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8시 20분 부터 시작된 중학교 3학년 시학력평가는 오후 4시 30분에 5교시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시험과목은 국, 수, 영, 사, 과. 예종이 울리면 교사들은10분간 답안지와 시험지를 배부하고, 학생들이 치르는 실제 시험 시간은 70분씩이다. 가히 수능에 버금가는 중학생용 버전이라고나 할까. 워낙 이런 시험은 돌발적이고 연중행사용이라 한번 심하게 눈 흘기고 지나가면 되는 일이긴하다. 늘 그랬으니까. 그런데 오늘 시험은 너무나도 돌발적이라서 시험을 끝내고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방학을 앞두고 방학 계획을 세우지 않는가. 그때는 말 한마디 없었다. 냄새도 풍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개학이 되어 학교에 출근하고 교직원 조회에 들어가보니 바로 다음 날이 시험날이었다. 그것도 진짜 성취도 평가가 아니라 진짜 전국실시 성취도 평가를 대비한 모의 학력평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 시험의 실제 수준은 어떤가. 이런 시험을 대비하여 시험 때만 되면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영어 시험에서는 늘 모르는 단어가 나온다고 생각해라. 너희들이 그 많은 단어를 다 알겠느냐. 때에 따라 이 말은 교내 시험을 치를 때,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단어가 들어간 문제를 출제할 경우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오늘과 같은 시험에서는 평소에 내가 하는 이런 말들 가지고서는 약발이 서지 않는다. 차라리 솔직해지는 편이 낫다. 교과서는 별로 시험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너희가 알아서 사교육으로 실력을 끌어 올려라, 라고.  

전교 1~2등을 다투는 녀석에게 물어본다. 시험 볼 만하니? 네, 그저...괜히 물어봤다. 뻔한 대답인데. 다른 아이들은 아무도, 대답은 커녕 반응도 없기에 한번 예의상 물어봤을 뿐이다. 선두 그룹에 있는 몇 명에게는 실력을 테스트해 볼 기회가 되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별 의미도 없는 그저 시키는대로 치러야 하는 귀찮고 성가신 시험일 뿐이다. 교육도 1%만을 위한 교육이 되어 가는가.  

마지막 5교시, 교실을 나서려는데  비몽사몽을 오가며 시험을 치르던 앞자리의 한 남학생이 옆 자리의 친구에게 한 마디 툭 던진다. " 시간과의 싸움이다, 오늘 시험은."

몸서리 친 하루였다.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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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여행자 도쿄 김영하 여행자 2
김영하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285. 도쿄의 상점들은 많고 다양하지만 그 모든 상점에 다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코의 상점들은 사람에 따라 접근 가능한 층위가 나뉘어 있다....명쾌하게 그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더 깊이 들어갈 수 없는 어떤 단계가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그러니까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외국인도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는 가게들이 원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해 있다....일본어를 좀 하는 외국인이 들어갈 수 있는 가게들이 첫 번째 범주 안쪽에 있다....일본어를 유창하게 잘하고 일본의 문화에 정통한 사람만이, 아니 그런 사람조차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가게들이 있는 것 같다.....그렇게 상점 문화의 심장부까지 들어갈 수 없다 해도 어쨌든 도쿄에서의 쇼핑은 상당히 유쾌한 경험이다....전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취향과 고집을 가진 인간들이 친절하기까지를 기대하는 것은 본래 무리한 일이다. 오직 도쿄만이 그 예외이다.  
   

롤라이35 라는  카메라 얘기를 길게 할 때는 좀 짜증 나기도 했다. 별로 새로울 게 없다는 생각때문이었고 '책 한 번 쉽게 쓰는군.'이라는 불만도 생겼다. 이 작가가 찍은 사진도 좋지만 그래도 이 작가를 작가이게 하는 것은 결국 글이 아니던가.  

감칠맛 나는 글을 야금야금 읽으며 끝내 손에서 놓기가 아쉬웠다. 짧은 여행이 아쉽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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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홍콩 여행은 결국 쇼핑 여행이었다. 

