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지난 여름 어느 연수에서 였다. 첫날 첫시간, 개강식이 열리는 자리인데 국민의례를 생략한 채 연수가 시작되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라는 최소한의 의식조차 없었다. 이건 뭐지? 안해도 되나? 갑자기 어리둥절해졌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공공기관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연수는 첫날 첫시간을 의례히 국민의례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어디 연수뿐인가. 학교에서는 전체직원회의를 할 때마다 당연히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하기 마련이다. 성당에 들어갈 때 성수를 찍어 성호를 긋듯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국기에 대한 경례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 신성하다면 신성하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절차가 빠져버리니까 갑자기 숨죽었던 의식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안해본 짓을 해본다는 것, 반대로 해본 짓을 안해본다는 것이 뜻밖의 기쁨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국민의례가 빠진 연수기관에서 받은 연수는 아이러니하게도 광복 70주년과 관련된 독립운동과 인물에 대한 연수였는데 내용도 알차고 풍부했으며, 마치 내가 독립운동가가 된 기분이었다. 국민의례가 빠진 덕분에 신선해진 두뇌가 마음껏 활동했기 때문이었을까.

 

의식이 트인 기관장을 만나는 것은 분명 이 시대의 행운이다.

 

둘.

어제는 <여덟 단어>의 저자인 박웅현의 강연에 갔었다. ' 이 시대 최고의 크리에이티브 멘토, 박웅현 작가가 전하는 "창의적" 메시지' 가 그 주제였다. 그의 책 두어 권을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기대가 컸었다.

 

드디어 시작.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국민의례가 시작되어 가슴에 손을 얹었는데 잠시 후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애국가가 진행되는 동안 심장 위에 얹은 손이 꿈틀거리고 기분이 지루해지면서 자꾸 딴생각이 들었다. 손은 애국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애국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박웅현, 이 분의 강의는 좀 색다르게 시작했다.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일단 10~15분 정도 청중에게서 질문을 받아 화이트보드에 하나씩 적어나간다. 질문이 칠판 가득차면 하나씩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묘한 것이 결국은 진행자의 의도에 맞게 질문이 꿰맞혀진다는 것이다. 형식은 질문에 답변하는 식이지만 결국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얘기를 하는 셈이 된다. 방법만 다를 뿐이다.

 

하여튼 그런 그렇고. 첫 질문이 나왔다. 어떤 여자분이 손을 들었다. " 오늘의 강연 주제가 창의력인데 왜 꼭 국민의례부터 시작해야 되나요? 강사님은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첫 질문부터 만만하지 않다. 이후 여러 질문이 쏟아졌다. 대부분 창의력이 어떻게 길러질 수 있느냐가 주된 관심사였다. 전체적인 강연의 흐름은 나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썩 좋지도 않은 그저그런 수준이었다.

 

강연 도중 박웅현 이분도 뭔가 잘 풀리지 않는다 싶었는지 "오늘은 좀 뭐가 안 되는 것 같네요."라고 혼잣말 비슷하게 한다. 좀 그랬었다. 창의력을 말로 표현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차라리 창의력 있는 작품을 보여주는 게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면서, 기대에 못 미친 강연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았다. 무엇이었을까. 막힌 기분이 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음, 바로 그거다. 국민의례와 애국가. 죽어가는 창의력을 살려보려고 많은 사람이 모여든 강당에 울려퍼진 애국가. 애국을 강요하는 형식이 문제였다. 사람들이 이제는 알 것은 다 알고 있다. 이런 자리에서까지 애국을 강요하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애국가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하였더라면, 좀 더 창의력 있는 진행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되면 새삼 창의력을 주제로 한 강의가 필요 없게 되겠지. 그래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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