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 팽개치듯 떠나는 여행.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놀고보자. 이번엔 미얀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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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미얀마 (버마)- Season 1 '14~'15
조현숙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4년 7월
17,500원 → 15,750원(10%할인) / 마일리지 870원(5% 적립)
2014년 12월 29일에 저장
구판절판
다른 가이드북에 비해 활자가 큰 편. 활자 큰 책을 고르게 될 줄이야...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나다 미얀마
차장섭 글.사진 / 역사공간 / 2013년 8월
24,000원 → 21,6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3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4년 12월 29일에 저장

교과서 같은 책. 구매하긴 했는데 읽기가 만만치 않을 듯. 여행 다녀와서 읽으면 더 확실하게 다가올 듯.
천천히 그러나 너무 늦지 않게 미얀마- 미얀마 여행기
정의한 지음 / 나다 / 2012년 11월
13,800원 → 12,420원(10%할인) / 마일리지 69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3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4년 12월 29일에 저장

때로 감정의 과잉이 거슬리지만, 자기가 좋아서 자기가 만든 책인데 뭐.
Burma Chronicles (Paperback)
Delisle, Guy / Jonathan Cape / 2011년 9월
47,470원 → 38,920원(18%할인) / 마일리지 1,9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4년 12월 29일에 저장

원서로 읽는 맛이 각별함. 가끔은 머리도 쥐어뜯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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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다가 울다가...재미있는 영화다. 너무나 친근한 소재, 이제사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육이오 이후 10년만 빼면 나머지는 내가 살아왔던 시대와 겹치기 때문이다.

 

흥남 부두에서 군함을 타고 피난 나오는 장면은, 수백 번이나 들었던 우리 어머니의 피난 이야기를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딸만 여섯인 우리 어머니 형제들은 모두 남으로 피난을 나왔지만 유일하게 외할머니만은 남으로 내려오시지 못했다. 팔순이 넘은 막내 이모는 지금도 육이오적 얘기가 나오면 함께 내려오시지 못한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신다. 큰 이모는 피난 중에 막내 아들을 전라남도 해남에서 출산했는데 그곳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해남이라는 아명을 붙여 지금도 본명 대신 이 이름으로 불린다.

 

영화의 한 장면. 미군들이 탄 차량을 아이들이 뒤쫓으며 '기브미초코렛'하는 장면은 내가 어렸을 적 모습 그대로이다. 오빠들을 포함한 그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흔히 하던 행동이었다. 우리 동네는 멀지 않은 곳에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라 미군들을 보는 것은 그냥 일상이었다. 우리는 자칭 국제도시에서 살았다.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 대학 친구의 언니가 파독 간호사였는데 튀니지 남자를 만나서 튀니지로 시집을 갔다...정도.

 

베트남전엔 우리 작은아버지가 군인으로 참전했었다. 동네에도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가 살았는데 우리 부모님과 매우 친하게 지내셨다.

 

세월이 흘러 1983년. 이산가족상봉이 시작되던 해. 아버지와 나는 여의도 KBS 방송국에 갔었다.

부모형제를 북에 두고 남동생과 단둘이 피난나온 아버지는, 그러나 이산가족 만남을 신청하지는 않으셨다. 그 이유를 여쭤봤던가, 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나는 고작 이 정도의 자식이었구나, 새삼 영화를 보면서 깨달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만 서운해했지 부모님의 마음을 읽을 줄은 몰랐다.

 

주~욱 나열하다보니..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다. 공감가는 부분도 많고. 그런데 옆에 앉은 딸아이도 영화에 푹 빠져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하는 말, " 나 눈물 흘리면서 봤어."

 

* 부부싸움하다가 국기하강식이 나오자 경건한 모드로 전환되는 장면이 무척 코믹했다. 저런 시절이 있었지 젠장. 그 시대를 말해주는 또 하나의 소재, 야간 통행금지가 빠진 게 좀 서운하다. 밤12시면 거리가 깨끗하게 정리되는 일상의 모습을 한 장면 넣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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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1-02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늦기 전에 아이까지 데리고 가서 이 영화 보려고요. 6.25나 베트남전은 저는 들어서만 알고 있지만 nama님 올려주신 글 읽어보니 1983년 이산가족찾기는 저도 기억에 있네요. 저희 집이 그때 방송국 근처에 살아서 버스 타고 학교갈때 매일 지나갔는데 방송국 건물 벽에 다닥다닥 빈틈없이 붙어있던 포스터를 보며 다녔지요. 미군들 나오는 장면은 제 남편도 보면서 감회가 새롭겠는데요? ^^

nama 2015-01-02 10:39   좋아요 0 | URL
세대를 초월해서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아요. 딸아이가 여간해서 영화 보다가 눈물 흘리는 아이가 아닌데 눈물 흘리며 봤다기에 저도 약간 놀랐어요. 헐리우드영화 못지 않게 심심할 틈이 없어요. 가족영화로는 대만족입니다.
 

