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나는 타고난 소질이 있다고 지금까지 믿어왔다. 바느질이면 바느질, 레이스뜨기면 레이스뜨기, 그림이면 그림...내가 서예를 배우지 않은 이유: 서예에 빠져버릴 것 같아서. 이런 자만심 가득한 내가 도예를 하게 되면 아주 잘 하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세 번에 걸쳐 기본적인 도예작업을 해본 결과 얻은 결론은. 도저히 도자기세계에 빠져들 수 없다는 것이다.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소위 예술작품을 보면 도자기에 대한 반감은 더욱 커져가는데, 꼭 공부 못하는 아이들처럼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연속적으로 끌어대는 것이다.

 

추구하고자 하는 세계에 몰입하지 못하여 끝내는 그 세계에서 이탈하는 경험은 이전에도 있었다. 미대 진학을 위해 그림을 그릴 때도 늘 마음이 무겁고 삭막하여 세상과는 동떨어진 낯선 세계를 헤매는 기분이 들곤 했었다. 그렇게 헤매다가 고3이 되어서 공부에 전심전력을 기울일 때의 그 해방감이라니...

 

종교도 그랬다. 강요에 의해 카톨릭으로 개종을 하고 나름 신앙생활을 충실히 한다고 생각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하면서 온갖 이유와 비난과 불평에 사로잡히게 되어 끝내는 그 세계에서도 나와야 했다.

 

그러면 지금은? 난 아직도 공공연히 '학교를 싫어한다.'라고 말하곤 한다. 학교를 좋아해본 적?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학교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냥 다녀야하니까 다녔을 뿐이다. 지금은? 생각을 애써 하지 않을 뿐이다.

 

나이 먹으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다. 내가 원하던 길을 확실히 걸어가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속절없이 머리만 하얗게 세고 있을 뿐, 그저 하얗게 세가는 머리를 보며 애써 젊어지려고 노력하지 않으려 애를 쓸 뿐. 머리마저 까맣게 물들이면 행여 내 처지를 착각할까싶고, 그래서 하얀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인생의 유한성을 순간순간 깨닫곤 한다.

 

도자기 연수 마지막 날인 오늘, 연수생들과 함께 연수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리움미술관에 다녀왔다. 삼성공화국에 살고 있음을 또 한차례 확인한 셈이지만.

 

 

 

흥미가 가는 작가들 이름을 적어왔다. 데이미언 허스트, 박서보, 수보드 굽타.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순식간에 정보가 좌~악 뜬다. 그런데 이들 작품을 알아서 뭐하지? 하는 생각도 든다. 지식을 쌓아서 뭐하지?

 

무언가를 새로 알게 될 때마다 드는 회의. 이걸 알아서 도대체 뭐가 달라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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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8-09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미언 허스트는 며칠 전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 가보니 거기서 하고 있더군요. 사실 데미언 허스트라는 이름을 들으면 천안에 있는 아라리오 갤러리가 함께 떠오르는데 서울보다 천안이 좀 더 가까운데도 아직 못가봤어요. 박서보와 수보드 굽타는 저도 처음 들어봐요. 이름을 보니 수보드 굽타는 인도 사람인가봐요?
저도 예전에 직장 그만두고서 혹시 잉여인간이 되지 않을까 하여 이것 저것 시도해본 것들이 꽤 있는데 지금은 그것들이 아무 소용없더라고 했더니, 옆에서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지금 하고 있는 일들과 알고 보면 다 연결이 되지 않느냐고요. 말을 들어보니 그런 것도 같은게, 전혀 연관 없어보이는 일들인데 전혀 무관하지도 않더군요.
미대 진학을 위해 그림을 배우셨었군요!

