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이상 머물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중국의 윈난, 베트남의 사파, 인도의 우띠, 일본의 교토, 터키의 사프란볼루, 스위스의 바젤, 그리고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이 될 것이다. 바젤, 윈난, 교토를 빼면 모두 심심해서 발작을 일으킬 지도 모르지만. 

루앙프라방에서 4일을 머물며 무엇을 했나. 매일 저녁 몽족 야시장 탐색하기, 몽족 마을 트레킹, 슬로보트 타고 동굴 탐사, 라오스 전통 공연 관람, 새벽 탁발 구경, 동네 골목길 누비기 등. 


 

 

 

 

 

 

 

 

 

 

그러나 루앙프라방에서는 무엇보다도 이 솜사나무 주변을 맴돌거나, 게스트하우스 계단에 우두커니 앉아 옆 집 밥짓는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거나, 혹은 옆집 새댁이 애기 목욕시키는 거 지켜보기와 같은 소소한 것들을 해 볼 일이다. 온동네 사람 들으라고 크게 켜놓은 라오스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일 또한 나쁘지 않다. 30분만 게스트하우스 계단에 앉아 있어도 동네 사람 다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유명하다는 새벽 탁발도 내게는 그리 뜻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둠이 채 가시기 전인 새벽 6시. 맨발로 탁발에 나선 스님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룬다하여 스님 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주변에 진을 치고 있는 모습도 그렇고, 탁발을 하는 스님들의 얼굴에서 언뜻 언뜻 비치는 무심함과 피곤한 기색도 그렇고, 단체여행객들의 공양 행위 역시 진지해보이지 않았다. 그냥 일상일 뿐이었다. 큰스님을 선두로 맨끝에는 동자승들이 눈을 부비고 뒤따르고 있었는데, 별달리 할 일도 없던 나는(나는 거의 사진을 찍지 않는다.) 그 스님들이 몇 분이나 되나 숫자만 세었을 뿐이었다. 202명 정도가 되었다. 난 왜 이런 엄숙한 행위에 감동을 하지 않는거지?  

한창 여행에 폼을 잡던 시절엔 4박 5일짜리 여행을 위해서도 론리플래닛에서 나온 영문여행안내서를 구입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열흘정도 여행이라도 그냥 국산을 애용하기로 하고 있다. 워낙 다양한 여행안내서가 국내에서 출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여행안내서에서 간과하는 부분이 하나 있음을 가끔 발견하곤 하는데 바로 공연 문화에 대한 소개가 소홀하다는 점이다. 이곳 루앙프라방에서도 그랬다. 

숙소에서 우연히 발견한 론니플래닛판 라오스가이드북을 펼쳐보다가 전통공연을 하는 상설공연관이 있다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바로 왕궁박물관내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도 외국에서는 전통공연 하나쯤은 봐줘야한다는 신념을 품고 있었던지라 즉시 실행에 옮기기로하고 저녁에 있는 공연 예매를 하러 갔다.  

