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이면, 으레 찾아오는 몸살을 이길 겸(92쪽)' 이 책을 집어들었다.

 

작년 봄, 도서관 담당을 하게되자 야심차게 천여 권의 책을 폐기했는데 이 책도 폐기목록에 들어 있었다. 그런데 차마 버리기가 아까워 집으로 들고왔었다.

 

주로 1990년대에 쓴 에세이라서 그런지 좀 낡은 감이 없지 않다. 소박하다고나 할까.

 

다음은 설렁설렁 책장을 넘기다가 발견한 구절이다.  

 

   둑에는 큰 나무를 심지 않는다. 언젠가 뿌리가 썩고, 그 썩은 뿌리는 홍수 때 수압에 못 이긴 물을 통과시켜 둑을 붕괴시키는 관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큰 인간을 중심이 아닌 경계에서 자라게 하고 썩혀야, 그의 뿌리가 썩어 변혁의 물을 통과시키는 관이 되는 것이다.

   이해를 잘 하려 들지 않는 판에다 큰 시인을 놓아두고 썩히면, 그의 뿌리가 썩어 정신적인 새 지도, 즉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즈음은 너무 빨리 세상에 알려져 썩을 기회를 채 갖지 못하고 베어져 화목이 되는 시인들을 여럿 본다. 어디 시인들뿐이랴. 소설가나 평론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되도록 남들이 심지 않으려는 데에다가 심길 것.

 

구석을 사랑하리.

 

 

얼마 전에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 며칠 동안 밤에 잠을 이루기 힘든 적이 있었다. 형편상 여행을 나설 틈을 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괴로웠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내가 그 동안 여행한 절들을 마음으로 찾아다닌 것이다......마음 속 절 방문으로 며칠 동안의 심한 고통을 줄일 수 있었다....우선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절은 조계산 동편에 있는 선암사이다. 경내가 온통 정원으로 되어 있고, 편히 누워서 쉬고 있는 노송도 하나 있다. 특히 매화가 필 무렵이면 이 세상 같지 않아, 나는 지난 몇 년간 계속 1박 2일로 다녀오곤 해왔다. 매화의 절정기는 사나흘밖에 안 되기 때문에 대개 하루 이틀 먼저 가거나 늦게 갈 확률이 많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매화 없이도 선암사는 충분히 아름답고, 또 절정기를 못 만나야 다음 해에 다시 달려갈 이유가 서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난 달에 다녀왔던 선암사의 매화 사진을 음미해본다. 시인은 마음으로 절을 찾아다니며 '마음 속 절 방문으로 심한 고통을 줄인다'고 하는데 나는 그나마 사진으로라도 2월의 심란함을 잠시 잊어보고 싶다.

 

 

 

새 학교, 새 학기가 기다리고 있다. 이때가 되면 떠오르는 농담 하나.

 

아들: 어머니, 내일이 개학인데, 학교 가기 싫어요.

노모: 얘야, 왜 그러니? 넌 교장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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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1 22: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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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1 22: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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