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어로 카이로는 '손'을, 프랙틱은 '기술'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름하여 '수기(手技)'라는 의미다. 이것은 원래 미국에서 생겨난 것으로 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주로 손으로만 시술하는 요법이라고 한다.

 

p.31 ...원래 병을 치료하는 데 약이나 수술을 필요 없다. ..우리 몸에는 스스로 병을 치료하는 힘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몸 안에 있는 자연치유력에 맡겨두면 건강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 책은 카이로프랙틱을 미국에서 공부하고 이 분야의 권위자가 된 일본의사가 썼다. 주로 어떻게 카이로프랙틱을 공부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환자를 치료했는지 등이 실려있지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설사 자세하게 치료방법을 설명했다해도 일반인이 따라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터이지만. 그나마 아쉬운대로 손쉽게 따라할 수 있는 핀포인트 요법이 하나 실려있긴 하다.

 

방법을 소개하면,

 

방법 1

1. 목의 힘을 빼고 얼굴은 정면을 향한다.

2. 귓볼 연결 부위에서 바로 뒤쪽을 더듬어보면 크고 딱딱한 돌출 부위(유양돌기)가 만져진다. 그 뼈가 불록 솟은 곳 바로 아랫부분이 포인트가 된다.

3. 두 손의 중지 끝으로 좌우 포인트를 동시에 가볍게 누른다.

4. 좌우 포인트를 눌러보고 통증이나 불쾌한 감각이 느껴지는 쪽이 접촉 포인트다.

 

방법 2

1. 목의 힘을 빼고 얼굴은 정면을 향한다.

2. 포인트가 있는 쪽 손의 중지 끝으로 포인트를 누른다.

3. 60초 동안 계속 누르면서 복식호흡을 실시한다.

 

이렇게 하면, '그동안 불편했던 증상이 간단히 사라지기도 하고 앓고 있던 질환이 호전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간 너무 열심히 일했나. 목과 어깨, 머리가 뻣뻣해서 병원에 다니다보니 이런 책도 눈에 들어온다. 이 책과 더불어 다음 책도 참고삼아 자가치료를 열심히 하리라고 마음 먹어본다. 아, 지금 근무시간이다.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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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기생 아닌 삶이 있는가.

새삼!

 

 

 

 

 

 

남한테 기대지 않는 삶이 불가능하다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싶다.

꼬여도 어떻게 저렇게 꼬일 수 있을까?

숙주인 붓꽃은 무슨 죄가 있어 저런 모신 고문을 당하고 있나.

마치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을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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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때와 장소에 따라 행동양식이 달라진다. 집에서 하는 행동과 밖에서 하는 행동이 다르다.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은 더더욱 그렇다. 집에서는 버릇없고 제멋대로지만 학교에서는 점잖고 고지식할 정도로 규율을 잘 지키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반대로 집에서는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아들딸이지만 학교에서는 자기중심적이고 학교의 규율 따위는 쉽게 무시해버리는 아이들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예전에는 주로 전자의 아이들이 많았다. 집에서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녀 때문에 속이 상한 부모는 학교선생님한테 도움을 청하곤 했다. '선생님 말씀은 잘 들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집에서는 모두 착한 아들딸이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지만 학교에서까지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한 태도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아이가 있다. 공부는 학급에서 좀 잘하는 편에 속하는 아이여서, 공부가 많이 뒤떨어지는 급우의 학습을 도와주는 멘토의 역할을 맡기게 했다. 그러나 평소 노는(?) 아이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수업 중에 엉뚱한 말로 수업분위기를 종종 흐리게 하는 이 아이는 자기가 맡은 역할에 관심이 없었던지 멘토가 해야 할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보다못해 멘토의 자격을 박탈하고야 말았는데 이 아이는 그에 대한 반성보다 멘토를 함으로써 얻을 10시간의 봉사시간을 얻지 못한 것에 대해 서운함을 표시했다.

 

이런 사정을 이 아이의 어머니께 말했다. 믿음이 좀 안 갑니다, 라는 말도 했다. 아, 이런 솔직한 심정은 그저 내 가슴 속에 묻어버리고 부모한테는 듣기 좋은 말을 해야 하는데, 선생은 원래 쓴소리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순간 아차 싶었다. 곧바로 이 어머니가 서운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책임감이 부족한 아이라면 책임감 있는 아이로 바로 잡아주는 것도 선생아니냐는 질책을 오히려 들어야 했다. 맞는 말이지. 씁쓸.