아주 소박한 여행이라고 자부하는 우리 가족 여행이 이번만은 예외적으로 쇼핑으로 점철되는 여행이 되고 말았으니... 

여행을 끝내고 비행기에서 내리면 세관 심사를 거치지 않는가. 늘 배낭을 메고 다니다 보면 세관을 통과할 때 아무도 가난해 보이는 우리 가방에 시선을 두지 않는다. 나도 사실은 한번 쯤 가방 검사를 받고 싶은 거다. " 가방을 열어 보십시오."  "왜요? 걸릴 게 없는데요?" "그래도 좀 봅시다." "......" 이런 대화를 늘 상상하곤 하는 데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딱 한 번 있긴 있었다. 지난 번 인도 여행에서 돌아올 때 수화물로 부친 우리 배낭 중에서 큰 배낭이 영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있네.' 결국엔 맨 마지막으로 나오는 데 가방 전면에 웬 딱지가 붙어 있어서 읽어보니 문제가 있으니 확인을 받으라는 것이다. 검사대로 가 보니 가방 안에 20센티미터가 넘는 칼이 들어 있어서 걸렸다는 거다. 칼? 우다이푸르에서 산 은도금이 된 장식용 칼이었다. 말이 칼이지 칼날이라고 할 것도 없는 모양만 칼이었다. 게다가 20센티미터도 안된다. 담당자의 주의를 듣는 것으로 끝난 해프닝이었다. 

세 식구가 한 사람 당 티셔츠 한 장과 브랜드 신발 한 켤레씩을 샀다. 브랜드라야 우리가 평소 애용하는 프로스펙스나 아식스 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 불과하지만...이 기본 쇼핑 구조에 이런 기회가 또 있겠느냐며 남편이 조금씩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평소 우리 수준보다 약간 높은 티셔츠 한 장 추가, 독일제 트레킹화 한 켤레.(이걸 살 땐 내 인상이 더러웠었다고 한다. 뭘 또 사느냐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거기다가 등산 모자. 옆에서 구경만 하던 딸아이도 모자 한 번 써보더니 마음에 들어한다. " 너 그거 사야, 쓸 일도 없잖아, 학생이..." 내 말에 토라져버린 딸아이. "내께 없어서 맨날 엄마,아버지꺼 쓰잖아." "그랬었구나." 그래서 모자 추가. 

늘 백팩을 지고 다니는 나 역시 욕심이 있어 멋진 가죽 백팩을 사고 싶어했다. 홍콩섬의 스탠리마켓에서 여러 개를 보았지만 검증 안 된 물건들인지라 그냥 포기하고 왔었는데 마침 이곳 shopper's lane의 한 매장에서 자그마하게 생긴 백팩을 하나 찾아냈다. 핸드백보다는 크고 보통의 백팩보다는 좀 작은 크기에 방수 커버까지 갖춘 완전한 백팩이었다. 무엇보다 방수 커버가 마음에 들었다. 빗속 퇴근길용으로 딱이다 싶었다. 값을 치르고 다리도 쉴 겸 실내 벤치에 앉아 각자 전리품을 감상하는데 남편이 내 백팩을 유심히 보더니 한마디 한다. "태그에 웬 아이들 그림이야." 자세히 읽어보니 어린이용 등산용 백팩이었다. 그냥 아동용이라면 어떻게 써볼 셈이었는데 이건 유치원생이었다. 단어도 선명한 kindergarten! 왜 이제야 이 글자가 눈에 들어오나. 그래도 혹시나 해서 어깨에 메어보니 끈 길이는 다 맞는데 모양새가 영 말이 아니었다. 메어보나마나한 일. 추가비용을 치르고 다른 것으로 교환하는 데 옆에 있는 딸아이가 창피하다며 시종 입을 다물고있다. 입가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나 역시 웃음을 무느냐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 저 청년말이야, 아까 나한테 물건 갖다 준 사람 아니지?" "응, 다른 사람 같애." 그런데 저 청년은 왜 아까부터 우릴 보고 웃는거야?"

쇼핑을 끝내고 밖에 나오니 밤 10시였다. 하나 더 살 게 있었는데 벌써 저 집은 셔터를 내렸다며 남편은 끝까지 아쉬워했다.  

