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의 <한겨레 신문> 인터뷰기사가 화제라서 올려본다. 이 분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전문을 읽어보시길...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18266.html

 

-출세는 안 하신 건가, 못 하신 건가?

“권력하고 돈이란 게 다 마약이라…. 지식도 마찬가지고. 지식이 많으면 돈하고 권력을 만들어 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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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받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도운 사실을 숨기나?

“난 도운 적 없다. 도움이란, 남의 일을 할 때 쓰는 말이지. 난 내 몫의, 내 일을 한 거다. 누가 내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는지는 몰라도 나까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일이다.”

 

-왜 안 되나?

“그게 내가 썩는 길이다. 내 일인데 자기 일 아닌 걸 남 위해 했다고 하면, 위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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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록 돈을 벌어서 민주화운동을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업을 해보니까… 돈 버는 게 정말 위험한 일이더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돈 쓰는 재미’보다 몇천배 강한 게 ‘돈 버는 재미’다. 돈 버는 일을 하다 보면 어떻게 하면 돈이 더 벌릴지 자꾸 보인다. 그 매력이 어찌나 강한지, 아무도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어떤 이유로든 사업을 하게 되면 자꾸 끌려드는 거지. 정의고 나발이고, 삶의 목적도 다 부수적이 된다.”

 

-중독이 되는 건가?

“중독이라고 하면, 나쁜 거라는 의식이라도 있지. 이건 중독도 아니고 그냥 ‘신앙’이 된다. 돈 버는 게 신앙이 되고 권력이, 명예가 신앙이 된다. 그래서 ‘아, 나로서는 더 이상 깜냥이 안 되니, 더 휘말리기 전에 그만둬야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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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씨가 선배라면서 왜 반말을 쓰시나?

“나이로는 순재가 나보다 한 살 많은데. 내가 중학 때부터 후배한테는 예대(禮待)하고 선배한테는 반말했다. 나랑 친구 할래, 선배 할래? 물어보고 친구 한다고 하면 반말로…. 후배한테 반말하는 건 왜놈 습관이라, 그게 싫어서 난 후배한테 반말하지 않는다.”

 

-원래 조선 풍습은 후배한테 반말 안 쓰는 건가?

“퇴계는 26살 어린 기대승이랑 논쟁 벌이면서도 반말 안 했다. 형제끼리도 아우한테 ‘~허게’를 쓰지, ‘얘, 쟤…’ 하면서 반말은 쓰지 않았다. 하대(下待)는 일본 사람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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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장의사적인 직업과 산파적인 직업이 있다. 갈등이 필요한 세력, 모순이 있어야만 사는 세력이 장의사적인 직업인데, 판사 검사 변호사들은 범죄가 있어야 먹고살고 남의 불행이 있어야 성립하는 직업들 아닌가. 그중에 제일 고약한 게, 갈등이 있어야 설 자리가 생기는 정치가들이다. 이념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다. 남의 사이가 나빠져야만 말발 서고 화목하면 못 견디는…. 난 그걸 장의사적인 직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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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독 - 유혹하는 홍콩, 낭만적인 마카오의 내밀한 풍경 읽기
이지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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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를 뜻한다는 화양연화의 시절은 나에게 30대 초반 방랑과 방황의 세월이었다.....

그래, 자기 삶에서 화양연화 하나만 있어도 우린 그 추억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지. 나는 배낭을 메고 마음껏 떠돌았던 젊은 시절에 쌓은 추억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나의 화양연화였다.

일생에 단 한 번 화양연화의 경험을 했던 나는 여한이 없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해도.'
-181쪽

문득 어디론가 숨고 싶을 때 떠오르는 곳이 바로 홍콩의 청차우 섬이다. 홍콩 섬 5번 페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이면 닿는 곳이다. 18~19세기 해적들의 소굴이었다는 이 섬이 나는 왜 그렇게도 좋았을까?-282쪽

쾌적하고 편안한 숙소에 묵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가끔 이런 불편한 숙소가 나를 단련시켰고 거기에 적응할 때 문득 자유로워졌다. 사는 것도 비슷한 것 같다. 평생 고생만 하는 것은 싫지만 가끔 겪는 고생, 불편함은 오히려 나를 더 튼튼하게 만들었다.-335쪽

