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엥에서는 강변에 있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방갈로로 숙소를 잡았다. 어디까지나 고급스러워 보이는...40달러, 4인실. 그저 그런 두 개보다 괜찮은 거 하나 잡아서 함께 쓰자는 거였는데 결과적으로 방은 시원찮았고 남편이나 안샘 모두 불편을 겪어야했다. 물론 문만 열면 한 폭의 수려한 풍경화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서 눈의 호사로서는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었다.

비엔티안에 본사를 두고 있는 폰트래블(한국인 운영)에서 1일 투어를 신청해 동굴 탐사와 카약킹에 나섰다. 일인당 10달러. 자동차 타이어에서 나온 검정 튜브를 타고 물에 잠긴 동굴을 15분 정도 들어갔다 나오는 것인데 재미는 있었다. 엉덩이가 물에 잠긴 채 밧줄을 잡아가며 어두운 동굴로 들어서면, 평소 한국인을 많이 상대해오던 가이드는 <만남>을 시작으로 ‘정말로 사~랑~해’를 거쳐 노래를 몇 곡 더 선창하며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동굴 탐사를 마친 후 햇볕에 젖은 옷을 말리며 과일야채꼬치구이와 바나나, 볶음밥으로 된 점심을 먹고 있으면 슬쩍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루 종일 밥도 주고 물놀이까지 시켜주고 겨우 10달러라니...

체육교사인 안샘은 유쾌한 사람이다. 힘을 돋궈주는 사람이다. 카약을 함께 타고 물살을 따라 노를 젓고 있으면 뒤에서 들려오는 안샘의 우렁차고 맑은 목청에 저절로 노를 젓는 팔에 힘이 실린다. 너무 힘이 실려서 양쪽 엄지손 아래에 물집이 잡히기도 했다. 세 식구에 끼여 함께 여행하면서 끝까지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은 안샘에게 이 글을 통해 고마움을 전한다. 
 
물 좋고 산 좋은 이 방비엥엔 이상한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방석이다. 식당이나 카페 마다 의자 대신 방석이 놓여있고, 삼면의 벽에는 또 한가하게 텔레비전이 걸려있고, 그 화면에선 온종일 만화영화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보기에 따라서는 민망하기도 하고 퇴폐적이기도 한 참으로 모호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저 방석에 앉아서 아니 거의 누워서 하루 종일 뭉기적거리는 기분은 어떨까. 저렇게 몇 시간씩 누워서 시간을 죽이지 못하는 너무나 반듯한(?) 나는 부러움 반 호기심 반으로 방석에 눈길을 던졌다. 두어 번 밥 먹느라고 앉아보긴 했다.

다음에 다시 라오스에 가게 된다면 이 방비엥은 글쎄 다시 가게 될까? 이곳은 가슴 벅찬 세계 각국의 젊은 피들의 해방구가 된 지 오래인 듯하다.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젊음이 사방팔방으로 퉁겨져나와 작은 시골 동네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는 예전에 파라다이스라는 유원지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은 근방의 미군부대에 근무하는 미군들을 위한 해방구 같은 곳이었다. 호수를 만들어 작은 보트를 띄우기도 하고 음주와 가무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미군 위안용 유원지였다. 이곳은 미군들에게는 말 그대로 천국 같은 곳이었겠지만(이름마저 파라다이스라니)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감내해야할 치부 같은 곳에 불과했을 것이다.

여행자의 천국인 이 방비엥이 내겐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은 곳이 되어버렸다. 어릴 적에 보았던 털복숭이 미군들에 대한 영상이 자꾸 이곳의 여행자들과 겹쳐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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