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모를땐 하얀 태양 바라봐
얼었던 영혼이 녹으리
드넓은 이 세상 어디든 평화로이
춤추듯 흘러가는 신비를
오늘은 너와 함께 걸어왔던 길도
하늘 유리 빛으로 반짝여
헤어지고 나 홀로 걷던 길은
인어의 걸음처럼 아렸지만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소중한 너를 잃는 게 나는 두려웠지
하지만 이젠 알아
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걸

용서해 용서해 그리고 감사해
시들었던 마음이 꽃피리
드넓은 저 밤하늘 마음속에 품으면
투명한 별들 가득
어제는 날아가버린 새를 그려
새장속에 넣으며 울었지
이젠 나에게 없는걸 아쉬워 하기보다
있는 것들을 안으리

삶은 계속되니까
수많은 풍경속을 혼자 걸어가는 걸
두려워 했을 뿐
하지만 이젠 알아
혼자 비바람 속을 걸어갈 수 있어야 했던 걸

눈물 잉크로 쓴 시 길을 잃은 멜로디
가슴과 영혼과 마음과 몸이
다 기억하고 있어
이제 다시 일어나 영원을 향한 여행 떠나리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간 끝나니까
강해지지 않으면 더 걸을 수 없으니
수많은 저 불빛에 하나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 바라봐

 

 

 

이런 노래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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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후 나이의 힘 8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리수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소노 아야코의 책. 이 분의 책을 전에 두 권 읽었었는데 기억에 남는 건 거의 없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편하게 다가오는 건 역시 똑같다. 나이가 들면 대부분 수다쟁이가 되기 마련인데 이 분처럼 이렇게 멋진 말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대로 늙는다는 게 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p.17  사람이란 지금까지 자신이 만났던 사람의 수만큼 현명해지게 된다.

 

p.28  내 관점으로는 부모든 자식이든 경찰서에 들락거리는 일 등을 하지 않으면 그런대로 괜찮은 부모와 자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가장 딱한 경우는 가족 중에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어, 어떠한 위로로도 풀리지 않는 외로움을 품고 사는 사람들을 볼 때이다.

 

p.31  중년은 용서의 시기이다....예전에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흉기라고까지 생각했던 운명을, 오히려 자신을 키워준 비료였다고 인식할 수 있는 강인함을 갖게 되는 것이 중년 이후인 것이다.

 

p.59  극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중년인 것이다.

 

p.111  내 경험상 체험이 아니라 지식으로만 터득한 것은 나의 피와 살이 될 정도의 정열로 발전된 것은 거의 없었다. 축적된 지식이 나의 체험에 힘입어 하나의 사상이 된 적은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 교육받은 것 중에는 순수하게 그 자체가 나의 신조가 된 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사람이란 자신이 체험한 것밖에는 알 수 없다는 사고에서 나는 지금까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p.124  젊었을 때는 정의라는 것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나도 정의를 대단히 좋아하나 나이가 들면서 정의라는 명분상의 정열을 앞세우기보다는 마음에 들지 않는 타인에게도 친절을 베푸는 것 등이 훨씬 어려운 자세이며 위대한 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128~137  자식이란 참 묘하게도 좋게든 나쁘게든 인생을 진하게 만든다. 기쁨도 증오심도 배가시킨다. 이것이 자식이라는 존재가 주는 선물이다....자식은 어디까지나 친근한 타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형무소를 출소한 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조용히 맞이하며, 목욕을 하게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놓는 아주 특별한 타인이다. 부모 이외의 어느 누구도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내가 자식을 친근한 타인으로 생각하려 하는 것은,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재간이 없는 슬픔이 여기저기 얼마든지 널려 있기 때문이다.

 

p.246  정의란 타인에게 갚아야 할 빚(신세)을 자각하는 것이다.

 

p.247  너무 빨리 완성되면 죽을 때까지 따분하고 무료해지고 만다. 나는 중년 이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러한 운명의 깊은 배려를 깨달을 수 있었다.

 

p.241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

 

길게 자란 파마 머리의 안쪽 뿌리 끝에

염색 안 된 희 머리카락이 무참하게 뻗어 나와 있어.

 

아 저 사람은 여자임을 포기했나보다.

그래서 다 시들은 나뭇잎 모양의

재색 폴리에스테르 블라우스를 입고,

거기에 짤뚝한 바지를 입고,

게다가 닳아빠진 구두를 신고,

안짱다리를 하고 있구나.

 

그때 마침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젊은 여인네가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등 돌리고 밖을 보며 서 있는데,

재빨리 일어나 젊은 여인에게 자리를 내준다.

 

여자임을 포기했어도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

 

 

구절구절이 속속들이 마음으로 다가온다는 건 나도 나이가 들고 있다는 증거. 제대로 늙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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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로 카이로는 '손'을, 프랙틱은 '기술'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름하여 '수기(手技)'라는 의미다. 이것은 원래 미국에서 생겨난 것으로 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주로 손으로만 시술하는 요법이라고 한다.

 

p.31 ...원래 병을 치료하는 데 약이나 수술을 필요 없다. ..우리 몸에는 스스로 병을 치료하는 힘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몸 안에 있는 자연치유력에 맡겨두면 건강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 책은 카이로프랙틱을 미국에서 공부하고 이 분야의 권위자가 된 일본의사가 썼다. 주로 어떻게 카이로프랙틱을 공부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환자를 치료했는지 등이 실려있지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설사 자세하게 치료방법을 설명했다해도 일반인이 따라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터이지만. 그나마 아쉬운대로 손쉽게 따라할 수 있는 핀포인트 요법이 하나 실려있긴 하다.

