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깁스한 발을 질질 끌며, 걸어서 3분이면 갈 거리를 10여 분만에 겨우 걸어서-목발도 없이- 택시를 탔다. 드레싱이라고 하는 소독처치를 받으러 병원에 가기 위해서였다.

 

야박한 인상의 택시기사는 처음부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백화점 등이 밀집한 시내 중심까지는 택시 요금이 8,000~9,000원이 나오기 때문에 우리 동네에는 늘 서너 대의 택시들이 대기하고 있는데, 그렇게 기다려 태운 손님이 기껏 기본요금 손님이었으니 택시기사의 그 실망감에 좀 미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가야할 병원이 좌회전 신호를 받고 다시 유턴을 해야되는 위치에 있었다. 곧바로 택시기사의 두번째 불만이 터져 나왔다. 반대편에서 택시를 타고 그냥 우회전에서 오면 간단한 건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이 눔, 참, 깁스한 내 다리 안 보여?'  내가 좀 더 머리가 하얗다면 이렇게 쏘아주는 건데, 교양 있는 나는 그저 "다리가 불편해서 그렇잖아요."라고 점잖게 대꾸했다. 속으로는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 놈의 교양 때문에...

 

요금이 3,200원 나왔다. 카드를 꺼냈더니 택시기사 왈, "카드 사용할 거면 처음부터 카드 쓴다고 말해야지요?" 뭣이? 물건 고를 때 카드 사용한다고 먼저 허락 받고 물건 사디? 이런 우라질 놈 같으니라고, 물론 속으로 조용히 분을 삭였다. 말이 통할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 어쨌거나 병원에 오는데 이 사람의 도움을 받은 거니까.

 

이런 부류의 아이들을 그간 참으로 많이 봐왔다. 남에 대한 배려라고는 코딱지 만큼도 없는 각박한 성품의 아이들을 말이다. 허나 그 아이들의 성장 배경을 들여다보면 어딘가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는데, 그러면 그 아이에 대해 조금씩 이해와 연민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내 이 택시기사의 삶의 모습이 짐작되면서 순간적으로 끓어올랐던 분노를 삭이기 시작했다. 내 발이 안녕하지 못한 것처럼 이 택시기사의 삶도 안녕하지 못한 것이겠지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교황이 초대한 생일 손님은…노숙인 3명과 떠돌이 개 한마리>

 

 

 

(출처: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616001.html)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사람이 프란치스코 교황이야."

 

아이들 왈,

 

"부모님은 존경하지 않으세요?"

 

"응, 난 우리 부모님 그리 존경하지 않아."

 

"......."

 

 

아이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했다 싶었으나...솔직함이 내 미덕!

 

 

 

 

 

 

 진정한 종교인의 모습을 보고 싶다, 이 책을 통해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3-12-23 2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23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밀양에 한번도 못 가봤다는 게 참으로 부끄럽다. 희망버스라는 것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가기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오전에 병원에 다녀와서 기분을 가다듬고 신문을 보았더니 이계삼의 인터뷰 글이 실려 있다. 이 분의 글이나 말을 대하면 늘 부끄러워진다.

 

"지성과 통찰력은, 학벌과 아무 상관없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통찰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책에는 지성이 담겨 있지만 반지성도 있다. 풀뿌리 감성을 가지고 있는 이런 할머니들을 봐라. 그분들이 얼마나 지성적인가. ‘국가가 뭐냐?’고 묻지 않나. 법조계에서 수십년 권력의 주구가 되는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이런 질문 하지 못한다.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기사는 계속 이어진다.

 

-할머니들이 실제로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지으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렇다. 몸으로 부딪히며 배워 나가는 수정학습효과다. 할머니들이 이런 얘기를 하셨다고 한다. ‘송전탑을 따라가 보니 그 끝에 핵발전소가 있더라!’ 지금 할머니들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신고리 5, 6호기 시작하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얘기하신다. ‘저 할매,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용당하고 있다’고 보는 건 할머니들에 대한 모멸이다.”