아무리 떠나도 결국 우리는 돌아온다. 그리고 언젠가 이곳을 떠나 다른 차원으로 떠난다. 누가 그것을 피할 것인가. 그러니 삶이란 얼마나 덧없고 또 찬란한가. 그러므로 어디서든, 살아 있는 동안은 즐겁게 살아야 한다. 힘들더라도 웃어가며 살아야 한다. 꿈틀거림을 사랑하면서, 여행하듯이 살아간다면 뭐가 힘들겠는가. 삶은 잠시 여행하는 것 아니던가.-4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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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여름에 이어 다시 한번 도자기 연수를 받았다. 이번엔 강사분이 남자선생님이었다. 강사에 따라 색깔이 다르다고 할까.

 

 

 

 ( 벽돌 문양 컵의 손잡이가 특이하게 보이는 건 유약처리를 하다가 떨어져버렸기 때문이다. )

 

 

 

(초보수준에 맞지 않는 모양을 흉내내던 중 도저히 완성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머리를 쥐어뜯던 중 강사선생님의 절대적인 도움으로 겨우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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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ina 2014-08-23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요거, 두 번 째 사진 작품 재밌네요.
손잡이 부분이 연장중에서 본 듯 한 것이, 잡으면 돌려야만 할 것 같습니다.^^
머리 쥐어뜯은 효과 있네요.

nama 2014-08-23 15:34   좋아요 0 | URL
이 디자인, 사실은 모두 모방입니다.
모방인데도 처음엔 흉내내기가 힘들었지요.
그러나 이번에 다시 시도해보니 모양 잡기가 쉽더라구요.
역시 디자인이 어렵지 기능은 그저 기능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6.

 

(주펀으로 가는 길. 택시기사의 말에 의하면  일본에서 종종 이 폐광촌을 찍으러 온다기에 한번 담아봄.)

 

   이번 여행의 진수는 단연코 주펀이다. 물론 우라이(烏來)의 고즈넉함과 신기한 강변온천, 예류의 기기묘묘한 바위의 모양새, 이곳저곳의 각종 먹을거리 등 얘깃거리들이 많지만 주펀이 주는 감한 인상에는 훨씬 못 미치리라.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2005년에 왔을 때는 한나절 일정으로 와서 못내 아쉬움이 남았었다. 아기자기하고 번잡한 예쁜 상점들과 먹거리에 눈과 입이 얼얼했고, 앞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환상적인 풍경을 마주한 테라스가 있는 찻집에서의 차 한 잔은 마치 구름을 타고 있는 듯했었다. 그래서 그때 다짐해 두었다. 다음에 다시 대만에 오게 된다면 반드시 기필코 꼭 이곳 주펀에서 하룻밤을 보내보리라, 고.

   이곳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숙소가 하나 있다고 했다. 여행 블로그에 심심찮게 올라오고, ‘오래된 여행자 이지상’씨도 다녀갔었다는 유명한 숙소를 드디어 알아냈으나 내가 가지고 있는 예전 안내책자에는 불행히도 정보가 없었다. 영문 구글로 검색하니 대강의 정보는 나오는데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에 신뢰감이 들지 않았다. 결국 또 한 권의 안내책자를 샀다.(<프렌즈 타이완>)

   그런데 날씨가 좋지 않았다. 지난 3일 간은 날씨가 화창해서 여행하기에 딱 좋았다. 심지어 도착한 첫날은 영상 20도가 넘는 기온이어서 한겨울의 옷차림으로 호텔을 찾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기도 했다. 겨울이 우기라고는 하나 살짝 흩뿌리는 겨울비는 마치 요리에 후추라도 뿌리는 것처럼 옷도 적시지 않아 내심 방심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주펀 윗동네에 있는 진과스라는 광산마을을 먼저 들러 관광객이면 누구나 사먹는다는 광부 도시락도 하나씩 사서 들고 나왔다. 폐 광산촌을 관광지로 탈바꿈한 진과스는 예전에 왔을 때는 들어보지도 못한 동네였는데(내가 몰랐을 지도 모른다), 주펀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구경거리를 하나 더 추가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버려진 마을도 살리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이었다. 물론 입장료가 없는 착한 정책도 한 몫 하고 있었다.

