸의 친구는 거의 울상이 되었다. 당장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여럿 떠올랐는데, 문제는 내가 그들의 전화번호를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남편 친구도 있었지만 그림이 그리 이쁜 모양이 아닐 터이다.

 

이때 기특하게도 딸아이가 알라딘을 생각해냈다. 알라딘 문자서비스에 전화번호부가 있어서 내가 자주 사용한다는 것을 기억해낸 것이다. 당장 숙소로 돌아와서 (다행히 숙소에는 방마다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가 있었다) 친한 선생한테 부탁하니 그건 일도 아니라며 걱정 말란다. 그렇게해서 무사히 등록금을 낼 수 있었다. 새삼 알라딘이 든든했다.

 

그리고 조금 전. 늘 해왔던대로 친구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내려고 알라딘에 들어와서 문자를 입력하는데 조금은 황당한 창이 뜬다. '일반회원'이라서 문자 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다나. 늘 '플래티넘'을 유지해왔는데 요사이 도서관 활용을 좀 하고 여행을 다니는 등 책 구입과 거리를 두었더니 당장 서비스가 중단된거다. 가차없구나,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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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의 말레이시아는 스콜이라는 소낙비가 간간히 혹은 새벽부터 쏟아져 내리고, 한나절은 더위에 쩔어 절절매며 돌아다닌다. 덥다. 더워서, 습한 더위 때문에 두번 다시 말레이시아에 오고 싶은 생각을 스스로 접게 만든다.

 

더위 속을 8일간 헤매다가 드디어 홍콩에 오니 여긴 초가을 날씨다. 조금은 센티멘탈해지는 기온이다. 여행이라는 게 이런 묘한 기분을 만끽하는 맛이긴한데, 흠, 쇼핑 천국에서 쇼핑에는 젬병인 내가 할 일이 무엇일까.

 

이렇게 한국을 떠나있으면 생각이 단순해지는 게 좋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그런데 이제 서서히 뒤돌아볼 일 아니 앞을 향한 일만 남아있다. 이젠 집으로 돌아갈 때다.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홍콩거리가 너무나 아름답다. 줄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처진 어깨마저 아름답게 보인다.

 

즐거움을 만끽하기에는 사실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다. 미안하다. 죄송스럽다. 내가 여행을 잘하는 것이 그 미안함을 잊지 않는 방법임을 참 염치없이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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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iver (Mass Market Paperback)
로이스 로리 지음 / Dell Laurel-Leaf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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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제시된 소설 배경은 이렇다. 슬픔, 기쁨, 사랑, 분노 등의 보통의 인간 감정이 거세된 동일화된 세계에서 모든 일은 예측 가능하고 갈등이나 다툼도 없이 안정된 삶을 이어나간다. 열한 살이 되면 진로가 결정되어서 그 사회를 이루고 유지해나가는데 필요한 각자의 역할이 주어진다. 애 낳는 사람이 되거나,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거나, 노동자로 살거나 하는데, 만약 더이상 그 사회에서 필요하지 않을 상황이 될 경우에는 추방의식을 거쳐 그 구성원을 추방시켜버린다. 추방(release)이 무엇인지는 후반부에 가서야 정확하게 나오는데 한마디로 죽임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쌍둥이가 태어나면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기는 살리고 그렇지 못한 아기는 약물주사로 간단히 생을 마치게 하는 것이다.

 

감정이 없는 세계에 살다보니 어떠한 죄의식도 없고 심각한 고민 같은 것도 없다. 주어진 스케줄에 따라 주어진 역할에 따라 주는 대로 먹고 주는 대로 입고 때가 되면 간단하게 생을 마치는 것이다. 불필요한 모든 감정은 한 사람-지식 전달자-이 떠맡으면 된다. 그래서 제목의 The Giver는 그 감정을 아랫 세대에게 전달해주는 사람이고, 대를 이어 그 역할을 떠맡는 사람은 The Receiver가 되는 것이다.

 

11살 짜리 주인공 Jonas는 The Receiver로 결정되어 그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다. The Giver로부터 인간의 희노애락을 전수 받는 이야기가 말하자면 이 책의 줄거리이다.

 

우선 재미있다. 그냥 집중하게 되는 책이다. 게다가 친절하게도 알라딘에서 제공되는 단어장이 있어서 골치아프게 일일이 사전을 찾지 않아도 된다. 페이퍼백이라 글씨가 작은 게 약간 고문이었지만 읽다보면 그 고통도 잊어버릴 만큼 재미있다. 딸아이의 의향을 묻고 구입했건만 딸아이는 손도 대지않고 대신 내가 재미있게 읽었다.

 

좋은 것은, 의미있는 것은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야 알 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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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 We Bought a Zoo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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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상영


나는 가족영화라서 좋았는데,10대인 딸은 가족영화는 질색이라나. 잔잔한 감동만으로도 이 영화는 제 값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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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영어이야기
고종석 지음, 이우일 그림 / 마음산책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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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세상사가 그렇듯 책에도 '때'가 있는것 같다. 특히 좋은 책일수록 때를 잘 골라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 내게는 그런 책이다. 갓 대학에 입학하고 첫 여름방학을 맞았을 때 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결과적으로 때가 너무 일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제대로 된 소화는 커녕 멀미만 초래했으니...

 

며칠 전 고종석의 이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했을때 울컥 반가운 감정이 일어났다. (<오래된 새책>이라는 책에 이 책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안 보고는 지나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대학 신입생 시절의 절망감이 떠올랐다. 고종석은 를 무척이나 좋아했다는데 아마도 그분이 <고종석의 ....>를 쓰게 된 것도 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 대한 소개는 일단 이곳 알라딘의 소개글을 인용하면, '일주일의 7일을 각각 한 과씩으로 구성하고, 단어의 어원에서 시작하여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단어들을 소개하면서, 신화, 역사, 문화, 과학, 종교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더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책을 읽고 예전의 절망감과 멀미를 잊을 수 있었으며, 내게는 그 대망과 원망의 대상이었던 를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일었다는 점이다.

단숨에 이 책을 읽었다는 점도 내게는 용기백배의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단 하나. 이 책의 끝부분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그 어지러운 족보가 좀 지나치게 나열되어 있다는 점이 마음에 안 든다. 쓰기에도 괴로웠을 것 같다. 재미있게 쓴 글이 역시 읽기에도 재미있는데 저자의 학구열이 지나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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