 

 

 

맨날 땅만 보고 걷다가 작정하고 하늘만 보고 걸었다. 나무만 있는 단순한 풍경을 도시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빌딩도 아파트도 전봇대도 얼씬대지 않는다. 새들도 안전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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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교육계 '수업하는 교장' 논란-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670667.html

 

그러니까 벌써 40년도 더 된 옛날 일이긴 하다. 내가 살던 경기남부의 읍소재지에는 공립이 아닌 사립중학교만 4곳이 있었다. 작은 지역에 학교가 많다보니 두 학교는 한 학년에 각각 2학급, 3학급씩인 작은 학교일 수 밖에 없었다. 구슬상자를 돌려 분홍색 구슬이 걸렸던 나는 구슬색깔대로  하필  한 학년에 2학급인 제일 멀고 제일 작은 중학교에 배정되었다.

 

그때까지만해도 별 고생없이 살았던 나는 중학교에 다니는 일 자체가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버스정류장, 우체국 등을 지나서 동네 끝자락에 이르면 그때부터는 거의 트레킹 수준이었다. 밭 길, 논 길, 산 길, 과수원 길, 공동묘지 길을 모두 거쳐야만 학교에 다다를 수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도 40여 분이 걸렸다.

 

설립한 지 3년 밖에 안 된 우리 학교. 어쩌다가 지금의 아이들한테 내가 다니던 이 학교 얘기를 하면 나를 묘한 눈으로 바라본다. 마치 육이오적 얘기마냥 듣는다. 전기도 안 들어오고, 수돗물도 없고, 겨울엔 난로도 없고, 심지어 교실 바닥마저 초벌구이 모양 그대로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 말이 안 되는 학교에 다녔던 것이다.

 

더 말이 안 되는 건, 학교를 설립한 이사장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고, 선생님들이 월급을 안 준다고 수업거부를 하는 바람에 훌쩍훌쩍 울면서 그냥 집으로 돌아온 날도 있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모두 중학교 1학년 때 겪었다. 믿고 따르던 담임선생님은 월급 안 나온다고 우리반 아이들이 맡긴 장학적금을 월급 대신 챙겨서 학교를 그만두었다. 나는 아직도 그 이름을 잊을 수 없다. 노정자 선생님. 나도 반에서 두 번째로 저금을 많이 했었다. 우리를 '맹꽁이'로 불렀던 선생님을 우리는 친언니처럼 무척이나 따랐었는데...지금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오죽했으면.

 

3개 학년이라야 전부 6학급인 작은 학교에 교사 수가 많을 리 없다. 국어1, 수학1. 과학1, 영어1,사회1,음악/미술1, 가정1, 체육1. 체육 담당의 코치1. 그리고 한문은 교장선생님이, 도덕은 교감선생님이 맡으셨다. 교장인 한문선생님은 말주변도 없는 어눌한 분이셨지만 마음은 따뜻한 분이셨고, 도덕을 맡은 교감선생님은 외판원같은 매끈함이 돋보이는 분이었지만 어딘가모르게 퇴출 직전의 기생 같은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다.

 

이렇게 열악하기 짝이 없는 중학교를 다녔지만 이 학교에 다니고, 이 학교를 졸업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는 시기였음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그나마 '학교'라는 곳에 몸을 두게 된 것도, 오로지 중학교 교사로 만족하게 된 것도, 걷기를 좋아하게 된 것도, 모두 내가 졸업한 중학교의 영향이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써도 온 몸이 다 젖으면서도 산길을 걷는 기쁨은 청량감 그 자체였다. 잔디와 잡초로 무성한 산길에 작은 시냇물처럼 흐르는 빗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고, 초봄의 이름모를 야생초와 야생화나 늦가을의 단풍잎은 언제나 하교 시간을 늘어지게해서 집으로 걸어 가는데 두어 시간씩 걸리곤 했다.

 

그래서 영국의 서머힐 관련 책을 읽다보면 내가 다니던 중학교가 바로 서머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작은 학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한 경험을 작은 중학교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특히 선생님들과의 관계가 그랬다. 나야 워낙 외톨이 성향이 강해서 선생님 자체를 두려워하고 가깝게 지내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선생님들과 스스럼없이 지냈다. 물론 그 선생님들 중에는 교장,교감 선생님도 들어 있다. 약간의 경계심과 거리가 있었지만 수업 중에 만나는 교장, 교감 선생님의 약간은 초라하고 쇠락한 분위기에서 삶의 이면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교장, 교감도 수업에 투입하라는 경기도 교육감의 발언이 옛추억을 떠올려서 오늘 아침나절을 이런 글을 쓰느라고 애쓰고 있다, 지금.)

