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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황홀 - 성석제의 음식 이야기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성석제의 이전 산문집도 여럿 읽었는데, 확실히 이 책은 더 재밌다. 잡다한 지식으로 잘 버무려진 왕수다 같은 느낌에 연륜이 더해졌다고나 할까.
칼과 황홀. 칼은 음식을 조리하는 도구일테고 황홀은 '매일 먹고 힘을 얻으며, 마셔서 기갈을 풀고 도취경'에 드는 황홀을 말함이다. 지은이 말마따나 '나라는 인간이 참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어지간히 황홀하게 돌아다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도 하다. 국내는 물론 해외도 열심히 드나들며 많은 이야깃거리를 양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 밑에 깔린 기본 토대는 단연 음식이었다. 읽다보면 참 어지간히 돌아다니고 어지간히 먹는 걸 즐기고 있다.
아니다. 그게 작가라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가들의 '작가수첩'같은 글들을 읽다보면 그들의 머릿속에는 늘 글에 대한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어서 순간 순간의 아이디어나 경험들을 흘러가는대로 그냥 두는 법이 없어보인다. 개그맨 김병만의 온갖 아이디어나 광고 천재 이제석의 천재적이고 기발한 착상들이 모두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또한 세상을 읽어내는 그들 나름의 방식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글로써, 개그맨은 개그 프로그램으로써, 광고쟁이는 광고로써 세상을 읽고 세상을 해석한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번 킥키거리며 유쾌하게 읽었다. 혼자 알고 있기가 아까워 남편과 딸아이에게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아마 옆에 중학교 동창들이라도 있었으면 더 크게 더 유쾌하게 떠들어댔을 게다. 왜냐면 나도 이 책의 저자와 동년배로서 같은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야의 해박하고 잡다한 지식에 저자의 능청맞은 필력이 더해져 어느 때는 빌 브라이슨의 글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가령 다음과 같은 몇 문장을 보라.
p269... 술꾼은 다음 날 아침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해서 전날의 상대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런저런 걸 묻지 않는다. 그게 예의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왔다면? "나도 기억이 하나도 없어.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모르겠네." 이렇게 말하는 게 예의다. 그러나저러나 술값은 누가 냈는지, 비싼 것 같던데...
p342...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쇼핑몰에서)너는 네가 소비하는 것의 총화이다...(화장품 가게에서)나는 내가 바르고 뿌려대는 것의 결과물이다...(보석가게 앞에서)당신은 당신이 갖기를 바라는 것의 집합체이다...네가 욕망하는 것이 너를 만든다...네가 생각하면 그 생각이 네 운명을 바꿀 것이다...네가 지금처럼 말장난으로 헛되이 시간을 보낸다면 네 인생은 바로 그 헛된 시간의 말장난이 될 것이다...
넉살좋은 그의 글을 읽다보면 '어떻게 음식이라는 주제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조금씩 풀린다. 세상과 사람들 사이에서 황홀하게 취해있으니 어찌 배가 고프지 않을까. 그렇게 세상을 맛있게 먹고 있으니 글이 어찌 나오지 않을까.
성석제의 왕수다가 금방 그리워질 것 같다.
하나 빼먹을 뻔했다. 이 책에는 김 먹는 방법에 대한 얘기도 있어서 마침 냉장고에서 썩기 직전인 일 년이 다되어가는 김을 드디어 해치웠다. 이름하여 김조림. 김을 이렇게도 먹을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일었다. 친구들과의 왕수다에서도 뭔가 얻어 들을 게 있듯 이 책도 곳곳에 '생활의 지혜'가 숨어있어서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