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베낍니다.

 

   왕조의 안정적 유지는 한국사의 경우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특히 조선 왕조 5백 년, 그 5백 년 동안 인민은 왕의 목을 단 한 번도 치지 못했다. 두 번의 큰 전란을 겪은 무능한 통치를 하였음에도 왕이 처단당하거나 왕조가 바뀌는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나라가 전란에 휩싸이고 백성이 도탄에 빠져도 정권의 책임을 물으며 역사의 당위성을 부르짓는 경우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그 '조선의 안정'때문이었다.

   이러한 보수적 사회 분위기는 왕조가 망한 후 독립운동기에도 여전히 유효하였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겨 울분에 처한 나머지 자결을 한다거나 항일 독립군에 가담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왕조의 복원을 주장했다. 그들이 꿈군 것은 평등 사회 건설이 아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왕조를 유지한 이런 보수 이데올로기는 거의 천명과도 같았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분단과 내전을 거치면서도 바뀔 줄을 몰랐고,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사 독재 시기에도 여전했다. 어떻게 그렇게나 많은 국민을 학살하고, 이후 국민의 힘에 의해 정권이 굴복하고 결국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그에 대한 처단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법적으로 실형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이 전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그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온당한  대가가 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그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진실이 온전히 규명되지 않은데다가, 그 정도의 법적 실형으로 그들이 절절한 역사의 대가를 지불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일성 독재는 세습되어 김정일 독재로 이어지고 있지만 인민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김정일 이후 어떻게 될지 속단하기는 어렵겠으나 그 부자가 저지른 역사적 잘못을 인민들이 처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역사에서 위정자를 처단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그것이 이재수의 난이든 홍경래의 난이든 심지어는 '혁명'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준 갑오농민전쟁이든 모두 탐관오리 처벌이나 나아가 토지나 신분과 같은 제도를 개혁하기 위하여 싸웠을 뿐 체제를 전복하거나 왕을 처단하고자한 싸움은 아니었다.

   한국사에서 그나마 유일한 처단은 김재규가 저지른 박정희 암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중략)..김재규의 박정희 암살은 사회 변혁과는 연계될 수 없는 돌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처럼 근대 시민 세력이 성장을 해서 루이16세를 단두대에서 처단한 방식이든 영국처럼 유혈 사태 없이 타협을 통해 왕을 권좌에서 몰아내고 시민 권력을 이루어 낸 방식이든, 새로운 세력이 새로운 사회를 이끌어 내는 그런 역사는 조선에서든 대한민국에서든 북한에서든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중산층이 몰락하고 노동자, 농민, 빈민이 경제적으로 심한 곤란을 겪고 있다. 가정 파탄, 가정 폭력, 자살, 기아, 노인 학대 등으로 이어진  사회 문제는 늘 그렇듯 철저히 개인 문제로 치부되고 있다. 그만큼 이 사회는 안정되어 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사회에서 방치되어 있는 계층이 이렇게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나라는 없다. 총기가 난무하는 5.18 때도 전당포 한 곳 털리지 않았고, 전국에서 백만 명이 모여 촛불을 밝히면서도 사건사고 한 건 터지지 않았다.

   갈등이 사회 변혁으로 이어지지 않고 다시 안정의 기반이 되는 것은 퇴보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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