 

2학기 반장 선거가 끝나고 얼마 후, 이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반장선거 얘기가 나왔다. 자기 아이가 비록 반장선거에 떨어지긴 했지만 생활기록부에 한 줄이라도 반장 출마 사실을 기록해줄 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엉? 순간 당황했다. 이 아이는 분명 반장에 출마하지 않은 것 같은데...같은데...내가 벌써 건망증이...두뇌의 회로가 엉기기 시작했다. 얘가 반장선거에 나왔던가?

 

어머니 옆에서 전화통화를 듣고 있던 아이를 바꿔 달라고 해서 아이에게 물었다. "00야, 너 반장에 출마했었니?" " 아니요, 죄..죄송해요." 그 다음의 통화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어머니의 집요한 부탁은 기억이 난다. 2학기 때 멘토의 기회를 한 번 더 달라는 부탁. 그 부탁은 곧 나의 선생의 자질을 시험하는 계기가 되겠지, 하는 씁쓸한 여운.

 

자녀에게 거는 기대가 클수록 아이들은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위와 같은 행동을 한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착한 아들딸이 되기 위해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허나 아이들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이다. 학교에서는 고삐 풀린 뭐처럼 제 기량(?)을 꺼리낌없이 발휘한다. 가정에서보다 학교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한다고나 할까.

 

반장은 되지 못했지만 반장선거에 출마했다는 사실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해달라는 요청은 물론 한마디로 거절해버렸지만...좀 이해가 안 된다. 그게 왜 중요한지.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이게 부모가 당당히 요구해야 하는 사항인지. 한편 이 아이가 학교에서 왜 그렇게 점수에 집착하면서도 가볍게 행동하게 되었는지 대충 짐작이 되는 것이다.

 

가정에서 관리(요즘 흔히 care라고 한다)를 잘 받는 아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런 풍경을 종종 볼 수 있다. 분명 학교가 예전의 학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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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탁오(1522 ~1602)

명´청나라 교체기에 중국을 뒤흔들었던 사상가.

유학적 질서와 관습에 따라 살다가 가족들에 대한 책무를 다한 뒤에 스스로 머리를 깎고 중이 됨.

'자유로운 사상가'로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면도칼로 자살함.

연암 박지원이 이탁오의 영향을 받아 자유로운 문체를 구사할 수 있었음.

"지금까지 나는 개처럼 살았다."

"세상에 태어났으면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보아야 한다."

                ('강신주의 에피소드 철학사'강의록에서)

 

 

 

 

 

 

 

 

 

 

 

 

 

두툼한 이 책을 아무데나 펼쳐본다.

 

p368  ...얌전히 노예가 되었던 시대, 노예가 되려고 했지만 되지 못한 시대. 중국인에게는 이제껏 이 두 시대만이 있었을 뿐이다(루쉰의 말). 충효와 절의 같은 유교의 도덕은 모두 노예를 훈련하기 위해 마련한 규범이다. 마음을 깎고 뼈를 도려낸 2천 년의 세월 속에 중국인의 기질은 그렇게 유순하고 불쌍하게 변했다.

 

p.446 이지(이탁오)는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 세상에서 정말로 문장을 잘 짓는 사람은 모두 처음부터 문장을 짓는 것에 뜻이 있지 않았다. 그의 가슴속에 형용하지 못한 수많은 괴이한 일이 있고, 그의 목구멍 사이에 토해내고 싶지만 감히 토해내지 못하는 수많은 것이 있고, 그의 입에 때때로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것이 있어, 이것이 오랫동안 쌓이고 쌓여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형세가 되는 것이다. 일단 어떤 정경을 보고 감정이 일고 어떤 사물이 눈에 들어와 느낌이 생기면, 남의 술잔을 빼앗아 자기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에 뿌리고 마음속의 불평함을 호소하여 사나운 운수를 만난 사람을 천년만년 감동시킨다. 그의 글은 옥을 뽑고 구슬을 내뱉는 듯하고, 별이 은하에 빛을 발하면서 맴돌아 하늘에 찬란한 무늬를 만드는 듯하다......"