 

위의 한겨레신문 기사에 <교총은 ‘수업하는 교장’ 대신 학교 경영자로서 ‘연구하는 교장’을 제시하면서 이 교육감의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는 구절이 있다. '연구하는 교장'이라고라...물론 연구는 한다. 어떻게 부수입을 챙기나, 어떻게 술자리를 만드나...지금까지 학교 현장에 있으면서 책 읽는 교장을 몇 명이나 보았을까. 책 읽는 교장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는 건 내 기준이겠지만 나는 적어도 교장이라면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지 않는 교장은 내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연구하는 교장'은 곧 책을 읽는 교장이고, 책 읽는 교장이라면 아이들과도 능히 소통할 수 있다고 본다. 교장이 누군가. 교사중의 교사, 최고의 교사가 아닌가. 이 분들이야말로 아이들을 최고로 잘 가르칠 수 있는 분들이어야 한다. 교장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를 아이들이 어떻게 감히 거부할 수 있겠는가. 일반평교사는 담임을 한 해만 하지 않아도 빈 틈이 생기고 긴장감이 떨어져 업무가 느슨해진다. 하물며 수업과는 거리가 먼 교감, 교장은 어떠하랴.

 

결론은....교장, 교감에게도 수업할 권리와 의무를 주어라. 교육현장이 많이 바뀔 것이다. 가히 혁명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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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띠 2014-12-25 1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직 교사다. 24년차되는.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친.

흔히 학교 밖에 있는 분들은 이 글을 쓰신 분처럼 교감이나 교장이라면 교사 중의 교사 최고의 교사라고 본다. 그런데 학교 안에서 보는 교감이나 교장은 글쎄..... 수업하기 싫어서 또는 담임하기 싫어서 교감이나 교장이 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아니 거의 99.99%가 그렇다. 아니면 권력지향적이다 보니 교장이 되는 경우이다. 그런 교감과 교장에게 수업을 하라는 것은 교육계를 떠나라는 말처럼 들릴것이다. 아니면 수업을 하는 교장에 대단히 모멸감을 느낄 것이다.

내가 만나 본 교장 중 책을 가까이 하고 늘 책을 읽는 교장은 딱 한 분 뿐이었다.그 분은 평교사였을 때도 어마어마한독서광이셨고, 교감을 거쳐 교장이 되었을 때에도 닥치는 대로 읽는 분이셨다. `연구하는 교장`은 바로 이런 분에게나 붙일 수 있는 표현일텐데 위 글을 쓰신 분의 표현처럼 대부분의 교장은 정말이지 무지무지 독특한 연구(?)만을 하신다. 내가 아는 책 읽는 그 교장선생님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수업에 들어가고 싶어 하셨고, 선생님들의 갑작스런 결근이나 일들로 수업 결손이 생길 때면 어김없이 교실에 보강을 들어가셨다. 그리고 30 학급의 적지 않은 학교에서 전교생의 이름을 거의 다 알고 계셨다. 매일 복도를 순회하시고, 복도의 휴지는 맨손으로 스스럼 없이 줍고, 아무 때나 교실 뒷문으로 들어오셔서 교실 뒤에 놓인 휴지통에 손에 잔뜩 들고계신 쓰레기를 무심한 듯 버리고 가셨다. 그리곤 선생님들의 수업을 다 꿰고 계셨다.

이런 교장선생님을 이제는 볼 수 없다. 수업하기를 좋아하고 아이들 만나기를 즐기지 않는 교사는 교사도 교감도 교장도 더이상 아니다.

수업하는 교장, 그런 의무과 권리를 가진 교장이 탄생하는 날 대한민국의 교육은 살아날 것이다.


nama 2014-12-25 17:27   좋아요 0 | URL
99.99%..라는 표현, 제가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자제한 표현인데, 감사합니다.
책 읽는 교장, 저도 딱 한 분 뵈었지요. 역시나 다른 면모를 보였는데, 글쎄 교육청 입장으로서는 미운 털이었지요. 이런 분은 평생 두 번 만나기 힘들지요.

0.01%에 해당하는 교장이 설치는 교육현장이 되면 교육은 살아납니다. 분명.
 

 

 

퇴근길

 

물 위에 모여 있는 점들은 철새 오리떼

 

추울수록

겨울이 깊어질수록

차디찬 물 위에서 뭉치는 녀석들

 

추위도 제 것

공원도 제 것

세상이 온통 너희 것이구나. 

 

나는 오늘도 오리털 패딩을 입고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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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25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g폰 사진이 멋있어요 나름 분위기 있죠? 요새 화질 좋은 사진들이 많으니 상대적으로 분위기 있네요~ㅎㅎ

nama 2014-12-25 09:16   좋아요 0 | URL
2g폰도 처음 나왔을 때는 가히 충격이었지요. 사진까지 찍을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신기했는데 새록새록 신무기가 등장하니 머지않아 박물관행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라지기 전에 열심히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