 

(진과스의 폐광산 철로)

 

   드디어 주펀의 <진스커잔>라는 숙소를 얘기할 때가 왔다. 얼마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찾는지 한글로 민박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진짜 진수는 이게 아니다. 우리가 묵게 된 방은 불행히도 구멍 숭숭 바람이 드나드는 아홉 개의 창문이 달린 옥탑방 이었다. 화장실과 방을 나누는 벽에 달에 창문까지 합하면 창문의 개수는 10개에 이르는 가히 창문으로 이루어진 방이었다. 추측컨대 이 옥탑방을 덧붙일 때(지은 게 아니다.) 여기저기에서 창문 먼저 주워다 놓고 나머지 벽 부분을 알맞은 크기의 판자로 메꿔 나갔을 것이다. 방이 사과 궤짝도 아닌데 사과 궤짝보다도 훨씬 더 못 생기고 덧붙인 판자조각 크기도 제멋대로이다. 이걸 도대체 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허나 방 값은 매우 저렴했다. NTD 1600$(약 57,000원). 주인 할아버지도 매우 친절하고, 석공예로 유명한 분이라고 한다. 그중 멀쩡한(?) 창문 몇 개 찍어봤다. 나머지 6개의 창문은 상상에 맡기련다. 도저히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했다. 창문이 무언가에 가려져 있어 제대로 된 모양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북쪽 벽은 그나마 제일 방다운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래도 꽃무늬 커튼)

 

(팔각형의 창틀은 분명 창틀이지만 위쪽에 고리가 있어 살짝 걸어놓은 장식품에 불과하다, 주인장의 미적 감각이 돋보인다.)

 

( 방과 화장실을 나누는 벽에 달린 창문은 사진이 실제보다 훨씬 예쁘다.)

 

   비바람 치는 밤. 밤새 지붕과 창문은 덜컹거리고, 잠은 쉬이 오지 않고, 특별히 할 일도 없는 밤, 유일한 난방기구인 원적외선 온열기를 마치 모닥불인양 방 가운데 두고 지치지도 않는 수다 삼매경에 들어갔다. 최근 눈꺼풀과 눈 밑의 처진 피부에 손을 본 성란이의 시술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는데, 역시 눈 밑이 처진 나를 두고 성란은 시술을 적극 권장하고 종학은 그냥 살라고 하는 가운데 미선이도 호기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질문 공세를 펼친다. 참, 네가 나고 내가 너다.

   얼마 전 손녀를 본 성란이가 손녀가 보고 싶은지 손녀 흉내를 낸다. “함무이! 함무~이이...” 이렇게 부르면서 할머니를 놀린다고 한다나. 이제 결혼한 지 6~7년이 되어가는 미선은 권태기에 들어갔는지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녀의 한숨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불편하고 울적한 기분을 어떻게 위로해 주어야 할지 난감하다. 친구의 아들 결혼을 얼마 앞둔 종학은 아들 결혼식을 어떻게 치러야 할 지 고민하고 있는 듯, 나에게는 아들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을 지도 모르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한다. 이유는 아들의 성장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만을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다나. 흠, 나도 그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마는 솔직히 서운하긴 한데. 결혼식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충분히 공감해. 나도 우리 딸내미 결혼식을 가족끼리 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지 꽤 되었어. 부조금도 받지 않고 하루 종일 먹고 노래하고 춤추는 그런 단순하고 소박한 결혼식이 어떨까 고민하고 있지. 허나 나에게는, 집으로 돌아가면 요즘 방과후와 자율학습으로 밤늦게 돌아오는 딸아이의 저녁 도시락을 싸주어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 있었으니, 결혼은 무슨...곧 다가오는 무서운 대학입시를 잠시 잊고 있었다. 손녀 얘기에, 연하의 남편과 살고 있는 친구의 낯선 고민에 잠시 나를 잊은 밤이었다. 10개의 창문이 달린 옥탑방에서 4인 4색의 이야깃거리는 끊일 줄을 몰랐다.