 

방법을 소개하면,

 

방법 1

1. 목의 힘을 빼고 얼굴은 정면을 향한다.

2. 귓볼 연결 부위에서 바로 뒤쪽을 더듬어보면 크고 딱딱한 돌출 부위(유양돌기)가 만져진다. 그 뼈가 불록 솟은 곳 바로 아랫부분이 포인트가 된다.

3. 두 손의 중지 끝으로 좌우 포인트를 동시에 가볍게 누른다.

4. 좌우 포인트를 눌러보고 통증이나 불쾌한 감각이 느껴지는 쪽이 접촉 포인트다.

 

방법 2

1. 목의 힘을 빼고 얼굴은 정면을 향한다.

2. 포인트가 있는 쪽 손의 중지 끝으로 포인트를 누른다.

3. 60초 동안 계속 누르면서 복식호흡을 실시한다.

 

이렇게 하면, '그동안 불편했던 증상이 간단히 사라지기도 하고 앓고 있던 질환이 호전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간 너무 열심히 일했나. 목과 어깨, 머리가 뻣뻣해서 병원에 다니다보니 이런 책도 눈에 들어온다. 이 책과 더불어 다음 책도 참고삼아 자가치료를 열심히 하리라고 마음 먹어본다. 아, 지금 근무시간이다.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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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기생 아닌 삶이 있는가.

새삼!

 

 

 

 

 

 

남한테 기대지 않는 삶이 불가능하다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싶다.

꼬여도 어떻게 저렇게 꼬일 수 있을까?

숙주인 붓꽃은 무슨 죄가 있어 저런 모신 고문을 당하고 있나.

마치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을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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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때와 장소에 따라 행동양식이 달라진다. 집에서 하는 행동과 밖에서 하는 행동이 다르다.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은 더더욱 그렇다. 집에서는 버릇없고 제멋대로지만 학교에서는 점잖고 고지식할 정도로 규율을 잘 지키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반대로 집에서는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아들딸이지만 학교에서는 자기중심적이고 학교의 규율 따위는 쉽게 무시해버리는 아이들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예전에는 주로 전자의 아이들이 많았다. 집에서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녀 때문에 속이 상한 부모는 학교선생님한테 도움을 청하곤 했다. '선생님 말씀은 잘 들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집에서는 모두 착한 아들딸이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지만 학교에서까지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한 태도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아이가 있다. 공부는 학급에서 좀 잘하는 편에 속하는 아이여서, 공부가 많이 뒤떨어지는 급우의 학습을 도와주는 멘토의 역할을 맡기게 했다. 그러나 평소 노는(?) 아이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수업 중에 엉뚱한 말로 수업분위기를 종종 흐리게 하는 이 아이는 자기가 맡은 역할에 관심이 없었던지 멘토가 해야 할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보다못해 멘토의 자격을 박탈하고야 말았는데 이 아이는 그에 대한 반성보다 멘토를 함으로써 얻을 10시간의 봉사시간을 얻지 못한 것에 대해 서운함을 표시했다.

 

이런 사정을 이 아이의 어머니께 말했다. 믿음이 좀 안 갑니다, 라는 말도 했다. 아, 이런 솔직한 심정은 그저 내 가슴 속에 묻어버리고 부모한테는 듣기 좋은 말을 해야 하는데, 선생은 원래 쓴소리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순간 아차 싶었다. 곧바로 이 어머니가 서운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책임감이 부족한 아이라면 책임감 있는 아이로 바로 잡아주는 것도 선생아니냐는 질책을 오히려 들어야 했다. 맞는 말이지. 씁쓸.

 

2학기 반장 선거가 끝나고 얼마 후, 이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반장선거 얘기가 나왔다. 자기 아이가 비록 반장선거에 떨어지긴 했지만 생활기록부에 한 줄이라도 반장 출마 사실을 기록해줄 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엉? 순간 당황했다. 이 아이는 분명 반장에 출마하지 않은 것 같은데...같은데...내가 벌써 건망증이...두뇌의 회로가 엉기기 시작했다. 얘가 반장선거에 나왔던가?

 

어머니 옆에서 전화통화를 듣고 있던 아이를 바꿔 달라고 해서 아이에게 물었다. "00야, 너 반장에 출마했었니?" " 아니요, 죄..죄송해요." 그 다음의 통화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어머니의 집요한 부탁은 기억이 난다. 2학기 때 멘토의 기회를 한 번 더 달라는 부탁. 그 부탁은 곧 나의 선생의 자질을 시험하는 계기가 되겠지, 하는 씁쓸한 여운.

 

자녀에게 거는 기대가 클수록 아이들은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위와 같은 행동을 한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착한 아들딸이 되기 위해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허나 아이들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이다. 학교에서는 고삐 풀린 뭐처럼 제 기량(?)을 꺼리낌없이 발휘한다. 가정에서보다 학교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한다고나 할까.

 

반장은 되지 못했지만 반장선거에 출마했다는 사실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해달라는 요청은 물론 한마디로 거절해버렸지만...좀 이해가 안 된다. 그게 왜 중요한지.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이게 부모가 당당히 요구해야 하는 사항인지. 한편 이 아이가 학교에서 왜 그렇게 점수에 집착하면서도 가볍게 행동하게 되었는지 대충 짐작이 되는 것이다.

 

가정에서 관리(요즘 흔히 care라고 한다)를 잘 받는 아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런 풍경을 종종 볼 수 있다. 분명 학교가 예전의 학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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