 

 

-현실적으로 얻어진 것이 없는 싸움을 지금 9년째 하고 계시다. 이미 두 노인이 자살을 했고, 싸움은 계속되지만 공사는 강행된다. 끝이 없는 터널처럼 느껴지지 않나?

 

 

“(두 손으로 얼굴을 싸쥐며) … 그렇다. 국가라는 괴물이 무섭다. 국가는 자기반성도 모르고 자기 과오도 인정하지 않는, 자본의 해결사가 되었다. 이 싸움이 패배할지 승리할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의 승패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떻게 패배하느냐’이다. 사람들이 나가떨어져서 절망만 가져가는가, 아니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이 싸움을 빛나는 기억으로 가져가느냐. 송전탑이 세워져도 삶은 지속되는 거니까…. 이 싸움을 함께 한 사람들이 송전탑이 세워지는 어디든 함께 가서 증언하고, 원전이 세워지는 어디에서든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먹을 것을 나누고 함께하는 관계망이 만들어지는 것. 그걸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가 없다. 아슬아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쭈글쭈글한 할매, 할배들의 선한 얼굴을 생각하면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616373.htm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Chen Min (첸민) - Chen Min
Chen Min (첸민) 노래 / 포니캐년(Pony Canyon)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해금과 얼후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검색한 결과,

 

해금의 울림통은 오동나무로 만들고, 얼후는 뱀가죽을 덧입힌다.

해금은 줄이 명주실이고, 얼후는 쇠줄이다.

해금은 줄을 눌러서 소리를 내지만, 얼후는 바이올린처럼 줄을 손끝으로 짚어서 연주한다.

 

위키피디아에서는 해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해금은 몽골 지역의 유목민족인 "해부루 족"(해족)이 사용한 악기라 하여 "해금"이라고 한다. 이 악기는 중국에 유입되어 경극 반주에 쓰는 악기인 경호(京胡)로 사용되었다. 이후 한 옥타브가 낮은 음역대로 개량되면서 호금의 일종인 얼후(이호/二胡/南胡)라는 명칭으로 사용된다. 우리나라에 유입된 시기는 고려 예종 11년(1116년)으로 중국에서 들어와 한국에서 현악기의 하나로서 개량되어 해금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며 원형과 가장 비슷한 악기로 알려져 있다. 명주실을 꼬아 만든 두 가닥의 줄의 한쪽 끝에 공명통이 있어서 활로 줄을 마찰할 때 울리는 소리가 난다. 속된 말로 '깽깽이'라 이르기도 한다. 향악 연주에 주로 쓰인다.'

 

해금이 '원형과 가장 비슷한 악기'라는 것을 이 음반을 듣고 확인했다. 해금이 투박하고 깊은 슬픔을 표현한다면, 얼후는 좀 더 경쾌하고 부드러운 음색을 낸다. 그간 해금과 얼후의 차이점이 궁금했는데 잠정적으로 이쯤에서 결론을 냈다, 물론 내 나름의 방식대로. (참고로 나는 학창시절에 체육 다음으로 음악 점수가 낮았다.)

 

아쉬운 게 있다면, 중국이나 홍콩, 라오스 같은 곳을 여행하다보면 얼후가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는 것이 눈에 띄는데 반해(라오스의 루앙프라방에서는 초라한 행색의 거지마저 이 악기를 연주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우리의 해금은 소수 마니아만이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생각난다. 고입연합고사에 해금을 묻는 음악문제가 나왔었다. 1970년대 중반의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해금'하면 대금 비슷한 악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 음반(얼후)으로 듣는 리베르탱고, 가슴을 쿵쿵 찌르는 듯한 묵직한 아픔 같은 멜로디가 도시풍의 세련미로 치장되었지만 어딘가 허전하다. 버터 바른 맛 같은 느끼함, 별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