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발 등에 난 지간신경종 제거수술 이후 마음껏 걸어본 적이 없었다. '마음껏 걷는다'는 건 하루에 1시간 정도 무념무상에 빠져 터벅터벅 걷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말이 좋아 무념무상이지 그냥 별 생각없이 걷는 것이다. 일상에서 일없이 걷는 한 시간만큼은 오로지 내 시간이기에 나는 이 시간을 오롯이 지키며 살아왔다. 이미 오래 전에 시작한, 작으나 큰 습관이다.

 

지간신경종 수술은 20여 분 밖에 걸리지 않는 작은 수술이라지만 절대 하찮은 수술이 아니었음을 수술을 받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수술부위가 제대로 아물지 않아서 염증이 생기는 바람에 3주 전에는 다시 봉합수술을 받아야 했다. 변형된 발 모양도 거의 그대로이다. 발가락이 뻐근하다거나 다리가 당기는 것도 정도가 덜하긴 하지만 여전하다. 무엇보다도 마음껏 걷지 못하니 삶의 질이 많이 떨어진다. 체중은 별로 늘지 않았지만 허리둘레가 보기 흉하게 불기 시작했고, 걸으면서 생각을 털어내지 못하니 늘 마음이 무겁고 쉽게 우울해진다.

 

몸과 더불어 마음이 가라앉아 있으면 책을 읽어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에 대한 흥미도 약해진다. 이 책 저 책 난독을 일삼게 된다. 요즘의 내 모습이 딱 그렇다. 겨우 3개월 정도에 이렇게 쉽게 몸과 마음이 약해진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심한 생각도 든다.

 

내일이면 수술한 지 딱 100일이 된다. 100이 주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드디어 무거운 날들을 떨쳐낼 때가 온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오늘 드디어 '마음껏' 걸었다. 한 시간을 걸어서 퇴근을 한 것이다. 재발에 대한 불안감을 애써 재웠다. 뭐 불치병도 아닌데...

 

여전히 몸은 무겁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건, 무거운 몸을 움직이는 것도, 가라앉은 마음을 추스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이런 내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일 게다. 이렇게 하나씩 몸이 부실해지면서 늙어간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늙기를 원하지 않는 것, 어쩔 수 없이 나도 속물이었구나!

 

어쨌거나 내일도 걸어야 되는데. 백일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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