 

(모닥불 같은 온열기)

 

 

(숙소에서 바라본 밤 풍경)

 

 

(비바람에도 끄덕 없었던 옥탑방의 사랑스러운 자태)

 

7. 한바탕의 꿈같은 여행이 4박 5일 만에 끝났다. 종학이도 아쉬웠던지 이런 말을 흘린다.

“네 딸, 꼭 수시에 붙으라고 해.”

“왜?”

“그래야 돌아오는 겨울에 인도 가지.”

“그게 마음대로 돼?”

“내가 매일 기도할게. 꼭 수시합격 하라고.”

“만약 수시합격하면 네 기도덕인 줄 알게. ㅎㅎㅎ”

친구들아, 기도하고 있겠지? 우리 딸 수시 합격하면 남인도와 스리랑카는 나에게 맡기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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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01빌딩을 나와 택시를 타고 근방에 있는 둔화난로점의 청핑서점을 찾아갔다. 2004년 미국 <타임>지에 의해 ‘아시아 최고 서점’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이라기에 무척 궁금했다. ‘만약 하룻밤 잘 곳이 없으면 이 서점에서 책이나 보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답사 차 보러 가는 기분도 들었다. 주로 인터넷으로 책을 구입하다보니 국내에선 서점에 가는 일이 거의 없지만, 한때는 한 자리에 꼬박 서서 서너 시간은 족히 책을 읽고는 했었다.

 

 

 

 

   분위기가 어떤가? 상업적인 냄새보다 학구열을 자극하는 이 천국 같은 서점에서 체력만 된다면 하룻밤 거뜬히 둥지를 틀고 책에 파묻혀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 않은가. 그러나 여행객인 우리는, 그것도 4명으로 이루어진 단체여행객인 우리는 갈 곳이 많았다. 아쉬움을 사진에 담는 것으로 접고 지하1층의 음반 및 문구매장으로 향했다. 남미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종학이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cd를, 나는 덩뤼쥔(등려군)의 cd를 한 장 골랐다.

   사실 나는 여행지에서 영화 한 편 보기를 즐겨한다. 다행히 영어 자막이 있으면 내용이야 대강 파악되는 거고, 그것보다 현지에서 보는 영화 한 편이 강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절대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공간과 시간을 온 몸으로 맞으며 영화 한 편에 깊이 빠져드는 맛은 여행이 주는 또 하나의 묘미이다. 그러나 겨우 4박 5일간의 여행에서 영화감상은 사치에 불과하니, 그저 cd 한 장으로 만족할 수밖에.

   여행 며칠 전에 읽은 최창근의 <대만, 거대한 역사를 품은 작은 행복의 나라>에서 덩뤼쥔에 관한 글을 접하고 비로소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1953년~1995년. 겨우 42살에 삶을 마감한 비운의 가수로 중화권에서는 가히 국민가수 대열에 올랐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여행 후 돌아와서 그녀의 노래를 말 그대로 주구장창 듣고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프랑스의 에디뜨 피아프에 비견될 만할 인물이구나, 하고.

 

 

 

 

 

 

(이번 대만여행에 큰 도움이 되었던 책이다.)

 

 

 

 

 

 

 

 

   그녀의 노래를 듣다보니 그녀가 부른 <첨밀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보니 홍콩영화 <첨밀밀>을 다시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TV로 볼 때, 흑백으로 처리된 1993년의 옛 분위기에 흥미를 잃고는 그냥 잠들어버렸는데 이 영화에 덩뤼쥔의 노래가 몇 곡 나온다기에 집중에서 보니 장면 하나하나가 마음에 착착 안겨오기 시작했다. 두 주인공이 함께 하는 곳엔 늘 덩뤼쥔의 노래가 있었다. 꿈을 안고 작은 장사를 시작했을 때도, 피치 못하게 헤어질 때도, 다시 미국에서 극적으로 만났을 때도 늘 덩뤼쥔의 노래가 배경으로 깔렸다.  덩뤼쥔의 노래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영화 속 이야기가 1986년부터 시작되니 나도 그때는 비슷한 20대를 보내고 있었다. 난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 영화가 이렇게 사랑스러울 줄이야. 무엇보다 남자 주인공인 여명의 선하디 선한 표정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저렇게 선한 얼굴의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며, 저렇게 똑 부러지고 야무진 여주인공인 장만옥이 어떻게 음식을 마구 먹으면서도 사랑스럽게 보이는 걸까.