마지막 날, 공항 버스를 타기위해 때마침 내리기 시작한 세찬 빗줄기를 뚫고 나아가는데...느닷없이 남편이 어떤 가게로 뛰어 들어간다. 티셔츠 두 장을 단숨에 고르고 단숨에 값을 치른다. 동네의 허름한 구멍 가게 같은 옷가게에서였다. 그렇게나 찾던 밤색 티셔츠가 아니냐며 흥분해 있다. 말리고 어쩌고 할 겨를이 없었다. 딸아이와 나는 황당한 시선을 주고 받고 있는데 남편은 너무나 즐거워하고 있었다. 화가 나다가도 일순간 안쓰러움 같은 짠한 마음이 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이삼일 후.  

"우리 또 홍콩에 갈 수 있겠지?" 

"또 가지 뭐." 

"쇼핑 또 하자. 당신 트레킹화 빨리 신어서 닳게 해버려. 그러면 또 사러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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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여행 방법은 이렇다. 

비행기 탑승을 기준으로 전반과 후반으로 나눈다면, 전반은 내가 맡고 후반은 주로 남편이 맡는다. 여행지 선정 및 일정 짜기, 항공권 확보, 여권 관리 및 비자 신청, 가이드북 및 달러 확보, 숙소 탐색 및 예약, 배낭 꾸리기는 내가 전적으로 담당하는 데 물론 남편의 옷이나 소지품은 남편이 챙기긴 한다. 그것마저 내가 해주길 바라는 눈빛이 간절하지만 요것만은 아니 되옵니다. 중간 중간 일이 되어가는 과정을 수시로 말해주지만 남편은 건성으로 들어줄 뿐, 나도 그저 혼자 신이 나서 떠들고 있다고나 할까. 여행은 준비 과정 자체가 이미 여행에 들어간 건데 이 즐거움을 남편은 나누려하지 않는다. 모르는 걸까, 모르는 척하는 걸까. 

내가 완벽하게 꾸려놓은 배낭(이번 여행에서는 세 식구 모두의 배낭 무게를 합쳐도 10kg을 넘기지 않았다.)을 남편이 손에 들고 현관문을 나서면 그때부터 내 임무는 일단락된다. 그리고 일단 비행기에 탑승하면 무수리였던 나는 이제부터 여왕의 자리에 오른다. 남편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여행지 탐색에 나서기 시작한다. 준비 과정에서 온갖 잡다한 정보를 미리 확보한 나를 데이터베이스삼아 지도부터 머리에 각인시킨다. 훌륭한 참모 덕택인지 아니면 타고난 공간지각력 덕분인지, 남편은 내가 그간 노력해온 과정을 단숨에 소화해내는 건 물론 지도력과 통솔력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현지에 도착하면 고개를 몇 번 두리번거리면서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을 잡는다. 내가 남편을 보고 이 부분에서 매번 놀라는 것은 마치 사전 답사를 갔다온 사람처럼 현지 지리를 금방 파악한다는 점이다. "우리 몰래 먼저 와 봤었어?" 한마디 해주면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남편, 귀엽다. 

주로 인터넷으로 책을 구입하지만 어쩌다 서점에 가게 되면 꼭 들러보는 곳이 여행관련서적 분야인데, 이곳은 갈 때마다 조금씩 놀라곤한다. 진화라고 해야할까, 진보라고 해야할까. 자고 일어나면 도로가 생기고 건물이 들어서는 것처럼 자고 일어나면 가이드북이 나와있고 여행 에세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이런 변화는 여행 과정에서도 일어나는데... 

분홍색과 하늘색(파랑색)으로 알록달록한 쿠폰북 모양의 항공권을 만져본 적이 언제였던가 싶게 이제는 e-ticket이 일반적이다. 이 e-ticket에 겨우 적응해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한 술 더 뜬다. 발권을 무인 발권기에서 하라는 거다. 이 무인 발권기를 kiosk라고 부른 다는 것도 대한항공의 집요한 홍보 때문에 알게 되었다. 이메일로 무인 발권 방법을 알려주기- 이 이메일을 읽어봤는지 확인 이메일 다시 보내기- 출발 전날 휴대폰 문자메세지로 kiosk 사용하라고 압력가하기...완벽한 확인 사살이다.   

