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가사키역 앞.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한무리의 일본여학생들이 보인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구두에 내 눈이 머문다. 나도 저것과 똑같은 디자인의 구두를 고등학교 3년 내내 신었다. 다만 색깔은 자주색. 자주색 베레모, 자주색 자켓과 치마, 자주색 스타킹, 자주색 구두, 자주색 가방. 8.15 광복이 되고 한 세대가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명문여고에 다닌다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시절이었는데 이제보니 일제 잔재가 벌겋게 내 몸을 감싸고 있던 거였다. 그것도 모르고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다닌 걸 생각하니 참으로 씁쓸하고 부끄럽다.

2. 나가사키 윈폭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 서니 가슴이 울컥.

3. 추모비를 설명하는 입간판은 낡았으나 절절한 마음은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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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존재를 대학 때부터 알았으니까 40년이 넘도록 읽지 않았다는 얘기다. 읽었더라도 재미 없다며 도중하차했을 확률이 높다. 끝까지 읽었더라도 글자만 읽었을 것이다. 헛읽은 책이 한두 권이 아니었으니.


배경은 콩고. 이 당시의 콩고는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1835~1909)와 뗄 수 없다. 레오폴드 2세가 콩고를 지배한 기간은 20년 남짓. 그 기간 콩고에서 약 1000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1885년 ~1905년 콩고 인구의 절반이 사라진 것이다. 몸소 스페인까지 가서 식민통치술을 배운 레오폴드 2세는 역사상 가장 잔혹한 통치자로 손꼽히는 인물로 아돌프 히틀러, 캄보디아 '킬링필드' 대학살의 주범 폴 포트, '아프리카의 히틀러' 우간다의 이디 아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벨기에 면적의 75배에 달하는 거대한 땅을, 그는 개인 자격으로 소유하면서 수탈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수탈 대상은 상아와 고무. 강제노동을 거부하는 마을은 몰살시키고, 특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손목을 잘라낸 잔혹한 행위로 악명이 높았다. 이렇게 거둔 수익이 2억 2000만 프랑, 현재 가치로 11억 달러(약 1조 1000억원)로 추정된다고 한다.(출처: 2018년 중앙일보 기사)


조셉 콘래드(1857~1924)는 1890년 33세 때 아프리카 콩고 강을 항행. 1899년 42세 때 이 소설을 발표한다. 정확하게 레오폴드 2세가 콩고를 잔혹하게 수탈하던 시기와 겹친다. 


흔히들 이 책은 '서구 제국주의를 예리하게 비판한 점에서 주목받는다'고 하는데, 1860년에 발표된 네덜란드 작가 물타뚤리의 <막스 하벨라르>와 비교하면 애매모호한 편이며 인종차별적 요소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콘래드보다 한 세대 전에 나온 책은 세상의 물줄기를 바꾸는 역할을 했지만 이 <암흑의 핵심>은 세상에 어떤 역할을 했을까. 


번역자인 이상옥의 작품 해설을 보면, 

' 이 책은 무엇보다도 문명 사회가 보장하는 안이한 삶을 박차고 나와 궁극적 자기 인식을 성취할 수 있었던, 의식이 깨어 있는 한 인간의 자기 탐구담이다. 이 책의 감동은 작가 자신의 생생한 체험에서도 나오지만, 그것보다도 우리가 서술자 말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그의 정신적 탐구에 간접적으로나마 동참할 수 있는 그 강력한 주술적 힘에서 나온다.'


<암흑의 핵심> 만큼이나 모호한 해설이다. '문명 사회가 보장하는 안이한 삶'에서 그 문명 사회의 밑바탕이 되는 재화는 어디에서 얻는가. 식민지 수탈로 꽃 피운 문명, 그걸 외면하거나 깨닫지 못하는 깨어 있지 않은 의식. 소설에서, 죽기 전 마지막으로 " 무서워라, 무서워라" 외치던 작중 인물 커츠의 광기가 오히려 진실하다면 진실하다고 할까. 무자비하게 원주민을 학살하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런 상황이 그저 옛날 구시대의 이야기일 뿐일까. 


바람이 있다면 이 애매모호한 <암흑의 핵심> 옆에, 분명하게 호소하는 <막스 하벨라르>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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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대항해와 향신료 관련 책을 읽다가 포르투갈 여행기까지 읽는다. 도서관에서, 찾는 책은 없고 대신 눈에 띈 책.














