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차메'라는 단어도 눈에 들어왔다. 어렸을 때는 '참외'라는 표준어가 있는 줄 몰랐었다. 어른들은 '참외'를 '채미'로, '무'를 '무수'로, 부침개를 '누루미'로, '가위'를 '가세'로 불렀다.

 

어느 곳의 특산물이 유명하다고해서 일부러 그 상품을 찾는 일 따위는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시절이 시절인지라 '성주'가 눈에 들어왔다. '채미'를 연상시키는 '차메'도 눈에 들어왔다.

 

검색해보니 '당차메'라는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2004년도인 것 같다. 대강 살펴본 바로 그렇다. 그렇다면 10년 넘게 걸려서 가꾸어 온 '애틋한' 참외임에 틀림없다. 맛은, 검증된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주를 방문한 황교안 총리에게 분노한 성주 주민들이 달걀을 던진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인터넷을 보니 성주참외는 벌써부터 '사드 참외', '전자파 참외'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정부는 성주를 망하게 할 생각이냐."

"당신이 와서 살아라."

"우리는 개돼지고 너희만 국민이냐."

 

'자식농사'라는 말 속에는 농사 역시 자식을 키우는 일과 같다는 의미가 들어있다고 본다. '당차메'는 소비자에게는 한낱 일개의 상품 브랜드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가꾸고 일구어온 사람들에게는 자식과도 같은 것이다.

 

무심히 먹는 참외 하나가 그냥 참외가 아니어서 참외 하나를 먹는데도 의미를 꼽씹어야 하는 사실. 사람으로 살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사람임을 부르짖어야 하는 것도 참혹한 노릇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를 끊임없이 물어야 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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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반납하러 가는 길

 

문을 나서며 읽고

복도를 걸어가며 읽고

계단을 내려가며 읽는다.

 

도서관 도착

문을 밀며 들어가면서도.... 읽는다.

 

누군가: 그 책 그렇게 재밌어요?

나: 그게 아니라....빌려놓고 내내 못 읽고 있다가 지금 읽고 있어요.

 

 

 

나는 한 학기 내내 조퇴 한번 하지 못했다. 학교 후문 앞 길건너에 있는 은행에 잠깐 볼 일이 있어도 꼬박 '외출'을 달고 다녀왔다. 업무 시간에 백화점에 간다? 7시간 동안 이유없이 자리를 비운다? 문제의 와중에 고향에서 휴양한다? ....공무를 수행하느라 책 한 줄 읽을 틈도 없는데...그저 꿀꿀 불평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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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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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극, 무해하면서 우아하고 부드러운 무라카미 하루키식 표준 - 가독성 좋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는 자기만족을 주는 글-이 잘 드러나는 여행기. 읽기 편해서 오히려 불편하고, 세련되어서 오히려 식상해지는 느낌. 잘 읽긴 했는데 허망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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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빌려놓고는 반납 날짜가 다가와서 다급하게 몇 쪽 읽었다. 그 몇 쪽의 독서에서 얻은 이 책의 분위기는....독설 같은 역설, 허무와 냉소, 장식을 제거한 날 것 그대로, 비웃음 담긴 통찰. 이해 받고 싶으면서도 이해를 거부하는 마음, 우수와 조롱이 섞인 혜안.

 

재밌다는 일반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재밌는 책이다. ㅎㅎ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꼬인 표현이 나도 모르게 절로 나온다는 사실.

 

예를 들면,

 

466 사람은 자기 얼굴을 볼 수 있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 더 불길한 일은 없다. 인간이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고, 자신의 눈을 들여다볼 수 없는 건 자연이 내린 선물이다.

   오직 강물이나 연못을 통해 인간은 사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인간이 취해야 하는 자세는 상징적이다. 자신을 보는 굴욕을 행하기 위해, 인간은 허리를 굽히고 몸을 숙여야 한다.

  거울을 만든 사람은 인간의 영혼에 독을 풀었다. 

