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든, 머물든 -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특별한 은퇴 이야기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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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직업으로서의) 일을 해 온 시간 보다 앞으로 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에 접어들었다, 어느 새. 언젠가는 은퇴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될 터. 다만 조만간이 아니라는 사실에 숙제를 미루는 심정일 뿐,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문제이리라. 

<나는 걷는다>의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이 책은 그래서 한구절 한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책이 자기계발류의 책이었다면 이런 감동은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지금 이 리뷰를 길게 쓸 수 없는 두 가지 이유(변명)부터. 

두어 시간 눈밭을 거닐고 왔더니 몸이 피곤하다. (피곤으로 인해 시력은 형편없이 바닥을 드러낸다. 지독한 난시다.) 은퇴 후에 한꺼번에 걷는 일은 나중 일이고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매일매일 한 시간을 걷는다는 일상의 목표를 지키기 위해서는 나름의 결단이 필요하다. 사실은 은퇴 보다 더 중요한 생활의 기술일 터.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밑줄 그을 부분이 잔뜩 나와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곤 했다. '흠, 그래그래 맞는 말이야. 리뷰 쓸 때 이 부분은 꼭 인용해야지.' 짐짓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뒷 장을 덮기 전에 눈에 들어온 다음 글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이 책에 실린 글은 효형출판의 허락 없이 옮겨 쓸 수 없습니다." 왜 있잖은가. 게으른 학생일수록 이유 같지 않은 이유나 터무니 없는 핑계에 목매달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다는 것 말이다. 

은퇴 후에는 나무를 심겠노라는 사람이 있어서, 그 꿈 많은 사람을 위해 다음 구절은, 그래도, 옮겨본다. 

   
 

 계획이 없는 사람은 이미 죽은 것이다. 비록 그가 모든 계획을 실현하지는 못할지라도 내가 심은 떡갈나무가 탁자로 만들어질 만큼 충분히 자라려면 300년은 기다려야 한다. 아마도 나는 그 일을 내 손자와 손녀에게, 또 그들의 아이들에게 맡겨야 할 것이다. 다른 계획들로 말하자면, 그것들이 빛을 보느냐 못 보느냐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다행히도 하루하루가 너무 짧다고 생각하며 내가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책이다. 픽션이 아니기에 더욱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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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편력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 지식여행자 8
요네하라 마리 지음, 조영렬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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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치 않은 성장 배경을 가진 저자의 수필집이라고 해야겠다. 프라하에서 초등학교를 나오고 대학에서는 러시아어문학을 전공하고 러시아어동시통역사로 일한, 흔치 않은 경력을 가진 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주 내용은 통역사로 일하면서 겪은 얘기라든가, 러시아 문화에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들을 정감있게 풀어 놓았다.  찻집에서 어울려 이야기하면서 소곤소곤 미소를 머금어가며 듣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런 책은 원서로 읽는 맛이 훨씬 좋을 것 같다. 원문의 살아있는 듯한 생기가 궁금하다. 누군가의 얘기를 한차례 건너뛰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듯한 답답함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이런 필자가 없을까, 하는 아쉬움도 생긴다. 

알라딘의 광고를 보고 구입한 이 책은 사실 약간 실망스럽다. 내 주위에는 나를 도서관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나와 그들을 구분하는 선은, 나는 내가 읽을 책을 자주 취미 삼아 구입하는데 반해 그들은 내가 읽은 책을 빌려 읽는다는 것이다. 진짜 좋은 책이라 여기는 책은 두 번 세 번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가지만 대부분의 책은 내 옆 사람에게서 끊어지고 만다. 그러면 이 책은? 내 손에서 끝나버릴 책일 것 같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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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기
현태준. 이우일 지음 / 시공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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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들의 여행기이다. 역시 서재 한 구석에서 오랫동안 살짝(?) 무시당했다가 모처럼 마음 먹고 읽게 되었다, 기 보다는 들여다 보게 되었다. 자잘한 글씨가 잘 안보여서 눈을 부릅뜨거나 안경을 쓰고 들여다 보아야 했으니 말이다. 