 

책이 알차고 재밌다. 포르투갈에 대한 지은이의 애정과 지식이 잘 녹아 있는 책이다. 포르투갈에 가게 된다면 이 책을 구매해서 다시 읽어볼 참이지만 '포르투갈 역대 왕으로 살펴보는 포르투갈 역사' 라는 부록 때문에라도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포르투갈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들어온다.


이 책에서 딱 하나만 소개해보면,


코임브라대학의 조아니나 도서관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이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밀 한 가지가 있는데, 도서관에 수십 마리의 박쥐들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


p. 267

관광객이 모두 돌아가고 나서 깊은 밤이 되면, 낮 동안 벽장 틈에 숨어있던 박쥐들이 나와 책벌레를 잡아먹는다. 18세기 초 도서관을 지을 당시에도 이미 수백 년이 넘는 고서 관리에 애를 먹었는데, 화학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고서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최상의 방법이 바로 박쥐를 이용하는 것이라는 답을 찾았던 것이다. 3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같은 방식으로 책을 보전하고 있다.

 도서관 직원들의 아침 일과가 도서관 내의 선반과 책상 위를 덮은 덮개에 묻은 박쥐의 배설물을 치우는 일이라고 하는데, 직원들에게 좋은 건지 나쁜건지 잘 모르겠지만 박쥐가 큰 역할을 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도서관에 박쥐라고라....엇그제 끈끈이 트랩에 걸린 새끼박쥐, 그전에 창고 책장 틈에 새끼를 쳤던 박새. 이따금 시커먼 박쥐가 창고에서 푸드득 창밖을 향해 날아가는가 하면, 어미 박새가 창고를 휘저으며 다녔던 흔적으로 이곳저곳에 배설물이 진득하게 묻어 있곤 했다. 게다가 어미 박새에게는 새끼가 다섯 마리나 있었다. 3백 년 동안이나 박쥐가 서식했다면 박쥐 왕국을 이루었을 텐데...

어쨌거나 사진으로 보는 조아니나 도서관은 매우 아름답다. 내 눈으로 직접 보았던 더블린 트리니티대학의 롱룸 도서관, 옥스퍼드의 보들리안 도서관. 가슴 퍽찼던 그 순간들이 떠오른다. 짧지만 강렬했던 순간들. 도서관의 박쥐 얘기에 잠시 떠올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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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기게 눈을 겨냥하는 눈초파리, 

초저녁에 반짝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반딧불. 

성가신 것들도 많고 예쁜 것도 많은 시골. 

재주껏 사진에 담아본다.



흉내내기 어려운 색감. 개머루.




이렇게 아름다운 곤충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노린재




사마귀와 아이콘택트




이름이 뭐드래요? 00 잠자리.




금산 며느리인 친구가 알려준 이름...기름메뚜기




귀뚜라미라는데...




농부의 딸, 내 친구도 우리나라에서 처음 본다는 박쥐.

날벌레 잡는다고 처마 밑에 붙여놓은 끈끈이 트랩에 새끼박쥐가 걸려들었다. 

미안한 마음에 사진은 작게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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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9-03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끼 박쥐까지 사진 찍으신 여기는 어디일까요?

nama 2025-09-03 16:26   좋아요 0 | URL
강원도 양양이래요~

잉크냄새 2025-09-03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머루는 파레트에 쏟아놓은 물감같네요.
작은 잠자리는 실 잠자리가 아닌지요?

nama 2025-09-03 20:47   좋아요 0 | URL
글쎄요.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크게 보면 향신료 전쟁과 관계있지만 딱히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고,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라 그냥 번호를 붙여나간다. 처음부터 다시 정리한다면 좀 깔끔할 텐데...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고 독서 역시 그렇다. 일단 되는대로 읽어보는 수밖에.
















육두구, 정향 등의 향신료를 둘러싼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과 약탈의 행렬. 포르투갈, 스페인의 뒤를 네덜란드가 화려하게(?) 잇는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350년간(1602~1949)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우리가 당한 일제 강점기의 10배에 해당하는 350년간의 지배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냥 책을 읽을 땐 그런가보다 했는데 막상 글을 쓰다보니 350년이라는 햇수를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거다. 어떻게 살아냈을까. 그 긴 세월을 꿋꿋하게(?) 고혈을 빨아먹은 네덜란드도 참 대단한 나라이지 싶다. 그래도 양심 있는 누군가가 있어 그 물줄기를 바꾸었다.


