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미장원이나 이발소, 떡집, 약국, 국수집, 중국음식점, 분식집....이런 곳은 단골로 정해두어야 일상이 편하다. 특히 미장원이나 이발소는 내 마음에 맞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 일단 어떤 곳을 단골로 삼게 되면 한동안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남이 보기에는 그 헤어스타일이 그 헤어스타일로 보일 지 몰라도 내 딴에는 공을 들이는 곳이 머리카락이다.

 

우리 동네에는 남편이 단골로 삼은 남성전문커트가게가 있었다. 동네의 수많은 미장원과 이발소를 제치고 이곳을 단골로 삼은 이유는 단순하다. 가격 대비 솜씨가 출중한 미용사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손이 야무져서 새로 이발을 해도 가위자국이 남지 않아 매우 자연스럽고 유행을 따르는 듯 아니 따르는 듯 손님에 맞게 적당히 머리를 다듬어주었다. 그 '적당히'의 참맛을 아는 아줌마 이발사가 있는 곳이었다. 재밌게 생각되었던 건, 이 30대의 이발사는 보통 생각하는 성실성과는 거리가 먼 분이었다. 공휴일은 말할 것도 없고 평일에도 여의치 않으면 가게문을 열지 않았다. 손님들이 아쉬운 게지 이발사인 나야 아쉬울 게 뭐 있느냐, 는 식이었으나 그래도 가게는 늘 손님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친절하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하는 이발사였으나 머리 하나는 똑부러지게 깎았고 가격도 성인컷이 7,000원이어서 머리를 깎으려면 우선 가게는 열었는지, 기다리는 손님은 몇명인지 살펴보는 게 일이었다. 모든 기다림과 불편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한동안 매우 흡족해했다.

 

그런데 어느날 예고도 없이, 유리에 붙이는 종이쪼가리 하나 없이 그 이발소가 문을 닫아버렸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동네에 새로 들어선 미장원을 다니게 되면서 사유를 듣게 되었다. 문제는 임대료였다. 월세 60만원이었던 것이 갑자기 100만원으로 올랐다고 한다. 100만원이면 한 달에 (100만 원÷7000원= 142.86) 성인컷으로만 따져도 142명이다. 142명의 머리를 깎아서 그대로 가게주인에게 바쳐야 한다. 임대료라는 명목으로. 현대판 노예에 다름아니다.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평소에도 가게문을 성실하게 열지 않았던 (아마도 자존심 강한) 분이었기에 이런 상황을 참고 받아들일 수 없었으리라. 성실성에 억매이지 않고 배짱좋게 하고 싶을 때 일하는 그 분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는데, 매우 아쉽다. 그 가게앞을 지나갈 때마다 '꼭 성실하게 살아야 하나'를 늘 자문하게 했던 분. 어디에서건 무탈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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