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본 백석 시집
백석 지음, 고형진 엮음 / 문학동네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사서 읽어도 시원찮을 판이지만 요즘 책 값 지출이 좀 심한 편이라서... 

말로만 듣던 백석의 시를 이제야 읽는다. 그런데 지금 읽으니까 오히려 시의적절하게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펴낸 분의 주석없이는 제대로 된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으나 두번 세번 반복해서 읽다보면 그런대로 (주석없이도) 이해가 된다. 어릴적 주위에서 들었던 함경도 사투리도 떠오른다. 함경도 사투리의 그 특유의 억양이 참 그리워진다. 북한 피난민인 우리 엄마의 황해도 사투리도 알고보면 우리가 간직해야할 언어의 보고이다. 어렸을 때는 거부감이 일던 북녂의 사투리들을 이제는 쉽게 접할 수 없는게 무척 아쉽다. 

백석의 언어들이 앞으로 어떻게 보존되고 이해가 될까? 시 한 수를 읽기위해 고어/사투리사전을 찾아가며 읽어야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대학시절 나는 영시 한 편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학위 논문까지 뒤적거려야 했다. 그래서 겨우 뜻을 파악하는 지난한 과정, 은 물론 나름 보람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시가 그렇게 어려워서야 그게 어디 감상인가 상형문자 해독이지, 싶다. 백석의 시가 그렇게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그게 좀 걱정된다고나 할까.  

내 나름대로 정선(?)한 백석의 시를 베껴본다.  <모닥불>이라는 시이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오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닢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력사가 있다

백석의 시는 여러 사람이 여러 이유로 좋아할 수 있는 시라는 생각이 든다. 처연한 심정을 노래한 시도 좋고 특유의 어법이 쓰인 시도 좋겠고...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나는 그 중' 반복과 나열과 부연으로 어떤 사실이나 정황등을 줄줄이 이어나가는 '엮음' 의 구문'(고형진)으로 된 시들이 재미있다. 이 형식은 '판소리의 양식적 특성을 수행'한다고도 한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가 읽을수록 재미있다.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자 방안에는 성주님/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디운구신/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뜨막에 조앙님 

나는 뛰쳐나와 얼른 고방으로 숨어버리면 고방에는 또 시렁에 데석님/나는 이번에는 굴통 모통이로 달아가는데 굴통에는 굴대장군/얼흔이 나서 뒤울안으로 가면 뒤울안에는 곱새녕 아래 털능구신/나는 이제는 할 수 없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대문간에는 근력 세인 수문장 

나는 겨우 대문을 삐쳐나 바깥으로 나와서/밭 마당귀 연자간 앞을 지나가는데 연자간에는 또 연자망구시/나는 고만 디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서서 마음 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아아 말 마라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 다니는 달걀구신/마을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나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아무래도 백석의 시집을 한 권 마련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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