우리의 예술회관 같은 공연장 입구에서 허름한 옷차림을한 늙수그레한 아저씨 한 분이 표를 팔고 있었다. 서너 가지의 등급으로 되어있는 좌석표는 요금 구분이 되어있어서 잠시 망설이고있자니 아저씨가 우리를 공연장으로 안내하며 따라오라한다. 나는 당연 제일 싼 좌석이 눈에 들어오는데 어라, 이게 뭐야 등받이도 없는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네. 무대와의 거리는 또 왜 그렇게 멀리 떨어뜨려놨는지 절대로 앉아서는 안될 것 같은 세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우리더러 의자에 앉아보라고 하면서 한등급 한등급 급수를 높여가면서 안내를 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런 예매를 하겠는가 싶었다. 나이 든 아저씨의 권유를 못이기는 척하며 두 번째로 비싼 표를 끊겠다고 하니 아저씨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그래 라오스의 공연문화 진흥과 발전을 위해 기부하는 셈치자고 생각하니 순간 뿌듯함마저 일었다. 요금도 그렇다. 당시에는 등급에 따라 확연히 구분되어서 차액이 크게 보였지만 이렇게 요금도 제대로 기억 못하는 걸 보니 우리에게는 그렇게 큰 액수라고는 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그러면 공연은?  너무나 화려한 공연 문화에 눈을 버릴대로 버린 우리네 같은 관광객에게는 소박한 옛시절을 떠올리게 한다고나 할까. 그러나 성의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는 나름대로의 자부심 같은 것도 엿볼 수 있었다. 부디 자존심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우리나라 여행자들은 이런데 안 와보고 다들 어디에 있나? 이곳 루앙프라방의 여행자들을 크게 나누어보면 두 분류가 되는데, 서양인이냐 아니면 한국인이냐, 할 정도로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많은데 이런 공연장에 우리 넷과 한 명의 아가씨 밖에 없다니 이건 분명 국내산 가이드북의 한계 때문일 게다. 

야시장은 매일 밤, 누구 말처럼 마술처럼 펼쳐졌다가 마술처럼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끝나버린다.  몽족이 손수 만든 공예품도 있고 주변 나라에서 수입해온 물건도 있는데, 재밌는 건 며칠 전 인사동에 나갔다가 몽족들이 팔고 있는 똑같은 스카프를 발견했다는 거다. 그 스카프는 방콕 카오산 거리에도 걸려 있었다. 하여튼 물건 가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는 우리는 그 가격이 바가지인지도 모르고 그냥 깎는 척하다가 사왔다는 거다. 

그 야시장에는 서적 코너도 있었는데, "라오스 어린이에게 책을 선물하세요. 라오스 어린이들은 너무 가난하여 책을 전혀 읽어보지 못하거나 한 권의 책도 가져보지 못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해주세요. 호텔의 웨이터에게도 팁 대신 책을 주세요."라는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낮에 몽족 마을에 갔을 때 볼펜을 뿌리다시피한 게 살짝 마음에 걸려서 모처럼 좋은 일 좀 하자고 의견을 모으고 하루 방 값에 해당하는 가격 만큼 책을 구입했다. 그래야 4권이지만.  

그 중 한 권은 거리에서 악기를 들고 있던 한 할아버지에게 돌아갔다. 할아버지가 들고 있던 악기는 우리의 해금과 너무나 비슷하게 생겨서, 반가운 마음에 할아버지의 연주도 청해 듣고 악기도 만져보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해금보다 활이 훨씬 부드럽고 소리도 경쾌하고 크게 울려나왔다. 의사소통만 되었더라면 좀 더 연주를 들어보는 거였는데, 아쉬웠다. 

해금 한두 번 만져봤다고 이제 어디가면 해금만 눈에 들어온다. 중국, 홍콩, 베트남, 라오스...또 어디에 있을까. 이곳 루앙프라방에서는 거지도 해금을 연주하며 구걸하고 있었다. 서양 바이올린의 원조가 해금류의 악기라는데...

아침밥을 두 번 해결했던 식당이 있다. 깔끔하고 세련되게 생긴 주인아주머니가 인상적이었는데 음식 역시 깔끔하고 맛있었다. 그런데 이 식당은 매일 오전 6시에 문을 열어 오후 2시 30분 까지만 영업을 하고는 문을 닫는다. 참 신선한 충격이라고나 할까. 세련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써야 어울릴 것 같다. 

모퉁이에서 5,000kip하는 과일주스를 팔던 젊은 부부의 미소가 그립다. 허구헌날 주스를 팔면서 그렇게 환하고 착한 순정의 미소를 지을 수 있다니. 아침부터 밤까지 노점에서 바게뜨와 커피를 파는 젊은 몽족  부부의 미소도 그랬었는데. 그들은 분명 우리가 잃어버린 그 무엇을 간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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