nama 2014-08-09 07:22   좋아요 0 | URL
천안에 그런 갤러리가 있군요. 백수시절에 천안 거리를 하릴없이 거닐곤 했었지요.
데미언 허스트는 자극적인 면이 도드라지는데 그게 강한 인상을 남기네요. 수보드 굽타는 인도사람인데 인도인의 일상용품을 작품으로 만들어 다시보기를 권유하고 있어요. 도시락을 커다란 대리석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을 봤는데 나름 의미가 있어보였어요. '행복은 추구하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는 누구의 말처럼 예술 역시 창조하는 게 아니라 발견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사람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을 특히 현대미술이라는 것을, 미술관에서 반나절의 시간을 보내고 내린 결론입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것...이 미친 짓을 글쎄 딱 끊어버릴 수 있을까 싶어요. 또 불평을 해대면서 뭔가를 꼼지락거리고 있을 거예요.

sabina 2014-08-15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무언가를 알고자 하면서 이걸 알아 뭐하지? 란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
돌이켜 생각해보니 얼추 내 나이 오십에 가까워 지면서 인것 같습니다.
나이듦의 반증처럼 ...
살아온 나날의 무상함을 문득 느낄 그 나이 즈음, 앞으로 알아지는 것들에 대한
허무와 실망를 예감하기라도 하듯 말입니다.

하지만 아직 때로는 머릿속에 게획과 바램을 담아보기도 하지요.
언제 실현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nama님은 불평을 하면서라도 연수를 통해 끊임없이 배움을 실현하고
있으니 충실한 시간을 보내는것 같네요.

nama 2014-08-15 09:04   좋아요 0 | URL
사실,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것이 더 힘들답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주변에 훌륭한 분들이 무척 많지요.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여보는 재미가 아주 좋습니다.
그 재미도 일종의 놀이라고나 할까요.
 

 

 

 

 

 

 

 

 

 

 

 

 

 

이 책이 다른 여행기와 다른 점은, 여행영어를 접합 수 있다는 점이다. 배낭여행을 처음 떠나는 사람들에게 유용할 듯하다. 쉬운 영어가 대부분이지만 영어가 두려운 사람에게는 이런 표현도 적재적소에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이 책에 실린 짧은 표현들을 미리 연습하고 가면 도움이 될 터이다. 책을 읽어가며 영어표현을 소리내어 읽다보면 마치 내가 여행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런 여행기도 있다니.... 

 

예를 들어보면,

 

방을 찾고 있는데요.

Excuse me, I am looking for a room.

 

빈방이 있는지 알고 싶어요!

I wanna know if you have vacant room or not.

 

외국여행자와의 대화도 재밌다.

 

나 빈대에 물렸어.

I was bitten by bedbugs.

 

봐봐!

Show me.

 

이건 빈대가 아니라 벼룩이야. 패턴이 달라. 빈대는 한 곳을 집중적으로 물고 벼룩은 선을 형성하면서 물어.

This is not  bedbugs but fleas. Pattern is different. Bedbugs bite concentrate fo one point but fleas along to line.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은, 거칠지만 진한 맛이 나는 여행기이다, 어디까지나. 연수 받으러 다니며 이 책을 전철에서 읽었더니 연수에서 여행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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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근무조로 출근했을 때. 교무실내의 싱크대에는 설거지를 기다리는 5~6개의 컵이 놓여 있었다. 그날이 월요일이었으니까 그 전주의 금요일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학기중이라면 십중팔구 학생들을 시켜 설거지를 시킨다. 봉사활동이라는 미명하에 말이다. 그런데 방학이다보니 만만한 학생은 없고, 그럼 누가 하지?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교무보조원이 하게 되나?

 

두 아이의 엄마인 교무보조원에게 이런 일까지 부탁하는 것은 아니다싶어, '그래, 매일 하는 일, 내가 하지 뭐.'하고 후딱 설거지를 하는데...화가 치솟았다. (나는 화를 잘낸다. 원래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옆에 있던 30대 남교사 들으라고 큰소리로 내 심사를 알렸다.

 

"먹는 사람 따로 있고, 설거지 하는 사람 따로 있나. 이거 이래도 돼?"

