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학교 - 이정록 시집
이정록 지음 / 열림원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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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시인의 글은, 시집이건 산문집이건 큭큭거리거나 낄낄거릴 수 있어서 좋다. 점잖은 척 폼 잡지 않아서 더더욱 좋다. 시를 읽는 순간순간이 어찌나 유쾌하던지...

 

<저승사자>

 

세상 모든 집에

하느님을 보낼 수 없어서 어머니를 보냈다는

쑥스러운 말이 있더구나

 

세상 모든 집안에

저승사자를 보낼 수 없어서 아내를 보냈다는

얼토당토않은 말도 있더구나.

 

아내한테는 자식한테처럼 자분자분

이 어미한테는 아버지한테처럼 든든당당.

그럼 어디 감히, 저승사자가

이승에다 호적을 두겄냐?

 

'세상 모든 집안에/저승사자를 보낼 수 없어서 아내를 보냈다는' 구절을 읽고 한참을 숨 죽이고 웃었다. 도서관 일반실에서 읽고 있었다.

 

<남는 장사>

 

목 아파 죽겄다.

 

- 곡식자루 이고 장에 다녀오셨어요?

 

내다 팔 거나 있냐?

니들도 아버지도 다 떠나서 그렇지.

 

-돌아가신 지 이십 년 가까운데

아직도 목 빼고 기다리세요?

 

잠을 잘못 잤나벼.

이젠 베개까지 달아나야.

머리에 착 달라붙어서 자석베개련만.

 

-베개를 아예

요에다 꿰매놓으세요.

 

식구들 잠들었을 때

배갯머리 잘 디밀어줘라.

 

-자지 않고 베개만 지킨데요?

 

깜깜한 잠자리에 그런 눈길 두어 번이면

자식이고 아내고 지극정성을 다하는 법이여.

잠결에도 그런 건 다 느끼는 거여

그만큼 남는 장사가 어디 있겄냐?

 

요즈음 말썽꾸러기 녀석이 있어 속을 무척 상하고 있다. 그저께 금요일에도 그 녀석이 다른 녀석과 내 앞에서 보란듯이 싸우기에 싸움을 말리느라고 교무실에 붙잡아놨더니 자꾸 도망치기에 소리 좀 질렀더니 금새 목이 가버렸다. 내 목은 비교적 강인한 편인데 얼마나 사납게 질러댔으면 금방 목이 가버리나 싶어 한심하기도 하고...사실은 힘들다.

 

이 말썽꾸러기 녀석이 자꾸만 말썽만 피우는 건, 바로 잠결에 베갯머리 디밀어주는 사람이 없어서였다. 어려서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탁구공처럼 이 사람 저 사람 손에서 옮겨가며 자랐다. '깜깜한 잠자리에 그런 눈길 두어 번이면' 이 아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지극정성'다하는 평범한 아이로 자랐을텐데. 지금은 너무나 멀리 베갯머리가 떨어져있다. 아마 이 아이에게는 지금 베고 잘 베개가 없는지도 모른다.

 

에이, 이 시인의 시는 모처럼 유쾌한가 싶어 혼자서 숨 죽이며 키득거리다가 끝내는 가슴에 묵직한 바위 하나 얹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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