 

 

 

 

 

(덩뤼쥔 cd지만 내가 구입한 것과는 다르다. 사진이 필요해서..)

 

 

 

 

 

 

 

 

 

 

 

(영화 <첨밀밀>)

 

 

 

 

 

 

 

옆에 덩뤼쥔의 cd가 있고, usb에 <첨밀밀>이 저장되어 있는 한 대만여행의 여운은 계속 될 것이다.

 

 

5. 밥 대신 과일을 좋아하는 종학을 위해 과일을 구하러 까르프에 가기로 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을 나온 후 어느 택시기사에게 家樂福이라고 쓴 종이를 내밀며 데려다 달라고 했더니 어딘지 모른다고 한다. 다행히 박물관 앞에서 교통 지도를 하고 있는 순경이 우리 의도를 이해하고 택시를 세워서 우리를 그곳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해준다. 와중에 까르프를 家樂福이라고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친구들이 나보고 호들갑을 떨어준다. 칭찬에 굶주리면 내 성질이 사나워진다는 것을, 내 친구들은 나의 모자란 성질을 잘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흐흐. 그 정도가지고 뭘.”

   까르프 매장은 2층에 있고 1층은 식당가이다. 이 식당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이렇게 소개하는 이유는 그 소박함이 마음을 끌기 때문이다. 우선 사진을 보시라.

 

 

 

   물론 모든 까르프 매장에 있는 식당이 이러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이 식당이 대만의 어떤 특성을 드러내고 있는 듯싶었다. 바로 소박함이다. 전체적으로 새로 단장한 분위기인데 눈여겨보면 탁자라든가 천장 장식, 진열장식에 쓰인 자재들이 모두 재활용된 자전거 바퀴라든가, 문짝, 낡은 판자조각들이다. 마치 세트장 같은 느낌이 든다.

 

 

 

 

   연극 무대 같기도 해서 금방이라도 배우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식당가에 손님이 별로 눈에 띄지 않으니 이걸 가지고 대만 전체를 상징한다고 볼 수는 없을 터, 다만 내 생각에 이름을 붙일 뿐이다. 소박함이라고.

   어디를 가기 위해 전철을 타려고 막 플랫폼에 내려설 때였다. 대부분이 칙칙하고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데 개중 밝은 색의 세련된 옷차림이 눈에 띄어 돌아다보았다. 밝은 색의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종학과 성란이었다. 주황색의 라운드티셔츠에 얇은 가디건 하나 걸친 종학이와 밝은 하늘색 니트 차림의 성란이가 세련된 모습으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이곳 사람들의 입성은 정말로 소박했다. 그러나 표정은 우리처럼 굳어있거나 화난 얼굴 모습이 아니었다. 어딘지 모르게 평화로워 보였다. 여행하는 내 마음이 그 순간에 평화로웠을지도 모르겠으나 책에서 읽은 바로는 이들이 우리보다는 훨씬 덜 부대끼며 살고 있는 듯싶었다. 그 평화로운 삶의 한 단편을 나는 그네들의 소박한 옷차림과 표정, 그리고 위 사진의 소박한 식당에서 발견했다. 전철 안의 사람들을 사진에 담아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나이든 노인에게 기꺼이 자리를 양보하는 장면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언젠가부터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어서 그런지 더욱 정겹게 다가왔다. 조금은 덜 세련되고 낡은 모습들이 그립게 다가왔다.

 

 

 

(까르프 식당가에서 밥을 먹고 난 후 호텔로 돌아갈 걱정을 하고 있는데 여주인이 친절하게 적어준 글이다. 타이페이는 지하철이 매우 편리하여 사실은 이런 쪽지 없어도 대충 물으며 다닐 만하다. 하여튼 대만 사람들은 대체로 무척 친절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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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4-03-22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 까프프매장은 젠난루역 메리화백화점 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