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을 꼽으라면 내가 출근할 때 산책하는 사람들이다. 전의를 다진 출근길에 한가롭게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면 맥이 풀리곤 한다.

 

오늘 아침 모처럼 산책에 나섰다. 식구들 챙기다보니 이미 시간이 저만큼 흘러 있었다. 어쨌거나 아침이다.

 

 

바랠대로 바랜 입간판 뒤로 보이는 저 길을 걸어 퇴근한다. 10년 째다. 그간 입간판이 이런 모양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내 나이 먹는 것만 서러워했지 이 입간판을 눈여겨 보지는 않았다. 보는 것이 보는 게 아니고 아는 것이 아는 게 아니다.

 

 

 

노란 무늬에 반하다.

 

 

 

 

이름은 모르지만 이 거미, 이미 만다라의 세계다.

 

 

 

 

퉁퉁마디에도 가을이 들었다.

 

 

 

 

너도 버티는구나.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첼 카슨의 책. 어린이들에게 자연을 느끼게 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어른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자연에 대한 경이의 감정을 간직하고 강화하는 것, 인간 삶의 경계 저 너머 어딘가에 있는 그 무엇을 새롭게 깨닫는 것, 이런 것들은 어떤 가치를 지닐까?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을 즐겁고 기쁘게 보내기 위한 방법일까? 아니면 그 이상의 어떤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나는 확신한다. 거기에는 분명히 매우 깊은 그 무엇, 언제까지나 이어질 의미심장한 그 무엇이 있다고. 과학자든 일반인이든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삶의 고단함에 쉽게 지치지도 사무치는 외로움에 쉽게 빠지지도 않는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서 일상에서 분노하거나 걱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의 평안에 이르는 오솔길 하나를 간직하고 있다. 그 길을 걷다보면, 분노와 걱정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활력과 흥분을 되찾을 수 있다.

철새의 이주, 썰물과 밀물의 갈마듦, 새봄을 알리는 작은 꽃봉오리, 이런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뿐더러 어떤 상징이나 철학의 심오함마저 갖추고 있다. 밤이 지나 새벽이 밝아오고, 겨울이 지나 봄이 찾아오는 일. 이렇게 되풀이되는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인간을 비롯한 상처 받은 모든 영혼이 치료받고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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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처럼 여행하기
전규태 지음 / 열림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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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개월 시한부 인생의 췌장암 선고를 받고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죽음을 극복한 이야기'

 

신문에 이 분의 기사가 났을 때부터 이 책이 궁금했는데 마침 도서관 신간도서로 구입하게 되었다. 기다렸다.

 

'역경을 극복'한 분의 글은 역시 한 문장 한 문장이 울림이 컸다. 강약으로 말한다면 책의 순서는 강-강 -약강-약으로 흘러 뒤로 갈수록 호흡이 차분해지고 관조적으로 흘렀지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쓰여졌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소장하지는 않을 터, 인상적인 부분을 옮겨본다.

 

'풍경'을 위해 인간이란 존재는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인간이 무용지물인 것이 풍경인 듯하다. 알프스와 같은 초월적인 풍경은 특히 그러하다. 인간은 아무래도 좋은 그런 풍경. 순수와 적요는 우리에게 그만큼 요원한 것일까.

 

지난 주 강원도 산골에서 마주한 보름 전야의 교교한 달빛. 달을 보고 소원을 빈다는 행위가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일로 보였다. 위 글을 읽고서야 그 기분이 어떤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풍경 앞에서 인간은 그냥 무용지물이라는 것. 깊은 산 속의 달빛은 이미 이 세상 것이 아니었다. 초월적인 어떤 것이었다. 인간은 아무래도 좋았고 아무것도 아니었다.

 

혼자 여행할 때면 자기 모습을 '유체 이탈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을 갖게 된다.

 

삶이 멜로디라면 사랑은 리듬이며, 죽음은 축제를 위한 취주악이다.

 

알 듯 모를 듯한 표현이다.

 

여행이란 스스로를 안전한 일상생활에서 긴장감이 흐르는 이질적인 세계로, 편리한 환경에서 불편한 환경으로, 호사스럽거나 넉넉한 생활에서 가난하고 모자라는 생활로 끌어내는, 끌어내리는 일이다.

 

고독은 혼자 있을 때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그 사이에 있다. 고독은 '사이'에 있으므로 공간과도 같은 것이다.

