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도서실 업무로 무지 버벅거리다가 학부모명예사서한테 한 수 배우고 있는데 교장샘이 도서실로 들어오셨다. (교장이라야 나보다 조금 더 나이를 드셨지만...)

 

조용히 복도로 나를 불러내더니 한말씀 하신다.

"한 학부모가 전화했는데요, 1학년 때 선생님께서 담임하셨던 학생으로 지금은 3학년 *반 학생 어머님이신데요. 이 학생이 초등학교 때는 왕따를 당했는데 중학교에 들어와서 선생님 덕분에 잘 적응하게 되었다며 고맙다고 전화를 주셨어요....."

 

휴~ 학부모 전화라는 말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느닷없는 칭찬에 그저 머쓱했다. 지난 번 체 육대회 때도 이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무척 반가워하셨는데 기어코 공개적인 '칭찬'이라는 값진 선물을 안겨주셨다. 이런 칭찬, 처음이다.

 

그런데 내가 칭찬 받은 일을 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이 학생은 매우 영특하고 귀여운 행동으로 여러 선생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았는데 그 사랑과 인정으로 스스로 힘을 얻었을 뿐이다. 1학년이 끝날 때 쯤 어머님이 '왕따' 경험을 말씀해주셔서 좀 의외라고 생각했었다. 왕따 당한 아이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이 아이를 위해 특별히 배려해주고 신경을 썼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어머니의 정성이 보통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시립도서관에서 이 아이를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어머님이 손수 도시락을 들고와서 아이를 격려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무슨 행사가 있는 날이면 꼭 긴 문자를 주시며 늘 감사하는 마음을 보여주셨다. 문자를 보내주시는 한문장 한문장에 정성이 가득 배어 있었다. 물론 물질적인 선물도 있었다. 더운 여름에 시원한 냉커피 한 잔, 소풍 때 예쁜 김밥 한 줄 정도. 한마디로 마음이 예쁘신 분이다.

 

늘 예의 바르고 공손한 마음씨에 감동 받고 있었는데 오늘 드디어 대박을 터뜨리신 거다. 끝까지 감동을 주신다. 아니, 감격.

 

'스승의 날'이 되면 터져나오는 한숨 내지는 한탄이 있다. 이런 날을 없애버리거나, 아니면 근로자의 날처럼 놀거나하지 이 무슨 묘한 상황을 만드느냐고....

 

재미없기는 아마도 학부모 역시 그럴 것이다. 나도 딸아이가 학교 다니던 작년까지 그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날. 그저 5월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가정의 달'이 싫다.

 

그러나 하루빨리 없애버리고 싶은 '스승의 날'이지만 교장실에 전화를 걸어 칭찬 한마디 해주는 것, 대단한 선물이다. 나는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돈도 안 드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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