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보면 향신료 전쟁과 관계있지만 딱히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고,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라 그냥 번호를 붙여나간다. 처음부터 다시 정리한다면 좀 깔끔할 텐데...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고 독서 역시 그렇다. 일단 되는대로 읽어보는 수밖에.
육두구, 정향 등의 향신료를 둘러싼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과 약탈의 행렬. 포르투갈, 스페인의 뒤를 네덜란드가 화려하게(?) 잇는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350년간(1602~1949)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우리가 당한 일제 강점기의 10배에 해당하는 350년간의 지배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냥 책을 읽을 땐 그런가보다 했는데 막상 글을 쓰다보니 350년이라는 햇수를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거다. 어떻게 살아냈을까. 그 긴 세월을 꿋꿋하게(?) 고혈을 빨아먹은 네덜란드도 참 대단한 나라이지 싶다. 그래도 양심 있는 누군가가 있어 그 물줄기를 바꾸었다.
에두아르트 다우어스 데커르 Eduard Douwes Dekker(1820~87)
물타뚤리Multatuli. '엄청난 고통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진 단어를 필명으로 한 사람.
1860년 세상에 나온 책이 <막스 하벨라르>이다. 절판되었으나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2020년 교양부문 세종도서에 선정되어 공공도서관, 전문도서관, 작은도서관 및 초중고 등 전국에 보급'되어 있다고 한다. 책이 몇권 안되는 시골도서관에서도 빌릴 수 있어서 놀랐었는데...사익을 추구하지 않는 '공공'의 힘을 깨닫는다.(말이 자꾸 옆으로 샌다.)
초반의 예의 만연체를 잘 넘기면 이 책의 저력이 독서의 기쁨과 함께 전해져온다. 세월이 흘러도 살아남는 힘을 실감하면서 '이런 게 바로 고전이구나'하는 새삼스런 깨달음까지. 또 하나. 눈 밝은 사람이 있어 책을 발견하고, 세상에 퍼뜨린 사람도 있고, 그걸 알아주는 사람도 있고...뒤늦게 이렇게 감탄하는 사람도 있고... 또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이 책을 집어들겠지. 이름하여 '고전'의 힘.
이야깃거리가 많아서 할 말도 많은 책이다. 소설 속의 소설인 '사이쟈와 아딘다' 이야기도 인상적.
그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당시 네덜란드 목사님의 말씀.
p.204
독자 여러분, 목사님 말씀 중에서 쟈바인들의 육체노동을 강조한 대목을 유념해 주십시오.(중략) 목사님은 그 보고서들을 들고 쟈바인들에게 노동할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것만이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역설하셨고요.(중략) 전능하신 하나님이 애당초 그 땅을 커피재배에 적합하지 않게 만드신 건, 그곳 주민들에게 영생할 기회를 주시고자 그리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커피를 재배할 수 있게끔 구슬땀을 흘리며 토양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르박 주민들을 구원받게 하려는 절대자의 세심한 마음쓰심이지요.
p.205
복음서야말로 최고선에 이르는 길잡이 아닙니까? 그리고 복음서에 구원보다 더 숭고한 목표가 있습디까? 도대체 그 무엇이 구원보다 더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책무는 그들을 구원받는 길로 인도하는 것 아닙니까? 이 책무를 다하는 데 노동이 필수라면- 저를 예로 든다면 지난 20년간 문턱이 닳도록 커피거래소를 드나들었지요- 그들에게 노동을 강제하지 않는 건 우리 이기심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지 않습니까?
말인지 막걸리인지...뭐 지금이라고 다를까만...
p. 259
삶이 지옥일지라도
어떤 자는 모든 영화를 누리고 살며
온갖 죄악을 저질러 사람들 앞에 나서지도 못하면서
금고는 터져만 간다네
p.327
이처럼 하벨라르가 이중고를 겪은 이유는 불법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권력자들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범죄행위를 혐오하면서도 자신이 나설 필요까지 있겠냐며 방관하거나, 불의와 맞서 싸우길 아예 포기한 사람들의 소심함과 우유부단함이 그를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중략) 정의가 강자 편에 설 것이라는 답답한 확신이 어느 때보다도 강한 상황에서 불의를 공격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p.356
"기독교 신자 둘이 싸우며 도와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누구 편을 들어주나요?"
1860년에 간행한 책을 2025년에 읽어도 참신한 느낌이 드는 건, 세상은 구태의연하고 여전히 돈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
이 책은 <향신료 전쟁>을 쓰신 분이 쓴 후기작이라 반갑게 주문했는데....
설탕 전쟁을 논하기 전에 오타 전쟁을 치르는 중..,
p.31 ~이사벨 여왕와~
p.40 ~무엇이 있는지 있는지
p.135 ~ 무역와
p.149 ~런데 >>> 그런데
많이 서두르신 듯...
************************************************
다음은 <욕망의 향신료 제국의 향신료>에 실린 글이다.
p. 355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반다제도 주민을 학살했고, 경쟁 관계에 있는 섬들의 육두구 플랜테이션 농장을 파괴했으며, 몰래 거래했다는 이유로 원주민을 가혹하게 처벌했다. 그들은 향신료 교역을 거의 완벽하게 독점했기에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다.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는, 그 시대의 건물, 운하, 렘브란트의 그림, 과학, 프로텐스탄트 계몽운동은 부분적으로는 말레이군도 사람들의 고통으로 일궈낸 것이다.
***********************************************
이미 올렸던 글을 다시 덧붙이는 이유.... 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