 

들판은 그의 서재, 자연은 그의 책이라네.      - 레오나르드 블룸필드

 

좌선(坐禪)보다 행선(行禪)이 더 깊다.         -틱낫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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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10-0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최근에 읽은 책에 `나에게 여행은 영혼의 비상식량이다` 라는 구절이 있더군요. `여행은 어떤 건강보험보다 확실한 마음의 보험이다`, `나에게 여행이란 내 안의 가장 밝은 빛을 꺼내 세상을 비춰볼 수 있는 힘을 회복하는 일이다` 라는 구절도 있고요. 좌선보다 행선이 더 깊다라는 글을 보니 생각이 났습니다.
인용해주신 문장이 다 주옥같네요.

nama 2015-10-03 07:22   좋아요 0 | URL
읽으신 책이 어떤 책인가요? `영혼의 비상식량`...멋진 표현이네요.
 

 

 

 

 

 

 

 

 

 

 

 

 

 

흐믓하게 이 책을 읽고 있다. 명사들을 손쉽게 만나고 있으니.

오늘 아침엔 안도현편을 읽다가 가슴이 푹 찔렸다. 어젯밤 고관절이 시원찮다고 투덜대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남편은 아마도 속으로 '저 엄살대왕'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아픈 것도 같고 안 아픈 것도 같은 몸을 이끌고 일찍 출근해서는 도서관에 혼자 앉아 있는데 다음 구절이 눈에 들어와 찔러댄다. 큭 큭 웃다가 옮겨본다.

 

안도현의 메시지:"시를 쓸 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해야 할 것

* 많이 쓰기 전에, 많이 생각하기 전에, 많이 읽어라.

* 재능을 기대하지 말고, 자신의 열정을 키워라.

* 언제 어디서든 메모할 준비를 해랴.

* 상투적이고, 익숙하고, 편한 언어들을 버려라.

* 소재에 집중하기보다 사물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에 집중해라.

* 필사적으로 필사해라.

* 고독을 즐겨라.

* 많이 경험해라.

* 모방을 배워라. 모방을 하면서 모방을 괴로워해라.

* 수십 번, 수백 번의 퇴고를 즐겨라.

 

하지 말아야 할 것

* 제발 시를 쓸 때면 그리운 척하지 마라.

* 혼자서 외로운 척하지 마라.

* 당신만 아름다운 것을 다 본 척하지 마라.

*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척하지 마라.

* 눈물 흘일 일 하나 없는데 질질 짜지 마라.

* 무엇이든 다 아는 척, 유식한 척하지 마라.

* 철학과 종교와 사상을 들먹이지 마라.

* 기이한 시어를 주어 와 자랑하지 마라.

* 시에다 제발 각주 좀 달지 마라.

* 자신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일기에 쓰면 된다. 시는 감정의 배설물이 아니라 감정의 정화조다.

* 특정한 상대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편지에 쓰면 그만이다.

 

"오래 들여다보면 모두 시가 된다."           - 이정록

 

 

아침부터 외롭고, 아픈 척 했는데 들킨 기분이다.

다행히 시는 안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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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 읽기는 집중도를 높인다. 시간이 잘 흐른다. 단, 적당히 읽을 만한 것을 읽을 때.

 

 

 

 

 

 

 

 

 

 

 

도서관에 신간도서로 비치했는데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다. 몇자라도 적어서 학교 홈피에 올려야되겠기에 읽기 시작했는데...재밌다.

 

엄마 없이 사는 시골농장의 세 식구. 어느 날 아빠가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를 구한다는 광고를 내서 Sarah 라는 평범하고 키가 큰(plain and tall) 여자가 들어오는데, 조건이 있다. 일단 한 달 살아보고 결혼여부를 결정짓겠다는 것이다. 어린 남매는 혹여 이 여자가 아빠와 결혼하지 않고 멀리 가버릴까 불안해하는데 말 한마디 한마디에 희망과 절망이 오간다. 새엄마를 향한 아이들의 마음 움직임이 눈물겹다. 담담한 수채화 같은 아름다운 내용이다.

 

아이들 책이지만 읽고나면 맑고 개운한 느낌이 난다. 좋은 책이다. 특히 거의 마지막 장면에선 눈물이 핑 돈다. Sarah가 마차를 타고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장면이다. 세 식구는 Sarah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Papa took the reins and Sarah climbed down from the wagon.