에두아르트 다우어스 데커르 Eduard Douwes Dekker(1820~87) 

물타뚤리Multatuli. '엄청난 고통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진 단어를 필명으로 한 사람.

1860년 세상에 나온 책이 <막스 하벨라르>이다. 절판되었으나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2020년 교양부문 세종도서에 선정되어 공공도서관, 전문도서관, 작은도서관 및 초중고 등 전국에 보급'되어 있다고 한다. 책이 몇권 안되는 시골도서관에서도 빌릴 수 있어서 놀랐었는데...사익을 추구하지 않는 '공공'의 힘을 깨닫는다.(말이 자꾸 옆으로 샌다.)


초반의 예의 만연체를 잘 넘기면 이 책의 저력이 독서의 기쁨과 함께 전해져온다. 세월이 흘러도 살아남는 힘을 실감하면서 '이런 게 바로 고전이구나'하는 새삼스런 깨달음까지. 또 하나. 눈 밝은 사람이 있어 책을 발견하고, 세상에 퍼뜨린 사람도 있고, 그걸 알아주는 사람도 있고...뒤늦게 이렇게 감탄하는 사람도 있고... 또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이 책을 집어들겠지. 이름하여 '고전'의 힘.


이야깃거리가 많아서 할 말도 많은 책이다. 소설 속의 소설인 '사이쟈와 아딘다' 이야기도 인상적.

그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당시 네덜란드 목사님의 말씀.


p.204

독자 여러분, 목사님 말씀 중에서 쟈바인들의 육체노동을 강조한 대목을 유념해 주십시오.(중략) 목사님은 그 보고서들을 들고 쟈바인들에게 노동할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것만이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역설하셨고요.(중략) 전능하신 하나님이 애당초 그 땅을 커피재배에 적합하지 않게 만드신 건, 그곳 주민들에게 영생할 기회를 주시고자 그리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커피를 재배할 수 있게끔 구슬땀을 흘리며 토양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르박 주민들을 구원받게 하려는 절대자의 세심한 마음쓰심이지요. 


p.205

복음서야말로 최고선에 이르는 길잡이 아닙니까? 그리고 복음서에 구원보다 더 숭고한 목표가 있습디까? 도대체 그 무엇이 구원보다 더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책무는 그들을 구원받는 길로 인도하는 것 아닙니까? 이 책무를 다하는 데 노동이 필수라면- 저를 예로 든다면 지난 20년간 문턱이 닳도록 커피거래소를 드나들었지요- 그들에게 노동을 강제하지 않는 건 우리 이기심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지 않습니까?


말인지 막걸리인지...뭐 지금이라고 다를까만...


p. 259

삶이 지옥일지라도

어떤 자는 모든 영화를 누리고 살며

온갖 죄악을 저질러 사람들 앞에 나서지도 못하면서

금고는 터져만 간다네


p.327

이처럼 하벨라르가 이중고를 겪은 이유는 불법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권력자들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범죄행위를 혐오하면서도 자신이 나설 필요까지 있겠냐며 방관하거나, 불의와 맞서 싸우길 아예 포기한 사람들의 소심함과 우유부단함이 그를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중략) 정의가 강자 편에 설 것이라는 답답한 확신이 어느 때보다도 강한 상황에서 불의를 공격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p.356

"기독교 신자 둘이 싸우며 도와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누구 편을 들어주나요?"



1860년에 간행한 책을 2025년에 읽어도 참신한 느낌이 드는 건, 세상은 구태의연하고 여전히 돈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
















이 책은 <향신료 전쟁>을 쓰신 분이 쓴 후기작이라 반갑게 주문했는데....

설탕 전쟁을 논하기 전에 오타 전쟁을 치르는 중..,


p.31  ~이사벨 여왕~

p.40  ~무엇이 있는지 있는지

p.135 ~ 무역

p.149 ~런데 >>> 그런데


많이 서두르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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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욕망의 향신료 제국의 향신료>에 실린 글이다.


p. 355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반다제도 주민을 학살했고, 경쟁 관계에 있는 섬들의 육두구 플랜테이션 농장을 파괴했으며, 몰래 거래했다는 이유로 원주민을 가혹하게 처벌했다. 그들은 향신료 교역을 거의 완벽하게 독점했기에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다.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는, 그 시대의 건물, 운하, 렘브란트의 그림, 과학, 프로텐스탄트 계몽운동은 부분적으로는 말레이군도 사람들의 고통으로 일궈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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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올렸던 글을 다시 덧붙이는 이유.... 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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