 

누가 이 컵을 사용했는가를 속으로 따져보았다. 교장, 교감, 근무조 교사들일까? 아니면 방과후하는 교사들?

 

몇년 전 우리반이 4명의 교사가 근무하는 작은 교무실 청소를 담당하고 있었을 때, 한 여학생이 교무실 청소를 그만두겠다고 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선생님들이 사용한 컵을 씻는 게 역겨워서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집에서조차 하지 않는 설거지를 학교에서 하는 게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 학기도 거의 끝나갈 무렵이라 조금만 더 참으면 봉사활동 10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도저히 더 이상 못참겠다는 것이다. 울며불며 하소연하는데 참 난감했다. 부모님과도 전화통화를 하고 다시 아이도 설득했지만 한번 바뀐 마음은 돌이킬 수 없었다.

 

내가 사용한 컵을 아이들한테 맡기지 않게 된 것은 아마도 이때쯤이었을 것이다. 내가 사용한 컵을 내가 닦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다.

 

며칠 전. 연수 받느라고 피곤해진 몸으로 집에 돌아왔더니 개수대에 라면봉지며 닦지 않은 냄비가 그대로 있었다. 일주일간 방학을 맞은 고3 딸아이가 라면을 끓여 먹은 흔적이었다. 모처럼 집에서 쉬는데 엄마인 나는 연수랍시고 자식 점심도 차려주지 못하는 게 좀 마음이 아프긴 했으나 이 아픔보다 설거지 안 해 놓은 게 더 심금을 때렸다고나 할까. 버럭 화가 났다.

 

공부하러간 딸아이에게 당장 문자를 넣었다. "설거지 안 해 놓으면 밥 안줌."이라고. 오후 7시가 지났기에 저녁밥 준비를 해야 했으나 딸아이가 올 때까지 그냥 기다렸다. 얼마 후 돌아온 딸아이, 30여분을 걸어오느라고 얼굴이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순간 마음이 아팠다. 나도 참 모질기도 하지, 까짓 설거지 얼른하고 밥하면 될 것을 꼭 딸에게 설거지를 시켜야하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딸아이는 하루종일 집에서 쉬고 있었고 나는 판교에서 강남으로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피곤한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자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채 땀도 닦지 못하고 설거지 먼저 하는 딸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긴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딸아이는 설거지를 꼭 해놓는다. 그것도 밥을 전혀 먹지 않은 것처럼.

 

자기가 사용한 그릇 정도는 스스로 닦는 사위를 봐야 할 텐데....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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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ina 2014-08-15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딸도 그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한 학기인가 교무실청소 담당이었죠.)
왜 선생님들은 자신이 사용한 컵을 씼지 않고 모아두었다 학생들을 시키는지 모르겠다고. 남이 사용한 루즈 묻은 컵 씼는 역겨움을 모르시는것 같다고.
(내~참, 사실 우리 학창시절엔 그런 내적갈등 없이 했던 것 같은데 ...)
그래서 제가 그랬던 것 같네요.
그것이 세상이다.
그 보다 더 싫은 일도 해야 할 때가 많은 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다.
그걸 견뎌야 할 상황이라면 견디는 인내를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또 너는 남에게 그런 상황을 만들어주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를 배우라고.


nama 2014-08-16 14:04   좋아요 0 | URL
우리 때는 겨울방학 숙제로 솔방울을 한 자루씩 가져가는 게 있었는데, 그걸 교무실 난로의 땔감으로 사용하면서도 막상 우리가 공부하는 교실에는 난로조차 없었지요. 그래도 감히 그 부당함에 대해서 입 한번 벙긋하지 않았지요. 그 시절엔 선생은 당당했고 학생은 어리석었지요.

sabina 2014-08-15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런데, 참 착한 딸을 뒀네요. ^^

nama 2014-08-16 13:59   좋아요 0 | URL
착하긴해요. 엄마의 말을 거스를 생각을 안하거든요. 라면으로 끼니 때우는 것 빼고요.
 

