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수목원장인 이유미박사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산림청에서 실시하는 연수에서 였다. 야생화나 나무메 문외한이었던 그간의 무지가 한순간 균열되면서 또 하나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이런 것도 있었구나.'하는 놀라움에 눈이 번쩍 떠지는 황홀한 경험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그후 내 생활이 확 바뀌었다거나 그쪽 세계로 급속히 빨려 들어갔다거나 하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나란 인간이 그렇게 바뀔 수 없다는 건 나 자신 너무나 잘 알고 있으므로. 그러나 그 놀라움과 새로움은 오래 지속되었다. 야생화와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책들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수년 전의 일이다.

 

 

 

 

 

 

 

 

 

 

 

 

 

 

 

 

한달 전 드디어 말로만 듣던 최재천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책을 도서관  폐기 처분 코너에서 발견했다. 뜻밖의 횡재에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역시 도서실 업무를 잘 맡았군, 하면서 황홀해 했다. 그러나 일상의 잡다한 업무에 지쳐 읽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오늘 비로소 완독했다. 다 읽고 난 느낌은, '동물 분야의 이유미'였다. 아마 최재천교수의 강의를 먼저 들었더라면 그 순서가 바뀌었을 지도 모른다. '식물 분야의 최재천'으로. 하여튼 두 분 모두 쉬운 글로 자신의 분야를 펼쳐주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비너스의 꽃바구니(출처: daum백과사전)

 

 

이 책이 앞으로 내 소유가 될 확률은 거의 없다.(절판된 책이 아니니 물론 새로 구입할 수도 있지만) 도서관 폐기 처분 코너에서 발견했지만 다시 살려놔야 할 임무가 내게 있으니까. 그래서 베껴본다.

자연계는 언뜻 보면 늙고 병약한 개체들은 어쩔 수 없이 늘 포식자의 밥이 되고 마는 비정한 세계처럼만 보인다. 하지만 인간에 버금가는 지능을 지닌 고래들의 사회는 다르다. 거동이 불편한 동료를 결코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다친 동료를 여러 고래들이 둘러싸고 거의 들어나르듯 하고...그물에 걸린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그물응 물어뜯는가 하면 다친 동료와 고래잡이배 사이에 과감히 뛰어들어 사냥을 방해하기도 한다....고래들은 또 많은 경우 직접적으로 육체적인 도움을 주지 않더라도 무언가로 괴로워하는 친구 곁에 그냥 오랫동안 있어주기도 한다.

코끼리들은 늘 신선한 물과 풀을 찾아 이동하며 살지만, 그렇게 이동하는 중에도 자기 어머니의 두개골이 놓여 있는 곳을 늘 잊지 않고 들러 한참동안 그 뼈를 굴리며 시간을 보낸다.

인간과 유전자의 거의 99%를 공유하는 침팬지 사회에서는 힘과 나이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른바 `끈`도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침팬지 사회에서는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를 아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맵시벌 애벌레에게 농락당하는 거미의 운명...평소에는 우리가 흔히 보는 모양의 둥근 거미줄을 치던 거미의 몸에 맵시벌이 알을 낳아 애벌레가 자라기 시작하면 기괴한 일이 벌어진다. 거미는 홀연 섬세한 거미그물 만들기를 중단하고 강한 바람에도 끄떡없는 X자 모양의 구조를 만든다. 결국 맵시벌 애벌레는 거미를 죽이고 그 든든한 버팀 구조 한복판에 매달려 번데기를 튼다. 실험적으로 거미의 몸에서 맵시벌 애벌레를 제거하면 한 이틀 밤은 계속 애벌레가 원하는 X자형 구조를 만들지만 이내 정상적인 둥근 그물구조를 만들기 시작한다.
...우리 유전자들의 정체가 속속 밝혀지면 그중 상당수가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의 몸 속에 들어왔다 그냥 눌러앉은 바이러스들의 유전자들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얼마나 많은 기생생물들이 우리 몸 속에 들어와 우리로 하여금 하고 싶지 않은 크고 작은 일들을 하도로 조정하고 있을까 생각하면 적이 섬뜩하다.

한 정당이 스스로 개미라 칭할 때 대부분은 놀고 먹는 것처럼 보이는 일개미에 비유하는 것인지 아니면 국민들은 일개미처럼 죽어라 일하도록 만들고 그 위에 군림하는 여왕개미가 되고 싶은 것인지, 개미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는 나로선 뭔가 석연치 않다.

새들 중에서도 갈매기만큼이나 암수가 공평하게 자식 양육에 동참하는 예는 그리 흔치 않다. 조류학자들의 관찰에 의하면 갈매기 부부는 거의 완벽하게 열두 시간씩 둥지에 앉아 서로 알을 품는다. 그리고 나머지 열두 시간은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들이는 바깥일을 본다. 바깥양반이나 집사람의 개념이 전혀 없는 사회다. 남녀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갈매기가 우리 인간보다 훨씬 앞선 동물들이다.

일본에서는 `비너스의 꽃바구니(Venus`s flower basket)`라 부르는 바다 해면동물을 말려 결혼 선물로 주는 풍습이 있다. 재미있게도 이 해면동물의 몸 속에는 새우가 들어와 산다. 그런데 이 새우는 어려서는 비너스의 꽃바구니 몸에 나 있는 격자 무늬의 구멍으로 드나들 수 있지만 몇 번의 탈피를 거쳐 몸집이 커지면 더 이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 안에서 평생을 살게 된다. 그래서 비너스의 꽃바구니를 우리말로는 한자어를 빌어 `해로동혈(偕老同穴)`이라 부르기도 한다.
물론 새우는 비너스의 꽃바구니가 만들어준 아름다운 유리 격자 안에서 다른 포식동물들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편안하게 살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가정이라는 창살 속에 갇혀 무료한 삶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왜 일본 여성들의 사회참여도나 여권이 대체로 우리 나라 여성들에 비해 뒤지는지 조금은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