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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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이 있는 책이다. 당차고 야무지다. 그리고 자유롭다.

p.163 한우물을 파야한다... 집단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한 영역씩 맡아서 한우물을 죽어라 파주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각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건 어쩌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일 수도 있다. 난 이 거대한 사회의 나사가 아니다. 나 혼자서도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구성할 수 있다. 여러 우물을 파면서, 세상의 모든 재미를 두루 즐기면서. 

194. 한국사회에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겹겹이 둘러싼 허물들이 있다. 결혼전까지는 간신히 모르고 살다가도 결혼을 하고 단 몇 년 만에 완전히 온몸으로 체득하고 뼈저리게 부딪히며, 저항할 수 없이 미끄러져 들어가 투항하게 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다양한 기제들. 

289. 모든 진정한 예술작품은 시대에서 튕겨져 나간다. 시대를 저항하고 조롱하고 비판하며 앞서 나간다. 우파는 오른쪽으로 가기 보다는 주어진 길을 가는 사람들이며, 좌파는 현상을 까뒤집어보고 다른 각도에서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이다. ...우파는 사람들을 얌전히 성냥갑 안에 넣어놓고 통제하려 들며, 좌파는 어떻게 해서든 그 통제의 틀을 뛰쳐나오려 한다. ..최근 들어 깨달은 좌와 우에 대한 가장 명확한 정의는 전자는 생명을 지향하고 후자는 죽음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정신의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조화로운 상생을 꿈꾸며 깨어있는 존재가 좌파라면, 텔레비전 앞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일찌감치 자신의 영혼을 무덤 속에 파묻고 보수언론의 선동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생태를 파괴하는 것이 발전이라고 믿는 쪽이 우파다. 우파가 가장 싫어하는 좌파의 부류가 생태주의자라는 사실이 어떻게 우연일까.

얼마 전 읽은 김점선의 책이 떠오른다.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정신들이 있고, 그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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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미국에 관한 리스트를 하나 만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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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정경옥 옮김 / 살림 / 2009년 4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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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6월 22일에 저장

말 많은 책. 잡다한 내용이 수두룩해서 읽다보면 재밌다가도 제풀에 지침. 영어 단어 어원 몇 개 건질 수 있음. 인내심을 가지고 완독, 노력에 비해 득이 많지 않은 책. 당분간 빌 브라이슨은 멀리해야겠음. 말을 많이 들으면 귀가 따갑듯 눈이 따끔거림.
2009.6.22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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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미국을 누비다
장원용 지음 / 스토리나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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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2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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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어느 경제학자의 미 대륙 탐방기
마이클 D. 예이츠 지음, 추선영 옮김 / 이후 / 2008년 6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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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오전부터 내리는 비가 추적추적 계속 내리고 있다. 혼자였다면 그냥 집으로 곧장 가련만 옆에는 늘 걸어 다니는 민선생이 있다. 1/3 정도만 같은 길을 걷다가 나머지는 각자 방향이 남북으로 갈리는 반쪽짜리 길동무이다.  

까짓거. 우산도 있겠다, 바람막이 옷도 입었겠다, 비 맞으며 걸어보는 것도 오랜만이네, 하며 호기있게 생태공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왠걸. 비바람이 만만치가 않다. 우산살이 거칠게 휘어지며 바람에 저항한다. 여기서 방향을 틀면 곧장 집으로 갈 수 있는데, 마음이 약간 흔들린다. 그러나 길동무 덕에 다시 걷기에 충실해진다. 이 못말리는, 그러나 좀 미련한 착실성! 

얼마 후 낚시터로 향하는 언덕 길. 저 앞에 하얀개 한 마리가 서 있다. 평소 개를 몹시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민선생은 벌써부터 안색이 불편해 보인다. 걸죽한 입담으로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그녀도 개에게는 한없이 약한 존재다. 혼자 보기 아까운 얼굴이다. 

개가 우리 옆으로 오더니 우리 얼굴을 바라보며 종종 거리며 따라 붙는다. 우리를 향한 적의는 없어 보인다. 여느 집에서 기르는 개처럼 우리를 향해 짖어대지도 않는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 가까이에서 그리 빠르지않게 왔다갔다하며 무언가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왜 그러니, 개야. 우리 좀 그냥 가게 해주라, 제발.  

그리 위협적이지 않아서 그냥 가던 길 계속 가는데 어디선가 깨갱거리는 강아지 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보니 폭이 60~70여 센티미터되는 수로에 어린 강아지 한 마리가 빠져서 발이 물에 잠긴 채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 그랬었구나. 새끼 구해달라고 어미개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었던 거구나.  