 

도서관에서 빌려왔으나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돌려주게 되었다. 언젠가 읽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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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밥상 위의 반찬이라곤 김치 두 어 가지가 전부인 날들이 많았다. 그럴 때 반찬 투정을 하면 엄마는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데 니가 웬 투정이냐.'고 하시곤 했다. 멸치가 들어간 찌게가 밥상에 오른 날엔 키 작은 형제들이 허리를 펴고 찌게 속의 멸치 사냥에 혈안이 되곤 했다. 그러나 더 이상 소박할 수 없는 이 밥상에 제일 맏이인 언니는 끼지 못했다. 넉넉하게 사는 서울의 작은 아버지가 데려간 언니는 아침마다 작은 어머니가 떠주는 뜨거운 물로 세수를 하고 부잣집 딸처럼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언니가 다시 집으로 내려온 것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였다. 식구들이 묵묵히 먹고 있는 밥상에서 언니는 자꾸 이유없이 웃곤 했다. 아마도 서울까지 통학하는 게 힘들어서일꺼야, 라고 엄마인가 우리 형제들 중 누군가가 그랬다. 집안에 우울감이 팽배해오기 시작하던 몇 개월 동안 그래도 밥상에는 식구들 모두가 둘러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2~3년 후 였나. 모처럼 온 식구들이 한 밥상에 앉을 수 있게 되었으나 언니의 병세는 훨씬 더 악화되어 있었다. 밥을 먹으며 아무도 즐거울 수 없었다. 그러나 언니와 함께 하는 이런 밥상도 얼마 이어지지 못했다.

 

몇 년마다 이따금씩 이런 우울한 밥상이 간헐적으로 이어졌으나 몇 년 후 부터는 아예 언니가 없는 식탁이 되어버렸다.

 

그 후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 밥상에 둘러앉는 식구들의 구성원에 변화가 생겼다. 아버지의 자리는 영원한 빈 자리가 되었고 며느리 하나, 사위 하나, 남자 아이 둘, 여자 아이 하나를 위한 자리를 새로 만들게 되었다. 또 한 명의 며느리를 위한 자리는 글쎄 채워지는 날이 올지 어떨지 모르겠다.

 

어제 병원을 옮겨 입원하고 있는 언니한테 갔다. 새언니가 준비해 간 죽을 언니가 맛있게 먹었다. 죽 속에 들어간 버섯을 이가 다 빠진 잇몸으로 부지런히 먹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난 머리와 앙증맞고 귀여운 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언니, 나보다 머리가 검네."

"큰 고모야 뭐 걱정거리가 있겠어요?"

 

병원의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면회를 서둘러 마치고 간호실 옆 로비로 나왔더니 30여 명의 환자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탁자를 길게 붙이고 의자를 정렬해 놓고 무엇인가를 기다리는지 환자들 대부분이 주변에 서 있었다. 각자 식판을 갖고 자리에 앉는지 앉아 있으면 식판을 갖다 주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가벼운 설레임 같은 분위기는 느낄 수 있었다.

 

언니를 부축하며 2~3m 걸어가는데 어떤 환자가 다가와서 언니를 데려갔다. 구부러진 허리 때문에 언니는 예전보다 훨씬 작고 훨씬 연약해 보였다.

 

준비된 탁자 앞에는 언니의 자리가 따로 있어서 아무도 그 자리에 앉지 못하게 한다고, 자주 병원에 오는 새언니가 말해주었다. 간호사들이나 환자들이 언니를 귀여워 해준다고도 했다. 그러고보니 환자들이 언니를 기다리고 있는 듯도 했다. 순간 언니한테는 환자들이 식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밥 먹고 밥 먹을 때 찾는 사람들이 식구지, 이따금씩 찾아오는 동생인 나는 손님이나 다를 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아픈 이후로, 언니 옆에 있는 저 환자들처럼 언니를 기다리고 언니의 자리를 찾아주고 언니를 환대한 적이 있었던가. 내 식탁에 언니를 불러본 적이 있었던가.

 

미안해,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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