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2015년 7월 22일 ~ 7월 27일(5박6일)
항공편: 진에어
숙박: sora house(게스트하우스)
동행: 중학교 때 내 짝꿍
"5박 6일이나? 오키나와를 다 밟고 올 작정인가..." 했던 남편의 말대로 오키나와를 다 훑고 온 기분이 든다. 숱하게 흩어져 있는 섬 하나를 못 가봤으니 사실 제대로 본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섬에 가려고 떼어둔 하루는 하필 태풍 때문에 항구에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고 이렇게 고스란히 남은 하루는 가본 데를 또 가보는 반복 학습의 시간이 되었다. 게다가 여행객이 모여드는 국제거리는 저녁마다 출근했고 나중에는 중국 정원, 왕궁의 별장...이런 데까지 가보았으니 미련없이 오키나와를 보고 온 기분이 드는 것이다. 오키나와인과 대화다운 대화 한마디 못해본 게 무슨 여행?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역시 '관광'에 머물고 말았다.
생각나는 대로, 기억나는 대로,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쓰려고 한다. 여행도 그렇게 했으니까.
여행 전, 나는 오키나와가 이런 풍경의 연속일 줄로 예상했다. 오키나와를 소개하는 여행 가이드북이나 여행기에는 어김없이 이런 예쁜 지붕이 등장해서 나를 설레게 했다. 이 주황색 지붕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남국의 태양, 눈이 시원한 들판, 예쁜 집들,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오키나와를 머릿 속에 그리면서 제주도를 연상하기도 했다.
이곳의 바다는 가슴과 눈을 시원하게 한다. 뜨거운 태양에 반쯤 익어가는 고통을 감내하며 즐기는 풍경이다. 38번 버스를 타고 1시간 가량 가면 된다. 남부 지역에 있다.
누가 보아도 알아맞힐 수 있는 저 자태. 코끼리 바위. 오키나와 북부에 위치한 만좌모라는 곳인데 이곳은 교통이 여의치 않아 9시간짜리 투어를 신청해서 다녀왔다. 단체투어라는 게 늘 그렇듯, 이런 멋진 곳에 우리를 내려 놓고는 달랑 20분만 준다. 결국 증명 사진만 찍고 왔다는.....
이런 바다에 누가 나를 밀쳐 넣어도, 절벽에서 떨어뜨려도 괜찮을 성 싶다. 우리에게 주어진 20분안에 이런 곳을 봐야한다는 건 고통이다. 찰나의 덧없음.
해양박 공원 츄라우미 수족관. 오키나와 여행의 필수 코스라서 사람들이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다. 저기 보이는 고래상어는 이런 인간들이 혹시 자신을 경배하기 위해서 모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데 유감이다. 이 커다란 수족관과 이 수족관을 둘러싼 넓은 해양박 공원을 보면서 '돈만 쳐바른 곳'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돈을 끌어모으기 위한 곳이라는 뜻이다.
그동안 내가 가본 수족관은 몇 개 안 된다. 국내 수족관은 갔었는지 가지 않았었는지 기억에 없고(분명 갔었는데), 해외에 있는 곳으로는 모나코와 뉴질랜드 수족관을 가봤다. 모나코는 20여 년 전에, 뉴질랜드는 12년 전에 갔었다. 모나코 수족관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다양한 해양 생물을 볼 수 있어서 감동이 컸다. 비싼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았고 각양각색의 해양 생물에 연신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뉴질랜드는 수족관을 만들기 위해 새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다른 용도로 쓰였던 건물을 재활용한 곳이어서 나름 의도가 좋아보였다. 남극의 펭귄을 몇 마리 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모나코에서 봤던 수족관이 내게는 수족관의 원형으로 비쳐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츄라우미 수족관은 규모만 크고 대표적인 동물이 고래상어라는 것뿐이지 그외 다른 것은 별로 없다. 물론 고래상어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작은 오키나와 섬에 이런 큰 수족관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꼭 고래상어를 잡아다 놓고 녀석에게 밥주는 모습을 시간을 기다려 지켜봐야하는지 모르겠다. 돈도 좋지만.