항공권 구입 과정에서 처음에는 애를 먹었다. 여행사(<여행박사>)에 대마도행을 일단 예약부터 하고보니 부산대리점으로 자동 연결이 되어서 부산 사람들의 구수한 사투리를 듣게 되었다. 개별 여행은 힘들 거라는 직원의 상담에 의기 소침해져 며칠 대마도행을 고민하다 취소하고 결국 홍콩행 항공권 구입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는데, 그런데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이 인천이라고 말을 했었건만 부산 출발의 비행편을 예약하는가 하면 인천 출발은 서울 본사에서 알아봐야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자판 몇 번 두드려보면 다 나와있을텐데..귀찮아하는 게 역력하여 모두 취소시켜 환불 조치해버렸다. 

환불 조치 전에 그 여행사 사이트를 자세히 살펴보니, 항공권 구입을,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내 마음대로 항공사를 선택하고 예약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자신있게 환불을 요구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예약금을 환불하지 않고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같은 여행사이니까. 그러나 귀찮아하던 그 직원과 다시 통화하기가 싫었다. 사람이 오히려 불편한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여행사 직원이 친절할 필요가 없었던 이유가. 항공권 구입부터 공항에서의 발권이 모두 컴퓨터를 상대로 이루어지니, 80년대 초반 일찍 결혼한 친구들의 제주도 신혼 여행 때의 왁자지껄한 공항 배웅같은 것은 구전되어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이제 여행은 배웅도 환영도 없는 일상일 뿐이다. 

이렇게 컴퓨터를 상대로 한 일방적인 구입 행위를 통해 그나마 저렴해보이는 대한항공을 이용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숙소는? 어느 여행관련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홍콩 시내 중심가(침샤츄이지역)에 한인 민박이 여러 개 있었다. 그 주소이다  

http://www.hansungmotel.com/ 

http://www.monicamotel.com/ 

http://www.parkmotel.co.kr/

http://www.motelgreenhouse.com/ 

이 외에도 더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우리는 이 중에서 모니카모텔에 묵었다. 이 숙소에서 좀 놀라웠던 점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여행층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부모 따라온 10대부터(우리 딸) 머리 희끗희끗한 60대까지를 이 짧은 기간에 모두 보았으니 말이다. 정해진 밥 시간에 식탁에 앉아서 밥을 넘기고 있으면 이들을 향한 호기심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말을 걸고 싶고, 누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은근히 기대해보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아무런 얘기도 오가지 않는다. 묵묵히 밥만 먹는다, 모두들. 낡은 작은 건물의 2층과 3층에 있는 이 모텔의 숙박객은 모두 한국인이다.

외국에 있는 한인 운영 숙소를 단순하게 구분하면 이렇다. 한국인만 찾느냐, 아니면 외국인도 찾느냐. 외국인도 이용하는 숙소라면 일단 기본 서비스는 갖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별 무리가없다. 그러나 한국인만 이용하는 숙소라면 최소 한가지 이상은 눈을 감아줘야한다. 화장실의 수도 꼭지, 샤워기, 변기 등의 시원찮음은 보통이다. 있잖은가.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70~80년대 관광지의 민박집같은 시설을 떠올리면 된다.  

내가 경험한 최악은 파리의 한인 민박이었다. 때는 90년대 중반. 허름한 창고 같은 임시 건물에 칸을 막고 합판을 깔아 마굿간 비슷하게 만든 조악한 시설물이었다. 게다가 아침, 저녁 밥으로는 김치 한 가지가 반찬의 전부였다. 같은 밥상에서 먹던 장기 투숙생이 남긴 계란 부침 한 조각이 그나마 주인 아주머니가 베푼 관용이라면 관용이었다. 그 계란 부침 한 조각에 남편은 끝내 눈살을 찌푸리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당시 임신중이었던 나는 그 음식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모멸감이라니. 그 주인 아주머니는 하루종일 기독교 성가를 크게 틀어놓고 늘 흥얼거리고 있었다. 차라리 뽕짝이라도 틀어놨더라면 덜 미웠을 텐데... 

