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생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이레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한 일주일, 남편은 하루 걸러 새벽 2시가 넘어서야 귀가하곤 했다. 닷새 째 되던 날 새벽 2시. 심사가 뒤틀려버린 나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그저 서운한 눈빛을 던지고는 조용히 책 한 권을 펼쳐 들었다. 바로 이 책이다.

 

소설의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강력하게 눈에 들어오는 글귀가 있었다.

 

" 이 세상에 끝나는 것이란 하나도 없다. 일단 한 번 일어난 것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그저 여러 가지 형태로 모양만 바뀌는 것으로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내 상황에 꼭맞다 싶었다. 단어만 하나 바꿔 넣으면 기막히게 내 얘기가 되었다.

 

" 이 세상에 남편의 음주가 끝나는 때라곤 한 번도 없다. 일단 한 번 마신 술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그저 여러 가지 변명으로 모양만 바뀌는 것으로 남편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다."

 

구정 연휴를 앞두고 심란한 마음을 달래는 데는 재미있는 소설이 제격이다 싶어 이 소설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놓고는, 드디어 때가 되었다 싶어 손에 집어 들기는 했으나....

 

재미를 느끼기에는 이 소설이 너무나 현실과 닮아서 도무지 재미 따위를 찾을 수가 없다.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킨다. 안과 밖이 따로 구분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과정만 있을 뿐인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읽다보니 나를 둘러싼 우리 가족이야기(남편의 음주는 해당되지도 않음)가 자꾸만 이 소설의 내용과 오버랩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뭐 비슷한 상황은 아니지만 평생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과정의 강도는 오히려 소설쪽이 더 내용이 빈약(?)하고 밋밋하게 생각되었다. 흔히들 그렇잖은가. 자신의 문제가 제일 크게 보이는 법이라고.

 

결국 반쯤에서 꼼꼼하게 읽기를 포기했다. 구질구질하고 마음이 늘 불편한 일상을 소설에서조차 되새겨보는 일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위안이 되지 않는다. 소설의 재미에 빠져 잠시라도 현실을 잊고 싶다는 내 열망이 불쌍하다 싶었다.

 

그러나 역시 나쓰메 소세키다. 1867년생인 이 작가의 이 소설은 지금 읽어도 전혀 옛날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신산한 일상이 현재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리고 제목. 제목인 <길 위의 생>이 쓸데없이 낭만적이고 호객용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멋모르고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손에 집어들었는데 속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길 위의 생'이라면 적어도 보헤미안 같은 인물이 등장해서 질펀거려야 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물론 삶이라는 게 여러 의미의 길 위에서 펼쳐지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서도.

 

그래서 제목을 만들어보았다. '끝이 없는 삶'. 혹은 '사람 사는 일이 그렇지'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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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수치 오두막. 지하수가 얼었는지 수도꼭지를 아무리 비틀어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밥은 연못에서 물을 길어다 해먹으면 되는데 당장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니 자연 야생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럴 때는 차라리 변비라도 걸렸으면 좋으련만 다른 때 보다 장운동이 더 활발해지니... 내 속은  나도 모르겠다.

 

새벽녘의 찬공기는 머리를 띵하게 해서 잠을 설치고 만다. 창 밖의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다. 별빛 바라보며 잠들었는데... 왠지 별들이 나에게 할 말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흠, 잠이 덜 깼는데 잠이 쉬이 오지 않는다. 여름이라면 밖에 나가 잔디밭에서 잡초로 자란 쑥과 한바탕 씨름이라도 하련만. 눈사람이라도 만들어 봐?

 

 

얼마전 비가 내릴 때 '봄 비' 운운했는데 봄은 아직 멀~~었다.

 

 

 

 

오두막으로 가는 길. 차량 진입이 불가능하다. 애초엔 자동차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너비를 갖춘 소로가 있었으나 태풍으로 유실된 후 다시 원래의 자연상태로 돌아갔다. 길이라는 게 꼭 필요한가, 를 계속 묻게 한다. 쌓인 눈길을 가볍게 걷는다. 발이 깊이 빠지지 않는다. 여기가 히말라야라면 이렇게 얼어서 만년설이 되는 것이겠지, 아마.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사진을 찍고 싶은데 행여 개울에 빠질까 두려워 이쯤에서 카메라에 담는다.