왼쪽의 상어의 두뇌, 오른쪽은 돌고래의 두뇌. 두뇌가 큰 돌고래의 머리가 좋을 수밖에. 그렇다면 저 위의 고래상어는 지능지수가 얼마나 되려나.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데 궁금하네.
오키나와의 수호신, 시사(사자).
시사
오키나와의 전통가옥. 집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돌가림막이 세워져 있는데 운치가 있다.
수족관에나 있음직한 물고기들. 맛이 궁금했으나...
역시 수족관에나 있을법한 소라를 시장에서 팔고 있다.
류큐왕국 시대의 슈리성(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음) 입구에 있는 나무. 나무는 뿌리가 깊어 살아남았으나 인간의 왕국은 덧없는 것인지...
슈리성 밑자락의 돌담길. 일본의 예쁜 길 100선에 든다나 어쩐다나. 이 길을 두 번 걸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길이다. 서울의 북촌이나 서촌같이 번잡하지 않아서 좋다. 두어 개의 찻집으로 만족하길...
역시 돌담길. 친구가 옆에 있어 좋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류큐 왕가의 무덤, 타마우돈.
타마우돈 클로즈업. 저 빗장걸린 문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의 문이다. 납골당스럽다.
류큐 왕가의 별장, 시키나엔.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세계문화유산 등록은 국력에 좌우되기도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중국식 정원, 후쿠슈엔. 그림엽서 사진이 되고 말았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이동하거나 시내 이동할 때 매우 유용한 유이 레일(모노 레일).
사키마 미술관. 가이드북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고, 나하시에서 약간 거리가 있는 기노완시에 자리잡고 있어 말 그대로 '아는 사람'만 가는 곳이다. 후텐마 미군기지와 붙어 있다.
http://sakima.jp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00552.html
미술관에서 나눠준 팜플렛에는 다음과 같은 사키마 미치오 관장의 말이 적혀 있다.
'철의 폭풍이라고 불리는 치열한 전쟁이었던 오키나와전쟁 이후의 변화는 너무 급격하고 지금도 계속해서 농락당하고 있는 오키나와의 상황 속에서 나는 아무래도 마음을 진정시켜 조용히 "사유하는 장소"를 건설하고 싶었습니다.
콜렉션을 관철하는 테마는 "삶과 죽음" "고뇌와 구제" "인간과 전쟁"입니다......"
우리가 미술관에 갔을 때는 '기억과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오키나와와 한국의 사진 교류전이 열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작가로는 이용남, 정주하, 한금선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동영상으로 제작한, 한 위안부 할머니의 "일본이 야비하긴 좀 야비하지요."의 말씀을 일본에서 듣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사키마 미술관은 특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했다던 서경식교수의 말이 아니더라도 오키나와에 간다면 한번쯤 들러봐야 할 곳이리라. 저들이 자랑하는 세계문화유산 어쩌구하는 것에 지면을 할애하고 이 미술관 소개를 쏙 빼먹은 가이드북 저자들에게도 이 미술관을 추천하고 싶다. 여행자들이 맨날 먹고, 자고, 쇼핑만 하는소비자들인가....생각도 좀 해야지.
전시된 사진과 글 중에서 하나.
'파주에 주둔하던 미군부대는 2006년 철수했지만 훈련장은 오히려 확대되었다. 일본의 오키나와, 괌, 하와이, 필리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파주의 훈련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파주에는 215만 평의 '스토리사격장', 175만 평의 '다그마노스 전차훈련장'과 '트윈브릿지'로 불리는 500만 평 규모의 '무건리종합훈련장'이 있다. 한국과 미국은 무건리종합훈련장을 500만 평에서 1,000만 평으로 확장하는 사업을 계획했다. 주민 600여 명은 훈련장 확장 사업에 반대했다. 이 마을은 조상대대로 400년이나 살아온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저항했지만 400년 된 마을은 분단 70년과 함께 모두 사라졌다.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또 다른 분단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 와서 우리나라의 이런 현실을 알게 되다니....
방명록에 남긴 글을 읽다. 나도 한마디 남기고 싶었으나 대절한 택시가 도착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누군가 이곳에 가시거든 제 대신 좋은 글 많이 남기고 오소서.