우리가 3일간 묵었던 홍콩의 모니카모텔은 나의 오래된 구원(오래된 원망)을 한 방에 날아가게 해주었다. 아침, 저녁 식사가 모두 훌륭했다. 반찬을 세어보니 8가지, 국도 얼큰해서 하루의 피로를 풀게 해주었다. 물론 이삼일 있다보니 그 국이라는 것도 먹다 남은 반찬을 한꺼번에 넣어 끓인 것이긴 하지만 아침밥의 국은 그래도 늘 변한다. 해외에서 이 정도의 대접을 받아본 경험이 있었던가. 밥상만으로 이 모니카 모텔은 훌륭했다. 화장실 변기가 시원찮아 늘 물이 줄줄 새는 정도라든가, 세탁 건조기가 없어 세탁한 침구를 실내에서 선풍기로 말리는 바람에 숙소 전체가 세제 냄새에 잠겨있다던가 하는 열악한 부분이 있지만, 허나 숙박비가 저렴하지 않은가. 그래도 깨끗한 숙소가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늙어가나 보다. 그런데 왜 깨끗하고 멋졌던 숙소보다 늘 꾀죄죄하고 더럽고 보잘 것 없는 숙소만 기억에 남을까.

이 글은 믿을 수 없는 내 기억력을 위해, 나를 위해 남기는 정보이다. 다음에 홍콩에 다시 갈 때를 위한 글이다. 그래서 하나 더.  

  • 가이드북:"여행박사"에서 나온 소책자 <여행박사가 먼저 다녀온 홍콩배낭노트>와 얇은 가이드북 한 권이면 족하다. 이 이상이면 책에 치이게 된다. 가이드북이 진정 본연의 빛을 발할 때는 여행을 끝내고 나서이다. 가기 전에 읽으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여행 후에 읽게 되면 내용이 확실하게 머리에 들어온다. 마치 오답노트를 들여다보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나는 때때로 가이드북 없는 여행을 꿈꾸어본다. 잘 만들어진 각종 여행 안내서 덕분에 실제 외국어로 길을 묻거나 도움을 청할 일이 거의 없다. 외국어를 잘해야만 외국 여행을 잘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수정되어야한다. 적어도 홍콩 같은 대도시에서는 말이다.
  • 교통카드:공항의 customers service center에서 옥토퍼스 카드 구입(보증금 50$ 포함 150$). 온갖 탈 것을 택시를 제외하고는 다 타는 것 같음. 심지어 자판기의 음료수나 뽑기도 할 수 있음. 다 쓰고 나면 출국 전에 구입한 곳에서 Refund, please. 하면 7달러를 떼고 정산해준다. 
  • 우리의 남대문 시장이라는 몽콕 시장은 사람에 치이는 곳, 차분히 쇼핑하기에는 shopper's lane 이 좋음. 몽콕 시장에 있는 왠만한 브랜드는 거의 다 이곳에 있음. 가격도 같음. 
  • 한여름은 피할 것. 야외 사우나라고나 할까. 
  • 홍콩을 상징하는 한 곳을 뽑는다면?....홍콩섬의 에버딘이라는 곳. 잠깐 눈길만 주고 왔지만 참 묘한 풍경을 보여준다. 현대식 고층 아파트를 배경으로 포구에 여러 가지 선박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든다. 꼭 합성 사진 같다. 
  • (2010.8.12 추가기록) 지하철 Centra Staion 과 연결되어 있는 홍콩역에서 간단하게 출국 수속을 밟을 수 있다. In-town checkin이라는 표지판을 따라가면 간단하게 짐을 부칠 수 있어서 나머지 홍콩 여행을 가볍게 할 수 있다. 단, 약간의 수수료가 부과되는 데 수속시 지하철 개찰구처럼 생긴 지점을 통과해야 하는데 옥토퍼스 카드를 사용하면 된다. 몇십 달러가 드는 것 같은데 멋모르고 카드를 찍고 들어가는 바람에 꼼꼼하게 살피지 못했다.(마트에서 물건값 생각지 않고 마구 집어 넣는 습관 때문이리라.)이렇게 몸을 가볍게 한 후 란타우섬으로 가서 케이블카도 한 번 타보고 쇼핑도 하면 되는데, 주말에 케이블카를 타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엄청난 인파 때문이다....실컷 시간을 보낸 다음에 공항 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빙빙 돌아가고 갈아타고 하는 전철은 무시하시라. 란타우섬의 통총역 가까이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S1 버스를 타면 10분이면 공항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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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간:2009년 8월 14일~8월 17일 /*환율: 홍콩1$=약 162원

