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 여럿 있다는 건 행복이다. 이 동네 저 동네에 흩어져 있는 친구같다. 김연수의 책을 계속 찾아본다.

 

 

 

 

 

 

 

 

 

 

 

 

 

 

 

'시를 읽는 즐거움은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한다. 하루 중 얼마간을 그런 시간으로 할애하면 내 인생은 약간 고귀해진다.'  <책을 내면서>에서 김연수가 쓴 글이다. '쓸모'를 따지지 않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늘 '잘'....하려고 노력하고, 애들한테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고, 쓸모 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하고, 쓸모 없는 건 버리려고 하고. 이렇게 '쓸모'가 삶의 기준점이 되어버린 지도 오래된 것 같다. 

 

시집은 되도록 사야지, 하면서 빌려 읽는 모순. 김연수가 읽어주는 거니까 이 모순을 용서하기로 한다. 이 책에 실린 시보다 김연수의 짧막한 해설 아닌 넋두리가 더 재밌다. 사실 시 읽기는 어렵다.

 

베껴본다.

 

 

사랑은 산책자

                          이병률

 

마음이 마음을 흠모하는 것

줄 서는 것 떠드는 것

시간이 시간을 핥는 것

 

서서히 차오르는 것

그러고도 모른 체하는 것

소멸하는 것으로 존재하는 것

 

그러니까 뼈를, 그것도 목뼈를 살살 분질러뜨리는 것

서서히 떨어지는 속도를 보이는 것

 

새를 참견하는 것

주책없이 경치에 빠지는 것

장막 하나를 찟어 지독하게 덮어버리는 것

견딜 수 없이 허우적대는 것이 스스로의 요구인 것

 

의욕하자니 힘이 되는 것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방향을 얼버무리는 것

 

모퉁이를 돌기 위해 짐을 꾸리거나

주변을 무겁게 하지 않는 것

주소를 버리고 눈을 감는 것

 

사랑은 산책하듯 스미는 자,

산책으로 젖는 자

 

 

생강나무

                문성해

 

생강나무꽃은 꼭 산수유꽃처럼 생겼다

무슨 긴한 것을 나누듯

작고 노란 꽃잎들이 에둘러 앉은 모양새가 꼭 같다

 

생강나무가 산수유가 아님은 나뭇가지를 분질러보면 안다

부러진 부위에서 싸하게 번지는 생강 내음

가지를 분지르면 노란 애기똥이 묻어나오는 애기똥풀이란 꽃도 있다

 

이 고요한 식물의 세계에도

얼굴 하나만 가지고 제 이름값을 하는 연예인 같은 꽃들이 있는가 하면

제 가지를 부러뜨려야만 저를 드러낼 수 있는 자해공갈단 같은 꽃들이 있다.

 

 

'자해공갈단 같은 꽃'....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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