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한 나무가 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이 나무의 꽃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산딸나무.

 

천리포 수목원을 만든 민병갈이라는 분은 평생 그렇게나 목련을 사랑했다고 한다. 연전에 가본   천리포수목원에는 과연 온갖 종류의 목련꽃이 찬란하고 화려하게 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꽃을 그렇게나 사랑할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는데 이제 그 마음을 조금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겨우 산딸나무를 발견했다. 꽃이 채 열 송이도 열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어 반가운 마음에, 봄이 끝나가는 아쉬운 마음을 보태 사진을 찍었다.

 

 

 

 

 

 

 

 

 

역사학자 강판권은 어떤 책에서 이 산딸나무를 가리켜 '하얀 옷을 입은 천사'라고 했다. 기막힌 표현이다 싶어 그 어떤 책을 구매했다(66,300원). 아무래도 내가 산딸나무에 단단히 씌웠다고 밖에.

 

 

 

 

 

 

 

 

 

 

 

 

 

 

 

 

 

 

강판권의 책을 검색하다보니 이성복의 시 중에 이 분을 기리는 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 나무인간 강판권

                              

                                   이 성 복

 

언젠가 그가 말했다. 어렵고 막막한 시절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고

(그것은 비정규직의 늦은 밤 무거운

가방으로 걸어 나오던 길 끝의 느티나무였을까)

 

그는 한번도 우리 사이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우연히 그를 보기 전엔 그가 있는 줄을 몰랐다

(어두운 실내에서 문득 커튼을 걷으면

거기, 한 그루 나무가 있듯이)

 

그는 누구에게도, 그 자신에게조차

짐이 되지 않았다

(나무가 저를 구박하거나

제 곁의 다른 나무를 경멸하지 않듯이)

 

도저히, 부탁하기 어려운 일을

부탁하러 갔을 때

그의 잎새는 또 잔잔히 떨리며 웃음 지었다

-아니 그건 제가 할 일이지요

 

어쩌면 그는 나무 얘기를 들려주러

우리에게 온 나무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무 얘기를 들으러 갔다가 나무가 된 사람

(그것은 우리의 섣부른 짐작일 테지만

나무들 사이에는 공공연한 비밀)

 

 

 

   

읽으면 읽을수록 깊은 울림을 주는 시이다. 영혼이 깃들인 나무 한 그루를 접견하는 기분이랄까. 위안을 받는다. 산딸나무 보다도 더욱. 산딸나무에게는 미안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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