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생이들이 모인 대표적인 집단에 소속되어 꼼짝달싹 못하고 있구나, 하는 무력감에 하루하루를 우울하게 버티고 있는 요즘이다. 어디부터, 언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는 지는 모르지만 갈수록 내가 있는 자리가 몹시 불편하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게 이렇게도 힘든 거구나. 엄마가 요양원에 계실 때 병원이나 병실을 옮기거나 침대의 위치를 바꾸기라도 하면 왜 그렇게 평소의 엄마같지 않은 반응을 보이셨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뒤늦은 후회라니. 진작에 알았더라도 상황이 달라졌을까. 엄마를 우리집에 모신다거나 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우리집에서 한번도 주무시지 않은 엄마에게 과연 우리집은 엄마에게도 '집'이 될 수 있었을까.
소설가 김영하가 감명 깊게 읽었다는 책. 유목민처럼 이곳저곳에서 살던 김영하를 땅에 붙들게 해준 책이라는데, 도무지 읽을 틈이 없다. 어쩌다 한두 쪽씩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언젠가는 완독하겠거니....
죄송합니다. 이 책에서는 딱 하나만 인용하겠습니다.
(부탄은) 꽃을 꺾지 않는 나라라는 것이다. 부턴의 어느 호텔이나 여관을 가도 화병에 생화 대신 조화가 꽂혀 있다고 한다. 꽃도 살아 있는 생명이기 때문이란다.
출근길 아파트단지에 피어있는 명자나무꽃을 꺾으려다가 마음을 바꾼 일이 있었는데 이 구절을 만나려고 그랬었나보다. 이 구절을 만난 이상 앞으로는 길거리에서 개나리꽃 가지 하나 꺾지 못하겠구나. 세련되지 못하고 값이 싸 보여 무시하던 조화, 이젠 '조화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할 듯.
죄송합니다. 이 책에서도 딱 하나만 인용하겠습니다.
녹색당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엘리트 중심주의를 돌파할 방안으로 추첨제 민주주의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미 대의원을 추첨제로 선출하는 방식을 시도하였고, 성공적으로 정착했습니다.
모든 '학교'라는 명칭이 붙은 기관의 장을 추첨제로 선출하는 방식을 잠시 생각해본다.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다. 점수를 따기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무수한 범생이들을 굴레에서 해방시켜줄 대안이 될 터인데...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