언제였던가. 캄캄한 한겨울 밤에 저 개울을 맨발로 건너간 적이 있었는데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뭔가 뿌듯해지는 기분. 마음에 더운 기운이 솟는다. 햇볕 때문!

 

 

 

 

나무는 겨울에도 살아서 숨을 쉰다. 그 숨이 나무 주변의 눈을 녹인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으니 사물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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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목적강당을 신축하며 이름을 공모했는데 다음이 수상작이다. 나의 순간적인 영감으로 만들어진 "다부짐"이 2등으로 당선되었다. 다부지고 당차게 체력단련하는 체육관(gym)의 의미를 가졌노라고 주창했지만 아무래도 일상적으로 쓰이기에는 역부족했나보다. 그래도 2만원의 상품권을 받게 되었는데 <노자타설>을 살까 생각중.

 

--학생부문

1등  꿈비터

2등  해인관

3등  남동관 / 라온제나

 

--교사부문

1등 남현재

2등 다부짐

3등 중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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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연애하는 법 : 중국에서 유럽까지 뚜벅부부의 배낭여행기 1
이호철.김승란 지음 / 예린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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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부부의 여행기. 호기심 반 부러움 반으로 이 책을 읽었다. 참 부지런히도 다닌 분들이다.

책을 읽어나갈 때는 잘 몰랐는데, 부록으로 실려있는 여행비 총 결산을 보고는 이 분들의 여행이 그리 만만하거나 편한 여행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 311일 여행기간 동안 소요된 경비는 4천만이 안된다. 역시 뚜벅부부가 맞다. 나는 이 보다 훨씬 많은 경비를 들이고도 이 분들보다 훨씬 적은 곳을 돌아다녔다. 늘 구질구질하게 다녔는데도 그렇다. 자주 여행하는 것 보다 한번에 길게 여행하는 게 경비면에서는 훨씬 유리한데, 그런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나중에 참고할까해서 사진을 찍는다.

 

 

 

이 책을 읽고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을 골라 보았다.

 

1위: 아이슬란드 '아이슬랜드는 그랬다. 빅뱅이론부터 생명체의 탄생, 지각 변동 같은 지구의 활동이나 지구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두텁지 못한 우리의 지식을 마구 동원하게 만드는 나라였다.'고 하니 궁금하지 않은가.

 

2위: 시리아의 마르무사 수도원. 이렇게 간단다. 마음 속에 담아놓으면 언젠가는 가게 되겠지 하는 마음에서 가는 방법을 베껴놓는다. '마르무사를 가려면 우선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 북쪽인 네벡Nebek이라는 소도시까지 가야 한다. 네벡에서 다시 택시로 20분 정도 사막을 더 달리면 높이 1,320m의 돌산이 나타나고 그 위에 수도원이 보인다. 주변으로는 사막과 돌산,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 가장 오래 기억되므로.

 

3위: 룩셈부르크 뮬러탈 숲. 아예 룩셈부르크를 통째로 걸어보고 싶다.

 

하여튼 읽는 동안 나도 세계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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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바이 : Good&Bye 포토 보기 

 

죽은 사람을 염습하고 납관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납관부라고 한단다. 어떤 납관부의 일기를 바탕으로 영화화된 것이 '굿바이'라는 영화다. 지난 주 금요일 밤12시 EBS에서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속으로, 일본 영화는 소재도 참 다양하구나, 하면서 큰 기대 없이 보게 되었는데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다음 날 한겨레신문에 실린 이러저러한 서평에 조양욱이라는 분이 쓴 산문집이 소개되었기에 무심코 알라딘에 들어와 검색을 해보니 이 분이 번역한 책에 <납관부 일기>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위 영화의 원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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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책도 나와 있었다. 재고할 여지없이 주문을 넣었고 드디어 그 책을 읽게 되었다. 책 보다 영화가 훨씬 아름다웠고 감동적이었다. 책은 좀 더 사색적이고 종교적인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불교적인 내용도 우리와는 약간 다른 듯 싶기도 하고, 다르다기 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약간 낯설게 다가온다. 하여튼 알듯 모를듯한 내용 중에서 이 구절 만큼은 이 책을 읽는 보람을 느끼게 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여하한 경우에도 태연하게 죽을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겼으나 잘못된 생각이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여하한 경우에도 태연하게 살아가는 일이었다."

 

 -마사오카 시키 <병상육척> (1902년)에 나오는 글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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