새끼를 도로 위에 올려 놓는다. 자, 됐다. 엄마랑 함께 가거라. 그런데 새끼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고 어미개는 계속 우리를 따라온다. 왜, 따라와? 새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란 말이야. 20여 미터를 멈칫 멈칫 따라오던 어미개는 계속 끙끙대는 새끼 때문에 우리 뒤를 따라오기를 그만둔다. 그러나 새끼에게 곧장 달려 가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어쩔줄 몰라한다. 저 어미개도 어디가 아픈가. 아니면 가문이 있는 개인가. 행동이 신중하고 매우 점잖다. 

더 이상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어미개야. 개들은 물을 몹시 싫어하는 데 비마저 맞고 떨고 있으니, 어쩐다니. 새끼가 아무래도 다친 모양인데....무정한 인간들 같으니라구.... 

 

오늘은 작정하고 한 학부모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아빠의 이혼과 각자의 재혼으로 누나와 함께 단둘이 살고 있는 녀석의 엄마에게 그동안 벼르고 있던 말을 했다. 학교에서의 아이의 모습을 제대로 본다면 아마도 억장이 무너지실거라고. 의기소침, 거짓말, 무력감, 학습의욕 바닥. 쾡한 눈망울. 특히 그 무력감을 어머니도 보셔야한다고 했다. 공부에서 손을 놓은 모습입니다, 어머니. 아직은 절대적으로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입니다. 혼자 밥 해 먹을 수 있다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전화기 저 너머로 엄마되는 사람의 억장이 무너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책임을 지시란 말입니다, 까지는 말하지 못했다. 

다시 퇴근길. 60여만 평이 넘는 생태공원에는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다. 허기사 이런 날 누가 비 맞으며 운동하러 나오나. 시베리아를 걸어서 횡단하는 사람을 인터뷰한 텔레비전 장면이 떠올랐다. 가장 무서운 게 무엇입니까. 야생 동물보다도 사람과 맞닥뜨리는 게 더 두렵습니다. 장비와 비상 식량을 탈취해가면 제 횡단 여행을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거든요. 

끙끙대는 새끼에게도 선뜻 달려 가지 못하고, 혹시나 도움을 받지 않을까 인간에게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저 어미개의 머뭇거림이 긴 여운을 남긴다. 전화기 너머의 한 어머니의 숨죽인 흐느낌이 또 긴 여운을 남긴다. 

비바람 쯤이야 바람막이 쟈켓과 우산으로 가리면 된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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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미국을 누비다
장원용 지음 / 스토리나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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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미국을 싫어한다. 어려서부터 왠지 미국식으로 살아온 것 같은 생각에(미군부대 근처에서 태어나고 자랐음) 미국에 대한 동경 내지는 호기심 같은 것은 추호도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며 지내왔다. 남들이 미국 여행을 들먹일 때 나는 늘 코웃음을 치며 그쪽으로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여권과 돈만 있으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외국인데 유독 미국이라는 나라는 입국 조건이 까다롭고 비자 발급 받기가 어려운 나라로 사람에게 등급을 매겨 그네들 입맛대로 받아들이는 나라이다. '흥, 비자가 없어지면 그때나 한 번 갈까, 내 그런 나라에는 절대 안간다' 그랬는데 정말 비자없이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무엇인가를 혹은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을 보면 한심하고 답답하다. 예를 들면 전교조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이나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 단순함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찌 내 눈과 그들의 눈은 이렇게나 다를까.....이런 모습을 나는 내 자신에게서 발견한다. 내가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렇다. 

  그래서 나는 은근히 미국을 공부하고 있다. 제대로 된 시각을 갖기 위한 내 나를의 노력이다. 출근하면 먼저 인터넷으로 미국발 뉴스를 본다. 영국발 뉴스도 보는데 (둘 다 청취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나마) 귀에 더 익숙한 건 영국 발음이다. (내 귀도 주인을 닮아 미국쪽을 거부하는지..) 그리고 미국 여행기도 기회가 닿으면 열심히 읽어준다. 홍은택의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를 명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곰곰 따져보니 미국 관련 책은 별로 읽은 게 없다. 왜 그럴까? 궁금한 게 없기 때문? 미국 문화권 혹은 미국화된 문화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 때문? 평생을 옥죄고있다고 생각하는 영어 때문?