Caleb burst into tears.

"Seal was very worried!" he cried.

Sarah put her arms around him, and he wailed into her dress. "And the house is too small, we thought! And I am loud and pesky!"

Sarah looked at Papa and me over Caleb's head.

"We thought you might be thinking of leaving us," I told her. "Because you miss the sea."

Caleb은 어린 남동생, Seal은 Sarah의 고양이. "Seal was very worried!"라며 눈물을 터뜨리면서 새엄마의 치마폭으로 뛰어드는 어린 남자아이의 외로움과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한 폭의 그림같다. 아이들에게 읽힐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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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6년 전 이야기가 된다. 주문진 곰치국에 대해 한두 문장 쓴 적이 있다.

 

http://blog.aladin.co.kr/nama/3144110

(내 글을 내가 인용하자니 좀 멋적다.)

 

그때는 죽음을 앞둔 지인의 장례 등을 논의하는 상황이라 이 곰치국을 입으로 넣으면서도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생을 마감하는 분을 옆에 두고 무언가를 맛있게 먹는다는 행위가 미안하고 참 마뜩치 않았다. 평소 친하다는 친구분들의 식탐이 가증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별미를 찾다니...라고.

 

작년에는 남편의 산림기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실기시험을 위해 주문진에 두 번 왔었다. 여름에 치른 시험에서 탈락하여 가을에 다시 오게 되었는데 두 번 모두 주문진항 근처 모텔에서 묵었다. 아침식사가 되는 식당이 있을까 싶어 알아보지도 않고 미리 준비한 퍽퍽한 빵과 달착지근한 우유로 아침밥을 대신 했다. 잘 넘어가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아침밥을 먹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애써 참아가며 먹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남편이 친구분들과 짧은 여행을 하던 중 아침밥으로 주문진 곰치국을 먹게 되었단다. 알고보니 우리가 두 번씩이나 묵었던 주문진항 모텔 바로 앞집에서였다고 한다. 친구분들과 곰치국을 맛있게 먹고 있자니 얼마 전 빵으로 때웠던 게 떠올랐다며 남편은 나에게 미안하다며 다음에는 꼭 곰치국을 먹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니까 일 년을 벼르던 일이다.

 

드디어 이번에 법수치에 가면서 남편의 약속대로 아침밥으로 곰치국을 먹게 되었다. 6년 전 속으로 욕하며 먹던 곰치국, 남편이 미안해하며 사주는 곰치국이었다. 새벽 4시 반에 집에서 나와 8시 쯤에 먹으니 배는 이미 고플대로 고파 있었다. 우리는 평소 아침밥을 6시 전에 먹기에 더욱 시장기가 심했다고도 할 수 있었다.

 

곰치국. 드디어 맛을 알게 되었다. 곰치에서는 살짝 홍어 삭힌 맛이 났고 함께 끓인 김치에선 구수하고 시원한 맛이 났다. 점점이 뿌려진 곰치알을 건쳐 먹는 맛도 일품이었다. 밑반찬으로는 청어알젓과 가리비알젓 등이 나왔는데 김에 싸서 먹는 청어알젓 맛 또한 별미였다. 오징어젓이나 명란젓과는 다른 청아한 맛이 난다고 할까. 느끼함이 없었다.

 

곰치국을 맛나고 흡족하게 먹으며 나는 6년 전 속으로 욕했던 분들에게 사과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땐 제가 좀 어렸었나봐요.'하고 말하고 싶었다. 가는 사람은 가는 사람이고 남은 사람은 계속 살아야 할 터. 무언가를 맛있게 먹는 행위는 내가 아무 탈 없이 잘 살고 있으며 죽음이 아직 나에게 와서는 안 된다는 강한 주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적어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잠시나마 인간의 유한성을 잊을 수 있다. 더불어 삶의 괴로움과 피곤함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요즘같이 미래에 대한 불안이 팽배한 시절에는 온갖 매체마다 먹방이 사방으로 활개치며 사람들의 시름을 잠시 잊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단, 주문진 하면 곰치국이네, 라고 하기에는 가격이 저렴하지 않다. 메뉴판에는 아예 가격란에 '싯가'라고 쓰여 있다. 시세 따라 변동이 심한가 보다. 그제는 2인분에 3만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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