오른쪽 아래의 사각형이 미술관, 저 푸른 숲이 후텐마 미군기지. 내 친구네 가는 길에 미군부대가 있는데 만약 카메라를 들이댔다가는 당장 간첩으로 몰리는 그런 분위기를 풍겼었다. 이렇게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게 신기했다.
한금선이라는 작가의 사진과 함께 전시된 이 책. 읽어봐야겠다.
아메리칸 빌리지. 놀이공원에서 봤음직한 예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먹고 마시고 노는 곳에 불과하지만.
돈을 쳐들인 곳이라는.
대관람차 가는 길에는 일정한 거리마다 오른쪽에 보이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대피소가 그려져 있다. 바로 옆이 바닷가이다.
쓰보야 도자기 마을의 한 찻집. 이런 소소한 카페만을 전문적으로 소개한 가이드북이 인기를 끌고 있고, 그 책을 읽고 카페순례를 떠난 어떤 여배우의 책이 또 나왔다. 그런 책을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흉내를 내게 된다. 이런...근데 예쁘긴 하다.
슈리성 가는 길에 있는 초등학교. 이곳의 학교 건물은 초등학교건 고등학교건 하나같이 건물들이 우중충하다. 학교라기 보다는 무슨 교도소같은 인상을 준다. 감옥 같은 학교건물들이 자꾸 눈에 들어와서 찍었다. 예쁘게 꾸며도 시원찮을 학교 건물인데...
세이화 우타키
세이화 우타키(세계문화유산)
우타키....그냥 밋밋한 바위 같은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오키나와인에게는 매우 의미있는 곳이라고 한다.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2>에 우타키 얘기가 나온다. 리조트 개발로 우타키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주인공 이치로가 행동에 나선다는 내용인데 오키나와에 다녀오니 우타키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이해된다.
(301쪽) 선장과 그 일행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작은 광장이 있었고 돌담을 둘러싼 한 가운데에서 흰 옷을 입은 한 아가씨가 정성을 다하여 기원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섬의 신을 모신 우타키였고 기원을 올리던 아가씨는 신을 모시는 여사제였습니다.
그해는 초봄부터 가뭄이 계속되어 모든 농작물이 타들어가는 바람에 섬사람들은 먹고살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때 섬의 사제는 우타키에 들어가 하루 빨리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게 해달라고 신께 기원을 올리는 것이 임무입니다. 우타키 숲은 제사가 있는 날을 빼고는 여사제 이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특히 남자의 출입은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하고 싶었으나 게을러서 못다한 얘기
1. 사키마 미술관의 친절한 아가씨: 본의 아니게 일찍 도착한 우리를 위해 20여 분을 앞당겨 문을 열어주고 친절하게도 이곳저곳을 설명해주었다.
2. 소라하우스(게스트하우스): 미에바시역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50m나 될까?) 깨끗, 깔끔하다. 가격대비 매우 만족스런 곳.
3. 여주라고 불리는 열매로 만든 요리: 고바찬푸르. 여주, 계란, 두부 등을 넣고 적당히 볶는데 먹을 만하다.
4. 가죽공예품 쇼핑: 가죽으로 된 카메라끈 구입. 딸아이에게 평생을 쓰라고 이름을 넣어주었다.
anshareproject.com
5. iced beer: 맥주를 슬러시통에 넣어 일단 얼린다. 맥주를 따르고 그 위에 맥주 슬러시를 얹힌다. 마시는 내내 시원하다.
6. 여행객 중에 눈에 띄는 커플이 많았다. 특히 모녀가 함께 여행온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왔다. 오키나와가 모녀, 혹은 친구끼리 여행하기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고, 안전하고, 조용하다.
으흠, 결론이다. 오키나와를 가기 전에 제주도를 떠올렸다고 했는데, 제주도와 오키나와의 풍경은 비교할 게 못된다. 단연 제주도가 낫다. 경치, 다양한 볼거리, 올레 길 등 제주도가 사뭇 풍부하다. 헌데 오키나와는 장수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거기까지 확인하기에는 이번 여행이 너무나 짧았고 정신 없었다. 어휴,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었다, 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