모처럼 도서관에 갔다가 여행기만 읽고 왔다. 눈길을 확 잡아끄는 책을 도저히 무심하게 안 본척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

'나의 종교는 여행입니다.'

'국경을 넘는 건 사고의 경계를 넓히는 작은 퍼포먼스다.'

 

이런 구절을 발견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이건 내가 먼저 써야 할 표현인데...

 

도서관 창밖으로 보이는 작은 숲이 오늘따라 자작나무숲으로 보이고, 푸른 하늘은 저 멀리 히말라야의 라다크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래 이런 날은 이런 여행기가 제격이다. 약간의 한숨과 더불어.

 

p. 106...태초의 인류가 식량을 찾아 유랑한 것처럼, 여행은 영혼의 식량을 찾는 문화적 유랑이다. 숙련된 여행자일수록 대단한 것들을 구경하려고 욕심내지 않는다. 유랑하며 만나는 풍경에 마음을 주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만드는 우연한 시간을 사랑한다. 여행은 정신의 유목이다.

 

p. 185...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어느 나라가 가장 좋았느냐는 질문을 하면 으레 파키스탄과 이란이 등장했다. 다음으로는 시리아, 예멘, 리비아 순이었다....여행자들이 손꼽는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죄다 이슬람 국가라는 것이다.....가본 사람들은 안다. 이슬람 국가들은 순박한 천사들이 가득한 곳이라는 것을.

 

이런...쯧... 파키스탄, 이란, 시리아, 예멘, 리비아.....모두 가보지 못한 나라들이다. 다시 한숨이 나온다.

 

 

 

 

 

 

 

 

 

 

 

 

 

 

친구가 준 이 책은 진도가 안 나간다. 그간 인도여행기를 너무 많이 읽은 나는 이제 아주 까탈스러운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이 책의 구성은 용모단정한 모범생을 연상시킨다. 마치 여행기를 쓰기 위해서 여행을 한 것 같은 정형화된 구조 때문에 현장감이 몹시 떨어진다.

 

여행은 '도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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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보다 짧아진 방학, 연수 받느라고 바쁘기만 하다.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내 스스로 내 목을 죄고 있다. 여행 못가는 상황과 심정을 애써 연수로 달래는 중이다. 뭐라든 해야 고3 학부모의 굴레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고3 학부모, 참 재미없고 고통스럽고 화가 나는 경험이다. 

 

온라인으로 15시간짜리 강신주의 철학강의를 들었다. 벌써부터 가물거리지만 그래도 몇몇 철학자들 이름이 여운을 남긴다. 왕충, 이탁오. 비트겐슈타인, 들뢰즈.

 

KOIKA 연수는 내일이면 끝난다. 성남까지는 멀다. 갈 때는 남편이 데려다주고( 남편은 또 무슨 죄!) 올 때는 판교에서 전철로 강남역까지, 다시 강남역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허위허위 돌아온다. 국제개발협력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공부하고 있다. 해외봉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큰 도움이 된다.

 

다음 주엔 도자기 연수가 잡혀있다. 그런데 손가락, 팔목이 아프다. 어제까지는 오른쪽 어깨죽지가 아프더니 오늘은 갑자기 왼쪽 손목이 아파온다. 통증이 온몸을 순회중이다.

 

아직 밝히기는 그렇지만 지금 나는 내 몸 가지고 건강실헝을 하고 있다. 책도 읽고 의사도 만나고 약도 복용중이고, 한마디로 바쁘다는 얘기.

 

내 삶의 현장을 이곳이 아닌 그곳, 저 여행지에 갖다 놓고 실컷 걸으며 촛점없는 눈빛을 한없이 발산할 수 있다면 이 모든 실험과 시행착오와 탐구는 깨끗이 내려놓을 수 있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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