이 책을 한 구석에 모셔놨던 이유는, 소위 내 취향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전혀 진지해보이지 않는 투의 서술과 장난기 다분해 보이는 삽화들, 막 찍은 듯한 사진들에 대한 첫인상이 그리 달갑게 들어오지 않았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만화책을 꼽는 데는 열 손가락도 남아 돌기에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나를대로의 색깔이 독특한 책이다. 장난감과 만화, 중고품 쇼핑 같은 소재를 다루기에는, 더군다나 일본의 대중 문화를 다루기에는 이 책의 저자들의 방법이 너무나 시의 적절하다고나할까. 이 쪽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재미있을 것이다. 도쿄에 수십 번을 가더라도 이 쪽 문화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사람이라도 이 책은 그래도 참고 사항쯤은 될 것 같다. 세상이란 참으로 다양하고 취미도 제각각이며 내가 아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니까. 

p.186...취미의 종류가 많아지면 그만큼 취미전문 가게가 많이 생겨날 테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게 된다는 점이다. 국민들의 취미가 열 개 있는 나라와 백 개 있는 나라를 비교해 보면, 당연히 백 개 있는 나라가 가게의 종류도 백 개가 더 많고 그만큼 일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그러므로 여러 가지 취미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일수록 잘 살게 된다는 말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끝까지 파헤치는 모습은 아름답다. 

p. 85 길의 인상을 보려면 먼저 도로와 건물을 보고 간판을 보자.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체를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당신도 길의 인상을 볼 수 있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여행자가 길의 인상에 심취하면 더 이상 집을 그리워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영원히 길을 걷게 된다. 그러니 너무 빠져들지 말자. 슬쩍 보고 가슴속에 담아두자. 

절대로 영원히 길을 걷지는 않을 것 같은 두 성인 남자의 장난감 탐닉기,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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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박물관까지 - 과학사가 이종찬의 유럽·일본 자연사박물관, 식물원 탐방기
이종찬 지음 / 해나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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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산림청에서 닷새 간 연수를 받을 때였다. "런던에 갔다오신 분 손들어 보세요." 여기저기에서 쭈삣쭈삣 손을 들어올린다. "그러면 런던에서 큐 식물원 가보신 분 손들어 보세요." 물론 아무도 없었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런던이라면 두 번 갔다왔고 약 한 달에 걸쳐 영국 일주도 해봤으니 좀 안다고 생각했었다. 알긴 뭘.... 

닷새 간의 산림청 연수를 통해 접해본 강의는 그간 내가 들어본 대학 강의나 온갖 직무연수(주로 교사의 전공 교과와 관련된 교과 연수) 중에서 제일 즐겁고 유익한 강의였다. 문과로 살아왔던 나에게 나무와 식물 분야인 이과 강의는 경이롭기까지했다. 숨 죽인 채 푹 빠져 들었던 이 연수는 그러나 그것 뿐이었다. 되지도 않는 영어 단어 대신 나무나 풀 이름을 외웠더라면 내 인생의 방향이 달라졌을텐데, 하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원망만 남았을 뿐이었다. 

이 책 <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박물관까지>를 읽는 동안 나는 몇년 전의 산림청 연수 때처럼 숨을 죽여가며, 때론 깊은 한숨을 쉬어가며, 때론 환희에 넘치는 즐거운 순간 순간을 보냈다. 별 깊이도 없는 문과 출신인 내게 이 책에 소개된 뭇 과학자들은 생소함 그 자체였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고할까.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는 경이롭기까지했다. 익숙한 세계에 대한 낯선 해석도 도발적인 깨달음을 주었다. 익히 알고 있는 화가의 그림도 이과형 지식인이 보는 각도로 보면 새롭게 다가왔다. 

