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박힌 한반도 - 박석수 요절시인 시전집 시리즈 8
박석수 지음, 이승하.우대식 엮음 / 새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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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후 시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먼저임을 알게 해준 시와 시인이 있었다. 바로 박석수와 그의 쑥고개 연작이다. 부전공으로 국문학을 접하면서 시인 김남조의 강의를 들었었는데 중간고사였던가, 자신이 좋아하는 시와 그 감상을 쓰는 것이 시험문제였는데 나는 그때 박석수에 대해서 썼었다. 그의 쑥고개 연작에서 느꼈던 전율이 지금도 그대로 내 몸 세포 속에 남아 있다.  

얼마전 우연히 알라딘에서 그의 시집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러고보니 그의 시집은 처음이었다. 1979년, 한 시화전에서 만난 그의 시 몇 수와 문예지에서 베낀 시 몇 수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첫사랑의 감동 같은 환희와 전율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 환희는 서러운 것이었다. 시를 보자.  

  •    
     

    심청을 위하여 
    -쑥고개 1 
     
    헐벗은 우리의 가슴에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기 위하여 
     
    인당수보다 더 깊고 깊은 
    미군들의 털북숭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누이야. 
     
    내 몸과 바꾼 15불의 화대로도 
    애비들의 눈은 
    뜨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연꽃은  
    끝끝내 
    피어나지 않는다.  

    내의 껴입을수록 더 추워지는 
    이 겨울을 
    맨 정신으로 살아내기 위하여. 
     
    눈 부릅뜰수록 더 어두워지는  
    이 세상을  
    좀 더 바로 보기 위하여 
     
    인당수보다 더 깊고 깊은  
    수렁 속에 던져진 
    우리들 마지막 기다림 하나. 

     
       
 
이 시를 통해 나는 단번에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어딘지를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1983년에 나왔다는 두 번째 시집 <방화>- 그의 시집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는  '미국의회도서관'에 비치되었다고 하는데 미국의 입장에서는 반미적인 성향으로 보였나보다. 나는 다만 그 시집에 실렸다는 다음의 시를 그저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서울에 와서 1 
  
내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입이 향기로웠다. 
 
금붕어처럼 퐁퐁 입으로 
예쁜 방울만 뿜어내는 
  
내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입만 향기로웠다. 
 
(생략)
 
   
 
*쑥고개: 지금은 경기도 평택시 소재이지만 한때는 독립적인 행정구역으로 송탄시로 불리기도 한 곳. 미공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으로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부대 중 필리핀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고 읽은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이 시집은 요절시인 시선집 시리즈 중 8권으로 나왔다. 요절시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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