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국경을 넘을 권리가 있다 시 읽는 여행자
이승원 지음 / 홍익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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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시 기상. 오후 12시 취침. 기상과 취침 사이에는 '일'이라는 게 있다.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빼곡하다. 수능이 다가올수록 얼굴이 하얗게 바래가는 딸아이를 보면 그래도 '나는 편하지.'하며 속으로 꼬리를 내린다. 빨리 수능이라도 끝나야지 좀 살 것 같다.

 

띵한 머리로 책을 읽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는, 이미 출근은 했고, 시집 한 권 집어든다. 시 엮음집이다. 저자 소개란에 있는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20세기 초 조선인들의 해외 기행문>이었다.' 아, 내가 언젠가 국문학을 전공한다면 선조들의 해외 기행문에 대해 공부해야지, 하고 막연히 생각해왔는데 한 발 늦었구나, 하는 쓰라림.

 

피곤한 눈으로 책을 스캔하듯 뒤적거리다 한 페이지에 눈이 머문다.

 

 

                       이탈한 자가 문득

 

                                                            김 중 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

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

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

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

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

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이 되기는 두렵다. 그래서 이렇게 질기게 살아남고자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깟' 자유, 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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