서울 사는 사람이 부산이나 혹은 광주쯤 갔다와서 기행문 따위를 쓰는 일이 있을까?  

홍콩이 그렇다. 바다 건너 다른 나라라기 보다는 좀 멀리 떨어진 여느 도시 같은 인상이기 때문이다. 홍콩과의 실제거리라는 것이, 서쪽 끝인 인천에서 동쪽 끝인 강릉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기도하다. 연휴나 휴가 때면 10시간 정도는 너끈히 걸리고도 남는 국토 동서횡단에 시달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홍콩까지의 비행 시간, 3시간,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거리라는 것을. 

캐세이퍼시픽 항공의 비행기를 싼 맛에 몇 번 타보면 언젠가는 홍콩에 내릴 기회가 오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내 얘기다. 그래서 홍콩은 애써 피했다. 어차피 한번쯤 가게 되리라 생각했었다. 유럽 갈 때, 인도 오갈 때, 툭하면 들르는 도시가 홍콩이었다. 그러니 나의 홍콩 경험이란 것이, 참새 방앗간 같다고나 할까, 다음 비행을 기다리며 공항에서 시간 죽이기와 하룻밤 잠을 자면서 날짜를 보내는 bed city(?)가 전부인 셈이다. 결국은 지금까지 기회가 없었다는 얘기다. 흠, 부산에 몇 번이나 가봤던가. 광주는? 마음만 먹으면 주말에라도 갔다올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디 그런가. 

이번 여름 애초의 목표 여행지는 대마도였다. 늘 예산 걱정에 여행지 선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올해는 특히 대공사에 들어간 남편의 치과 치료로 선뜻 여행에 나서기가 두려웠다. 게다가 늘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내 불우하고 불쌍한 부모형제를 생각하면 우울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학교에서는 방과후 수업으로 몸의 균형이 깨져 몸은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여름방학마저 열흘간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방과후 수업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별도로 받는 이 방과후수업 수당 덕에 옴짝달싹할 수 있었으니 한편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일찌감치 대마도를 목표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의외로 공부하는 맛이 났다. 그간 제대로 아는 것도 없었다는 한탄 내지는 자책도 들어 모처럼 겸손해질 수 있었다. 대마도와 관련된 덕혜옹주까지 접근하게 되니 대마도의 역사 지도가 머리에 그려지기도했다. 특히 주강현의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를 통해서 역사를 보는 관점이 육지에서 바다로 확장되는 경험도 하게 되었는데 특히 바다를 무대로 세계를 주물렀던 제국주의 국가들의 활약상(?)은 정말 흥미진진한 읽을 거리였다. 이 책은 주로 우리나라를 둘러싼 식민 제국의 내용들이지만 이 책이 제시한 관점으로 아시아 일대의 국가들을 들여다본다면 무척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홍콩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대마도행이 홍콩행으로 바뀐 결정적인 이유는 여행사 직원의 시큰둥한 반응 때문이었다. 대마도는 대중 교통이 여의치않아 패키지로 가거나 자동차를 렌트해야한다고 하면서 걱정스럽게 상담을 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운전면허증마저 없고, 남편은 해외 운전 경험 전무. 패키지 여행은 아직 할 나이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고....부산 한 번 제대로 못봤다고 날 잡아 부산 가듯 그렇게 가게 되었다, 홍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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