  미국에 관한 책은 그래서 일단 날을 세우고 보는 습성이 생겼다. 그러나 늘 읽지 않은 책을 쌓아두고 차일피일 미루는 고질적인 나의 안일한 독서 행태상 마음에도 없는 미국쪽 책을 그리 쉽게 집어들지는 못한다. 날을 세우고 책을 읽는 것은 고역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미국 관련 책은 집어 들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책. 한가족의 미국 여행기는 요란스럽지도 않고 어께에 힘을 준 책도 아니어서 읽는 내내 유쾌했다. 미국이라면 늘 날을 세우고 삐딱하게 보는 사람도 무리없이 볼 수 있는 책이고라고나 할까. 지은이의 소박한 심성이 곳곳에 드러나있어 마치 친구의 여행 얘기를 듣고 있는 것 같다. 낚싯대를 던지는 아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아버지 잘 만나 참 복도 많은 놈이다!' 생각하며 혼자 빙그레 웃었다고 하는 지은이. 이 말은 내가 우리 딸아이에게 여행 때마다 써 먹는 멘트다. 

  여행기를 읽는 재미 중의 하나는 '낯섬'이 주는 묘한 끌어당김인데 미국 여행기에는 그 '낯섬'이 절대 부족하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의 도시나 사람들 얘기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하다.여기가 미국인가?  부처님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손오공처럼 미국이라는 손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꼴이다.

  한 권의 부담없는 여행기를 읽고 소박한 독서의 즐거움이나 쓰려고 했는데 생각이 중구난방이다, 미국은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이 아니라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어려운 대상, 공부해야 할 대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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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양장) - 故 김영갑 선생 2주기 추모 특별 애장판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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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주인공인 사진작가 김영갑. 직접 그를 만난 적도 없고, 아는 사람을 통해 그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그가 찍은 사진을 직접 본 적도 없으니 내가 이 분을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제주 올레를 만든 서명숙이라는 분의 책을 읽다보니 사진 몇 점과 함께 소개가 되어 있었는데 그 사진에는 묘하게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부분이 있어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이 책을 집어들었던 것이다. 

4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그를, 나는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묵묵히 고집스럽게 그리고 지독하게 해나갔을 뿐이다. 외로운 길을 택한 것에도 나는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보낸 것에도 역시 필요 이상의 의미 부여는 하고 싶지 않다. 왜냐면 내 주위에는 독신으로 평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 언니가 그렇고 오빠도 그렇다. 물론 사정이야 다른 것이지만. 

외로운 예술가의 길 만이 고달프고 힘겨운 것인가. 10대의 자녀들을 남겨놓고 부부가 각기 제 갈 길을 간 사람들의 삶도 모질고 고달프긴 매한가지일 것이다. 나는 요즘 이런 사람들을 대하면서 선생이라는 단어가 품고있는 고전적인 가치 개념 같은 것은 개에게나 던져주자고 울부짖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을 옆에서 지켜주지 못하는 불량 부모들의 뻔뻔함에 기가 차다가도 그들의 고달픈 삶을 들여다보면 울컥 솟았던 분노도 수그러들곤한다. 누가 누구를....나도 알고 보면 불량 선생인 것을. 사는 것은 이래저래 만만치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자기식대로 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평생을 보낸다는 것은 어찌보면 대단한 행복일 수 있다. 배부른 나는 그래서 배고픈 예술가의 길을 하염없는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곤 한다. 나도 한 때 그런 길을 꿈꾸었기에...아직도 접지 못하는 꿈이 있다면 나도 마음껏 세상을 누벼보고 밤새워 글이나 그림에 빠져 몇날 며칠을 폐인처럼 지내보는 것...이 아닐런지. 이 책은 내가 그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애써 무시하고 잠재우고 있던 그리운 꿈을 새삼 되새기게 하는 것이다. 

우리 동네에는 다 쓰러져가는 소금 창고 몇 채와 과거의 모습을 되살려 학습장으로 삼은 염전밭이 전부인 습지생태공원이 있다. 억새와 갈대, 이름모를 벼과 식물로 뒤덮인 벌판의 한 쪽 끝에 서서 바람에 온 몸을 맡기면 나는 간단하게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늘과 갈대밭이 전부인 그곳에서는 하늘이 하늘답게 무한히 넓게 느껴지고 땅은 나즈막히 엎드려 있어 땅에 붙어있는 인간의 왜소함이 비로소 제대로 파악되는 것이다. 바람의 방향을 따라 한쪽으로 쏠리는 갈대밭의 장엄한 광경! 이 광경을 나는 김영갑의 사진에서 발견한다.  

외롭고 고독한 길. 그것은 바람을 찍고 바람을 살려내고 바람이 되어버린 자가 치러야 할 대가일지도 모른다. 

p.s  이 책을 읽으면서 문체의 맛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아 이상하다 싶었더니 구술로 쓰여진 책이란다. 어쩐지... 그래서 이 책에 있는 구절을 인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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