 

470 말하는 것은 타인에게 과도한 관심을 선사하는 일이다. 물고기와 오스카 와일드는, 입을 벌렸다 하면 죽음으로 직행하게 된다....

 

237 타인을 지배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타인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우두머리는 종속된 존재다.

 

236 아무것에도 굴복하지 않기. 어떤 인간에게도, 어떤 사랑에게도, 어떤 이념에게도. 항상 거리를 두고 독립을 유지한다. 설사 존재한다고 해도 진리를 믿지 않으며, 진리의 유용함도 믿지 않는다. 내 생각에 이것이야말로, 생각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을 위한 정신적이고 내적인 삶의 올바른 상태다. 어딘가에 속한다는 것은 진부함을 의미한다. 믿음, 이상, 여인, 직업, 이것들은 전부 감옥과 사슬을 의미한다. 존재란 자유롭게 있는 것을 의미한다.

 

21  신들의 존재 여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그들의 노예다.

 

 

병원에 가야 할 시간이다. 아픈 것을 치료하는 것보다 이 책을 읽는 게 더 적절한 치료가 될 듯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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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 여럿 있다는 건 행복이다. 이 동네 저 동네에 흩어져 있는 친구같다. 김연수의 책을 계속 찾아본다.

 

 

 

 

 

 

 

 

 

 

 

 

 

 

 

'시를 읽는 즐거움은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한다. 하루 중 얼마간을 그런 시간으로 할애하면 내 인생은 약간 고귀해진다.'  <책을 내면서>에서 김연수가 쓴 글이다. '쓸모'를 따지지 않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늘 '잘'....하려고 노력하고, 애들한테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고, 쓸모 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하고, 쓸모 없는 건 버리려고 하고. 이렇게 '쓸모'가 삶의 기준점이 되어버린 지도 오래된 것 같다. 

 

시집은 되도록 사야지, 하면서 빌려 읽는 모순. 김연수가 읽어주는 거니까 이 모순을 용서하기로 한다. 이 책에 실린 시보다 김연수의 짧막한 해설 아닌 넋두리가 더 재밌다. 사실 시 읽기는 어렵다.

 

베껴본다.

 

 

사랑은 산책자

                          이병률

 

마음이 마음을 흠모하는 것

줄 서는 것 떠드는 것

시간이 시간을 핥는 것

 

서서히 차오르는 것

그러고도 모른 체하는 것

소멸하는 것으로 존재하는 것

 

그러니까 뼈를, 그것도 목뼈를 살살 분질러뜨리는 것

서서히 떨어지는 속도를 보이는 것

 

새를 참견하는 것

주책없이 경치에 빠지는 것

장막 하나를 찟어 지독하게 덮어버리는 것

견딜 수 없이 허우적대는 것이 스스로의 요구인 것

 

의욕하자니 힘이 되는 것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방향을 얼버무리는 것

 

모퉁이를 돌기 위해 짐을 꾸리거나

주변을 무겁게 하지 않는 것

주소를 버리고 눈을 감는 것

 

사랑은 산책하듯 스미는 자,

산책으로 젖는 자

 

 

생강나무

                문성해

 

생강나무꽃은 꼭 산수유꽃처럼 생겼다

무슨 긴한 것을 나누듯

작고 노란 꽃잎들이 에둘러 앉은 모양새가 꼭 같다

 

생강나무가 산수유가 아님은 나뭇가지를 분질러보면 안다

부러진 부위에서 싸하게 번지는 생강 내음

가지를 분지르면 노란 애기똥이 묻어나오는 애기똥풀이란 꽃도 있다

 

이 고요한 식물의 세계에도

얼굴 하나만 가지고 제 이름값을 하는 연예인 같은 꽃들이 있는가 하면

제 가지를 부러뜨려야만 저를 드러낼 수 있는 자해공갈단 같은 꽃들이 있다.

 

 

'자해공갈단 같은 꽃'....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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