한마디로 이 책은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열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책이었다. 일단 완독을 끝냈지만 머잖아 한 번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와 닿았던 부분을 인용해둔다.

p.255 옆에 있는 나라라고 해서 일본을 아시아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도쿄, 교토, 오사카, 요코하마, 삿포로 등을 다녀왔다고 일본을 아는 체하면 큰코 다친다. 일본은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유럽이다. 세계에서 일본을 선진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이 한참이나 배워야 할 나라이다. 

p.216 "역마살이 끼었다." 한국 문화에서는 부정적인 뉘앙스이다. 하지만, 한국에도 이미 여러 번 다녀갔던 자크 아탈리가 말한 대로, 지구화시대에서 역마살은 누구나 갖추어야할 덕목이다.

요즘 읽은 기행 형식의 책들. , 토니 휠러의<나쁜 나라들>. 그리고 이 책. 하나같이 내 얄팍한 여행 의지를 마구마구 꺾어버리고 있다. 자타공인 여행 중독증 치료에 이 책들 만한 것이 없을 듯싶다. 아. 괜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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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그 절망과 희망 사이
김정현 지음, 장현우 사진 / 휴먼비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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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아프가니스탄 여행은 책 한 권의 분량에 담기에는 짧았음에 틀림없다. 그 짧음이 픽션과 넌픽션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작가의 감정이입이 좀 과한 듯, 희망을 찾아내고자 하는 그의 안쓰러운 눈물어린 시선도 사실은 동어반복이 심하다. 그전에는 안 보이던 이런 것들이 자꾸 눈에 띈다.

아프가니스탄. 요즈음 자꾸 이 나라가 눈에 들어온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토니 휠러의 <나쁜 나라들>에서 촉발되었나? (267쪽) 이 책에서 토니 휠러는 전쟁의 네 단계 이론을 인용하였는데,....

   
  초기 단계에서 '전쟁은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여기고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면 곧 전쟁이 종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몇달 후 '젠장, 여기에 발이 묶여버렸네.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겠어'라고 생각하며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한다. 그러다 '뭔가가 분명히 잘못됐어. 엉망진창이잖아!'라고 깨달은 후 마지막으로 '이 지옥에서 바져나가야 해.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러시아 저널리스트 아르룜 보로빅의 저서<숨겨진 전쟁>에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개입에 관해 비판한 논평이라고 한다. 

또 하나. 150여년 전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아프가니스탄은 "유럽의 이교도들에게 통치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예언했다 한다. 다음은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이다. (2009. 12. 3일자)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391217.html  

이와 같은 내용을 이 책 <아프가니스탄, 그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또 발견한다. 

   
 

 아프가니스탄, 어떤 침략세력도 온전할 수 없는 땅. 정말이지 원한에 사무쳐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 요량으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한, 탕이 가루와 같은 협곡에서의 기습공격에는 현대의 어떤 신무기로도 당해낼 도리가 없을 듯싶었습니다. 쫓겨난 탈레반이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건 바로 그런 지형이 가장 큰 몫을 하는 거지요.

 
   

 역사 이래로 오랜 세월 동안에 이 척박하고 황폐한 -석유 산유국도 아니고 지하자원이 풍부한 것도 아닌-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유는? 바로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의 미국에 의한 전쟁도 그렇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면하고 있는 이란 때문에, 그 주변의 국가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압박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접한 중국도 끊임없이 경계를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110)'더하여 아프가니스탄 북쪽 투르크메니스탄을 비롯한 카스피 해 인근 국가에서 생산되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경유해 인도로 끌어들이는 일도 중요합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동반자인 인도가 에너지로 인해 이란이나 러시아와 가까워지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니까요. 게다가 이 송유관 사업의 주체는 미국의 메이저 석유기업 유노칼입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미국과 파키스탄이 송유관 문제의 해결을 위해 탈레반과의 협상을 시도하고 있다고도 합니다.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참으로 더러운 전쟁이다. 이 아프간 전쟁에 미국의 눈치를 보며 파병의 대열에 선 우리 나라.  

이런 아픔의 땅, 아프가니스탄을 여행하는 저자의 눈빛은 그래서 늘 분노에 타오르면서도 늘 눈물에 젖어있다. 온갖 기행문이 홍수를 이루는 시대에 이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아프가니스탄, 그 절망과 희망 사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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